요7:25-36절) 그리스도의 수수께끼 우리들은 많은 수수께끼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도대체‘나’라는 존재는 무엇이며 결국 인생(人生)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 말입니다. (가수 최희준 : 인생은 나그네 길)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들을 많이 당하고, 잘 풀리지 않는 바람에 비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은행에는 대형 금고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중요한 서류나 돈을 넣고 문을 잠급니다. 누구든지 그 금고 문을 열려면 열쇠가 있어야 하고 비밀 번호를 알아야 합니다. 금고 열쇠가 없고 비밀 번호를 모르면 절대로 그 금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체가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른 체 살아가야 하고, 왜 ooo결혼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문학가가 되려고 했는데 집이 어려워서 장사를 하다보니까 사업가가 된 사람도 있고, 음악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만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오늘날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에게‘당신은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었느냐? 고 물어보면‘아직도 풀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애 쓰고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세계적인 기업가나 정치인들이 개인적으로 점쟁이를 만나서 인생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점을 치는 사업이 아주 큰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대권을 앞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장사하는 사람, 실연당한 아가씨,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모든 인생의 계획표가 어디에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인생의 계획표가 그들이 생각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운명을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이것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의 수수께끼는 인생 자체만 갖고 아무리 씨름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는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神秘)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신비를 푸는 사람은 사는 것이고, 풀지 못하는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아주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모든 인간들에게 내시는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이것이 풀려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멸망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힘 25-26절)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 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 가”
우리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하는 말을 통하여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갈릴리 사람들만 이 사실을 몰랐을 뿐이지, 예루살렘에 사는 웬만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당국이 특히 이번 초막절에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 정도는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실 유대 당국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정적으로 벼르고 있었던 때는 이번 초막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궁금해 하고 있었던 것이 그리스도의 정체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말이 많았습니다. 즉 과연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출생과 그의 성장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 어디를 보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그리스도는 갑자기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말라기에 홀연히 임하실 것 이라는 말씀이나 이사야서의‘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라는 말씀 등을 통해서 갑자기 신비롭게 오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상적인 인간으로 출생하시고 갈릴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리스도일 수 없다 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면 진짜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 정도 이상은 할 수 없다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믿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하는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해도 올라가지 않고 있다가 따로 몰래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올라가신 후도 조용히 숨어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명절이 중간쯤 지났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 대담하게 나타나셔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찾던 사람이 제 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도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타나시면 잡아서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즉 아마도 예루살렘 당국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게 되므로 예수님을 잡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닐까? 입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힘들이 나타났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예수님은 가버나움 사람들의 믿음이 이방인들보다 못하다 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때 가버나움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높은 절벽까지 끌고 가서 거기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거기서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즉 절벽 끝까지 끌고 가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거기서 그들 사이를 걸어서 나오셨습니다. 간음하던 한 여자가 잡혀서 예수님 앞에 끌려 왔을 때, 모든 사람은 돌을 들어 그 여자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여자를 치라 고 하셨을 때, 모두가 알 수 없는 힘에 마음이 찔려서 돌을 버리고 그곳을 떠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기만 하면 예수님을 잡아 죽일 모든 계획을 다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수님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뒤에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이 유대인들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계획을 잘 세워놓고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보면 우연의 변수에 의하여 삶의 길이 달라지는 것이 너무나도 많고, 그 중에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일들도 수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들은 인간의 힘 外 분명히 다른 변수가 인간들의 삶 위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힘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고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연 이것이 무엇일까? 하는데 따라서 종교가 달라 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점(占)을 치러 가고, 어떤 사람은 갓 바위에 빌러가고, 어떤 사람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인간의 악한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도록 언제나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간의 손에만 맡겨두고 내버려두셨더라면 인간들은 단 며칠 만에 모든 것을 다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갖는 이 한 가지를 위하여 밀려온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시는 분은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11절)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그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세상적인 복(福)을 주시기도 하시고, 안주시기도 하시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거의 강권적인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모든 복을 받는 비밀번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금고 문을 열려면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고 카드를 사용하려 해도 비밀번호를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복을 가지는 비밀 번호는 둘째로 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복은 하늘의 복입니다.
