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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억울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나 헬조선이란 단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우리네 젊은이들은 경제가 떠내려가는 세대에 태어난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부모세대인 우리는 마냥 즐거워하는가? 필자가 태어난 시대는 베이비붐시대였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한반에 60명이 넘었고 그것도 오전반 오후반으로 갈렸다. 그러니 교육의 질을 따질 수나 있었겠는가? 필자의 형제는 3남1녀로 조촐(?)하였지만, 이웃에는 7,8명의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가정이 널려있었다. 그러니 먹을 것이나 입는 것이, 이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보다 더 나았겠는가? 그러나 이시대의 젊은이들은 만족한 직장을, 마치 어른세대가 죄다 빼앗아버린 것처럼 억울해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그들에게 돌직구를 던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의 말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우 백년 전의 구한말시대만 하더라도, 식구들이 굶지 않게 하는 게 우리네 가장의 꿈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그러나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울 영성학교에 북한에서 온 자매가 있다. 90년대에 고난의 행군시절에,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었다. 한 끼에 한 숟가락의 밀가루를 물에 타서 끓여먹었다고 한다. 굶어죽는 사람은 부지기수였으며, 중국에 인신매매를 자청해서 팔려나갔다고 한다. 굶어죽는 것보다 인신매매를 당하더라도 중국에서 먹을 수 있는 걸 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 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 분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굶어죽으나 총살당해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라는 생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러한 실상이 백여년 전의 구한말시대가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북한동포의 얘기이다. 그래서 필자가 취직을 못한 젊은이들이나 해고자들이 억울해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하고 행복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요12:31)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성경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왕이 따로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세상의 왕이 바로 공중(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통치자이고, 권세가 있으며,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악의 영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악한 영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은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악한 영의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죄의 덫을 놓고 죄에 걸려들게 만들어서 불행에 빠뜨려서 고통을 주어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는 놈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는 세상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행복하며 정의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물론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자유이다. 그러나 성경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믿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귀신들은 누구를 지배하고 통치하는가? 바로 죄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죄인이라면 귀신의 포로로 잡혀 있는 셈이다. 성경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가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까,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당신의 삶과 영혼을 날카롭게 살펴보라.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인가? 성경에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고생의 떡을 먹으며 고통의 눈물을 마시면서 살아간다고 얘기하고 있는가?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먹이사슬과 노예제도에 대해 말씀하였다. 악한 영들은 타락한 천사이다. 그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지만, 여전히 천사와 동급의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타고 앉아 뇌를 장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조종하고 있다. 또한 말과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에 능수능란하다. 그들의 공격유형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일으켜서 고통을 주고, 가족을 비롯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넣어주어 분노를 폭발시키고 싸우게 하여 분열시키고, 갖가지 불행한 사건사고를 일으켜서 고통을 준다. 극심한 가난의 수렁에 빠지고 악성부채를 지게 하거나, 각종 범죄에 빠지게 하고, 분별력이 없는 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게 하기도 한다. 특히 돈을 우상으로 섬기게 하여 평생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하는 수법이 탁월하다. 말하자면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불안, 낙망과 좌절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죄다 악한 영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왜냐면 이러한 생각은 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시시때때로 머리에 들어오는 걱정과 염려를 죄라고 생각하고 있기나 하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아?”,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 라면서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당신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교회마당을 밟고 있으면서 각종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을 변명하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하나님은 당신이 온전하게 사는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아 거룩하여지며,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보이지 않는다면 여전히 당신은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는 죄인인 셈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자복하지 않는데 어떻게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당신의 죄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아서, 하나님이 당신의 얼굴을 가려서 호소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억울해하지만, 회개할 생각도 없고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없는 당신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는가? 이 땅에서 지옥처럼 살다가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다. 당신이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귀신의 노예로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기도라는 말처럼 흔하게 쓰이는 단어도 없다. 그러나 기도처럼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단어도 없다.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불행한 사람을 보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기도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대다수의 목회자들도 교인들의 눈치 때문에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도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기도는 종교적인 행사로서 교회의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기도가 교인들의 마음에서 멀어져 있는지 아는가?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도가 자판기 커피처럼 동전을 넣고 원하는 상품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딸깍 소리와 함께 응답이 떨어진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들도 없다. 그래서 기도는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보게 되는 공룡화석처럼, 과거의 화려한 영화를 상징하는 상품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에 대해 곱씹어보고 싶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생각하는 기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소망하는 그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삶의 지난한 문제가 생기면 기도자리에 앉거나, 자신이 소원하는 일이 있다면 새벽기도회에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래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러워하며 중도에 포기하는 게 된다. 그래서 삶의 고난의 강도가 거세지고, 소망하는 일들이 간절해지면 또 다시 기도자리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번의 기도와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래서 희생의 강도를 높여 작정기도를 하거나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기도를 하거나, 기도자리에 앉을 때마다 헌금봉투를 가지고 나가기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그간의 교회에서 많이 권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별다르지 않다. 가물에 콩 나듯이 응답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평생에 걸쳐서 몇 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희생의 강도를 높여서 기도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서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수많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속적인 욕망이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잠30:15)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거머리는 누구인가? 바로 탐욕스런 귀신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기도는 귀신의 소리를 듣는 좀비에 불과하며,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기도하는 이들을 외면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렇다면 의인은 누구인가? 의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자녀들이다. 이들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합당한 기도란 무엇인가?
