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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가보셨어요?" - 유럽 대륙횡단기(42)
* 바두츠 →Wildhaus(스위스 입국)→ Wattwil 46.3Km
※ 스위스 - 1일, 46.3Km ♣ 누계 - 총 116일, 3,094.3Km
아들아 딸아
두려워마라
지구는 언제나
네 발 아래 있다
- 정성수 - '지상의 아들 딸'
스위스에 입국했다.
지금까지 참 많이도 걸었다. 유럽 대륙의 동서횡단은 이제 5,600Km 여정 중에서 절반을 넘겼구나.
바로 전 리히텐슈타인에서 짧은 발걸음도 마냥 행복했다. 그 나라가 유별나서 그런 게 아니다.
아무러나 걷기란 길을 가는 행위다.
길마다 대개 독특한 철학 아니면 나름대로 스토리를 안고 있더라.
그러므로 멀든 가깝든 단순히 걷기를 좋아해서 또는 길이 아름다워서보다, 그 길이 보행자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부합될 때 더욱 행복해 진다. 다시 말하자면 길과 보행자가 서로 궁합이 맞을 때 더욱 행복하다.
그렇지만 혼자일 때와 동행의 경우는 전혀 별개의 철학이 될 터이다.
머나먼 길을 걸어내려면 대개 강건한 육체와 야성(野性) 말고도 남다른 멘탈이 필요하다.
변치않는 일관성에 불타는 열정으로 무엇보다 민첩해야 한다.
물론 민첩성이란 순간순간 기민한 판단과 과감한 대쉬를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정작 유유자적 즐기면서 걷는다면 한결 좋은 거다. 마치 실생활에서도 외유내강처럼,
말씀에도 간곡한 가르침이 있지 않던가.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이곳 스위스에서 과연 걸음마다 어떨지 궁금하다.
혹시 오늘의 제목은 길 좀 걸어냈다고 티를 내는 건가 의아하셨던가요?
20 여일 전에 비엔나를 떠나 린츠로 가던 어느 언덕(30편)에서 한국 자전거족 젊은이가 앞으로 길을 묻기에, 대답 전에 비엔나로 가는 '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했더니 청년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스위스 가보셨어요?"
"어디서 출발한 거죠?"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이 자전거로 알프스를 넘고 스위스를 지나왔습니다."
역시 그렇다. 스위스는 첫날부터 아름답다.
지그재그 고개를 기를 쓰고 올라보니 첫 마을 빌트하우스(Wildhaus)부터 그랬다.
언덕 위에 첫 레스토랑(Alpstein)에 앉아서 지나온 동쪽을 바라보니 저 아래는 리히텐슈타인이 아련하다. 양쪽으로 웅혼한 산지 속에 드넓은 평원은 여기저기 사람 사는 흔적들이 밤하늘에 별처럼 흩어졌다. 이러면 과연 밤 비주얼은 어떨까?
문득 고향의 뒷동산에 올라 있는 기분이다.
바로 이런 경우면 망원경이 필요하다.
그걸 훨씬 앞서 불가리아의 어느 마을의 입구에서 만난 집시 가족 중에 불안한듯 막내에게, 벗어주지 않았더라면 바두츠의 성까지 훤히 건너다 보이겠다.
눈을 돌려 가야 할 서쪽을 바라본다.
마치 어릴 때 팽이를 꺼꾸로 세워 놓는 듯 위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봉우리들이다. 연달아 여섯이 아침 뭉게구름 아래에 한 줄로 늘어섰다. 그 바로 아래는 들판 같은 골짜기다.
식당을 나서면 걸어가야 할 계곡 가운데로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여기가 바로 아름답다는 스위스의 그 산등성인가?
길 이야기
아득히 먼 길, 특히 스위스에선 지평선을 만나기 어렵다.
이 나라에서 지평선이라면 오로지 언덕 저 넘어에 서려 있는 하늘빛이 고작이다.
물론 수많은 산지 때문이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동서횡단 길은 갈래가 상당히 복잡하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나라마다 서쪽으로 직진이었으나 스위스에선 우회로가 많다.
하므로 이 나라에선 독자분들께서도 정독이 아니시면 그만 혼란에 빠지실테다.
