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에서 호되게 당한것이 조선의 전반적인 군사력이 시원찮아서인가, 아니면 순간 전략미스때문인가에 대해서 전자를 본다면 최명길등의 주화파를 현실적으로 높게 평가해야 하고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도 그저 외침을 막는것으로만 생각될것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로 본다면 광해군의 정책의 본심및 주화파, 주전파에 대한 시각을 완전 달리해석해야 할것입니다.
진짜 인조의 순간정책미스라고 할 경우 김상용등의 주전파에 대해서 정책미스만 없었다면 당연한 주장이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오히려 최명길같은 주화파를 비난해야 할것이죠.
그러고 광해군의 외치에 대해서 단순히 그저 중립으로 외침모면이라는 것으로만 해석할것인가에 대해서도 연구해볼과제입니다.
인조의 정책미스를 떠나서 제가 생각하기에도 광해군의 외치의 실제 중점은 단순한 중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중립이고 그 동안에 군사력을 기르고 그것이 가능할정도로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기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숭명배청을 했다고 해서 단순히 광해군의 중립을 버렸기에 외침을 당했다라는 식으로만 비판할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합니다.
단순히 숭명배청이 현실성이 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한다면 임경업같은 장수들도 비판을 가해야 하지만 임경업에 대해서 비판하는 시각은 없습니다.
숭명배청.... 그 자체만 가지고는 솔직히 비판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가능할 정도로 국력을 키우고 군사력을 육성했는가입니다.
제 추측이지만 광해군의 외치도 엄연히 따지면 완전한 중립이 아닌 겉으로 그러는척일뿐 상황만 호전되면 얼마던지 숭명배청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제대로 청을 방어할 군사력이 존재했고 전략을 잘 짜서 청을 격퇴해버렸다면 김상용이나 삼학사같은 사람들이 자살하거나 잡혀가 죽음을 당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 인조가 어리섞어서 이들을 죽음으로 몬셈이죠.
첫댓글 뭐 완전히 조선 전략의 패배로 병자호란은 패한것입니다. 임진왜란처럼 단기간에 전국토가 초토화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조가 후방에서 지휘하였다면 어쩌면 조선은 청태종을 사로잡던가 청나라의 12만대군이 괴멸될 수도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역사를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도 있었겠지요.
청군의 전쟁목표가 조선 전토의 초토화가 아니었기에 '전국토의 초토화'는 되지 않았지만 청군이 지나온 북부지방은 완전 초토화되었고, 너무나 일방적이었던 전쟁의 양상을 볼 때 청군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조선에 존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명.청의 교체가 명이 내부로부터 스스로 무너진 측면이 강함을 본다면 숭명배청 자체가 존화주의에 의한 오류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책이었음은 분명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