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랑말 공연 보고 아부오름 오르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와는 달리 차가 비자림로에 들어서자 내리기 시작하더니 만나는 장소인 대천동 사거리에 도착하자 점점 거세어져 차에서 내리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인근에 있는 차고로 쓰이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긴급대책회의를 했다. 산행을 강행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겨울철이라 감기 들기 십상이다. 논의 끝에 산행을 포기하고 성불오름 인근에 있는 조랑말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보고 오후에는 노래방이라도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차를 돌려 조랑말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시간이 좀 일러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협상을 벌인 결과 관람료가 제주도민이 7000원인데 깎아서 5000원에 하기로 했다. 공연시간인 10시 50분이 가까워 오자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이 계속 들어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들어가 보니 체육관만한 넓이에 가운데에 말들이 공연을 하는 원형 무대가 있고 주변에 부채꼴로 관람석이 배치되어있는데 1000석은 되어보였다. 공연시각이 되자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어 좌석의 반 이상을 채웠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매캐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몽골의 서커스 소녀들의 줄타기 곡예로부터 환상적인 묘기를 보여주었다.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 보다는 열두어 살 먹은 어린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했다. 학교 공부는 어떻게 하고 이 먼 외국에까지 와서 외화벌이에 벌써부터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이다.
본격적인 조랑말 공연은 정말 볼만했다. 말들 타고 세계를 제패한 징기스칸의 후예답게 정말 말을 잘 탔다. 공연 내내 스릴과 박진감이 넘쳤다. 박수를 치며 공연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태도도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공연에 동원되는 말들이 불쌍하다.
공연이 끝나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매점 앞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막이 있고 원탁과 의자가 있는 곳을 양해를 구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마침 운공 장모님의 소기라서 산소에 가서 제를 올리고 바로 오는 길이라서 푸짐한 식탁이 마련되었다. 아마도 우리 C오동을 의식해서 일부러 준비한 성찬인지도 모른다. 곁들여 진시기네가 준비해 온 삶은 돼지고기까지 더하니 정말로 진수성찬이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바람불면 바람불어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은 우리 C오동이다. 모두 일어서서 잔을 높이 들고 '희수까지 굿짝!!"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처럼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친 것이다. 그냥 잠시 그친 것이 아니라 하늘이 파란 얼굴을 다시 드러내고, 주변 오름들이 세수를 한 산뜻한 얼굴로 우리를 손짓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삶이 이렇게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을 준다. 늦었지만 아부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아부오름은 하나 오르기는 너무 쉬워보여 다른 오름과 같이 오르려고 아껴두었던 오름이다. 이재수난 영화촬영지로 이름난 이 오름은 굼부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제일 높은 곳의 비고가 50여m 밖에 안되어 오르기는 수월하다. 대신
굼부리는 오름의 높이보다 더 깊어 70여m이다. 굼부리 바닥에는 누가 심어 놓았는지 둥그렇게 커다란 원을 그리며 삼나무를 심었고 굼부리를 휘도는 오름 능선이 1.4km나 되는 천연잔디 트랙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여기서 한바탕 웃고 떠들고 노래부르며 딩굴었다. 방금 비가 왔던 날씨 답지 않게 공기도 청정하고 주변이 산뜻하다. 바로 우리 앞쪽에는 우리가 오늘 계획했던 안돌과 밧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누가 오늘 같은날 이런 경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굼부리를 내려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좀 늦은 시간이라 펑퍼짐한 능선을 따라 돌며 주변 오름들을 감상하기로 했다. 앞장과 꼴찌는 기어이 굼부리를 내려가 오름을 가로 질러 원주율을 증명해 보였다.
시간은 늦었지만 빠질 수 없는 우리의 스케줄이 있었지. 검도수련이다. 지난 주에 은하수 사범이 승단심사관 자격시험관계로 빠져서 오늘의 수련을 그냥 넘길수는 없는 일이다. 산하네는 오늘이 처음 수련이라 부족한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머릿' 기압소리에 아부오름이 쩌렁쩌렁 울린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오름을 못 오르나 했더니 색다른 경험도 하고 좋은 오름도 오르고 산뜻한 좋은 경치도 감상한 좋은 날이었다. 더구나 운공네와 진시기네의 수고로 진수성찬을 맛 볼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첫댓글 편집이 새로워졌네? 깔끔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