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님은 부산교대를 나오시고, 2달간이라는 의무 교육기간을 마치신후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며느리로써, 아이들의 엄마로써만 살아오신 분입니다.
어머님이 매일 하시던 말씀 중에...
중학교에가면 초등학교때보다 더 열심히 하고... 고등학교에 가면... 중학교보다 더... 대학교에 가면... 고등학교보다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제 성적은 초등학교때가 가장 우수했습니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이런 과목들 전부 백점을 맞으면 일단 전교 1등이잖아요.
중학교때는 반에서 10등안에 들어가본적이 없습니다. 그 중학교... 상당히 질 나쁜 중학교입니다. 물론 저도 질나쁜 애들과 친했지요. 부끄럽지만 저도 다른 아이들 괴롭히고, 삥뜯고(돈 뻇고), 뺏기고, 때리고, 맞고... 다 해보고 당해봤습니다. 공부 못해도 즐겁게 살았습니다. 사실 공부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중학교때까지는....
중학교 1학년 입학해서.... 엄청나게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배치고사를 쳤는데, 국어, 산수 2과목을 쳤습니다. 전 50점, 50점 인 두과목을 한개 틀려서 50점, 49점을 받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때는 칭찬을 받고 싶었나 봅니다.
집에 가서 배치고사 두과목 모두 만점 받았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칭찬해 주셨다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 배치고사를 만점 받은 아이가... 1명 있었습니다. 걔가 월요일, 전 화요일... 반의 아이들... 행동 평가를 기록하는 학습위원이 되었습니다. 떠든사람도 기록하고, 머 그런걸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땐 제법 감투였다고 좋아했던... ^^;
1점 차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아신 아버지는 그날 절 무지막지하게 패셨고... 전 죽을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무조건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깐... 전 어릴떄 거짓말도 잘했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용서를 비는것도 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상황이 자주 반복되었고... 전 아주 많이.... 여러분들 상상보다 더 많이... 맞았습니다.
나쁜 친구들이라 판단될 친구들... 친구들 패고... 돈 뺏고... 중학교때 이미 여자를 알아서 성병걸리고 패싸움에.... 이런 아이들과도 친했습니다. 물론 그런 친구들을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멋지다고 생각도 했지요.... 흐흐흐...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사실 중학교때 10등안에 들지도 못했고, 고등학교 가면 20등안에도 못들꺼고... 대학도 못갈건데... 싶었습니다.
차라리 공고에 가서 닭대가리 하는게 낫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3때... 인문계가 아닌 공고로 원서를 썼습니다. 저희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니를 부르셨더군요.
그 당시만 해도 반에서 25등 정도 까지는 인문계로 진학이 가능했고 인문계 진학율이 담임선생님들의 능력판단기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임선생님의 꼬드김에 인문계로 선회했습니다. 전 아직도 우리 중3담임선생님의 그 판단이 절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했다고 믿고 있고, 그렇다고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그게 더 잘되었던건 맞습니다.
고등학교... 인문계... 중학교때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아니다... 고등학교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민학교, 중학교때까진 놀았습니다. 공부보단... 동네에서 동네 아이들과
오징어 달구지, 라면 땅, 다망구, 술래잡기, 진돌 등 (사투리 등으로 인해 놀이 방법을 모르실수 있습니다) 주로 뛰고 달리는 놀이 위주였지요.
공부... 그런거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절 꼬십니다.
"아들. 이거 숙제 다해놓고 나가 놀아라"
그러면 전 총알같이 후다닥 해놓고 놀러 나갔다고 합니다. 숙제하고.... 다른거 하라고 하면.. 문제 하나 푸는데 1시간도 더 걸리고 놀으라고 하면... 10분만에 숙제 다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가더라는...
전 물론 이런 제게 불리한 기억은 없습니다. 있어도 없다고 우겨야지요.
