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내가 말하노니 - 혹자는 이를 '내가 질문하노니'라고 번역하고자 하는데 이는 다음 문장이 질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 '레고')는 '에로타오'와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본문은 본절 뿐만 아니라 24절까지 이어지는 전체 논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 이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문형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완악해지기는 했으나 절망적으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족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타이산'은 '미끄러지다'의 뜻으로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완전히 엎드러진 것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는 완악하게 된 상태를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의 실수가 크다는 것에 집중하여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넘어짐 즉, 복음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도록 하는 계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 당시에 실제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목격될 수 있었다. 그럴 수 없느니라 - 여기서 보여 주는 단호한 거부의 대답은 비록 이스라엘이 실족했더라도(7-10절) 그것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완전한 패망의 넘어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들이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고 강퍅해졌으나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울이 계속해서 확언하는 이스라엘의 장래 구원을 암시해 준다
저희의 넘어짐으로 - 헬라어 본문에서는 접속사 '알라'가 사용되어 앞구절과 반대되는 견해를 암시한다. '저희의 넘어짐'은 '저희의 범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주이신 예수를 거절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거절로 인해 이방인에게 구원이 돌아갔다. 이방인 - 유대인을 제외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말한다. 이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로 약속에 대해 외인이요
구원에 대한 소망이 전혀 없었다. 바로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구원이 더 이상 민족의 개념으로 제한되지 않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 '시기나게 한다'(파라젤로사이)는 것은 회개와 믿음을 일으키는 데에 가치있는 자극을 말한다.
이것은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유대인의 질투심을 유발시켜 회심할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이러한 시기로 인해 비록 괴로움이 있기는 해도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된다.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세상의 부요함 -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여 구원 경륜에서 벗어났지만, 이스라엘의 복음 거부는 오히려 세상 전체가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 바울이 흔히 사용한 '부요함'이란 말은 현재의 부한 상태나 종말론적 풍요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부요함'은 이방인의 구원을 통하여 천국 백성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이방인의 은혜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저희의 실패 - '혀테마'는 군사적 표현으로 '전투시에 넘어짐'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김으로 당한 커다란 실패를 말한다. 바울은 '넘어짐'과 '실패'를 '충만함'과 대조시켜 이스라엘의 회심이 더욱 큰 은혜를 베풀 것임을 보여준다.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 충만함은 회심과 관련된 말로 남은 자와 대비되는 커다란 전체를 의미한다. 또한 충만함이란 앞 부분의 실패와 연결해 볼 때, 숫자적으로 빈자리를 채운다는 개념과 구원을 완성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회복되어, 그 구원받은 수가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충만해진다는 것은 범죄와 대조를 이루어 불신앙과 범죄로 점철되었던 과거의 이스라엘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의를 얻어 하나님 나라에 복귀하는 민족이 될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이방인들이 부요케 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회복되면 전 인류의 부요함은 더욱 풍성해 질 것을 의미한다.
[롬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 '만큼'으로 번역된 '에프 호손'은 일시적 제한의 의미가 아니라 자격(資格)을 말한다. 즉 자신의 신분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에고'('나는')라는 대명사 앞에 '에이미'('...이다')를 두어 자신의 자격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 인식을 명확히 가지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임무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임무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을 충만케 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며 충만케 하려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자기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그의 이방인에 대한 사역이 성공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의 구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겨 이방인 구원에 최선을 다한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힘써 감당함으로써 이방인들의 구원이 유대인들을 시기나게 하여 몇몇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자기의 직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짐을 생각할 때에 더욱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