1. 기도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수단이다.
기도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내 영혼이 교제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그냥 열심히 기도하거나 희생의 강도를 높여 기도하는 게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나님과 내가 교제하는 통로라면, 먼저 하나님이 내안에 들어오셔서 내 기도에 반응하시고 기뻐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교제하고 계시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친밀하게 느끼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라면 아직도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 오셔서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나님은 내 하인도 아니고 내 친구도 아니다. 그분은 나를 지으신 주인이시고 나의 왕이시다. 그분은 내가 부르기만 한다고 즉각 달려오시는 분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간절하게 하나님을 원하고 주인으로 섬기기를 원한다는 생각을 읽었을 때 들어오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강도와 빈도로 하나님을 간절히 불러야 하는 지에 대해,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씀해주신 내용을 읽어드리겠다.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7,1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쉬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러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보이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찾아와서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할 생각도 없이, 자신의 세속적인 탐욕을 채우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해결사로 하나님을 찾고 있으니 가증스런 일이다. 그러나 울 영성학교에서는 예외 없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거주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기도를 하기는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채우는 데 2%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하였는지, 아니면 배를 쥐어짜며 기도하였는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나 기준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중들도 밤새도록 기도한다고 하시면서, 하루 24시간 기도한들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나 적지 않은 영성학교 식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기도의 시간과 강도만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시간동안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2.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당신은 기도할 때 주실 것을 철썩 같이 믿고 기도하시는가? 물론 그렇다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기도하는 모습이나 기도할 때 내뱉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당신의 마음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기도하는 자녀들의 믿음을 테스트하신다. 많은 이들이 기도하다가 아무런 응답이 내려오지 않으면 포기하고 기도자리를 떠난다. 응답이 아니라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사람들은 실망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다. 기도하고 있는데 병이 낫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가정상황은 더 꼬이고,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상황과 현상을 바라보고 두려움과 걱정, 불안과 공포, 낙심과 절망을 받아들인다. 이런 상태가 바로 시험에 드는 것이며 귀신들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기도하다가 당신이 잃을 게 무엇이 있는가? 기도할 때마다 많은 돈을 잃고 있는가? 기도한다고 당신의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는가? 기도한다고 가정이 몰락하고 인생이 파탄 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의심을 하고 낙심을 하며 절망하고 있다. 이런 이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이들에게 응답이 내려올 것인가?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얻을 때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요셉도 지하 감옥에서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모세 역시 40세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실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겠는가?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11:35~40)
초대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땅에서 자신의 소망하던 삶을 누리지 못하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 인내하며 살다가 이 땅을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실망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인생의 목적이 이 땅에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받는 고난과 핍박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셨다는 말인가? 기도하는 즉시 응답이 내려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신에게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을 채우시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란다.
