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말 하찮은 일일진데 貴公의 문의와 관련하여, 재확인해 보니 노애의 신장은 정확히 9.99척으로서 관우보다는 0.99척이 커고, 공명보다는 1.99척이 더 커더이다. 답변이 되겠소이까???
0 옛날 중국의 인물 표현 특히 신장에 대한 치수 표현에는 심한 과장법을 즐겨 썼는데, 관우가 9척이면 어떻고 5척이면 어떻고, 공명이 8척이면 어떻고 1척이면 어떠며, 또한 열국지에서 전국시대 吳나라 장수겸 지략가인 오자서는 양미간(두 눈섭사이)의 거리는 양팔 길이가 넘는 巨漢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 과장된 표현을 시비하는 사람도 없고, 노애는 실존인물이 아니고 가공인물일 진데 신장이 10척이면 어떻고 0.5척이면 어떠며, 다만 심한 과장법이라고 만 치부하면 그만이지, 노애의 신장을 꼭히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소이까???
0 또한 고대 중국의 황제 헌훤씨와 싸운 동이족 장수 치우는 키가 10척이 넘었고 머리는"무쇠"로 되어있으며, "입으로 안개를 피워" 황제 훤원씨 군대가 안개에 휩싸여 곤경에 처한 일이 있다는 지극히 과장된 기록도 있는데, 이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이야기 이지만 이를 시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거늘 소생이 寡聞한 탓이 겠소이까???
0 더우기 이보다 훨씬 후대인 당나라 詩仙 이태백은 한 詩에서,"白髮 三千丈 시름따라 이렇듯 길던가! 蜀으로 가는 길은 험난할진데,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욱 험난하구나!"라고 극히 과장된 표현을 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정말로 백발이 3천장인가 또는 이태백이 무식하여 수치에 어둡지 않았는가 하는 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이 滿春亭은 아직까지 들어 본 바 없는데, 이는 소생이 淺學한 소치겠소이까???
0 더우기 본 이야기와 관련하여, 呂不韋가 정말로 秦始皇帝의 生父인 지여부도 불확실하고, 또한 노애라는 자가 실존 인물이 아니고 가공인물로서 이 이야기는 심한 과장법을 구사하여 꾸민 것 일 텐데, 이 者가 巨漢이면 어떻고 矮人이면 어떠며, 신장이 10척이던 닷푼이던 무슨 상관이겠으며, 한번 읽고 "잡된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 뿐일 진데 貴公께서는 정색(문투를 읽어보니)을 하고서 이의 진위를 가릴 것까지 있겠소이까???
0 더우기 이와 같은 중국인들의 과장법은 세계 언어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바, 이 이야기를 한번 읽고서 웃고 넘기면 되지 고대 중국 치수의 전문학자를 끌어 들일 정도로 중차대한 사안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되며, 도량형은 국가와 시대에 따라 상이하며 또한 노애의 신장의 치수는 10척이던 9척이던 닷푼이던 전혀 문제될게 아닐진데, 貴公께서는 수치(신장)에 대해서는 극히 민감하던지 아니면 고대 중국의 도량형에 대해 조예가 깊은 지는 모르 겠으나, 이는 불초 소생과는 아무 상관없으므로 알바는 아나겠소이다.
0 귀공의 賢問에 대한 小生의 愚答은 이것 뿐이외다.
0 만수무강하소서!!!
--------------------- [원본 메세지] ---------------------
10척 장신이라, 요사이 치수로 이야기 한다면 3m가 넘는다는 계산인데
삼국지에 보면 관우가 9척이요, 공명이 8척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지금으로 생각하면 도져히 이해가 가지않고.....
누가 도량형에 대해 연구한 사람없소.
후한 시대에는 1 척이 23cm라는 이야기도 있고, 책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니, 지금의 세대에서는 이해가 힘드는 군요.
--------------------- [원본 메세지] ---------------------
0 옛날 중국 秦나라에서는 매년 추수가 끝나면 장기간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로 장기자랑대회를 실시하였다.
0 秦나라 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하자, 당시 제상이 었던 呂不韋는 천하통일의 축하행사겸 대대적인 장기자랑대회를 개최한바, 하루는 키가 10척이나 되고 허리가 세아름도 더되는 巨漢 하나가 큰 수레(輦)바퀴 하나를 들고 와서는 이 행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지라, 呂不韋는 기이하게 생긴 이 巨漢에게 이름과 특기를 물었다.
0 동 巨漢은, 이름이 노애(본 PC 에는 한자가 없음)이며, 특기는 자신의 거대한 陽根에 큰 수레바퀴를 꽂아서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0 이에 呂不韋는 노애(巨漢)에게 한번 해보라고 지시하자, 노애는 바지를 벗고 그 큰 陽根에다가 수레바퀴를 꽂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장안(당시 진나라 수도) 시내를 세바퀴나 돌아도 그 陽根이 힘이 빠지는 일도 없고 또한 상한데도 없었다.
0 呂不韋는 원래 굉장한 호색한이 었으나 이미 늙었기 때문에 愛妾이며 秦 始皇帝의 生母인 趙姬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던 차에 이 절륜의 정력가인 노애를 趙姬에게 상납하자 趙姬는 매우 기쁘하고 만족해다.
0 원래 趙姬는 呂不韋의 愛妾으로서 잉태하자, 呂不韋는 그녀를 秦나라 세자 子招에게 주었는 바, 얼마후에 아들 政이 태어났으며, 이어 子招가 秦니라 임금이 되었으나 얼마되지 않아서 죽자, 아들 政이 등극하니 이가 곧 저 유명한 秦나라의 始皇帝였으며, 始皇帝 등극후에도 呂不韋는 趙姬의 강요로 계속 은밀히 정을 통하고 있던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