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연결하는 교도소 문이 열린다.
산과 들의 푸르름이 보이고 차들은 바쁜 듯 질주하고 시끌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중천에 태양은 바라볼 수 없게 높이 서서 고개 숙인 채 걸어가는 머리 위에서 깔깔대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밟아보는 땅인가
아스팔트 위에 도장 찍듯 뒤뚱 길 걷는다.
함께 출소한 여럿의 친구들을 에워싸고 찾아온 인척들이 벽돌 같은 두부를 먹이건만
반기는 이도 찾아올 님도 없는 외톨이 아니 오늘밤 등 지질 방 한 칸 없는 슬픈 인생
4년 동안의 대가던가 교도관이 넣어준 봉투를 펼쳐볼 수가 없어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은 채 돈을 세어본다.
10년이 넘게 한 교도소 생활
단 한 번이라도 마음 놓고 울어 본 적 있었는가 기뻐 웃어 본 적은 있었는가 면회한번와준사람 있었던가
살아남기 위하여 위로 서기 위하여 주먹 휘두르며 버티여 온 수감생활
몸처럼 함께한 죄수복에 이름대신 가슴에 부착한 2415번
그 수번을 버리고 내 이름으로 사회에 나왔건만..
키 작은 나무 그늘에 앉아 갈 곳을 고민하고 있다.
내가 여섯 살 때였던가
어느 이른 봄날 찢어진 문풍지사이로 보였던
엄마의 우는 모습
눈물로 밥 말아먹어야 했던 그 지긋지긋한 가난
그 가난은 질그릇 깨지는 소리처럼 요란하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노름과 술로 페인이 된 아버진 늘 술에 취해 있었으며
어머니가 식당일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엄마의 화장은 짙어만가고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을 입에 바르고 꽉 낀 바지를 입고 일 나가는 엄마를
아버진. 식당일하는 뇬이 차림이 뭐냐고 엄마의 머리 끄텡일 잡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난 동생영희와 허기진 배를 잡고 울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에도 아랑곳없이 엄마의 화장은 더 요란했고
그. 긴 여름이 사라질 때쯤 엄마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생활이 더 궁색해지자
아버진 살던 전세를 빼고
단칸방 사글셋 방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간 곳이 그 많은 집들 중에 같은 반 명희네 집이었다.
낡은 이삿짐을 놓고 보는 명희 앞에 왜 그리 창피했는지..
세 들어사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공동화장실을 갈 때도
명희 눈을 피해 갔으며 학교. 등교 하교. 때에도 먼 길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명희는 떼어낼 수도 수도 버릴 수 없는 심장처럼 내 가슴에 앉아 있었다.
뽀얀 얼굴. 다정한 목소리. 발자국소리까지도
내게 바라만 보는 사랑으로 변해 있었다.
먼 곳에서 명희를 보며
공상에 사로잡히는 게 일상 처럼 되었다 정원이 넓은 집에서 식사를 하고
명희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행복한 모습으로 지켜보며
많은 선물을 안겨 주는 부질없는 공상을...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우윳빛 구름이
옹기 모여 길 떠 날 때
길게 느린 빨랫줄 위에
명희의 속옷 스타킹 등이
하늘나비처럼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바라만 보는 기쁨
그것이 나만의 행복이었다.
그때. 질투의 바람이 불어
명희의 백옥 같은 팬티를 끊어진 연처럼 날리고 있었다.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몸을 날려
채 마르지 않은 팬티에 묻은 흙을 털 때
명희의 오빠와
같은 반 덕수의 망치 같은 주먹이 나의 얼굴을 이구려 트리고 있었다.
사실을 말할,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미친개 패듯 내 몸을 굴려 대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고
땅에 구르며 사실이 아니라고
막히는 숨 참으며 말했건만 그들의 발길질과 주먹이
내 몸 구석구석을 송곳처럼 꽂히고 있었다.
갑자기 집안이 요란해졌다
동네사람들까지 몰려 끌끌 혀를 찾지만
명희오빠와 덕수는 자랑처럼. 과시하듯
나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바보처럼 명희의 팬티를 꼭 쥐고 소나기 같은 매를 맞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명희의 팬티를 적셔
무궁화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바라만 보던 명희아버지가 뻑뻑 담배를 말아 피며
내 처음부터 싹수없는 놈일 줄 알았어
방을 주지 말랬잖어? 죄 없는 명희엄마에게 고함을 쳐 됐다.