3. 죄와 싸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
당신이 기도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라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죄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며 죄인을 가까이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라면, 죄를 깨달아서 죄와 피터지게 싸우고 부족하고 연약하여 죄에 걸려 넘어졌다면 즉각 전심으로 회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죄와 싸울 생각도 없으며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있지도 않다면 기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내주를 요청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가증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바로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귀신들과 피터지게 싸우고 계신가? 귀신들은 영이기 때문에 세상의 무기체계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다. 귀신들의 목적은 죄의 덫을 놓고 죄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어서 불행에 빠뜨려서 고통을 주어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는 놈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귀신과 싸운다는 것은 죄와 싸우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거꾸로 죄에 무지하고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면 귀신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설교를 듣기 힘들고 귀신의 정체나 공격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이는 우리네 교회가 이미 귀신들에게 넘어가서 포로로 잡혀있기 때문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빼곡하게 나와 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은 죄다 지옥의 불길에 던져지게 된다는 두려운 말씀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계신가? 이에 대한 답변은 대략 두 가지 일 것이다. 먼저 교회에서 요구하는 주일성수와 십일조,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잘 하고 있다는 대답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종교의식을 행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우리네 교인들은 설교단상에서 말해지는 목사들의 얘기만 듣고 안심하고 있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행하고 있느냐에 대한 두 번째의 대답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인간적인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지 못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는 대답이다. 당신의 대답이 옳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라는 것인가?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애써도 살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하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세속적인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면서 종교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태도로 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태도를 날카로운 눈동자로 지켜보신다. 그래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녀들은, 날마다 전심으로 회개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기도로서 눈물의 성을 쌓고 있는 이유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한 한계를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며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에게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기도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당신이 그 끈을 놓지 않아야,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
기적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적혀있었고, 종교적인 정의로는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며, 성령에 의한 수태나 부활 병자의 치유 따위를 예로 들고 있다.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을 믿는다고 고백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시냐고 묻는다면, 이 역시 똑같은 대답이 되돌아 올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믿는 것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삶에서 그 기적을 경험하고 계시냐고 묻는다면 당신의 얼굴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키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과 당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이런 얘기를 적지 않은 크리스천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기적이 없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도발적으로 말해주었더니 그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어떤 이들은 꼭 기적을 경험해야 천국에 다느냐고 차갑게 내뱉는 이가 있었고, 어떤 이들은 다른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물 타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당신에게도 물어보겠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성경적이냐고 말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위의 말씀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에서 경험하는 증인의 삶을 살 것이라고 선포하셨고, 실제로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은 이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믿음이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은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렇게 성경과 어긋나는 믿음을 가지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지만, 아무도 이들의 말이 틀렸다고 하지 못하는 이유가 기적을 경험하는 크리스천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성학교는 아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령이 내주하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며,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사람이 아니기에 천국은 언감생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성학교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기적을 밥 먹듯이 경험하고 있는가? 그게 필자의 딜레마이기도하다. 물론 공동체 식구들은 영성학교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수많은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며, 삶의 갖가지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되는 것을 자신도 경험하고 다른 식구들의 사건을 통해 간접 경험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기적이 어제 내린 눈이라는 것이다. 어제 내린 눈은 이미 질퍽질퍽하게 녹아버려서 더 이상 아름답지도 반갑지도 않다. 영성학교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구경꾼에 불과할 것이며, 설령 자신이 경험하였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지나간 사건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의 지옥의 불에 던져졌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그러므로 지나간 과거에 기적을 수도 없이 경험한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지금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기적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천국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지도자 중에서 이런 가르침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들도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니다. 필자는 입만 열면, 날마다 기적을 경험해야 성령의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양날의 칼이다. 만약 필자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기꾼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성경적인 약속이지 아니한가? 필자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성경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만 찾아오라고 말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영성학교가 문을 연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며, 정신질환과 고질병 그리고 갖가지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필자가 가르치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에 하나님께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기도훈련을 하고 있다면 기적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적지 않은 시간 훈련을 하고 있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적이 일어나는 수준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과 영혼에 기적이 필요하다면 필자가 가르치는 기도를 날카롭게 분별해보고, 성경적이라고 여긴다면 필자가 요구하는 수준의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성학교를 찾아올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기도훈련에 대해 궁금하다면, 카페나 블로그에 올려놓거나 유투브 동영상 강좌를 보면서 혼자 훈련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지옥과 별다르지 않으며 하나님의 기적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영성학교를 찾아오셔서 필자의 기도훈련을 충실하게 받으시기 바란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카페 글을 읽거나 공동체 식구들에게 조용히 물어보시면 된다.