고딩떄... 안하던 공부를 하니깐.... 다행이 많이 떨어지진 않았고 반에서 10등~20등 수준을 왔다리 갔다리 했습니다. 그리곤 RCY라는 특활을 하면서.... 많은 봉사활동에 참가했습니다. 고아원 방문을 하고 나면 2-3일은 어머니에게 잘하는 ....
어머님왈 : 너 고아원 자주 다녀와야겠다
일년에 몇번 착한 아들로 환생하곤 했지요... 겨우 2-3일 이지만..
중학교땐 미술반에 가입해서... 미술은 안하고... 미술반에 처박혀서... (음 이런거 다 밝혀도 되나 몰라) 성인잡지... 돌려보고... 그런 기억만 남네요...
고등학교때 전 이과였습니다. 국어 55점, 영어 60점, 수학 75점... 합계 190점 국사, 윤리 각 25점씩... 50점 독어, 화학, 지학, 사회..... 각 20점씩 80점 총 320점 중에 국영수 190점, 암기과목 130점의 학력고사 시절이었습니다.
전 지금도 그렇지만 암기력 좋습니다. 자부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TV 묘기대행진에 나올 정도는 아닙니다. 평균보다 조금 더 좋을 뿐입니다.
쪽팔리는 제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어.... 60점 만점에 20점 넘어본적이 없습니다. 국어.... 55점 만점에 50점 밑으로 내려간적이 없습니다. 수학 75점 만점에 40점 밑으론 안내려 갔습니다.
참... 전 중2때 영어 선생님을 미워했고 선생님께 대들고 싸웠습니다. 그당시 시사영어사 책을 찟어버렸고, 수업시간에 대 놓고 잤던 반항아 였습니다. 그 덕분에 영어 성적이 바닥을 쳤습니다. 그 영어 선생님이 좋았으면... 지금 제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암기과목들.... 130점 만점에 100점 이하로 내려가본적이 없습니다. 보통 110~120 점 수준이었습니다. 거의 암기과목은 전교 상위권이었습니다. 국영수 합치면 머.... 저어기 중위권으로 떨어졌지만...
암튼... 전 고등학교때 원리학습이 아닌 암기만으로 어느정도 성적을 받았고, 지금 생각하면 국어 선생님 이셨던 전선생님을 제가 좋아한듯 합니다. 국어 책을 외웠으니까요.
시조... 전편.... 상춘곡... 관동별곡 이정도는 다 외웠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은 지금도 쓸수 있을정도로 읽고 쓸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국어 성적은 항상 좋았습니다.
저희 집은 어릴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잘나가던 직장 그만두시고 사업하시다 망해서 집에서 10여년을 지내신 아버지.... 그래서 전 가난이 몸에 베였고,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프로스팍스(짜가리 상표) 신발을 하나 사주셔서 너무 기뻣고, 그 신발 안고 자곤 했습니다. 신발에 흙 묻을까봐 못신는 그런 심정을.... ^^;
그 결과 아직도... 손이 작습니다. 돈에 쫀쫀합니다. 쩝....
고등학교 RCY활동을 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보다 더.... 학교 앞 교통정리.... 고아원, 양로원 방문활동 여학교와 같이 하는 좌담회.... 등등...
이 경험 제 인생에선 정말 중요했던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전 고등학교까지 곰곰생각해보면, 공부 말고 다른데 더 정신이 팔려있었네요.
대학교... 지방의 3류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1학년때.... 컴퓨터란것을 배웠습니다. 아침 9시~11시 수업을 듣고, 낮시간에 학원에서 컴퓨터를 하고 살았습니다. 저녁 7-9시 수업(아침과 같은 수업입니다. 같은 선생님) 을 또 들었습니다. 제스스로 좋아서 한겁니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하고 싶어서 했던 처음의 공부였나 봅니다.
방학 3개월이 후다닥 지나가고, 3월... 입학을 했음에도 수업이 땡치자 말자 학원으로 갔습니다. 그 학원..... 한달마다 시험쳐서 반에서 1등하면 학원이 안냅니다. 전 첫달 학원비 내고 한번도 낸적 없습니다. (이때부터 재미를 느꼈나 봅니다)
학교 공부요 ? 제 1학년때 성적 보면... 가관입니다.
