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일요일이다.
추워야 할 겨울이 이건 완전 봄날이다.
오전에 교회 다녀 온 딸내미 둘이 집으로 돌아오자 하는 첫 마디는,
"컴퓨터, 아빠 다음에 나!" 이다.
마눌님과 딸 둘의 단출한 식구라, 큰 평수의 아파트 부럽지 않지만
아침나절 출근과 등교로 화장실이 붐빌 때는 화장실 두개 있는 아파트가 부럽고,
컴퓨터 사용시간까지 딸들과 1시간씩 나누어 사용해야 할 때는 컴퓨터 두대있는 집이 부럽다.
우짜든둥.(넝마님의 이 말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고, 두루두루 장면전환에 써 먹을 수 있어 참 좋다)
지난 12월 중순 쯤.
15년여 차이나는 군대후배의 전화가 왔다.
"선배님! 1월 19일에 제가 장가가는데예.. 제 장가가시는 것 아시심니꺼?"
"느그 선배, 내는 벌써 장가가셨고(!), 부철이 니가 장가가는 것(!)은 카페에서 대충 소식 본 것 같다.."
"아.. 죄송합니다. 내가 장가 가시는게 아니고, 가는기제.. 그란데예.. 부탁이 하나 있심니더"
"하나만 해 봐라"
부탁이란 건,
결혼의 중대 3요소중 신랑, 신부라는 2대 요소는 갖추어졌지만,
다른 중대 요소인 주례가 없으므로 "선배님이 주례 좀 서 주이소.." 였다.
징그러라.
내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은 했지마는 이게 뭐냐.
'주례를 서는 사람'이라는 단어에 불러 들일 수 있는 사람을 그려 보면,
얼굴에 기름이 철철흘러 집안의 튀김용 기름이 떨어졌을 때 예비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할 것이고,
배불뚝이 금복주 영감님 미소를 가진 6학년 노장들이 이염이염 나서야되지 않을까 보냐.
/*이염이염 : 꾸역꾸역, 줄줄이.. 라는 뜻의 북한 말. 1945년도 판 옛 책에서 본 단어. 재미있어 사용해 본다*/
나 말고 여러 선배들을 나열하며 그 선배들에게 부탁해 볼 것을 권했다.
MBC성우 출신의 풍채좋고 목소리 걸걸한 서울사는 李선배는 서울이라 너무 멀어서 초청하기 어렵고,
종업원 수백명의 선박 하청회사 사장님이신 鄭선배는 수백명 종업원을 거느린 사장님이라는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남 앞에 나서 말하기를 아주 어려워하는 분이라 안 된다고 한다.
주례를 부탁한 후배의 말을 이리저리 꿰 맞추어 보니,
'하객들이 와서 주례 얼굴보고 갈 것 아닐 것이며, 교회 목사님 아닐 바에야 무슨 주례의 말씀에
성령의 크신 감동, 감화의 은사를 받아 결혼식장을 떠날 것인가? 결혼식장에서 주선해 주는 전문 주례는
일당이 만만치 않더라.
고로, 신랑이랑 가까이 살고 있으니 결혼식에 오기 용이하고,
주례사 적당히 한 말씀하시고, 결혼식 끝나고 나면 주례라고 따로 한 상 차려 준 것 잡수시고
군말없이 떠나 줄 강뱅후이 선배로 낙착된 요량'이었겠다.
'... 벌써 우리 나이가 주례를 설 나이가 되었는가?'
결혼식이 나에게 처음 인식된 것은
내 다섯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살아계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계시던 옛날.
우리 할머니가 결혼식에 다녀오시면서
시커먼 돼지털이 숭숭 박한 돼지고기비계와 노란 콩고물 가득 묻은 떡이
반쯤 먹다 담아 온 굵은 사탕과 함께 할머니의 하얀가제(거어즈) 수건 속에서 뒤범벅되어 나타났을 때 부터 일 것이다.