첫날부터 백리가 훨씬 넘는 길이라 바두츠에서는 꼭두새벽에 출발해서 07시 이전에 샤안(Schaan)에서 라인강을 건넜다.
스위스에 입국한 거다. 다리 아래는 라인강이 도도히 흐른다.
유럽에서 라인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발원지는 여기서 동남쪽으로 스위스의 산골이지만 일단 독일 남부의 콘스탄츠(Konstanz)호로 들어가면 독일 땅에서 모여든 물과 합친다.
콘스탄츠호(Constance Lake)는 영어지만 독일에선 보덴호(Bodensee)라 부른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3국이 국경선을 이루는 호수다.
물론 엇그제 알프스를 넘어온 아를베르크 고개의 계곡물도 그 중간에서 합류한다.
라인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콘스탄츠호는 남부 독일의 다양한 유역에서 많은 물이 유입되지만 또 다른 발원지는 - 다뉴브강의 경우완 반대편인 - 독일 남서부의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 어딘가에서다. 그러므로 독일의 슈바르츠발트는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되는 두 강 즉, 라인강과 다뉴브강이 시작되는 분수령인 셈이다.
다만 라인강은 바로 앞(41편)에서 〈부기〉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지만 이곳을 포함해 잠시 스위스를 지나다가 이내 독일과 국경선을 이루어 180Km 동안 서진(西進)을 한다.
그러다가 스위스의 바젤(Basel)에 이르면 물길이 90° ㄴ자로 꺾이면서 대서양을 향해 북진(北進)한다. 아울러 라인강은 바젤에서 190Km 동안 독일의 카를스루에(Karlsruhe, 하이델베르크의 남쪽)까지 프랑스와도 국경을 이룬다.
하지만 이 일대의 길에 관해서는 더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비단 라인강뿐만 아니라 여기는 갖가지 길들이 곳곳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마 '헝가리길'을 걸어낸 분들도 이쯤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하나 선택에 많은 궁리를 하셨으리라.
실제로 이 일대를 지나갈 나그네분들께는 매우 요긴한 정보가 되시리라.
우선 유럽의 내륙에는 거대한 담수호가 더러 있다. 크기로는 제네바호(스위스), 벌러톤호(헝거리), 콘스탄츠호 순서다.
원래 콘스탄츠란 지명은 로마 황제의 이름(콘스탄티니우스 클로루스)에서 비롯되었단다.
호수의 서북쪽 코너에 자리잡은 콘스탄츠는 넓다란 호수의 영향으로 기후가 특별하여 독일의 남부 지방 등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든다. 호수 건너 독일의 미르스버그(Meersburg)는 불과 8Km다.
그리고 장크트 갤렌(St. Gallen)도 지근거리다.
물론 장크트 갤렌이면 '산티아고 가는 길'(야콥스벡)의 스위스에서 출발 포인트다.
이 나라에서 야콥스벡을 걸으려면 - 독일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 대체로 도시 콘스탄츠에서 일단 St. Gallen으로 왔다가 정식으로 출발한다.
※ 벌러톤호(Balaton) : 부다페스트의 서남쪽 110Km 거리다. 중부 유럽 최대의 호수로 내륙국인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의 바다(Magyar tenger)'라 부른다.
여기서 혹시 호기심 많은 순례자라면 상당한 의문이 생길 터이다.
왜? 스위스는 야콥스벡의 출발 포인트가 나라의 중심부가 아니고 하필 동북쪽에 변두리인가?
그건 얼른 생각하면 유명한 St. Gallen의 수도원과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라 그렇겠다 싶지만 더 깊은 이유는 독일과의 관계 때문이다. 콘스탄츠호(보덴호) 주변에 독일의 바바리아주를 중심으로 한 남부 독일에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동유럽에서 출발한 그들 중에서도 - 잘츠버그를 지날 때 소개했지만 - 독일로 올라라간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합류하는 경우도 많다.
아직도 콘스탄츠와 장크트 갤렌에 관해서는 더 보태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다.
도시 콘스탄츠는 독일의 '낭만주의길'을 걸은 사람들이 스위스로 입국하는 통로다. 그리고 순례자인 경우도 '스위길'을 걸으려면 대개 이 도시에서 일단 장크트 갤렌으로 갔다가 출발을 한다.