이 하늘의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면서 나의 정체성과 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리나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았고 아무리 유명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 밖에서 어둡고 추운데서 떨며서 있는 버림받은 사람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Ⅱ.그리스도의 나심과 오심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출생이나 출신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7절)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갑작스럽게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부모도, 출신도, 고향도 알지 못하는 아주 신비스러운 인물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유감스럽게도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말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생각한 그리스도는 전혀 유대인들에게 알려 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폭발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리스도의 출현은 갑작스런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다가 그 다음에 어느 날 갑자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능력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30이 될 때까지 어디에 있었겠느냐? 해서 이상한 엉터리 같은 공상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모를 아는 자들도 있었고, 또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자란 것을 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예‘나사렛 예수’라는 말이 나중에는 예수님의 이름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에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튀어나와야 하는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이미 알만한 것은 다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왜냐면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의 한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타난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마리아와 같이 살기 전, 이미 마리아는 임신을 했고, 그것 때문에 결국 베들레헴까지 가서 애기를 낳은 것을 몰랐습니다. 또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 때문에 헤롯이 위협을 느껴서 베들레헴의 아기를 모두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애굽으로 피신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시험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비밀은 다 빼놓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실 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즉 일반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알았던 것은 전혀 비밀이 아닌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지식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고, 하늘 문도 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서서히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진짜 일급비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풀 수 있어야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28-29절)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예수님은 우선 유대인들이 예수님도 알고 예수님이 어디서 온 것도 알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시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모세가 가르쳐준 율법이나 의식이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아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출생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29절)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난 것만 가지고 실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의 가장 큰 불만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갈릴리 출신이 아니라, 유대 어느 지방 출신이었다면 훨씬 그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심한 지역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과 처음 만들어진 것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 임신 되면서 처음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 안에서 임신 될 때,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화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 임신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태어나신 때는 있었습니다. 그것을‘아버지에게서 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영원 전, 이 세상에 우주나 천사도 없었을 때, 신비로운 과정에 의해서 아버지로부터 생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똑같은 분으로 생기셨습니다. 이 점을 두고서 c.s.루이스라는 작가는‘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낳는 것과 만드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다고 하는 것은 자기와 다른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사람들은 자동차를 만듭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창조라고 하면 자기와는 다른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형을 만든다고 하지, 인형을 낳는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에 어머니는 아기를 낳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비로운 과정에 의하여 임신이 되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을 낳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 전에 아버지로부터 신비로운 과정에 의하여 하나님과 똑같이 생기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로부터의 분열이 아닙니다. 분열이라는 것은 아주 하등 동물에서 발생하는 과정입니다. 즉 아주 고차원적 과정에 의해서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몸에서는 인성을 입고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보내어지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과 똑같이 생기셨지만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영원히 자기 수수께끼에만 빠져 있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기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첫 번째 열쇠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주 어려운 과정에 의하여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당연히 나오게 되는 질문이 왜 하나님의 아들이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나 우리 인간들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에 있다고 착각하고 모든 것을 풀려고 하니까 아무 것도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마치 자동 제어 장치가 고장이 난 배와 같습니다. 지금 배는 잘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 안에서 사람들은 경치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춤도 추고 있고 장사도 하고 연애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배는 고장이 나서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 사회는 엔진만 고장이 났을까? 아닙니다. 모든 부분입니다. 전부 다 고장이 난 상태(부패)에 있습니다. 단지 인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아직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인간들은 지금 엄청난 파멸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정상적으로 고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몸에 병이 있을 때,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낳지 않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전문의의 진찰받고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깨끗하게 낫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삶을 치료하시기 위해 아주 어려운 과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말씀이 무엇입니까?‘나는 아버지를 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잘못되어서 우리는 지금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죄가 해결되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Ⅲ.예수 그리스도의 가심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문제는 절반 이상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는 것은 오실 때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 가운데서 담대하게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30-31절)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님은 처음 장막절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에 대하여 자신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시는 중에 이번 장막절은 사탄의 세력이 예수님을 잡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 담대하게 나서서 당당하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대 당국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체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강권적인 하나님의 뜻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번은‘그때가 아니다’는 확신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9:4절)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예수님에게는 낮과 밤이 있으셨습니다. 여기서 낮이라는 것은 진리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이때는 예수님이 아무리 활동 하셔도 악한 세력이 예수님을 막을 수 없었고 예수님을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에는 더 이상 예수님이 진리를 증거 하실 수도 없습니다. 그 때는 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아서 처형하는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분별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영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었을 때는 영적인 소경이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모든 것이 캄캄했고, 닥치는 대로 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오고 난 후에는 우리는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의 일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때는 악의 세력에 의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낮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환한 대낮같이 우리 앞을 비취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시119:105절)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드디어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33절)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잇다가 나를 보내신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잠시 후에 나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가 돌아가시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푸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구약의 예언대로 처녀의 몸을 빌어서 인간이 되셨듯이 구속의 사명을 다 완수하시고 돌아가실 때도 성경의 예언대로 하셔야 합니다. 만약 여기에 조금만 차질이 생기면 인간들을 구원하는 모든 노력은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여기에는 0점 0000 일의 오차도 생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잠시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모든 성경 구절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성취하셔야 합니다. 즉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이나, 은 삼십에 팔리시는 것이나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을 당하는 것 등 모든 것을 다 성취하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저주를 하시거나 욕을 하시면 안 되시고, 더욱이 십자가에서 화가 난다고 못을 뽑고 내려오셔도 안 됩니다. 자신을 온전한 산제사로 바치시고 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라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어느 것 하나라도 잘못되면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단순한 시기심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예수님께 맡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우리 인간의 몸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왔습니다. 이 세상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와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할 것이요, 예수님이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중요한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오는 능력으로 사는 것이며 거기서 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좌에 접근하는 것이 차단되어 있고, 예수님에게 가는 것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우리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우리의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기들도 모르는 많은 위기로 인하여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언제나 낯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10:29절)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고 말씀하셨고. 30절)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영원한 축복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명예나 성공을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 세상에 위기는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다 알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껏 선포되고 있는 동안은 낮입니다. 낮에는 우리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이 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계속 진리를 밝혀서 다시는 밤의 세력이 우리를 덮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천국 복의 열쇠요, 비밀번호입니다.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복과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234장 *구주 예수 그리스도* 씨 뿌리는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