이 추억은 나와 열살 차이나는 큰 누나도 "으~~ 할무이의 가제수건에 담아 온 돼지고기하고 떡..으~"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가끔 이야기를 하던데 큰 누나의 말을 비추어 보건데 우리 할무이는
손자, 손주 사랑을 누구하나 빠뜨리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어 멕이셨는가 보다.
풍성하고 재밌는 결혼식은 시골 외갓집 친척들의 결혼식에 가서야 보게된다.
우리 어무이가 집성촌인 시골외갓집 큰집의 맏이셨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어무이 따라 시골 외갓집에 가면 동네 아지매들이 "성님 오싰심니꺼.."라며 꼬박꼬박
우리 어무이께 인사 올릴 때, 으젓하게 인사받던 우리 어무이의 서열높음에 힘입어
세상이 내 것이라는 환상을 잔뜩 머금게 된다.
우리 외삼촌이었는지, 아니면 외삼촌 항렬의 '기무이(기문)아제' 결혼식 때 였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교모를 쓴 신랑친구가 사모관대와 족두리 쓴 신랑신부 앞에서 축사를 긴 두루마리 한지에 써 와서
줄줄히 펼치며 읽어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고등학교 교모 쓴 신랑친구는 우리랑 같은 진주출신이었던가 보다.
결혼식 마치고 진주 집으로 돌아 올 때, 신랑친구이고 축사를 낭독한 사람이라 하여
외갓집 인근의 고령토 광산에서 내려오던 구닥다리 "지에무씨 도락쿠(GMC 트럭)" 앞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리더라.
외갓집 동네에서는 서열높던 우리 어무이와 나는 고령토 광산의 희고, 붉은 고령토가 덕지덕지 붙은 지에무씨 도락쿠
화물칸에 타고 쌩쌩 불던 겨울바람 오롯이 맞으며 돌아왔다.
아! 맞다. 그 결혼식은 우리 외삼촌 결혼식 때가 아니였다.
신랑을 달아메고 발바닥을 사정없이 패던 사람이 우리 외삼촌이었으니 다른 사람이었겠다.
누가 누구였고, 누구의 결혼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마구 뒤섞여 기억난다.
어무이 손 잡고 시골 외갓집 결혼식에 가던 그 행복하고 푸근하던 시절이 이제는 아득하구나..
결혼식 추억은 국민학교 이후로 훌쩍 건너뛰어진다.
중, 고등학교 때는 학교다녀서 수업과 공부 때문에 친척 결혼식에 빠지고,
시골 외갓집은 다 컸다고 귀염 못 받던 시기라 그런가?
군대 제대 후에 우리 친구들이 하나, 둘 장가가기 시작할 때는 결혼식 사회를 내가 참 많이 봤다.
유치하지만, 군 시절 여러 행사를 밥 먹듯이 보고 참여한 여세로 '결혼식 사회 쯤이야..' 였다. 흠..흠.
그 시절.
눈이 부리부리한 것이 소도둑 놈, 열 둘은 가벼이 때려 잡을 화상인 친구 한 녀석이
얼굴이 하얗고 사슴 눈망울을 가진 어느 처자를 널름 도둑질해 버렸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다닐 때, 수업 빼 먹고 담장 넘어 도망 가겠다고 가방을 담 넘어 던져놓고 나서
담을 폴짝 뛰어 넘어 땅에 내려서니 교감선생님이 친구의 가방을 받아 들고서 기다리더라는 친구다.
이 '놀던' 친구가 담배 뻑뻑 피우며 "우짜모 좋겠노?"라며, 내게 서울로 떠나버린 사슴 눈망울의 여자를
애타게 그리던 심정을 토로했다.
어찌어찌 서울로 떠난 처자가 돌아오고 결혼식을 교회에서 치뤘다.
얼굴하얗고 사슴눈망울의 신부를 축하하러 온 신부 친구들도 신부와 같은 여린 사슴科여서
우리 신랑친구들의 기대가 자못 컸다.
결혼식 후.
신랑,신부친구들끼리 이층으로 된 아담한 시골 다방에 끼리끼리 앉았다.
입담좋은 내 친구가 바람을 잡아, 분위기 좋게 짝을 갖추어 야무지고 걸지게 놀아 보려는 터에,
다방 아래 1층의 도로에서
"00 엄마야! 집에 가자. 아직 안 마쳤나?"