한편 장크트 갤렌은 수도원의 도서관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앞서 오스트리아의 멜크(29편)를 지날 때와 며칠 후에 모차르트의 잘츠버그(33편)에서 이미 각각 거론했던 곳이다. 하지만 거기가 모차르트 관련이라면, 그의 외갓집인 동시에 사돈댁이다. 장크트 갤렌은 어머니의 고향이자 누나 난네를이 시집을 간 동네다.
공교롭게도 이 일대에서 거론되는 지명들이 오늘 스위스의 첫 목적지와 서로들 비슷한 거리인데, 바로 전편에서 리히텐슈타인의 샤안을 지나면서 이미 소개한 대로다.
시작부터 주변의 소개를 강조하다가 그만 이야기를 건너뛰었다.
이제 오늘 새벽에 시작으로 돌아가련다.
앞서 리히텐슈타인의 샤안에서 라인강을 건너면 3Km만에 스위스의 첫 동네가 북스(Buchs)다. 잠시 평평한 시가지가 연속이다.
거기서 고개를 향해 언덕길로 4Km쯤에 그랍스(Grabs)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지그재그 오르막이다.
이 그랍스에서 만난 16번 도로는 오늘의 목적지까지 내내 함께 간다.
한 달 전에 헝가리에서 슬로바키로 입국했다가 단 하루만에-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 오스트리아로 입국할 때완 전혀 딴판이다. 그때는 다뉴브강의 서정적인 직선의 강변길을 신나게 내달렸지만 역시 스위스는 처음부터 진땀이 팥죽 같은 오르막이다.
어제는 바두츠의 성에서 이쪽을 바라보니 남북으로 웅장한 산지가 난공불락 성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 여기를 기를 쓰고 올라보자!
아마 언덕 위에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있을 거야. 그리고 스위스겠지.
대저 헉헉대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언덕 위에 하얀 구름'이란 희망이 아니더냐.
리히텐슈타인이야 소국이라 들판에서 즐겁게 입국했지만 한 달 전에 오스트리아에 입국할 때도 팟죽 같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같은 진땀인데 내용은 전혀 달랐다. 이곳 스위스에 입국은 급경사 오르막이지만 오스트리아에 입국 때는 평원이었다. 그러니 스위스는 힘든 등산이라 그렇고 오스트리아는 무서워서 그랬다.
엉뚱하지만 진땀의 질량이란 못견디게 힘들 때와 기절초풍 무서울 때와 어떤 차이일까?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을 때는 깊은 산속보다 무인지경 지평선이 훨씬 무섭다.
이유는 산이란 제아무리 깊고 높아도 멀리 노출이 될 수 있으나 끝없는 지평선에선 - 키보다 큰 해바라기 밀밭 옥수수 밭에선 - 하늘 밖에 안 보인다. 그러니 지평선은 마치 육지가 전혀 안 보이는 대양에 홀로 빠진 경우와 다름없다.
암튼 이 스위스는 오스트리아 못지않게 산도 많으니 깊은 산 속을 얼마나 자주 지나갈지 궁금하다.
유럽의 지형
대륙을 횡단하는 만큼 유럽의 자연에 관해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따져 볼까 하고 있었다.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경우와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는 관광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워킹은 다만 눈높이로 시시콜콜 마이크로를 보고 다니지만 관광객은 거시적으로 매크로를 보게 된다.
하므로 대부분의 독자분들에게 필자식의 여행기란 심히 비호감이리라 짐작된다. 심지어 '물망초 당신의 글은 너무 어렵자나'라고 직설해 주신 나그네도 있었다.
애당초 유럽 동서횡단을 준비할 때 스위스는 어느 루트로 지나갈까 선택의 고민이 많았다.
역시 이 나라는 길들의 갈래도 여럿이라, 그냥 직진을 할까 아님 산을 빙~돌아서 갈까의 문제였다. 그런 중에 어제 지나온 리히텐슈타인은 필자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기에 굳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많은 궁리 끝에 앞으로 스위스 땅은 총 400 여Km의 동서횡단을 아래와 같은 여정(旅程)으로 지나갈 참이다.
지금부터 이틀 후에 아인찌델른→루체른→베른→인터라켄→로잔→제네바를 순서대로 통과해 프랑스로 들어간다. 그러기에 안타깝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취리히(Zürich)를 건너뛸 수 밖에 없다.
