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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릴 적부터,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자란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70-80년대의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등이 활동하던 때의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지금처럼, 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웃으면 복이 와요”가 하는 그 시간,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함께 앉아, 함께 웃으며 시청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에, 아무 생각없이,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해도, 웃기지를 않아, 웃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는 웃긴다고 하는데, 그 웃긴다고 하는 것이 전혀 와닿지를 않아, 오히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요새는 이런 것이 웃기는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항상 웃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웃음이 우리 삶에서 흘러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항상 웃을 일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 위에 항상 웃을 일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빌립보서 4:1-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일곱 가지 보석”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주 안에서 도우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관용을 베풀라. 주 안에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주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
“일곱 가지 보석”들 중에서, 오늘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고 달콤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언제나, 주님 안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에, “주 안에서”라는 말을 164번이나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그저 자주 사용하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깊은 신앙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호흡하며, 주 안에서 생각하며, 주 안에서 일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안에서 호흡해야 하며, 주 안에서 생각해야 하며, 주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주 안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주 밖으로 뛰쳐나가면 안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떨어지거나 멀어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안에 있으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 밖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안에 있으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 밖으로 나가면, 기뻐할 일을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전도서 5:19절을 보면, 솔로몬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무너져버린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방해 공작들이 있었지만, 성전을 재건하고, 파괴되어 버린 성벽까지 수축한 후, 7월 초하루 성일을 맞이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때, 학사 에스라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율법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들은 너무나 오랜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감격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여러분, 이 날은 우리 주님의 성일인데 우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우는 것을 그치고 기뻐하세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됩니다.”(느 8:10)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시편 100:1-3절을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어떤 기쁨들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 안에서, 죄사함 받은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3:19절을 보면,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을 때, 기쁨이 있습니다. 찬송가 438장 1절을 보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습니다.
죄에 억눌려 살아가는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을 때, 그 기쁨, 어찌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명기 33: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 안에서 죄 사함 받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결코 불행할 수 없습니다.
시편 51:12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할 때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구원의 즐거움을 마음속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대강절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주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성탄의 계절은 기쁨의 계절입니다. 시기적으로 추운 계절이지만, 이 춥고 추운 계절에, 주님의 오심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따뜻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 중에는 주 안에서 동행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시편 23:2-3절을 보면, 다윗은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4절과 5절을 보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 그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나를 구원하여 주신 주님께서 항상 나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늘 곁에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를 세심하게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 안에서 영원한 소망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같지 아니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육신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적인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시 잠깐이지만, 주 안에서의 기쁨은 영원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외적인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내적인 기쁨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 기쁨을 쫓아다니기보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쁨을 소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년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정치판이 어수선합니다. 현재 국회의원이라고 할지라도, 소속된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 아예 선거에 나오지 못하거나,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나오거나, 지금껏 몸담았던 당을 떠나 다른 당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들의 마음은 공천을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국회의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력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기도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7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안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알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로마 감옥 안에 있는 사도 바울은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호화스러운 저택에서, 달콤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쓴 말이 아닙니다.
어둠침침한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쓴 말입니다.
이 편지를 쓸 때, 사도 바울의 형편을 생각하면,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입니다. 손과 발에 쇠고랑을 차고, 침울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쓰는 사도 바울의 심령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어떻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에게는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편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환경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바울, 그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기뻐할 수 있었으며, 빌립보 성도들과 오늘 우리를 향하여,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성도의 기쁨은 인간적인 조건과 세상적인 환경을 뛰어넘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그가 알고 있었고, 알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기쁨을 감옥 안에서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안에 있을 때는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맑은 날에도 기뻐하고, 흐린 날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좋을 때에도 기뻐하고, 나쁠 때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라는 것은 하늘의 별과 같아서, 항상 있습니다. 돋는 해와 같아서, 주 안에서의 기쁨은 점점 더 커져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주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두 차원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육신은 로마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은 주 안에 있었습니다. 그의 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은 감옥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은 주 안에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바울도, 주님 안에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기쁨도 항상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항상 주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 안에 갇혀 있었을 때에도, 기도하고,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고린도후서 6: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기뻐하는 생활은 주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물을 때, 안내하는 사람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기쁘게 살지 못한 것이 죄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까? 잠언 17:22절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해야만 합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옳게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흠 잡힐 일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 사회는 헬라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권세와 영광에도 불구하고, 매우 침울했습니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허탈감과 좌절감, 절망감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역경과 핍박 중에서도 기쁨과 소망이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성도들의 기쁘게 사는 그 모습이, 영적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로마 황제의 핍박을 피해서, 카타콤 같은 깊은 땅굴에 숨어 살았습니다.
잡혀 순교할 때면, 그렇게도 당당하게, 그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여 죽어갔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많은 로마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보아도,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시편 37:4절을 보면, 다윗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안에 있음으로 인하여, 우울한 일들은 사라지고, 항상 기뻐할 일들만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축복하사, 항상 좋은 일들만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