"00야. 내려 오이라.."라는 소리가 크게 2층 다방으로 울렸다.
그러자 주섬주섬 신부친구들이 일어서더니 다들 떠나 버렸다.
신부친구들이 모두 결혼한 부인들이라 자기 남편들이 1층에서 자기 마누라를 불러 들인 것.
고등학교 시절, 담을 넘던 친구의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는 교감선생님을 쳐다보았을 친구 놈이나,
자기 남편들이 불러서 떠나 가 버린 신부친구들 뒷 모습을 쳐다보던 우리나, 황당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담치기 하던 친구 놈의 결혼식에 간 우리가 불행한 놈들이었다.
친구들 한놈 두놈 떠나 보내고 내 차례가 되고 아들, 딸 낳고 살다가 친척들 결혼식에 가는 시기가 온다.
이 시기에 결혼식에서 나의 위치는 하객들 식사 당번으로 자리매김된다.
식사당번이라해도 별반 어렵지는 않다.
대형식당에 떼거리로 몰려오는 여러 결혼식의 하객들 중에서 우리 가족, 친척들을 지정된 좌석으로 인도하는 것과
주방에서 나오는 갈비탕 그릇 수를 신문지 귀퉁이 찢어서 손님들 머리수와 동수로 줄 긋고,
이걸 나중에 식당 주인과 대조하여 밥그릇 수 계산할 때 착오없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무식한 식사당번 말이다.
식사당번 하는 와중에도 가끔 '이거.. 회사에서 몇 억 예산 다루던 놈이.. 밥그릇수 한개 두개 세고 자빠졌구나..'라는
자괴감에 헛웃음이 실실 나오는 것이 조금은 애로사항이다.
밥값 계산하러 온 먼 친척 앞에서 무게도 좀 잡고, 식당사장과 밥그릇 수 몇개 착오난 것 바로 잡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식사당번 잘했다는 소리를 친척들 앞에서 듣게된다.
식사당번을 몇년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이후로는
조카들 결혼식에 삼촌급으로 나서 책상에 앉아 하객들 봉투 받는 급으로 수직상승을 하고,
"누구누구가 왔네. 누구누구가 얼마를 봉투에 넣었네.." 인원점검을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이거 몇년하고 나니, 이제는 결혼식 마치고 폐박받는 자리에서
신랑, 신부 큰절 받고 덕담 한마디를 붉은 대추와 함께 신랑, 신부에게 던지게 되는 시기가 금방이더구만.
작년, 아니 재작년 겨울에 조카딸 결혼식에서 신부애비 노릇으로 조카딸 손 잡고 신부입장까지 마쳤으니,
과연 주례만 서 보면 이제 내 인생에서 결혼식에 딸린 모든 중요업무가 다 마쳐지려나?
대한민국 겨레붙이로서 국가에 해야될 의무가 국방, 세금, 교육, 근로등의 의무 뿐만 아니라,
겨레붙이의 증가를 위해 결혼식 뒷 정리로 담아 온 콩고물로 뒤범벅 된 할머니의 돼지고기 비계를 먹어주어야 되고,
친구 결혼식 사회봐 주어야되고, 축의금도 넣어주어야 되고, 신부친구들이랑 놀아주어야 되고,
식당 밥그릇 수도 세어야되는.. 대한민국에 충성하기 위한 의무가 참 많다.
결혼식의 언저리에서 뱅글뱅글 맴돌다 우리네 인생이 가는가 보다.
첫댓글 그러게 말입니다. 어느새 우리가 친구넘 자식들 결혼식에 불려다니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나저나... 양중의 주례사는 어떨지 무쟈게 궁금합니다. 일상을 보는 따뜻하고 섬세하고 깊이있는 시선과 사유가 듬뿍 담긴 멋진 주례사이리라 기대가 되는데... 설마 글로 우릴 골탕 먹이듯 주례사에서도 그런 짖궂은 장난은 안 하시겠죠??