암튼 스위스에서 도전은 다만 오늘이 시작인 거다.
하지만 누구든 '시작은 반이다'.
이른 아침부터 600m의 등산을 빡세게 오른 셈이다. 출발 동네(450m)와 고개(1,100m)의 해발고도 차가 그랬다.
시작부터 진땀을 쏟아내고 빌트하우스 고갯마루(Wildhaus Pass)의 식당에서 혼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다가 또 갈 길을 나섰다.
3km 쯤 진행하니 구 세인트요한(Alt St. Johann)이란 마을이 오른쪽 산비탈에 숨은듯이 있다. 시골 동네가 상당히 도시풍이다. 이후는 16번 도로를 따라가는 길이 스위스의 전형적인 시골이다.
한 시간쯤 후에 길가에 까페가 나온다. 생맥주를 주문하고설랑 잠시 분위기를 파악하니 주인 부부가 게르만 치고는 대단히 밝고 친절하다. 설마 이탈리언들인가?
스위스 전도를 펼쳐보이며 봣트빌(Wattwil)까지 갈 거라 했더니 반응은 절래절래다. 30Km 이상 더 가야 한단다.
알고 보니 스위스의 시골 사람들은 - 이 식당 주인과 관계 없이 - 산티아고 순례길을 잘 모른다. 오히려 전 국토에 다양한 산책길(Wander Weg)이 널려 있단다.
마치 티롤의 연속 같다.
도중에 중간중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산을 하려는지 배낭 차림으로 버스를 기다리고들 있다. 그 중에는 판판이 연만한 부부들이다.
팽이 봉우리 여섯은 아직도 계속이고 양쪽으로 아름다운 산 사이에 넓다란 알프스의 평원을 지나간다.
다만 물이 흐르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완만한 내리막이다. 아마 스위스의 전국에서 이곳이 가장 명품 길일테다. 첫날부터 우연히 걷기도 좋고 이처럼 아름다운 길을 지나다니 실로 행운의 선택이었다.
어찌하여 양쪽으로 날카로운 산 사이에서 이처럼 젠틀한 평원이 존재할까?
그건 바로 스위스의 국토가 대부분 빙하지형이기 때문이다.
지형학에선 이와 같은 U자 모양의 골짜기를 카아르(Kar, 권곡)라 부른다. 빙하의 침식으로 양쪽으로 다급한 절벽 사이에 펑퍼짐한 계곡이 만들어진 결과다. 어느 풍경 사진처럼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지는 십중팔구 폭포가 걸려 있기 마련이다. 그 아래는 드넓은 평원이다. 그러니 스위스의 경치가 이처럼 아름다운 거다. 주로 하천 침식으로 형성된 한반도의 좁은 골짜기(V자곡))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만약에 이런 권곡에 바닷물이 들어와 비좁은 만(灣)을 이룬 모습이면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피요드(Fjord, 협만)가 된다.
흔히 노르웨이 등 피요드는 잘 알면서도 백두대간이나 100대 명산을 도전하시는 분들은 카아르란 산세는 잊지 말았으면 바램이다. 실은 광복 직후에 최초의 스키 경기는 지리산 천황봉 근처에서 이런 지형을 이용해 발걸음을 떼었다.
부디 어느 등산 중에 풍수지리가 탁월해 보이는 펑퍼짐한 골짜기의 비주얼 앞에 서신다면 - 저건 지질시대에 빙하침식으로 만들어진 거야 - 인문학을 실감하셨으면 좋겠다.
넷슬로 크루멤나우(Nesslou-Krummenau)란 동네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목적지는 아직도 27Km나 남았다. 지금까지 여섯 시간 정도를 걸은 셈이다. 하므로 이제 일곱 시간 이상이나 더 가야 한다. 때는 한여름이라 해가 지기 전에 도착은 무난할테다.
다행히 길도 좋고 컨디션한 또한 그러하니 발걸음은 내내 바람같다.
다시 갈 길을 나서는데 마을 밖으로 길가에 성당이 있다. 성당의 이름이 길과 같은 성 야고보 성당이다. 설마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졌을까, 하지만 첫길에 아침부터 마음만 급하다.
