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2 주일설교
본문: 왕상 2:1-3
제목: 기록된 대로 지키라
1.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
30세에 왕이 되고 40년을 통치했으니 70세에 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 죽어서 갔다.
아브라함은 175세, 요셉은 110세, 모세는 120세, 여호수아는 110세.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형벌의 심판이 없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기었기에 상급의 심판만 있다.
살아서도 상급(축복)의 심판은 있고, 죽어서는 영원한 상급의 심판이 있다.
이 땅에서도 형통하고 저 세상에서도 영원히 형통하는 길을 다윗이 말씀해 주고 있다.
그 길은 오직 하나이다.
오늘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남기는 내용 그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3)
시편도 같은 말씀을 한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여호수아서도 같은 말씀으로, 형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9)
2. 힘써 대장부가 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야,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부는 남자를 뜻하는데, 여기에 큰 대를 붙여 남자 중의 남자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여장부는 성격이나 행동이 시원시원하고 씩씩한 여자를 ‘대장부’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도량이 크고 의협심이 강한 여자를 여중호걸이라고 한다.
발도인들은 목사에 해당되는 지도자를 ‘바르브’라고 했는데,
여자도 차별 없이 선출하였고 설교와 직무를 감당했고 교인들은 순종하였다.
사사시대에 사사 중 여선지자 드보라도 있었다.
사도 바울도 교회 지도자로 뵈뵈, 브리스가(아내)와 아굴라(남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뵈뵈는 교회 지도자였고, ‘여러 사람과 바울의 보호자’였다.(롬16장)
브리스가는 로마 귀족 출신으로 교회에서 역할과 영향력이 컸던 것 같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전통이 아닌가 싶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만 들어서 차별하는 것은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것이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대장부의 길이다.
어떤 고난에도, 어떤 핍박에도,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아도,
믿음과 인내로서 견디어 낼려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한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다.
그 목적은 말씀으로,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형통하기 위해서이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려면,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도, 대장부가 할 수 있는 것이다.
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기록된 대로 지킬려면 먼저 가르치는 교회가 있어야 하고 거기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마지막 분부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시겠다는 약속이다.
사도들도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카라”(살후2:15)
초대교회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해졌을 때 제일 먼저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행2:42)
가르침이 없는 곳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을 수 없다.
우리의 헌 부대, 묵은 포도주를,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도 버리지 않고서는,
주님의 새롭고도 온전한 가르침인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새 부대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그래야 기록된 대로 지킬 수 있다.
가르침과 행함 가운데 성령의 조명과 역사는 필수이다.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새 언약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10:16,렘31:33)
이 새 언약을 주님은 주님의 피로 세우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주님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셨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야,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
주의 말씀이 생각과 마음에 기록되어 지켜 행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머리 속 돌판에만, 입술에만, 기록되고,
마음은 하나님과 멀리 멀리 떠나 온통 세상의 떡으로만 채워지고 만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모세도 분명히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을 전해 줬고,
모세오경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여 주었고, 지켜 행하라고 하였다.
다윗도 솔로몬에게 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였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길이라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했는데,
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키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형통이 아니라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까요?
그리고 로마 교회 천년 동안 세상의 권력과 부를 다 쥐고서도 기록된 대로 지켰나요?
그리고 현대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오백년 동안 기록된 대로 지키고 있나요?
유대 교회, 로마 교회, 현대 교회, 다 똑같이 사람의 지혜로만 가르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 세 교회를 삼 쌍둥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대의 학문, 곧 성경이 말씀하는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만 가르치고
아니, 아예 가르치기를 포기한 교회들이었다. 미신 같은 의식만 화려하게 하였지요.
헌 부대에 묵은 포도주만 부어 넣을 따름이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새 부대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새 부대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은 말씀이 새 포도주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 받은 말씀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성령을 통해 기록되어야 한다.
왜냐면, 사람은 머리에 입술에 있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새 언약의 시대는 그래서 성령으로 마음과 생각에 말씀을 기록해서 행하게 하는 것이다.
옛 언약의 시대를 그대로 사는 교회들이 유대 교회요 로마 교회요 현대 교회이다.
새 언약의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 교회에서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에 말씀이 기록되어, 지켜 행하고,
그런 사람들만이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성경과 성령, 말씀을 우습게 알고, 마음과 생각에 말씀이 기록되어야 지켜 행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새 언약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새 언약을 피로 세우신 주님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4.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길을 두고 어디서 사람들은 형통을 찾을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해서 형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서 제 마음대로 자기 의로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성공하고 형통할 수 있다고 세상의 초등학문, 사람의 지혜들은 가르치지요.
솔로몬도 처음에는 지켜 행하는 것 같더니, 왕권에 세상에 여자에 취하고서는,
세상 길로 가고 말았다. 멸망하고 말았다.
말씀의 권위, 곧 성경의 권위를 우습게 알고, 세상의 권위만 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니까,
성경을 원수처럼 내팽개쳐 놓고, 말씀 한 줄 읽지 않으며,
겨우 예배 참석하더라도, 말씀을 기록한 주보도 귀한 줄을 모른다.
주일 예배 설교는 주님이 성령으로 목사를 통해 주시는 말씀인 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혜로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하는 설교는 전혀 주님과 상관이 없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
사람의 지혜로 가르침 받은 것들은 세상 방법으로 형통하는 것 같다가도 멸망으로 끝나고 만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이고, 성경은 쓸데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야 하고, 성경의 권위가 하나님 권위 만큼 높은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버리고 세상 우상 섬기다가 결국은 멸망으로 끝나고 갈 곳은 영원히 불타는 지옥 뿐이다.
교회 다닌다면서도, 폼만 잡고 입술로만 섬기고,
마음은 온통 세상으로 채우는 사람은 아직 참 그리스도인으로 출생도 하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좋다고 몰려가는 큰 문 넓은 길은 멸망으로 직행하는 길이다. 주님 말씀이다.
노략질하는 이리, 곧 거짓 목사들이 양의 옷을 입고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다.
주님은 이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셨다.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형통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오직 강하고 지극히 담대한 대장부, 여장부가 되어야 한다.
작심삼일인 사람들은 언감생심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이를 깨닫고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부터 받아야 한다.
성령의 지혜는,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초대교회와 개혁자들 청교도들이 유산으로 남긴 경건서적으로
내가 지금 가르침 받고 있는 것이 성령의 지혜인 것을 검증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는
참된 회심과 회개부터 일어나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 말씀이 내 마음과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 받노라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그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면서 젖만 먹는 어린 아이에서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어른으로 장성해 갈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이 낳은 ‘공의와 정의’를 지켜 행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뒤에서 호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
세상 방법으로, 사람의 지혜로, 형통 성공할려고 하는 것,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형통 성공하는 길은, 오직 강하고 지극히 담대한 대장부가 되어,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고,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여,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