그러나 긴히 당부할 말이 있다. 지금까지 필자에게 일어난 수많은 기적을 죄다 잊고, 지금도 그 기적이 일어나는 지를 날카롭게 살펴보시라는 것이다. 만약 과거에 일어났던 기적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영성학교를 떠나시라.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영성학교를 떠나셨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 기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과거처럼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면 지옥이 영혼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우리네 교회주변에 아무도 이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들 역시 죄다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해서 교회로 불러준 수많은 자녀들의 영혼을 죄다 지옥 불에 던져버리겠냐는 교회지도자의 말에 속지 마시라. 노아의 시대에 홍수에서 건져낸 사람은 노아의 식구 여덟 명에 불과했으며, 소돔과 고모라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진노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롯과 두 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불의한 자녀들을 천국에 들이실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나느냐의 잣대이다.
교회에 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기도응답에 대한 사람들의 주장이다. 모든 목회자들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면 응답이 올 거라는 말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듣는 이들은 별로 없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반박하지 못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이를 체험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기도응답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한 목회자들의 변명은 애매모호하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에 더 기도하며 기다리라거나, 믿음이 부족하기에 기도의 강도를 높이라고 주문하기 일쑤이다. 기도의 강도를 높이라는 것은, 새벽기도를 작정하거나, 기도자리에 나올 때마다 지폐를 가득 넣은 봉투를 가져오거나, 아예 짐 싸들고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기도를 선포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이를 성실하게 시행한 사람들도 별 성과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교회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응답이 오는 기도의 비결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어떤가? 궁금하지 않으신가? 사실 이에 대해서 필자에게 해준 성령이 말씀이 적지 않으시다. 그러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내용도 성경에 있는 말씀과 별반 차이가 없기에,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다.ㅎㅎ 그러나 오늘은 성령이 해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사귐이 있는 자들이 내게 와서 이르는 말을 듣겠고, 열심히 주를 섬기고 기쁨으로 주를 섬기면 상이 있다는 것도 알라.’
성경께서는 응답해주시는 기도의 조건으로 사귐이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셨다. ‘사귐’이라는 말은 ‘교제’라는 뜻으로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 이다. 예배 끝에 축도할 때, ‘성령이 교통하심(고후13:13)’이라고 말할 때 쓰는 단어이고, 예수님이 계시록에서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표현하신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자녀들의 기도라면 누구나 들어주시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신은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하고 계신가? 대부분 아닐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내용을 들어보면, 교제가 아니라 주문과 청탁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싶은 사람은 없고, 자신의 얻기 원하는 요구사항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부자 아버지쯤으로 아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당신의 기도가 응답이 없고 능력 있는 기도가 실종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를 하기 바란다. 그 기도의 시작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혹독하게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면, 드디어 능력 있는 기도의 문을 연 셈이다. 필자가 훈련시키는 기도의 내용이 바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기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훈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라고 하면, 그동안 교회에서 해 왔던 기도가 아닌 탓에 하나님을 부르다가 이내 예전의 기도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래서 입에서 단내 나는 기도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동안 필자에게 기도훈련을 요청하고 필자의 말에 따라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아서 흐지부지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성령의 말씀을 얹어 드리겠다.
‘적당히 기도하는 자들은 기름을 얻을 수 없다.’
필자는 그동안 많은 이들이 기도의 강을 건너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머리를 흔들면서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보았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혹독하게 기도하는 사람과 적당히 기도하는 사람의 차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당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성령(기름)이 찾아오시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들은 적당히 기도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기도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합격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성령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기도했다고 주장할 지라도, 성령이 오시지 않는 이유는 성령께서 보시기에 열심히 기도했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열심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혹독하게, 죽기 살기로, 전심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몸부림을 치며’라는 말로 바꿨다.
아마 당신은 교회에서 기도의 방법으로 ‘부르짖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기도회에 가면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부르짖으라’는 표현은 성경에 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이다. 이 말씀을 뜻은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라는 뜻이 아니라 전심으로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무리 소리를 지르더라도 짧은 기간에 그친다면 헛수고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랫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는 방식으로, 성대를 진동시키지 말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숨소리를 거칠게 내 쉬며 전심으로 기도하는 태도를 권유하는 것이다.
