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시와 도상적 상징시
시에서 상징은 가시적인 보조관념으로 나타나지만,원관념이 감추어져 있으므로 암시적이고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상징은 '조립'하다' '짜맞추다'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symballein'에서 유래했으며, 그.명사형 'symbolon'은 표시, 징표, 기호를 의미한다. 시에서 상징은 원관념(기의)과 보조관념(기표)이 多:1의 관계로 결합하는 넓은 의미의 비유작용이다. 이렇듯 비유로서의 상징은 흔히 은유나 알레고리와 비교된다.
먼저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차이)에 근거한 '비교 · 유추작용'이라면, 상징은 개인적·사회적·종교적 맥락에 근거한 '연상작용'이
다. 따라서 상징은 원관념이 넓게 확산되며 그 의미가 넓게 사용되는 만큼 원관념을 암시할 수밖에 없고 다의적으로 읽힌다. 흔히 원관념이 생략되
어 있다고 하는 이유다. 또한 은유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각각 사물이나 관념이 다 가능한 반면, 상징의 경우 원관념은 관념에 해당하고 보조관
넘은 사물(기호에 해당한다. 따라서 상징은 가시적인 이미지가 비가시적인 추상적 의미를 넓고 깊게 느껴지도록 지시하는 비유 양식이다
다음 시는 상징의 기능을 과장되게 극대화함으로써 상징을 유희적으로 활용해 '지팡이'라는 개인적 상징을 구축하고 있다.
지팡이 / 송찬호
그의 지팡이(①)는 물렁물렁하였다.
질긴 동물 내장으로 만든 것처럼,
힘겹게 그는 그 지팡이(②)를 삼켰다
벌어진 입 속으로
어두운 우물 같은,
그 지팡이 (③) 가 보였다.
그의 지팡이(④)는 짧았다.
그는 그 지팡이(⑤)처럼 짧은
몇 개의 질문을 갖고 살았으니.
어느해 큰 홍수에
제물로
그 지팡이(⑥)를 던져보았으리라
그것으로 마른 땅을 두드려
땅 밑 항아리 같은 샘물을 찾았으리라
그의 지팡이(⑦)는 술잔을 닮아 보였다.
그가 그토록 그 지팡이(⑧)를 마시고 싶어했으니
나는 나직이 소리질렀다.
이 지팡이(⑨)는 아직 따뜻해,
냄새도 훌륭하고
아직 먹을 만해!
나는 멈칫하였다. 만지면
그 지팡이(⑩) 금방 늙어버릴 것 같았다
삶이란 아주 짧은 것이다.
저 쓸쓸한 침상 위
싸늘히 식어버린 지팡이(11),
나도 어느새 그 지팡이(12) 모두 먹어버린 것 아닌가
-송찬호, 「지팡이」전문(밑줄과 번호는 필자)
인용 시에서 '지팡이'라는 시어는 제목까지 포함해 열세 번이나 반복된다. 지팡이의 본래적 기능은 노쇠하거나 병든 인간 혹은 눈멀거나 불완전한 인간이 나아가는 길을 안내하며 인간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지팡이가 반복될 때마다 지팡이가 환기하는 의미, 즉 원관념들이 매번 달라져 반복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시적인 유희성과 상징성을 획득한다.
밑줄 친 ⓘ의 '지팡이'부터 보자. 지팡이를 '물렁물렁하다'라고 서술함으로써 시인은 지팡이의 속성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때문에 이 지팡이의
원관념이 실제 지팡이가 아닌 '물렁물렁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그 무엇에 대한 의문과 흥미는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②. ③에서 첨가된 지팡이의 속성, 즉 "질긴 동물 내장"으로 만들어지고, 삼킬 수 있고, "어두운 우물 같은 이 지팡이는 길다는 지팡이의 형태적 유사성을
매개로 입에서 항문까지 이르는 인간의 내장을 떠올리도록 한다. 게다가 "어두운 우물 같은"이라는 직유에 의해 길이뿐 아니라 깊이와 넓이로서의
공간성도 획득하게 되는데, 이쯤에서 독자는 지팡이를 삼켜진 심연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④, ⑤의 지팡이를 특징짓는 짧다.