영어I, II 모두 D 일어 C 교양 과목 F, D 전산학일반 A+ 프로그래밍 A+
저 전산과 학생아닙니다.
이상하게 컴퓨터는 좋더라구요.... 그렇게 6월이 지나 8월이 왔습니다. 다시 방학이었습니다. 학원 1기 수료를 하고, 학원에서 놀면서 밑의 기수를 모르는거 봐줬습니다. 3기생 중에 여자애 하나가.... 좀 이해도가 떨어지는 애가 있었지요 제게 자주 물었고, 전 자주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2달 늦게 수료하고, 20살의 어린 나이(저랑 동갑이었지요) 에 서창이라고 하는(부산에서 울산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지역입니다) 곳의 컴퓨터 학원에 강사로 가게되었습니다.
그애가 중학교 이상의 사람들은 자기 수준으론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전 대학교 1학년 2학기 수업을 마치고... 서창까지 가르치러 갔습니다.
즉 1학기엔 배운다고 바빳고 2학기엔 가르친다고 바빳습니다. 학과공부는 우리때 누구나 그랬듯이 전혀... Naver 하지 않았지요.
어릴때 DG게 맞다 보니 아버지는 제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친구였다고 봐야겠지요. 전 어머니를 어려워 해본적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지금도 매한가지이지만 어머니 마저 아버지 같았으면... 전 미쳤을지도....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용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1시간 동안 무릎꿇고... 용돈 좀 주세요 단 그한마디만 하면 되는것을 말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문 다 보시고 나가시면서.... "빙신 새끼" 라는 그 한마디에 서러워 울었습니다. 이틀에 걸쳐서 울었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91년 3월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뇌수술을 하셨습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 다시 신경외과 중환자실.... 일반병실로 가기까지....
낮엔 어머니가... 밤에 젊은 제가 아버지 수발을 들어야 했습니다. 밥 먹이고.... 링겔도 꼽고... 오줌, 대변.... 대변은 급해서 맨손으로도 받아 봤습니다. 뜨뜻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아버지 우위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안주면 밥도 못드시고, 환자라서 말도 안듣는 아이같은 아버지.. 말안들으면... 저도 배운게 그거라고... 왜 그러냐고... 때리기 까지.. 했습니다. (손바닥으로... 친거지요... 죽어라고 팬건 아닙니다) 그러면서 제 내적갈등은 없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그 이후 지금도 정상적이시지 못합니다. 지금은 휠체어에 침대에 계십니다. 어머님 없으면 일어나 안지도 못하는 1급장애십니다.
전 아버지 병원에서 수발하는 동안 아버지를 두려워 했던 내 마음의 병을 모두 치유했습니다. 이젠 무서워지지 않은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니깐 아버지와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렇게 전... 자라오면서 단 하나의 내적불행으로 될수 있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군대 다녀온후 2학년 1학기에 복학을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공부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대학교때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어머님께 들었는데 대학교때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 함 해보자는 생각이 든건.... 컴퓨터 학원에서의 자신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잘한다는 칭잔에도 으쓱했는데.... 부가적으로 학원비도 안내고 다녔으니... 더 좋았지요 제겐 아주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학과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집사람(이뿌니마실)이 그러더군요.... 신랑 성적표를 보면 1학년때는 개판인데 전공, 전공선택 등 전공과목 학점은 A이하가 하나도 없다고... 이런 성적을 받을수 있냐고 하더군요.
지방 3류대학교입니다. 제 지도교수님 서울대학교 출신이십니다. 27살에 저희 학교 전임으로 오셨고, 정말 똑똑하신 분입니다. 전 지도교수님 잘 만나서 이자리에 섰습니다.
2학년때 지도교수님의 방에 사환과 같이 전화도 받아주고 공부도 하고, 교수님의 박사학위논문 실험도 도와주는 학생으로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박사학위논문의 실험과 Modeling을 제가 거의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교수님의 수업에 TA로 제가 선배들을 가르치게된 겁니다. 2학년 학생이 86학번 4학년들 부터 수업시간에 실습조교로 가르치게 되었지요.