결국 성령께서 응답이 오는 기도의 비결로, 혹독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며 성령과 깊고 친밀한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이러한 기도를 훈련시키지 않으며 교인들도 힘들고 어려운 기도의 습관을 들이 생각이 없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고, 교회의 직분이 무거운 이들도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쏟아지는 능력 있는 기도에 무지하다.
하나님이 영원도록 살아 계시다고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에 대한 유통기간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기도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도방식을 습관을 몸에 배는 훈련을 통과하시길 바란다. 그 길만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천국에 들어가며,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얻는 비결이다.
이 시대에 공룡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공룡이 한 때 지구상에서 호령하며 살았던 동물임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수많은 화석이 이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살지 않지만, 구한말 시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살고 있어서 많은 수렵꾼들이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팔아 횡재를 꿈꾸었다. 당시의 빛바랜 사진을 보면 총으로 쏘아 잡은 호랑이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폼을 잰 수렵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일이 교회에도 널려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 하나를 콕 집어서 생각해보고 싶다.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가 바로 기도응답이다. 예수님은 믿고 구하는 것마다 즉시 응답이 내려올 것을 약속하셨다. 겨자씨같이 작은 믿음만 있어도 기적이 일어난다고까지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니까, 아무도 딴죽을 걸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믿음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당신의 곤혹스런 표정이 필자의 눈앞에 선하다. 그동안 당신은 영접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이자 주인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고 배워왔고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그 믿음을 의심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자신의 삶에서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거나, 자신의 믿음이 허구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면 그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천국을 믿어온 게 헛수고일 터이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에 대해, 이런 저런 성경구절을 들이대며 물 타기를 하면서 본질을 회피하기 급급하다. 그렇다면 천국의 자격에 대해서는 철썩 같이 믿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당신이 믿고 구하는 것에 대한 기도응답이 없는지 그 이유를 아는가? 그래서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씀해주신 내용을 친절하게(?) 전해드리겠다. 응답이 내려오는 기준은 두 가지로 말씀해주셨다. 먼저 성령과 하나가 될 때 기도응답이 내려오신다고 하셨고, 또한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응답이 내려온다고 하셨다. 뭐, 이런 투의 말씀은 성경에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당신이 들을 귀가 없으므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위의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성령과 자신이 하나가 된다면 기도응답이 내려온다고 말씀하신 대목이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이 안에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성령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내려오는 것으로 증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성령이 당신 안에 없다는 증거이다. 물론 다른 성경구절로 물 타기를 하겠지만, 없다면 없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씀하시는 성경의 위인들을 보라. 그들의 기도는 즉시 응답이 되었고, 온갖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다가 이 땅을 떠나갔다. 그러므로 당신의 기도가 응답이 없다면 성령이 당신 안에 계신 것이 아니다. 성령이 안에 계시다면 당신의 인생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간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당신의 인생을 이끄신 과거의 삶을 찬찬히 뒤돌아보라. 하는 일마다 열매가 있고 형통하고 평안하였으며,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의 삶을 사셨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지 마시라. 자기 확신으로 천국에 간다면, 당신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믿음으로는 천국은 언감생심이다. 심판대 앞에서 지옥행임을 선포 받는 순간, 예수님의 말씀을 경멸한 대가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0~14)
이제 두 번째 기도응답의 비결을 생각해보자. 위의 두 사람의 기도의 태도는 그동안 교회의 설교에서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거절되었고 세리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는 결론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로 기도하고 있는가? 자신이 바리새인처럼 오만하고 뻣뻣한 태도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자랑에 휩싸여서 기도한다고 여기는 이들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세리처럼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로 하나님의 자비를 애걸복걸하며 구하고 있으신가? 그렇다면 이미 응답이 내려와도 수천 번은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당신은 날마다 마음이 가난하고 낮아져서,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임을 절절하게 고백하며 회개하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하고 계시는가? 아니라면 과거의 회개기도로 이미 죄가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살펴보라.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관심도 없고 순종할 생각조차 없으면서, 정작 속내는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되어 자신을 주인으로 살고 있지 않았는가? 쉬지 말고 하나님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콧방귀를 끼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기도가 응답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오만하고 교만한 당신을 버리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