역시, 돋움사랑방 '물'좋습니다! 벌써 꼬리말 다는 수준이 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따뜻하고..섬세하고.. 깊이있는 시선...사유가 듬뿍담긴 멋진 주례사" 캬~ 우찌 요리 귀에 쏘~옥 속 들어 오는 꼬리말을 다 달아주십디여? 돋움에 한번 발 붙히면 멀리 도망 못 간다더니.. 이유가 있긴 있었구만요.. ㅎㅎㅎㅎ
에고~~ 이거이 뭔가 쬐매 껄쩍지근한 뼈가 숨겨진 칭찬 같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 양중글 쫓아다니면서 너무 짖궂게 어깃짱을 놓은 것을 은근히 비틀어 말씀하시는 거 아닙네까?? 에고.... ... ㅋㅋ~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두세요~! 그 짖궂은 어깃짱이 바로 양중을 사랑하는 제 갚은 마음의 표현이란 것을~~ 꼭 새겨 두세요~~!!
ㅎㅎㅎㅎ 웬 짖궂은어깃짱요? 그것이 관심이고 사랑이란걸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ㅎㅎㅎㅎ
에효~두 분 닭살~
연필댁님~! 질투하십네까??
네
여쭙니다??...파파~께서 '양중'이라 하셨는데, 筆名인가요, 아님 號이신가요? 궁금합니다.
梁重요? 이 설명은 파파님 오시기 전에 달아야 후환이 없습니다. 梁重(대들보.무겁다)라는 뜻으로 새겼습니다. 오르내림이 많았던 짧은 제 삶에("인생은 이차방정식"이란 제 글에 상세히..) 지침을 삼자하여 화두처럼 잡은 말이 處變不驚(위치가 바뀌어도 놀라지 않는다)이었습니다. 이 말을 줄여, 어느 자리 어느 위치에 있어도 대들보처럼 묵직히(梁重) 자리를 잡자하여 잡은 말이죠. 이 에피소드를 눈 밝고, 귀 밝은 파파님이 듣고 보시고. 저리 널리 광고를 해 주십니다.
또 다른 뜻은, 아무리 제가 겸손하자 하여도.주머니 속 송곳.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더군요. 그런 뜻의 "낭중"이기도 합니다.// 제가 쓴 이 꼬리말 밑으로 달리는 모든 해석은 무효!! 반사!! 특히, 파파님... 펜슬댁.. 이 두분이 해석하여 올릴 뜻은 아무 짝에도 쓸 데없는 음해성 해석이 될 것이오니, 그리메님의 혜안으로 널리 혜량하소서~
아!~~....감사합니다!!! ㅎㅎ~이후로는 저두, 梁重으로 때로는 낭중으로 '널리 광고!'하도록 하겠습니다...진작 여쭤봤어야 했는데...이제라도 여쭤보길 정말 잘 한거 같습니다....
큰일났다.. 이거 우찌해야 뒷 수습이 되겠노.. 일을 너무 크게 벌린 것 같은데.. 파파님/펜슬댁 빨리와서 수습 좀 하이소..
(머리 긁적 긁적~) 뭔 수습이여~~? 난 도체 뭔 소리를 하시는지 원~~ㅎㅎㅎㅎ 사기는 치셔도 천하에 못하는 거이 거짓이라면서유~~~? 흠흠....전 몰러유......그리메님...잠깐 이리......(이 분이 어데 다른 카페에서여~을매나 글로 사기를 잘 치시는지 우리가 꼴까닥..꼴까닥...넘어갔지 않았습니까? 양치는 소년-양치는 중년-양중....ㅎㅎㅎㅎ )....
