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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십자가에 달리신 분 시 19; 출 20:1-17; 고전 1:18-25; 요 2:13-22
원효대사의 해골 물은 깨달음의 상징입니다. 지난밤 모든 갈증을 해소할 만큼 시원하게 마셨던 물이 아침에 보니 완전히 썩은 해골의 물이었습니다. 같은 썩은 물이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릴 적 누나는 고기류와 젓갈 김치를 먹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밥상도 따로 차려야 했습니다. 김장을 할 때면 항상 두 종류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루는 매일 사용하던 숟가락에 거북이 문양이 새겨졌다며 다 버립니다. 이불과 옷에도 호랑이 그림이 있다며, 집 안 구석구석 색출해서 몽땅 버립니다. 그 이유가 오늘 출애굽기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신앙적으로 아주 예민한 누나의 행동에 부모님마저 긴가민가하면서 크게 만류하지는 않습니다.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벌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성서를 바르게 해석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해석해 주는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이해한 결과 같습니다. 지도자들은 그렇게 두려움을 강조하면 지도가 편하기 때문에 그 점을 더 강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때 금거북이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금거북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마몬(맘몬)이 더 힘이 세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여하튼 출애굽기 본문의 중점은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 더 중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오랜 노예 생활에서의 습관, 노예근성을 벗기기에는 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벌의 요점도 복에 기인합니다. 벌이 없다면, 약자는 더욱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노예근성은 강자, 가진 자, 억압자에게 억눌린 현상입니다. 때문에 언제든 표출이나 폭발할 수 있습니다. 더 약한 사람에게 폭력이 흐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하게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야만, 약자가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심판이 통치하기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사랑보다 폭력이 더 무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군부독재, 검찰 독재 역시, 총칼이나, 압수수색이라는 공포가 다른 무엇보다 큰 힘을 갖습니다.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이 구절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본인뿐만 아니라, 아들, 딸, 심지어 종들과 짐승까지도 고된 노동에서의 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안식일을 중히 여기는 신앙 좋은 장로님마저, 자기는 주일을 지키지만, 노동자들의 쉼은 허용되지 않는 아이러니를 봅니다. 신앙의 편협함을 봅니다. 자기중심적 신앙, 어쩌면 이것이 우상숭배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요?
고린도전서 본문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동전의 양면성을 지닙니다. 한쪽에는 형상, 한쪽에는 숫자, 그러나 같은 동전입니다. 한쪽에는 거리낌과 어리석음이지만, 한쪽에는 능력과 지혜입니다. 전자에서 십자가는 무능입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하고 살리고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었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힘없이, 아무 말도 못 한 채 온몸으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왜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자신도 구원하라는 조롱과 비난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을 봅니다. 스승님에게 절대 고난과 고통과 죽음은 허락될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수제자 베드로마저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칩니다. 그런 수모와 치욕 속에서도 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까? 우리는 압니다. 그 십자가 만이 부활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십자가 만이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십자가 만이 저와 여러분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습니다. 노끈으로 휘두르고, 상을 엎어버립니다. 오랜 시간 성전에서 장사가 있었습니다. 먼 여행길에 예물을 준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환전도 해주고, 예복도 마련해주는 고마운 제도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변질을 반복합니다. 지도자들은 자릿세를 받고, 수수료를 챙깁니다. 응당 장사하는 사람들도 더 많은 수익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 높은 값을 요구합니다. 언젠가 팔공산 갓바위에 가보았습니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 갓바위 부처님상 앞에서 사람들은 봉양 미를 바칩니다. 그 봉양 미는 조그만 관을 타고 사무처로 내려갑니다. 다시 사람들은 돈으로 봉양 미를 구입합니다. 하루에 얼마나 반복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어떻게 분배될까요? 자릿세나 독점권 등은 누구의 몫일까요? 예수의 눈에 성전은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정결히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다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발판이고, 터전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막대한 이득, 이익이 우선되어 가는 모습에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런 성전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 뭘 믿고 이런 행패를 부리냐 하면서 표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예수는 성전을 허물라 사흘에 짓겠다고 합니다. 성전이 46년에 걸쳐 지었는데 사흘이라니 하며 유대인들은 같잖아합니다. 예수에게 성전은 단순한 건물입니다. 성전의 중심, 성전의 정체성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순절, 삼일절 기념 예배에서 우리는 다시금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묵상합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선구자들을 묵상합니다. 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까? 왜 독립운동을 했던 것입니까? 막강한 로마 권력, 파렴치한 유대 지도자들의 야합, 그럼에도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본의 막강한 권력, 그 권력에 빌붙은 친일세력, 그럼에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던 것입니까? 잠시 침묵하고 독립선언문을 함께 낭독합니다.
기미 독립 선언문(번역문)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 만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 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를 두루 펴 밝히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 박은 세계 개조의 큰 움직임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움이니, 이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지났는지라, 우리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이며, 겨레의 존엄과 영예가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위협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체모가 도리어 짓눌려 시든 것을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이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도록 이끌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고,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물려 온 터전을 식민지로 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적음을 꾸짖으려 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을 갖지 못하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가릴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 때의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으뜸으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의 요구로서 나온 것이 아닌 두 나라의 병합의 결과가 마침내 한때의 위압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한 뜻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 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를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리요?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지난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은밀히 우리를 지키며, 전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공약 3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길선주 외 33명-
240303 시 19; 출 20:1-17; 고전 1:18-25; 요 2:13-22
시 19
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2 낮은 낮에게 그의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그의 지식을 알려 준다.
3 1)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4 2)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해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5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기뻐하고,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즐거워한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니, 그 뜨거움을 피할 자 없다.
7 주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8 주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9 주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의 법령은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10 주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다.
11 그러므로 주의 종이 그 교훈으로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푸짐한 상을 받을 것이다.
12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허물을 낱낱이 알겠습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13 주의 종이 일부러 죄를 지을세라 막아 주셔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나의 말과 나의 생각이 언제나 주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출 20:1-17
1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2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3 너희는 1)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4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5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7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9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12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
13 살인하지 못한다.
14 간음하지 못한다.
15 도둑질하지 못한다.
16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17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고전 1:18-25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6)"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 지혜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리석은 선포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22 유대 사람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24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요 2:13-22
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14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제자들은 2)'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1)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습니까?" 하니,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