지도교수님 논문을 도우면서 대기쪽(지금 제 전공)에서는 거의 석사 이상의 실력을 학부 2학년떄 쌓아버렸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친절하게 실험을 부려먹은게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제가 이해는 잘못해도 설명해주셨고, 제가 이해가될때까지 알려주셨거든요. 처음엔 먼소린지 하나도 몰랐지만.... 점차 이해도가 높아졌고, 학부 2학년이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의 내용을 이해하게되었습니다. 그러자 학부의 대기과목은 시시해졌습니다. 다 아는 내용이었고, 한과목의 깊이가 깊어지니까 다른과목 역시 쉽게 이해되더군요.
대학교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실험실에 이불 갖다 놓고 자면서 집에서 학교오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숙식하면서.... 학교에서 살았습니다. 미친듯이 공부하긴 했네요.... 대학 4학년 졸업하면 어디가될지 모르지만 막연히 취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교수님이 공부를 더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던데... 꼬였습니다. 그래서 석사 박사과정을 거쳤습니다. 박사과정이 끝나자 마자 미국에 Post-Doc으로 다녀왔습니다.
전 지금도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타성에 젖어서 그 당시처럼 미친듯 공부하진 않습니다만 지금도 더 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요.
푸름이 교육법의 가장 기본은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마음을 열어서.... 그래서 전 아직도 어머니가 제 친구와 같고,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 하시는 듯 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곰곰생각해보면.... 전 속독을 배웠습니다. 지금 그 기술을... 만화방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책보는데는 별로 응용하진 못했습니다만... 그당시... 아이들 치고는 제가 위인전, 명작들을 많이 읽었지요. 제 눈이 나빠진게 어두운데 누워서 책을 읽다가 나빠졌거든요. 공부는 안해도.... 책은 많이 봤네요. 푸름이 처럼 만권정도씩이나 되는 책을 본건아니지만... 지금은 아니지만... 국민학교때.... 스스로 책을 항상 집어들고 봤네요. 그러고보니깐......
중학교때는 왕비열전이란 책.... 조선시대 야사로 기록된 책을 다 읽고, 역사시간의 역사와 연계해서 아주 역사를 좋아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그책 지금 보라면 안볼건데 말이지요.
세로쓰기 된 책들.... 재미도 없고 책도 오래된 책이었는데... 속독을 배우면서 전 책에 재미를 느낀듯 합니다. 속독을 배웠다고 정독을 안하는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보다 더 집중력있게 스스로 읽을수 있는 방법이 속독입니다. 사실... 속독이란건... 빨리 읽는것이 아니라 읽는 동안 다른 잡념을 없애도 책에만 집중할수 있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빨라질지도.....
만화책은...만화방 주인아저씨가 환대할정도로... 빨리 봅니다. 그래서 시간제에만 가게됩니다. 1시간에 일반 만화책은 30-40권 정도를... 코믹스나 성인만화책은 10권정도를 봅니다.
전 멋도 모르고, 푸르미 교육법에서 가르치는 방법들을 어릴때부터 받아온것 같습니다.
제 과거사 다 쓰면.... 디집어 지실 사건과 사고 많습니다. 그런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런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공감을 할수 있었고 사고치는 아이들....(폭력적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 애들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머리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저 또한 그러한 체험을 통해 이미 몸으로 느꼈던 많은 사실들이 자연스레 베어 나오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게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저도 일반적인 사람처럼... 수업교안을 읽고... 시험치고.... 채점하고 하는 일반적인 사람에 속했을 거고... 예린이를 이렇게 감사하면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겠지요...
글 쓰다 보니... 옛날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전 착한 아이와 거리가 멀던... 어찌보면 나쁜 아이 쪽에 가까웠던... 친구 어머님들이 보면.... 저애랑은 놀지마라.... 라는 대상이 될만한 아이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