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올곧으심을 알리기 위함이라네.
나의 반석이신 그분께서는 불의가 없다네
(시편92,16).
시인은 주님의 올곧으심을 ‘알린다고’고 하는데 이것은 3절에서 주님의 자애와 성실을 ‘알림’에서 예고된 것이다.의인은 풍요로운 영성적인 삶과 하느님의 올곧으심을 드러낸다.“나의 반석”은 하느님의 칭호이며(시편281;42,10참조)보호자로서 주님의 능력을 나타낸다.반석은 흔들림 없는 견고함을 의미한다.9절에서 주님이‘높이 계심’은 시인의‘반석’이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해 준다.2행의“그분께서는 불의가 없다네”라는 표현은 1행의“주님께서 올곧으심”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16절은 신명32,4과 거의 유사하다.
시편 92편의 전체적 의미:92편은 시편에서 유일하게 안식일과 관련된 시편이라고 되어있다.그러나 본문에는 안식일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구약성경에서 안식일은 원래 하느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고(창세기2,1-3;탈출20,11참조),후대에는 이스라엘의 탈출을 기념하는 날이었다(신명5,15참조), 이 시편에서 5절의‘당신께서 하신 일’과‘당신 손의 업적’은 하느님의 창조를 말한다.이 시인은 원숙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애와 성실을 알리고(3절)주님께서 올곧으심을 알리기 위해(16절)하느님을 찬미하며 지혜문학의 가르침을 전한다.그는 하느님의 복을 입은 사람으로서 기뻐한다(11-12절).반면에 하느님의 일과 업적을 알지 못하는 악인들은 풀처럼 돋아났다가 멸망하지만(7-10절),의인은 장대한 야자나무와 레바논의 향백나무 같고 무엇보다 늙어서도 원기 왕성한 모습을 지닌다고 가르치는 것은(13-15절)성전에서 한평생을 봉사한 시메온과 한나(루카2,25-39)를 상기시킨다.“늙어서도 열매를 맺으며 수액이 많고 싱싱하리니”(시편92,15)라는 말씀대로 의인은 하느님의 보배로운 축복을 받는다.하느님의 축복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영적 에너지가 충만하여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며 언제나 지칠 줄 모르고 항상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사람은 병든 자와 건강한 자,젊은이와 노인의 구분 없이 때에 따라 열매를 내어서 남을 기쁘게 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교회의 시간 전례에서 92편은 제2주간과 제4주간 토요일 아침기도 시편으로 사용되고,창조주이신 주님을 찬미하고 외아드님의 업적을 노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아타나시우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3 시편 90-150편/전봉순 著/바오로딸)
Ⅶ.삼위일체와 피조물들의 상호 관계
238. 성부께서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천이시고,존재하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되시어 당신 자신을 알려 주시는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성부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성자를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으며,성자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사람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이땅과 결합시키셨습니다.무한한 사랑의 끈이신 성령께서는 세계의 중심 깊이 현존하시면서 새로운 길에 영감과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세상은 하나의 신적 근원이신 삼위께서 창조하셨는데,각 위격은 각자의 고유성에 따라 이 공동 사업을 이루셨습니다.따라서“세계를 그장엄함과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관상할 때,우리는 온전하신 삼위일체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39. 삼위일체의 친교를 이루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삼위께서 모든 실체 안에 그 표징을 남겨 두셨다고 생각합니다.보나벤투라 성인은 인류가 원죄 이전에는 각 피조물이 어떻게“하느님께서 삼위이심을 입증하는지”알 수 있었다고 단언하기도 하였습니다.“그,<자연이라는>책이 인간에게 열리고 우리 눈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을 때에는”자연 안에 삼위일체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이 성인은 모든 피조물은 그 안에 고유한 삼위일체 구조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의 시야가 그토록 좁고 어둡고 취약하지 않았다면 이를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이렇게 그는 삼위일체의 열솨로 현실을 읽도록 노력하라고 우리를 채근합니다.
240. 거룩한 위격들은 실체적 관계이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창조된 세상은 하나의 관계망입니다.피조물들은 하느님을 향하는 경향이 있고,또한 모든 생명체는 다른 것을 향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기에,우리는 온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뒤얽혀 있는 많은 지속적 관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는 우리가 이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대에 대하여 경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실현을 위한 열쇠를 발견하도록 이끕니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타인,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루며 살면서 관계를 맺을수록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며 거룩해집니다.이러한 방식으로,인간은 창조되었을 때부터 하느님께서 그 내면에 새겨 주신 삼위일체의 역동성을 받아들입니다.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우리는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세계적 연대의 영성을 기르도록 초대됩니다.
