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활 속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언어를 사용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존재에 대해 특별한 인식을 갖게 되는 일은 별로 없다.
우리는 흔히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의 생활 안에 확고한 위치로 자리잡게 된 광고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특별한 형태의 의사소통의 하나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광고의 존재를 없어서는 안될 삶의 일부처럼 여기고 있다. 매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언어가 없는 광고는 거의 없으며 아주 드물게 전혀 글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지면광고일지라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하며, ‘이러한 전략을 눈치채지 못하는 당신은 우리 광고의 대상이 아닙니다’라는 다소 오만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따라서 광고에서 언어의 역할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광고에서 광고언어의 역할에 눈을 돌리고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언어나 광고의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AIDA 원칙
광고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눈에 띌 것’(Attention), ‘흥미를 유발할 것’(Interest), ‘욕구를 가지게 할 것’(Desire), 그리고 ‘구매 행위를 하도록 할 것’(Action)이라는 AIDA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원칙과 함께 광고에 쓰이는 언어는 우선 눈에 띌 수 있는 자극과 쉽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력한다. 바로 이러한 효과를 위하여 광고에는 많은 언어학적 기법이 동원된다. ‘눈에 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심코 지나치는 눈과 귀를 순간 붙잡는 그 어떤 자극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기억에 되도록 오래 남게 하기 위해서는 쉬운 발음, 각운을 맞추는 것, 발음을 통해 특별한 연상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것 등 창조적인 언어사용의 기발함이 모두 동원되고 있다. 광고를 통해 광고대상자들인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태도도 ‘은근한 말걸기’, ‘강력하게 주장하기’, ‘이것도 몰랐습니까라는 식의 질문을 통한 우리의 무지를 질책하기’, ‘이런 저런 명령조로 이야기하기’, ‘호기심 유발하기’등 우리가 궁극적인 그들의 목적을 눈치채고 따라 오도록 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수법은 다양하기만 하다. 광고는 또한 광고대상자에 따른 나이, 성별, 직업, 사회적 직위 등에 따라 그들의 관심사에 동참하는 태도로 그들에게 친숙한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광고 상품에 따라서는 직업이나 직위, 연령층에 따른 선호도와 대상언어가 뚜렷이 다르므로 특정한 언어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광고에서 한자어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중·장년층을 겨냥한 식·의약품 광고이거나 적어도 그들이 광고에 함께 등장하는 경우이다.
독일에서 행해진 한 조사의 결과는 어떤 특정 상품군에서 한 나라가 그 상품군의 대표성을 가질 때, 이러한 상품의 광고에서는 흔히 그 대표성을 지닌 나라 언어를 그대로 옮겨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독일이나 우리나라 모두 화장품이나 향수는 영어나 프랑스어로 된 상품명을 갖는 경우가 많고, 담배의 경우 영어식 명칭을 선호하며,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영어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화장품 광고에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어표현에 대한 흥미로운 한 연구에서는 광고에서 영어특유의 어법이 표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1/3도 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이렇듯 광고에 사용되는 영어는(특히 고도의 전문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첨단 기술 분야에 있어서) 대부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영어가 갖는 의미의 전달을 통한 광고효과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영어의 ‘사용’을 통한 효과를 광고에서 기대하고 있음을 말한다. 화장품 광고에서의 영어사용 대한 또 다른 분석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광고에 영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츄잉껌’ 그리고 ‘코카 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물결을 창출하는 ‘젊음’과 동의어로서 자리 매김을 하게 된 영어가 화장품 광고의 궁극적인 내용인 ‘영원한 젊음의 유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어는 또한 상품에 국제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데 가장 적당한 언어로 여겨지며, 때로는 자국어로 된 표현보다 외국어의 사용이 일반적으로 보다 매력적인 음색으로 들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광고에서 외국어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사용은 눈에 띄기 쉽고 의미전달에 있어서 더욱 직접적일 수 있는 한편, 그 연상작용에 의한 의미해석에 있어서는 모국어의 사용에서보다 덜 확정적이라는 의미에서 간접적일 수 있다는 모순적 성격 또한 갖는다.
광고언어는 눈에 띄고, 오래 기억되기 위하여, 일상 언어로부터의 과감한 일탈을 시도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문법파괴 현상과 언어유희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표준 표기법을 어기고 소리나는 대로 쓴다던가 (예:누가바, 머거본, 조안나바), 언어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를 배합하여 표기한다던가(예:‘라미실’의 인기폭 ‘발’(실제 사람 발바닥 그림을 넣었음), 동음이어를 통한 것(예:여성 철분 보강제의 ‘철 없던 네가 철 들었구나’, 쌍용 건설의 ‘最古에서 最高까지’)등 수 없이 많다. 비교광고가 허락되기 전에 비방광고로 제재를 받았던 “그 동안 피자 ‘헛’드셨습니다”도 여기에 속한다. 어떤 경우는 비록 우리말이지만, 순수 우리말의 어감보다는 마치 외래어를 듣는 듯한 효과를 줄 수 있는 발음을 할 수 있는 것을 쓰기도 한다.(예:‘참존’은 ‘참 좋은’이란 우리말의 어감과 ‘charm zone’이라는 영어의 의미를 모두 전달하고 있다) 또한 광고에서는 광고매체에 따라 항상 지면활용이나 시간활용의 경제성이 극도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언어사용에 있어서도 눈에 띄면서 활용 면에서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예로 ‘4U’, ‘INVU’와 같은 브랜드 네임은 언어의 유희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의 이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언어, 문화공동체의 사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광고언어’는 언어사용의 한 특수형태이며,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그 변화가 가장 빠르면서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단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야이기도 하다. 언어는 소속 집단의 사회·문화적 상징이며,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적·무의식적 사고 체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광고는 광고언어를 통하여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열쇠를 주기도 하지만, 또한 선구자적인 역할로 사회적 의식의 흐름을 창출해 가는 양면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광고는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의 위력에 따라서는 사회전반에 걸쳐
왜곡된 사회상을 만들어 갈 가능성 또한 안고 있다. 광고에 사용되는 어휘들은 현실적 추세 및 유행현상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같은 언어집단으로서의 문화공동체의 사고가 광고어휘를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광고는 사회적, 경제적, 사상적인 흐름을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앞서서 그리고 포괄적으로 담고 있음으로써 우리 시대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광고어휘들은 시대정신의 결정체라는 관점에서 분석되며, 이는 다시 말하면 이러한 어휘들이 한 사회의 사고구조를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오늘날의 언어사용을 인식하게 해줌으로써 시대정신과 광고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2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모 카드회사의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속의 외침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갈망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냄으로써, 아주 짧은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광고되고 더 이상 광고되지 않는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꿈과 희망의 메신저로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