구르듯이 명희엄마에게 두 무릎 꿇고 아이처럼 말했다.
아줌마? 그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나의 피를 닦아주던 아줌마가
한참을 침묵하며 말했다
다음부턴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친엄마보다 더 우릴 챙겨주시고
언제나 다정다감하셨던 아줌마까지...
아닌데 그게 아닌데.... 정말 아닌데
배가 고팠다
벌써 두 끼나 쌀이 없어 굶고 있었다.
돈을 벌어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숙한 밤. 다른 집에서는 티브를 보며
깔깔 웃으며 행복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 집은 무거운 고요만 흐르고 있었다.
얼마를 누워있었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명희였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낡은 장롱 속으로 몸을 숨기고 싶었다.
네 번쯤 내 이름을 부를 때 뭔? 일이냐는 듯이 문을 열었다.
밑반찬과 쌀을 들고 웃고 있었다.
아닌 것처럼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널 좋아한다는 마음이 들키는 게 두려웠나
난, 거지가 아니라고 소리쳤다
당황한 명희가 거지가 아닌데
왜 학교에 안 나오냐 고 반문하며 총총걸음으로 가버렸다.
내사는 모습이 부끄러워
나 자신이 미워
명희가 놓고 간 쌀을 안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해 여름방학 동생까지 굶 길순 없었다.
명희에게 창피해 숨기고 싶었지만
내손에 철가방이 들려있었다
무더운 여름 골목골목을
자장면 시키신 분? 하며 달리고 있었다.
15일 뒤 작지만 처음 돈을 받았다.
고민 고민 끝에
명희에게 선물할 만년필을 샀다 검은색으로.
하지만 명희 아빠와 오빠의 감시 때문에 전해줄기회가 없었다.
아니 명희가 먼저 나를 보며 오면
이유 없이 큰길로 뛰여갔다
그리곤 돌아서서 명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흠짓흠짓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비가
주룩 오던 날 오후
자장면과 짬뽕을 철가방에
가득 채우고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배달하지 말아야 했었다.
질투의 신이 찾아온 것이다.
명희, 덕수, 같은 반 친구들 여럿이 자장면과 짬뽕을 시킨 것이다.
그런 상황을 모르고
자장면 시키신 분? 목소리 높일 때
문 열면
내 소리보다 더 크게 친구들이 웃어댔다.
슬픈 상황이었다
비참한 내 모습이었다 음식을 펼치는 나를 보며
명희가 애처로운 듯 같이 먹자? 했지만
난 바쁜 듯 몸을 세웠다
그때 덕수가 몸을 일으켜 요즘도 여자빤스 훔치러 다니냐?
필요하면 우리 할머니 고쟁이 보내줄까 하며
킥킥 웃을 때 명희는 얼굴 붉히고 있었지만
반 친구들이
풍선 터트리는 웃음을 웃어댄다.
참고 참았던 억울함이 솟구쳤다.
명희만 그 자리에 없었으면 안 그랬을까
서있는 덕수의 얼굴에
짬뽕그릇을 던지자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가는 덕수를 잡고
보이는 벽돌로 억울함을 호소하듯 부모를 원망하듯
초라한 나 자신에게 하듯 덕수에 얼굴을 땅을 파듯 내려찍고 있었다. (1부 끝)
첫댓글 이번에는 시리즈네요....
기대가 커집니다.
과연 다음 전개는?
잘 지내시지요?
요즘은 일이 너무 많아 1월 모임 전에 2부를 써야 될듯하네요
코로나 19가 다시 고개를들고
감기도 유행이라네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놨다 하시네요. 글의 힘을 느끼게 해주시는 나룻배님의 새해가 좀더 의미있는 한해가 되시길 응원합니다. ^^
감사드립니다 심송님
소한 날씨가 너무 따뜻하네요
내일 비 내린 뒤 춥다하니 건강 챙기시고요~!~
이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닌 거죠?
연어님 감사합니다
당연히 실화는 아니죠
있을법한 스토리를 만들어 보려합니다
계축년 시계가 너무 빨리 돌아가네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