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양떼처럼 흩어져 있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청명한 일요일 오전, 나는 Gray Line 투어 회사의 Best of Sydney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Darling Harbour로 향했다. 런천 크루즈에 시티 투어, 게다가 시드니 타워에서의 저녁이라니! 시드니 관광의 하이라이트만 쏙쏙 골라놓은 듯한 일정도 맘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평소 주말이면 나는 벼룩 시장을 구경하고 Darling Harbour나 Circular Quay로 나와 항구를 드나드는 크고 작은 cruise 배들을 바라보며 기분 전환을 하곤 했는데, 직접 크루즈 배를 타긴 처음이라 설레는 맘 금할 길 없어 따가운 햇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맨 앞줄에 서서 신나게 기다렸다.
마침내 승선, 친절한 crew가 2층의 예약된 자리로 안내해 주었는데 어두운 1층과는 달리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자그마한 식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접시와 포크, 나이프와 작은 빵… 그렇지, 이 런천은 뷔페 형식이었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새우, 굴, 샐러드, 생선, 햄, 감자, 파스타, 스시들이 어서 먹어달라고 나를 반기고, 그뿐인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커피, 과일, 치즈, 크래커가 이리 와~ 하며 손짓한다. 요즘 들어 새우가 그렇게 먹고 싶더니 오늘 아주 임자 만난 듯, 손가락에 새우물이 발갛게 들도록 실컷 새우를 즐기고, 짭짤한 햄을 양껏 먹고, 달콤한 케이크에 커피 한 잔까지 하고 났더니 그제서야 크루즈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이 들리고 눈에 아름다운 시드니 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답게 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그림 같은 풍경이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Fort Denison,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는 고급 주택들, 게다가 점점이 떠 있는 하얀 요트들과 하얀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보트까지 한없이 눈이 즐겁기만 한데, 누드 비치에 이르러 못 볼 것(?)을 보긴 하였지만 아무튼 시드니 항과 만의 풍성한 매력에 흠뻑 취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2시간 여의 크루즈를 마치고 Gray Line 코치에 올라 이번에는 시티 투어를 시작하였다.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 된 pub인 the Hero of Waterloo와 the Lord Nelson Hotel을 시작으로 the Rocks를 지나 George Street에 접어들어 Strand Arcade를 비롯한 유명 쇼핑 센터들을 창 밖으로 구경하고, QVB, Town Hall에 이어 China town을 만난 후 Hyde Park에 이르렀다. 그 밖에도 Royal Botanic Garden, Public Library, the Mint, Art Gallery 등 시드니 시티 곳곳의 명소들을 운전 기사의 유머 섞인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눈으로만 방문하고, Mrs. Macquaries Chair를 지나 이번에는 시드니의 유명한 Bay들 순례에 나섰다.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Double Bay, 수없이 많은 하얀 요트들로 가득한 Rose Bay, 그리고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The Gap이 있는 Watsons Bay에 이르기까지, 길 양 옆으로 늘어선 모던하면서 세련된 최첨단의 주택에서부터 고풍스러우면서 중후함을 풍기는 주택들, 거기에다 정원마다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The Gap에 도착해서 15분 정도 절벽 아래 장관을 구경할 시간을 가졌는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바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에 남아있던 알 수 없는 걱정과 앙금들이 순식간에 쑥 내려가는 듯 했다. TV에서나 보던 작은 아이스크림 차에서 입에 살살 녹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버스에 다시 올라 마지막 코스인 Bondi beach로 향했다.
눈을 제대로 뜨기 조차 힘든 뜨거운 태양 아래서 까맣게 백사장을 메우고 있는 구리빛 남녀들과 ‘물이 구르는 소리’라는 뜻 그대로 시원한 파도 소리가 정말 인상적인 본다이 비치!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카메라까지 둘러 매어 관광객 티를 팍팍 내는 나의 모습이 민망하기 이를 데 없고, 당장이라도 훌훌 벗어 던지고 파도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쓸쓸히 모래 사장에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옆에서 진한 애정 표현을 하는 커플들이 더더욱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시티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명한 쇼핑 거리 Oxford Street과 독특한 테라스 하우스 거리를 보았고, 무지개 깃발 등 얼마 전에 끝난 Mardi Gras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드니 타워에 도착한 것은 저녁 5시 반경,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전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일단 시드니 시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굉장한 전망이 나를 압도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 도시를 관광하던지 일단 높은 곳에 올라 시티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별로 관심이 없어 항상 제외했었는데, 이 시드니 타워는 별 기대 없이 왔다가 놀라운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한참이나 아래를 내려다 보며 전망을 감상한 후, 점심을 너무 잘 먹어 저녁 뷔페는 그냥 사진이나 찍고 말자…고 생각했으나 막상 먹음직스러운 캥거루 스테이크와 온갖 해산물, 치킨, 샐러드(그리고 케이크!!)를 마주하자 내 위 어디에 그런 공간이 숨어있었는지 한 접시가 후딱-. 와인 한 잔과 함께 서서히 노을이 지며 하늘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만족감과 노곤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현대적인 빌딩과 옛 건물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주변으로 환상적인 바다와 비치가 펼쳐져 있는 축복 받은 도시 시드니- 시드니에 살고 있지만 항상 시드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