"라는 술어는 내장이 짧다. 키가 작다. 먹는 것이 적다 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지팡이처럼 "짧은 몇 개의 질문을 가지고 살다"라는 의미와
결합해 그것이 단순한 소화기관으로서의 내장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과정, 즉 짧은 한평생임을 깨닫게 한다.
인간의 내장, 육체, 삶으로 원관념이 확대된 지팡이는, "제물로” “던져보다"의 목적어가 되는 ⑥에 의해 신화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큰 홍수'는 신이 인간에게 가하는 형벌 중 하나로 노아의 홍수가 대표적인데, 질서에서 혼돈으로, 혼돈에서 새로운 안정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계시하는 이 격변의 재해야말로 가장 신화적인 순간임에 틀림없다. '제물'이나 '대홍수'와 같은 시어들은 인간의 역사를 둘러싼 대혼란에 대한 예언
을 암시한다. "지팡이를 던지다라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출애굽의 기적을 행하도록 하나님이 모세에게 건네준 지팡이는 '던져져'. 광야의 "마른
땅을 두드려" "땅 밑 항아리 같은 샘물"을 찾아내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모세의 지팡이에 이르면, '모세가 뱀을 집자 지팡이가 되었다."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면서 ①의 '물렁물렁한' 지팡이가 뱀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쨌든 그러한 지팡이는 ⑦에서 "술잔을 닮아 보인다와, ⑧에서 "지팡이를 마시고 싶어"하다라는 구절에 의해 용기화되고 액체화된다. 비약적인 상상력의 변성이다.
이처럼 용기화되고 액체화된 지팡이를 냉큼 마셔버리면 그 지팡이는 ②③의 내장화된 지팡이에 쏟아져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비어버림으로써 지팡이의 용도가 폐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술이 환기하는 이질적인 속성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신화적 맥락에서 술은 예수의 피라든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바치는 신성한 제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인간을 동물 차원으로 격하하고 파토스적 삶으로 유도하는 광기의 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인 '나'가 마시고 싶어했던 것은 신성한 술일까, 광기의 술일까. 이 대목에서 '술'은 상호텍스트적 문맥에 의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술, 매혹될 수밖에 없는」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항아리에 말(언어)을 가득 부어 그 말들이 적절히 발효된 형태를 술에 비유한 바 있다. 이때 술은 말(언어)로서, “닿으면 부패하는/감옥이 되는/그러나 매혹될 수밖에 없"(술, 매혹될 수밖에 없는)는 속성을 가진다. 이로써 지팡이'는 '인간의 내장'이나 '모세의 지팡이와는 다른 말 혹은 말씀으로 읽힐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외에도 '따뜻하다' '냄새도 훌륭하고 '먹을 만하다는 서술어로 인해 ⑨의 지팡이는 술의 알코올기는 물론 인간의 온기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④,⑤의 지팡이와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늙다'에 의해 ⑩의 지팡이는 인간의 육체성이라는 원관념을 '침상'과 '싸늘히 식다'에 의해 (11)의 지팡이는
흐르는 시간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원관념을, '먹다'에 의해 (12)의 지팡이는 죽음 앞으로 인도하는 세월 혹은 나이와 같은 시간성이라는 원관념을 부여받는다.
한 인간의 삶의 과정을 입과 항문에 이르는 하나의 길로 비유하는 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삶을 '지팡이'로 비유하면서 그 '지팡이'의 원관념을 연금술사처럼 자유자재로 변성시켜 다의적으로 확장시켜가는 과정은 인용 시의 탁월함이다. 특히 시가 전개되면서 지팡이
의 의미가 여러 개의 확장된 은유로 축적되면서 특유의 개인 상징을 구축해가는 과장이 흥미롭다.
*정끝별 시론 p328-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