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4편 입산기>
⑤ 어떤 귀향-36
“이 방이 만수엄마가 쓰는 방이에요.”
“예!”
“여기서 만수도 태어났어요.”
그녀는 친절하게도 천복을 이끌어 건넌방으로 안내하고는 전등불을 밝힌 뒤에는, 만수엄마가 쓰는 방이라면서 만수가 태어난 방이기도 하다고, 덧붙이어 일러주는 거였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언니께서 해산구완까지 맡으셨겠네요?”
천복은 만수가 여기서 태어났다면, 유희가 만수를 낳을 적에 그녀가 해산뒷바라지를 하였을 게 분명하여 물어본 거였다.
“그럼요. 해산구완만이겠어요. 제 엄마한텐 젖이나 빨았을 뿐이었지, 종일토록 내가 돌봐주니깐요. 지금은 그렇게 해서 다 큰 셈이에요.”
그녀는 만수가 태어날 때에 해산구완뿐 아니라, 유희가 일을 나가있는 동안 아이를 도맡아 돌보면서 키웠다는 말이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게 여자들이나 할 일이지, 정말 남자들은 못해요.”
“내일은 만수아빠 어디 안 가시죠?”
“...?”
그녀가 묻자, 천복은 무어라고 대답할는지 몰랐다.
“기왕 오셨으니, 며칠 묵어가셔야죠?”
“사실 갈 데라고는 시골집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깐요.”
잠시 천복과 말을 나누던 그녀는 고개를 까딱하여 보이더니, 이내 건넌방을 나서 곧장 자기의 방으로 건너갔다.
방은 크지 않아서 아담한데 세간이라고는 윗목의 한 구석에 옷궤가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한 채의 이브자리가 개켜지어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벽면에 못 꼬지가 몇 군데 박히어있었는데, 유희의 것으로 보이는 치마저고리가 걸리어있었다.
여인이 방을 나간 뒤에 천복은 밖으로 나아가 정원의 가장자리에서 수돗물로 목을 축이었다. 술이 어찌나 독한지 목이 바싹 타들어가고 몸에서는 열기가 마구 솟구치었다.
그리고는 대청으로 올라서는데, 유희는 아직도 전등불을 밝히어놓고,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천복은 방으로 들어와 벽에 등을 기대고, 무료하게 앉아있었다.
그러자 상은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다지도 조급하였던 욕정을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밤 최주근을 따라 정릉을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주근이야 문교부 편수관의 딸인 상은과 천복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걸 굳이 싫지 않은 눈치이었다. 모르지만, 천복이 그네를 따라 정릉을 갔다면, 절대 한상준네 집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 상은은 천복이 있는 곳을 찾아오게 될 거였고, 그녀의 어머니조차 따라와 자신의 딸과 이미 선을 넘어선 사실은 까맣게 모르겠지만, 딸이 천복을 좋아하는 눈치를 차리고, 과연 신랑감으로 아니, 사윗감으로 손색이 없는지 탐색할 게 틀림없는 일이었다.
이즘 최 사장이야, 천복이 따라오든 말든 상관이 없겠지만, 상은은 좀이 쑤셔서 어찌할 바 모를 게 틀림없었다. 하기는 대학생으로서 신여성이기에, 그 깐 처녀성이나 동정에 몸 부치거나, 고민하지는 않을 거라 보이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여성으로서 가장 중대한 중심원이 허물어지었을 때는 당장 마음의 평온을 찾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유희를 닮았다면, 천복에게 어떠한 괴롭힘과 번민을 안기어다 주지는 않을 터이니, 아무러한 문제가 없겠으나, 유희처럼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거기에서 발산하여 달리어드는 악귀의 사슬에서 자유로이 질곡을 스스로 견디는 강인한 여자는 세상에 없으리라 보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희는 천복을 향한 사랑을 혼자서 불태우기는 하였지만, 결혼에까지는 미치지 못하자, 그 혈육을 이끌고 독자행보를 서슴지 않으면서 나뒹굴 린 여자이었다.
그리하여 돌고 돌아가는 운명의 수레바퀴 소용돌이 속에서 하필이면 최복동의 아내를 만나서 공생할 수 있었다는 게 정녕 믿기어지지 않는 아이러니이었다.
유희는 부엌일을 마치고, 안방에서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그러한 그녀는 한쪽으로 아이를 일단 내리어놓더니, 옷궤위에 개키어놓은 이부자리를 방바닥에 펴서 깔아놓고는 한켠으로 아이를 다시 뉜 뒤에야, 하나밖에 없는 베개를 들고 잠시 멈칫 서있었다.
“오호호, 안방에는 남자베개가 있어유.”
그녀는 의미 모르게 웃음을 떨구더니, 안방으로 건너가 남자베개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비단으로 덧씌운 베갯잇에는 알록달록한 원앙 한 쌍이 수놓여있었다.
그런데 유희의 뒤를 따라온 쪽머리 여인이 대청마루에 선 채 천복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언젠간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의 베개를 새로 시쳤어요. 그런데 만수아빠가 먼저 왔으니깐 그걸 베세요!”
“....?”
첫댓글 쪽머리여인의 남편권한대행도 될까요? ㅎㅎㅎ
암튼 원앙침을 베게됬으니 미션성공일까요? ^^*
그런 쪽으로 흐르고는 있으나????????
베개를 새로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江입니다.
전후의 비극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