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황금빛 터널의 유혹
은행나무길 명소를 가다
10-11월은 단풍의 계절. 봄, 여름의 푸른 계절을 보내고 곧 한줌 낙엽으로 변할 대자연의 옷깃을 잡기라도 하려는 듯 몸도 마음도 바빠진다. 붉은 단풍으로 물든 산과 노란 잎이 매혹적인 은행나무길이 특히 발길을 유혹한다.
봄을 대표하는 길이 벚꽃길이라면 가을을 상징하는 길은 뭐니뭐니 해도 단풍과 은행나무길이다. 이중 특히 은행나무길은 가로수길 자체도 황홀하지만 땅에 떨어져 쌓인 낙엽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노란 카펫을 깔아놓은 듯 대지를 덮는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황금숲 아래에서 가을색에 물들어 보면 어떨까?
전국에 걸쳐 은행나무길로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먼저 생각나는 곳이 충북 괴산 문광저수지, 충남 아산 현충사 곡교천변, 강원도 홍천 광원리, 충남 보령시 청라은행마을 등이다.
충북 괴산군 문광면 양곡리에 위치한 문광저수지길은 10-11월이 되면 황금색길을 즐기려는 방문객들로 붐빈다. 마을 진입로 400m양쪽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은 1975년 양곡1리 주민들이 마을입구가 너무 쓸쓸하다고 생각해 은행나무 100여 그루를 심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40년이 지난 이제는 식재 당시 2m정도였던 어린 나무들이 수십미터로 자라 웅장한 황금터널길을 이루고 있다.
저수지 옆길이라 아침 일찍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날이면 특히 무릉도원같은 몽환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수면 아래로 비친 노란색 가로수 반영이 데칼코마니를 이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때문에 가을이 되면 사진작가들이 꼭 찾아가고싶은 제1순위출사코스이다. 2013년에 방영된 KBS드라마 ‘비밀’에서 지성과 황정음이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양곡저수지로 부르고싶어 하고 환영 현수막에도 양곡저수지로 표기하고 있지만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는 명칭은 ‘문광저수지’라고 한다. 관계관청인 괴산군은 양곡저수지 주변 2km 구간에 은행나무를 추가로 심고, 수변 데크와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정비하여 ‘황금빛 에코로드 명소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충남 아산 현충사 입구 곡교천변 역시 문광저수지 못지않은 은행나무길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아산시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2km 구간에 조성된 은행나무가로수는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으며, 1973년 10여 년생의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심은 지 4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연령이 50년이 넘은 이들 은행나무가로수는 이제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사계절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현재 은행나무길에는 총 365그루가 자라고 있고 이 중 곡교천변에는 180그루 가량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다. 이곳 은행나무길은 지난 2000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숲’ 부문에서 우수가로로 뽑혔으며,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산시는 이 은행나무길을 현재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있어 여유롭게 가을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곡교천변 은행나무길에 가면 시간이 될 경우 꼭 현충사도 둘러보기를 권한다. 가을이 되면 현충사 경내 곳곳에 단풍이 익어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특히 이충무공 활터 옆에는 수령이 무려 500여 년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어 황금빛이 쏟아내리는 듯한 황홀한 자태를 보여준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숲 역시 가을이면 빼놓을 수 없는 은행나무숲 명소이다. 약 4만㎡의 규모에 5m간격으로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이곳은 다른 은행나무숲과는 달리 사유지이다. 평상시에는 들어갈 수 없고 은행나무 황금색으로 익는 10월 일정기간에만 2010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돼 왔다. 사유지이고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주차장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으므로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으면 된다.
이곳은 오대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기온이 낮은 관계로 다른 지역보다 단풍이 일찍 시작된다. 보통 10월 첫주 쯤이면 은행나무숲이 70% 정도 물들고 10월 중순에는 황금색이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은행은 냄새가 심해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곳 은행나무들은 입구 은행나무들의 경우 거의 수나무들이기 때문에 고약한 냄새도 별로 없다. 도시에서 살던 은행나무숲 주인은 아내가 만성 소화불량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봉약수가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30여 년 전 이곳 오대산 자락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의 쾌유를 바라며 넓은 땅에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둘 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홍천 은행나무숲이 생기게 된 유래이다. 이런 일화 때문에 특이 홍천 은행나무 숲은 연인들이나 잉꼬 부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청라은행마을 역시 은행나무숲으로 빼놓을 수 없다. 청라은행나무마을은 토종 은행나무 약 3,000그루 정도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이 중에는 100년 넘은 은행나무도 꽤 많다. 이 마을에서 전국 은행 생산량의 10%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규모가 큰 은행나무 군락지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곳이다.(문의전화 070-7845-5060)
마을을 둘러싼 은행나무 둘레길은 해마다 가을이면 황금색 은행잎과 고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청라면 장현리 688번지의 신경섭 가옥은 청라은행마을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후기 한식가옥인 신경섭 가옥 주변으로 겹겹이 둘러싼 은행나무가 멋스러운 돌담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은 경관을 보여준다. 신경섭 가옥 앞에는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도 있다.
*보령시 제공 사진
2012년부터 매년 가을에는 청라은행마을 축제도 열린다. 청라은행마을 축제는 축제 3년 만인 지난해 관광공사의 ‘10월에 가볼만한 베스트 8’에 선정되는가 하면 농어촌공사 ‘가을에 가볼만한 농촌체험 베스트 20’에도 선정되는 등 가을 서정 축제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
농촌축제로 선정됨에 따라 청라은행마을 축제는 국비 1,500만원, 지방비 1,500만원 등 총 3,000만원을 지원받아 올해에는 10월 31일과 11월 1일 양일간 은행나무 장승세우기, 은행가마니 지게 나르기, 은행잎 터뜨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 한다.
올해 선정된 42개 농촌축제 중 지난 2012년부터 4년 연속 선정된 축제는 전국적으로 '청라은행마을 축제'를 비롯해, 울진군의 '십이령 등금쟁이 축제', 상주군의 '곶감 축제' 등 3개 축제 뿐이다. 보령시 관계자는 "은행마을 축제가 보령시의 대표적 가을축제로 거듭나면서 마을에서는 은행열매를 이용해 조미김을 비롯해 은행식초, 은행동동주, 은행국수 등 다양한 상품개발도 시도하고 있어 3농혁신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가을 최고 축제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외에도 공주 갑사가는 은행나무길도 좋고, 경북 영주의 부석사 은행나무길은 ‘극락 가는 길’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장엄하다. 수도권에서는 과천 서울대공원 산책로, 서울 위례성길, 삼청동길, 덕수궁길 등이 유명하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