만약에 야콥스벡(Jakobsweg)을 따라간다면 스페인의 알베르게 스타스일의 숙소를 만날 챤스가 많을테지만, 오늘은 필자만의 고집스런 루트로 가고 있다.
그런 중에 점심 후엔 길이 달라졌다.
16번 도로는 지금까지 부드럽던 내리막이 점점 오르막 산길로 들어가는지 업다운이 흔해졌다.
혹시 기억나시는지?
인스부루크를 지날 때 '그랜드투어'를 소개하면서 어찌하여 유럽은 마차들이 산악지대마저도 쉽사리 지나다닐까?
이쯤에서 그 대답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형학에서 유럽의 별칭은 '평원성 대륙'이다.
대륙의 평균고도가 300여 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알프스로 인해서 평균치가 한껏 높아진 결과다.
하므로 유럽은 대부분이 -극히 제한 된 바위 산(Alp, 켈트어)을 제외한다면 - 저평한 평야 지대인 거다.
게다가 유럽의 산들은 우리처럼 깔딱고개는 없고 대부분의 오르막 내리막이 한결같이 부드럽다.
이 대목은 스페인의 '프랑스길'을 걸어 낸 분들이라면 금방 이해가 되실테다.
※ 대륙별 평균고도~~
* 호주 : 340m(대지성 대륙), 기후적으로는 건조대륙이라 부르기도 함
* 유럽 : 345m(평원성 대륙)
* 남미 : 570m
* 북미 : 720m
* 아프리카 : 750m(고원성 대륙)
* 아시아 : 960m(특히 티벳은 '세계의 지붕')
* 남극대륙 : 2,200m
* 세계 육지의 평균 고도 : 840m
* 세계 해양의 평균 심도 : 3,800m
☞ 한반도의 평균 고도 : 448m
차제에 유럽의 기후에 관해서도 원 포인트 소개를 해보자면~~,
알프스 산맥은 동서로 1,200Km만큼 기다랗게 누어 있는 모양새다.
이는 대서양 연안의 북서유럽이 바다와 장벽도 없고 활짝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양을 지나온 바람(편서풍)이 깊숙한 내륙까지 거침없이 들어온다.
이를 기후학에선 서안해성성 기후라 부른다.
혹시 유럽을 여행 중에 여름인데도 문득문득 스웨타 등 가벼운 덧옷이 필요하던가요?
유럽의 여름은 위도보다 내륙 깊숙히 북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편서풍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여름에 서늘한 기후 뿐만 아니다. 겨울철에 흔한 눈의 원인도 주로 습기 많은 편서풍의 영향이다.
이런 현상은 세계에서 중위도의 대륙 서안(西岸)이면 모두 한결같이 동일한 기후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 대륙의 동안이라 계절풍(몬슨, Monsoon) 기후가 나타나는 차이다.
목적지 밧트빌(Wattwil)에서
알고보니 이 동네는 야콥스벡이 지나가는 길초 마을이다. 출발 포인트인 장크트 갤렌에서 34Km로 하루길이다. 그러니 내일부터는 다시 정식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게 될테다.
리히텐슈타인을 고집하다가 오늘은 스위스의 'Wander Weg' 하나를 지나온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펠트크틱 이후에 야콥스벡과 헤어졌다가 이곳에서 재회한 거다.
오늘 종일토록 내내 따라 왔던 16번 도로는 이 마을도 지나서 콘스탄츠호까지 계속된다.
※ 스위스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명칭은 셋으로 통한다.
* '산티아고 가는 길'
* '야콥스벡'(독일어권), 하지만 이는 프랑스어권에 들어가면 '콩포스텔'로 바뀐다. 역시 콩포스텔이란 산티아고의 불어식 발음이다.
* '스위스길'(주로 한국인들이....)
☞ 특히 실전에서 이들 명칭은 순례자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요긴하게 오가는 말이라 중복으로 소개합니다.
☆ 'Wander Weg'....스위스가 자랑하는 국내의 수많은 산책길
하지만 하루 종일 신명났던 기분이 그만 밧트빌 기차역의 인포에서 망쳤다. 물론 인포의 직원 때문이다.