Ⅷ. 모든 피조물의 모후
241. 예수님을 돌보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제 이 상처 입은 세상을 모성애로 함께 아파하며 돌보십니다. 성모님께서는,꿰찔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해하신 것처럼 핍박받는 가난한 이들과 인간의 힘으로 황폐해진 이 세상의 피조물 때문에 지금도 슬퍼하고 계십니다.완전히 변모하신 성모님께서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시고,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성모님께서는“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묵시12,1)여인이시며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어 모든 피조물의 모후가 되십니다.영광스러운 몸이 되신 성모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며,피조물이셨던 분으로서 그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게 되셨습니다.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온 생애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셨을 뿐만 아니라(루카2,19.51참조)이제는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십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더 지혜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간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242. 나자렛의 성가정에서 마리아의 곁에는 요셉 성인이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노동하는 자애로운 삶으로 마리아와 예수님을 돌보고 보호하며 이집트로 모셔 가서 불의한 이들의 폭력에서 벗어나시도록 해 주었습니다.복음은 요셉을 의롭고 근면하며 강인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그러나 성인은 깊은 자애도 보여 주는데 이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강한 사람의 특징입니다.그런 사람은 현실에 주위를 기울이면서 겸손하게 사랑하고 봉사합니다.이러한 연유로, 요셉 성인이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된 것입니다.성인은 우리에게 돌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세상을 우리가 자애롭고 온유하게 돌보도록 요셉 성인이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Ⅸ. 태양 너머
243. 마침내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얼굴을 맞대듯 마주할 것이고(1코린13,12참조) 세상의 신비를 경탄하고 기뻐하며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그때에는 우주도 우리와 함께 그 무한한 충만에 함께할 것입니다.그렇습니다.우리는 지금도 영원의 안식일을 향하여,새 예루살렘을 향하여,하늘 나라에 있는 공동의 집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에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21,5).영원한 삶은 우리가 함께 나누는 하나의 경이가 될 것입니다.그 삶 속에서 눈부시게 변모된 피조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고,궁극적으로 해방된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이바지를 하게 될 것입니다.
244.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하늘 나라의 잔치에도 받아들여질 것임을 인식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이 집을 돌보는 데에 일치해야 합니다.
244.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하늘 나라의 잔치에도 받아들여질 것임을 인식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이 집을 돌보는 데에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찾아 이 땅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이 세상에 시작이 있다면 또 세상이 창조된 것이라면,우리는 시작하신 분,창조주이신 분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노래하며 걸어갑시다!이 지구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 염려가 결코 우리 희망의 기쁨을 앗아 가지 못합니다.
245.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아낌없이 내어 주라고 권유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우리가 매우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께서는 늘 이 세상 중심에 현존하십니다.그분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그분께서 몸소 이 땅과 긍극적으로 결합하셨고,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데 언제나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주님,찬미 받으소서!
246.기쁨과 고뇌가 담긴 이 긴 성찰을 마치며,저는 두 가지 기도를 바치기를 제안 합니다.하나는,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와 함께 드릴 수 있는 기도이고,다른 하나는,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이 제시하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청하는 기도입니다. -끝-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하느님께서는 온 세계에 계시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 계시나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유로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
저희에게 사랑의의 힘을 부어 주시어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돌보게 하소서.
저희가 평화로 가득 차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
오,가난한 이들의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저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약탈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저희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관상하며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날마다 저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드리나이다.
비오니,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
하느님 아버지,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나이다.
전능하신 성부께서 손수 빚으신
모든 피조물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현존과 자애로 충만하나이다.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만물이 당신을 통하여 창조되었나이다.
성자께서는 성모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이 땅에 속하셨으며
인간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셨나이다.
성자께서는 오늘도 당신 부활의 영광 안에서
모든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성령님,성령께서는 당신의 빛으로
이 세상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끄시며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피조물과 함께하시나이다.
성령께서는 또한 저희 마음 안에 머무르시며
저희를 선으로 이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삼위일체이신 주 하느님,
무한한 사랑의 놀라운 공동체를 이루시니
만물이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세상의 아름다움 안에서
저희가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통하여
저희의 찬미와 감사를 일깨워 주소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친밀한 일치를 느끼도록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사랑의 하느님.
이 세상에 저희에게 맞갖은 자리를 보여 주시어
저희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시는 존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권력과 재물을 가진 이들을 깨우치시어
무관심의 죄를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공동선을 사랑하며 약한 이들을 도와주고
저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돌보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가 부르짖고 있나이다.
주님,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