아!~~양치는 소년의 '양'....양치는 중년의 '중' !!!~~~참으로 근사하고 멋진 필명이십니다!!!!!..다른카페 어디여?!..확인하러 가보게여!!!~~~
저두 궁금합니다~ 그...주례사...ㅎㅎ주례 의무를 다 하신담에 여기다 그 주례사를 한번 올려 주심이...ㅎㅎ
아~차차차..! 다들 주례사 올려보라고 하셔서, '윗 글에 주례 안 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마나.. 우짤꼬... 주례는 제가 정중히 사양을 했습니다. 그 내용이 없네요.. 에구. 죄송.. ㅎㅎ
오마나!~~왜에??~~~~주례를 사양하셨는데요???....명품주례사!!~ 올리시라고 칼려든 참인디~~~~~~~
아!~~...'흐르는 강물처럼' 사시고!!!...대한민국 겨레붙이로서의 의무를 충성되이 감당하시는 모습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이염이염'!!!...기억해 두었다가 사용해야겠습니다!..으음~저두 생각나는 예쁜 북한말이 있습니다. (저희집앞 가로수는 버짐나무입니다. 버스 기다리다가 심심하구, 지루하면 가로수의 버짐같은 껍질을 뜯어냅니다...북한에서는 방울나무라고 한답니다...대롱대롱 방울이 가득 달려 있어요 지금!...봄철에 방울이 터져서 도로가득~날리고 ....암튼, 방울! 예쁘잖아요!!!)
버짐나무? 플라타너스 나무? 방울나무가 예쁘네요. 플라타너스는 외래어이고, 버짐나무는 나무껍질만 본 것 같고.. 사물의 좋은 것만 봐 주는 북한사람들 심성이 더 고운 것 같습니다..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감사! ^^;
하하~~독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셨습니다!!..플라타너스 맞습니다!..그저께, 온종일 톱소리가 시끄럽긴 했지만, 가지마다 조랑조랑 예쁜 방울 가득달린 버즘(고어)나무 이발?!했습니다. 올봄은 포도에 꽃가루 덜 날릴거고..기침 끝~~~행복해집니다...
행복!~...아침에 꼬리글에 적은 '행복'이라는 단어가 적절치 않게 여겨져서 댓글을 또 답니다..플라타너스!! 삭정이가 될 새도,.. 하늘로 팔을 뻗어보지도 못하고, 이맘때가 되면 늘 잘려지는~가지들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뜨겁던 여름날 무성한 잎으로 열기를 식혀주었었는데...에구~이러다가 또 긴~구독료!....ㅎㅎ~~생각에도 적당한 가지치기....!!!
저의 할머니께서도 가제손수건에 떡이랑, 과일등을 싸오셔서!~~~....아!~~
마자요~! 그것을 늘 치맛속 허리춤에 감추고 계시다가... 우리 보면 한 구석으로 끌고 가셔서 치마를 훌러덩 뒤집고 꺼내어 풀어 주셨지요~!
으허ㅎㅎㅎㅎ~ 치맛속(괴춤)에서 나오던 떡과 돼지고기.. 그 당시 전국 8도 할머니들의 공통된 "내새끼 사랑"이었군요.. ㅎㅎㅎㅎㅎㅎ
'전국 8도 할머니들의 공통된~~사랑!' 딱 맞는 말씀입니다!..//파파~님은 ㅋㅎ~소설가가 되셔야 해요!..글이 어찌나 생동감이 있는지~어린시절로 끌고 가는 듯 합니다..(아!~근데요, 저는 '괴춤!~' 구경은 했지만 조금 예외인 거 같습니다...종갓집?!막둥?이에다~..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온동네 사랑을 독차지 했걸랑요...)
에고....그리메 님은 파파~님을 자꾸 띄워주시면 안되는디~~~안그래두 우리 음악회 스탭들이 홍보 글 쓰면 어찌나 사사건건 까탈을 부리시는지... 저리 자꾸 띄워주시면 앞으로 더 심한 만행(?)을 우리보러 어찌 감당하라구.....ㅋ
앗!!~~~...또~그리 되는 겁니까???..저는 무심히, 정말 아무생각 없이 적었을 뿐인데...(..정말임다!~전 누굴 띄울생각 전혀 없구요..걍~ 느낀대로 적었을 뿐인데)...예!~명심하구!~~이후론 파파~님의 글에 대해선 특별히! 딴*&%죽 걸거 없나만 살피겠슴다!!!...근디, 홍디님!~~'우리보러'는 무슨 뜻인가유??ㅋ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