꼭두새벽부터 진종일 신나게 걸어 왔는데 역시 '제대 말년을 조심해야' 되는 건가.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여행안내 센터(인포)가 때때로 기차역의 매표 창구를 겸하는 경우가 있다. 역무원의 다급한 설명을 눈치 빠르게 잘 알아듣지 못하고서 재차 반문을 했더니 40대 초반의 남자 직원은 그만 버럭이다.
실로 동서횡단 8개월 중에 가장 신경질 화상을 만났다. 평소에 게르만에 호감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하기사 차표를 정신없이 처리하는 중에 웬 동양인이 나타나 말까지 단번에 못 알아들으니 그럴만도 했겠다.
오늘이 스위스의 첫 인상인데, 무인지경 왕짜증 사내가 언듯 가련하기까지 하다.
인포에서 소개받은 숙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물론 기자역 근처를 지나가던 주민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인포에서 버럭은 예고편이었다. 숙소가 완전 달동네 수준이다. 집 전체가 낡은데다 좁아터졌고 엘리베이터도 없이 방은 5층이다. 배낭을 멘채로 비좁은 계단을 오르려니 발걸음마다 요란하게 삐꺼덕거린다. 그런데도 숙박비가 무려 50스위스 프랑(8만원쯤)이란다.
역시 스위스의 물가는 듣던 대로 살인적이다.
오늘의 숙소가 후지다는 건 특별히 잠자리 때문이다.
밤새 잠을 설쳤다. 에어콘도 없이 통풍마저 전혀 안 되니 방은 한나절의 복사열이 실로 찜닭이다.
못견디게 열렬한 방~~한참 후에 또다시 이와 복사판 경험을 했다. 그땐 중세의 정식 성에서 자다가 그랬다.
도중에서 우연히 만나 일주일을 동행했던 스위스 친구가 소개한 숙소였는데, 처음에는 아니, 오늘 근엄한 성주가 한 번 되어보나 쾌재를 불렀다가 밤새 날밤을 보내야 했다. 역시 냉방 장치도 없고 통풍이 문제였다.
또 3년 후에 남북종단 중에도 독일에서 같은 경험을 했지만 이유는 주로 이 사람들의 건물 구조 자체가 폐쇄적이다.
그나저나 중세인들은 이런 환경으로 어찌들 살아냈을까? 새삼스레 그들 발군의 적응력이 무한정 의문이다.
어쨋거나 스위스의 첫날은 눈으로 올데이 행복한 길에서, 몸으로 올나이트 불행한 방에서 자포자기 버티기 인내력 테스트로 지나갔다.
하지만 밧트빌, 마을 전체는 그 한없이 아름다운 비주얼의 진실은 망각을 말자.
그런 중에 스위스에서 숙소라면 유스호텔을 강추한다. 대개는 부페식 석조식을 포함해 20€ 정도로 해결이 된다.
다만 이런 유스호텔이 스위스 전역에서 별로 흔치 않은 게 결점이다.
하지만 우리 국내에서도 연령불문 누구나 인터넷으로 멤버쉽 가입에 예약까지 가능하다.
부디 노파심에서 훈수를 뜨게 되지만 유럽에서 숙소의 예약이란 장기간이 아니라 도착 2~3일 앞서서 해야 한다.
왜? 예약 기간이 길면 나그네길에서 일정이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노쇼의 캔슬은 더욱 불편하다.
이와는 달리 스위스 안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보라면 카페의 '배언덕'님께서 확보하고 계신 걸로 안다. 부디 본인과 사전 교감도 없이 일방적인 공개에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다.
스위스에서 첫날은 무려 백이십리를 거뜬히 걸어냈다.
아무려나 바로 내일, 스위스에서 둘째 날은 아인찌델른(Einsiedeln)을 향해서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취리히호의 호반에 래퍼스빌 요나(Rappersvill-Jona)까지 26km를 내달릴 참이다.
이번 (42)편을 작성하는 동안에, 우리는 장마철이 앞섰지만 뜬금없이 웬 정치인들의 독서가 화제인 모양이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다소 멀지만 그들처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읽어봤다. 하지만 이 기록을 공개하는 지금은 진짜 독서의 계절이 왔구나.
