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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시 105:4절
제 목 : 구하고 구하고 반복해서 구해야 할 것
일 시 : 2026. 6. 28.
시105:4/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현대인의성경 시105:4/너희는 여호와를 찾고 그의 능력을 구하며 항상 그를 바라보아라./고 했으며, 새번역은 시편105:4/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를 구하고, 그분의 능력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에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이어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기도에 관한 말씀들, 즉 기도하라는 말씀과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도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① 먼저 일시적으로 기도가 있고, ② 계속 또는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1) 먼저 일시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일시적인 기도란 자신의 문제나 기도제목이 해결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녀가 직장에 취직되게 해 달라는 기도나, 자녀가 결혼하게 해 달라는 기도나, 그 외에도 위급한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며, 그것이 응답되면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일시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또는 반복해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살전5: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엡5:18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이 있는데 동사가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한 기도는 단회적인 기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엡6: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했으며, 새번역 에베소서 6:18/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기도에 대해서 네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모든 종류의 기도를 하되, ② 모든 시간(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③ 항상(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기도를 하고, ④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내용을 보시면 모든 시간을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도 지속적이고 반본적인 기도입니다.
그리고 눅18: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라고 했으며, 표준새번역은 눅18:1/예수께서 그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눅21: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항상(모든 시간) 기도하며 모든 시간(항상) 깨어 있으라고 했으며, 롬12: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했으며, 표준새번역은 롬12:12/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환난 가운데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계속해서 꾸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골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고 했습니다. 항상 힘쓰고란 프로스칼테레오 라고 하는데 ~에 대해 진지하다, (어떤 것에 대해)인내하다, 끈질기게 성실하다, (한 장소에서)모든 일에 있어서 근실하게 일하다 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일에 항상 힘쓰라는 뜻으로 전심전력해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벧전4: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에서 정신을 차리고란 올바른 마음, 침착한 마음으로 라는 뜻이며, 근신하여란 환경에 따라 요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조심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무절제한 생활을 버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지속적인 기도와 지속적으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오늘의 말씀도 지속적인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편의상 세 가지 문장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겠습니다.
1. 먼저 여호와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란 예호바 또는 야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존자, 영원한 자, 여호와, 주님이라는 뜻으로 지존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표현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40:27-31절 말씀입니다. 사40:27-31/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새번역은 사40:27-31/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8절 하반 절부터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여호와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여호와와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하다는 단어는 여호와를 수식하기도 하고 그의 능력을 수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분리시켜서 여호와를 구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구하라는 다라쉬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밟다, 자주 가다, 찾다, 묻다, 특히 예배하다, 청구하다, 구하다, 찾아내다 라는 뜻으로 찾아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찾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구하고 찾고 예배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참된 목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예수님을 만났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저의 신앙관이며 목회관입니다. 저는 적당히 교회만 다니는 신앙생활을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그런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은 될 수 있어도 성경이 말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여호와를 구하라는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계속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암5:4-6/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대상28:9/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이며 동시에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찾으라는 뜻입니다.
사55:6-7/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했으며, 렘29:12-13/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으며, 마7: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보시면 모두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찾으라는 기도의 명령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그런 차원의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예수님을 찾는 것이 본문이 말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즉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거기서 만족하고 나는 예수님을 만났어 하고 주저 앉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기쁨과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천국의 보화와 비밀들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만나려는 기도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2. 그의 능력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의 능력이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능력이란 오즈 라고 하는데 강함, 대담함, 소리 높은, 힘, 능력이라는 뜻으로 신약적인 표현으로 하면 성령의 능력(불=은사)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서 권능(뒤나미스=기적을 행하는 능력, 초자연적인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하라는 다라쉬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밟다, 자주 가다, 찾다, 묻다, 특히 예배하다, 청구하다, 찾다, 구하다, 찾아내다 라는 뜻으로 찾아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찾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능력을 구하라는 말씀은 신약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성령의 능력과 불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2026년 우리교회 표어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 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은 성령의 불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악한 영을 쫓아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12:28-29/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의 능력을 받고 강한 자가 되어야 강한 자(원수 마귀와 귀신을)를 결박하고,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강탈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가나안 칠 족속을 완전히 진멸해야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농장과 땅을 탈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성령의 능력과 불을 받아야 사탄 마귀 귀신을 결박하여 쫓아내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탈취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마귀에게 빼앗긴 건강과 물질과 형통의 복을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보시면 사도들이 오순절에 강력한 성령의 불을 받았지만 바리새인들과 공회의원(국회의원)들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서 금지하는 일이 일어나자 낙심하고 위축되고 전도의 불이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합심해서 전심으로 기도했을 때 강력한 불이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라는 말씀은 성령의 불을 계속해서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우리가 받은 성령의 능력을 소진시키고 방전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전에 모여서 기도하면서 성령의 불을 구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해서 지속적으로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3.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하라고 했습니다.
얼굴이란 파님이라고 하는데 성경에서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을 식별해 주며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감정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면 굳은 얼굴, 뻔뻔스러운 얼굴, 무자비함, 부끄러운 얼굴, 빛나는 얼굴, 나쁜 얼굴, 낙담한 얼굴, 또는 얼굴을 숨기다, 얼굴을 돌리다, 얼굴을 들어 올리다 라는 다양한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 얼굴을 뵙는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뵙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과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창32: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고 했으며, 출33:11/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으며, 신34: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던 사람입니다. 대면하다란 히브리어로 파님 엘 파님이라고 하는 데 그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본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마주하여 얼굴을 맞대고 보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 성전예배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와 관련해서 사용되었습니다.
대하7: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했으며, 시24: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라고 했으며, 호5:15/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하라고 했습니다. 항상이란 타미드라고 하는데 본래 의미는 계속성, 부단한, 끊임없이, 규칙적인(매일의)제사, 계속적인, 매일의, 항상이라는 뜻으로 매일의, 항상이라는 뜻입니다.
구하다란 바카쉬라고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특히 예배와 기도로)찾아내다, 추구하다,구하다, 간청하다, 탄원하다, 요구하다, 요청하다, 찾다 라는 뜻으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찾아낼 때까지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구하다 라는 단어가 다라쉬이든지 바카쉬이든지 둘 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호와를 구하고, 그분의 능력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상황을 표현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3: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했으며, 새번역은 고린도전서 13:12/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두 가지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①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또는 마주하여 볼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얼굴을 마주하여 본다는 뜻은 곁에서 가까이에서 또는 바로 앞에서 본다는 뜻입니다.
②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온전히 알리라는 에피기노스코 라고 하는데 어떤 표식을 알다, 즉 인식하다, 전적으로 알게 되다, 인정하다, 지각하다 라는 뜻으로 어렴풋이 또는 긴가민가 하는 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 또는 예수님이라는 표식과 증거가 있어서 확실하게 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구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삶은 바로 이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고 큰 어려움이 없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얼굴을 뵈옵고 그분과 날마다 동행하는 신부의 삶을 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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