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후 원린 시조로 선택 후 오성군 계파도의 문제점
아래 구성도에서 보듯이 안기와 안지파 (일명 오성군파)는 시조를 두 번이나 모시게 됨으로써 두 번의 연대 꼬임(①과 ②로 표시함)이 일어나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① 은 1742년 족보를 제작할 때 우를 시조로 모시게 되어서 꼬이게 되었고, ②는 1850년 이 후 원린을 함께 공동 시조로 모시게 되어 꼬이게 되었다.
현(1350)-윤기(1330) 사이에 생리적 불일치가 있고, 원린(1324) -우(130) 사이이 세대를 역전시키는 생리적 불일치가 있다.
시조와 후손아 생리적으로 꼭 맞아야 할 이유는 없다. 경우에 따라 안맞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고 이해하고 넘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두 번이나 세대 역전을 일으키는 생리적 불일치 구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에 대한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안원린은 누구인가?
원숭, 원형, 원린 삼형제는 없다. 1341년 삼형제가 한날한시에 동시에 문과에 급제 기록도 없다.. 대단히 죄송히지만 원린은 없다.
안우는 누구인가?
오성군(탐진군) 봉군, 추충절의 정난공산, 고려를 위기에서 구한 구국영웅, 고려16공신 중의 한명이다.
● 현 단계의 오성군파 수정 제안
우의 아들 현이 윤기의 동생으로 배치된다.
그리하면 오성군파의 터무니 없는 생리적 불일치는 우선적으로는 해결된다. 앞으로 새로운 왕시조가 나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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