이스라엘, 2차세계대전 직후에 건국한 약소국을 초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자초지종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그 나라의 형편이 우리와 비슷해서 그런 걸까?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 부기~~
※ 독일의 숲 :
독일의 숲은 필자로선 각별하여 잠시 소개를 해 봅니다.
이번 길은 독일 땅을 본격적으로 밟진 않았으나 2년 후에 남북종단 때는 이 나라를 북→남으로 36일 동안을 지나 갔기 때문입니다.
독일어에 발트(wald)란 영어에 forest, woods, woodland에 해당하니 숲 또는 숲지대란 의미겠다.
독일 국내에서 이름난 발트는 슈바르츠(Schwarzwald), 뵈머(Böhmerwald), 슈프레( Spreewald), 튀링거 발트(Thüringerwald) 등 많다.
특별히 남부 지방은 남서쪽에 슈바르츠 발트와 남동쪽에 뵈머 발트가 서로 쌍벽을 이루는 삼림 지대가 펼쳐진다.
오랜 옛날부터 숲이 유달리 우거진 게르만들의 역사는 이런 금언이 전해 왔다.
'숲은 게르만의 어머니'
독일의 지형은 대체로 네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독일 평야, 중앙고지, 남독일, 알프스 산지 등이다.
물론 독일의 최남단에서' 알프스 산지'란 여러 다른 지명으로 불린다. 독일 알프스, 바바리안 알프스, 북알프스 등 다양한 지명이 있다.
그런 중에 슈바르츠 발트는 남독일과 알프스 산지 중간에서 전개되는 고원성의 숲 지대이다.
♣ 슈바르츠 발트(Schwarz Wald, 검은 숲) :
영어로는 Black Foerst Highlands라 부른다.
슈바르츠 발트는 네카어강(江) 마인강 유역은 독일에서 가장 비옥한 지대의 하나로 기후가 비교적 온난 건조하여 포도·밀의 산출이 많다.
네카어강 유역은 슈투트가르트, 하이델베르크, 마인강 유역은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의 도시가 발달했다. 물론 독일의 '낭만주의 길'이 통과하는 지역이다.
라인강이 흐르는 바젤~마인츠에 이르는 라인 계곡은 단층 작용으로 형성된 대함몰(大陷沒)지대, 즉 라인 지구대이다.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도 바로 여기에 있다.
라인강의 동안(東岸)에서는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최고봉 펠트베르크, 1,493m)와 오덴발트가 급애(急崖)를 이루고, 서안에서는 보주산맥·하르트산맥(최고봉 도너스베르크:687m)이 급애를 이룬다. 라인 지구대에는 카이저스툴(567m) 등의 화산산지나 바덴바덴 등 온천지도 많다. 보름스에서 마인츠~빙겐에 이르는 구간의 골짜기는 뢰스의 퇴적지라 독일에서 가장 비옥한 농업지역이다.
♣ 뵈머 발트(Böhmerwald) :
영어로는 보헤미안숲(Bohemian Forest)이라 부른다.
남독일의 서쪽은 보주 산맥이 프랑스와 국경을, 동쪽은 뵈머 발트(Böhmerwald)가 체코와 독일의 국경을 이룬다. 체코에선 체스키레스(Cesky Les), 독일에서는 뵈머발트라고 부른다.
보헤미안숲(Bohemian Forest)은 북쪽에 중앙고지와 남쪽에 독일 알프스 사이에 위치한다. 이는 슈바르츠 발트 역시도 마찬가지다.
검은 숲과 보헤미아숲, 이들 두 발트를 다시 정리하면,
독일 남부의 알프스 산지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를 포함하여 슈바벤(Swabian)과 프랑코니아(Franconia) 지역으로 직선으로 곧게 뻗은 언덕과 산맥으로 구성된다. 독일이 점한 알프스 산맥은 남쪽 국경 지역에 위치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비해 면적은 좁아도, 해발 2,962m로 독일에서 가장 높은 추크슈비체산도 포함되고 군데군데 많은 빙하호로 경관이 뛰어나다. 또한 남부 산지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인 도나우강의 발원지로, 바바리안 숲(Bavarian Forest)을 사이에 두고 체코와 국경을 접한다.
필자는 동서횡단 길에서 이들 두 숲지대와 관련해서 국경 넘어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그리고 남북종단 때는 체코쪽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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