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눈길을 달려 교회로 왔다. 약10여분 걸린것 같다.
눈길은 늘 기장되지만 얼마나 많은 생각이 쌓이는지 모른다.
눈 송이 하나하나가 양식처럼 내리는 듯한 저- 출애굽의
광야가 떠오른다.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으니...
아마 꼭 이같았을 것 같다.
새벽에 눈은 너무 청순하고 가냘푸고 가난한 순례자다.
온갖 더러움과 추한 꼴들로 뒤덮인 세상을 아무 말도 소리도 없이
세상을 덮어주고 새벽길의 나를 덮어준다. 옛날 열여섯살
나던 때 겨울! 새벽예배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 주신 분,
한동네 사는 교회선생님의 소리인줄 알고 일어나 지름길로
가려고 밭으로 논으로 달려 예배당안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없고, 선생님도 안계시고 그렇게 그렇게 한겨울 내내 새벽예배를
다녔던 그 추운 겨울이 오늘 새롭게 떠오른다.
나의 열여섯살, 나는 그 때에 신앙의 온갖 체험같은 것을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나의 생애에 성경을 가장 많이
읽었고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을 좇아 다니면서 기도생활을
했다. 새벽에도, 저녁기도회에도 그렇게 나는 청소년시절,
가장 예민하던 때에 나는 신앙과 교회와 말씀에 젖은 생활을
했다.
1968년 12월20일 내가 사랑하고 사모하고 내 청소년시절의
모든 것을 다 쏟을 만큼 좋아하고 좋아하던 시골교회의 헌당식
이 있었다. 헌당식 전날 내 믿음의 짝이던 김규진목사(미국에서
목회하시다 3년전 작고)와 함께 헌당식 데코레이션을 했고,
교회의 집사님과 권사님들은 밤새 음식을 장만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새벽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동트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방학이 시작되어
학생회가 모두 교회에 모여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헌당식엘 참석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예배당 종각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로 눈물로 기도하며
하루를 보내고 그 날 밤 늦게 예배당으로 가서 죄인처럼 한마디
기도도 못하고 울기만 하다 돌아왔던 때가 떠오른다.
그날 내가 매우 좋아하고 따르던 분들이 고향교회를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폐결핵으로 요양한다고 집에 말씀을 하시고는
우리교회에 오셔서 전기공사를 하시던 청주에 계시던 차익환선생님
(후에 신학 을 하시고 목회하시다 소천) 그리고 서문성결교회
황원순 장로님은 낮에 한국도자기 간부로 계시면서 저녁에 1시간
이상의 차를 타고 오셔서 역시 전기와 기타 공사를 친히 해주신
정말 존경하는 분들이 그날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왜냐하면 그 두분은 나의 어린 시절, 꿈을 심어주신
분들이셨다. 우리교회의 어른 들이 아니심에도 시간이 있을
때면 시골교회인 우리교회에 오셔서 신앙이야기와 사람을 섬기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던 분들이다.
그리고 당시 담임목사님이신 임성훈목사님(작고) 신경하
사모님, 서해성 장로님과 여러 교회의 어르신들의 수고를 나는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헌신과 수고로
나는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고 신학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 그 정겹고 소박하고 그냥 예수님이 좋고 교회가 좋아
시간만 나면 교회로, 학교만 갔다오면 교회로, 그리고 성경을
배우고 찬송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시절이 떠올라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는 항상 성도는 새벽길을 걷는 자와 같다는 믿는 목사다.
새벽길, 아무도 가지 않는 새벽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알수 있다. 새벽에는 하나님이 선명하게 다가오신다. 성경
한장을 보아도, 짧은 시간 기도의 자리에 앉아도, 주님이 그렇게
선명할 수 있는가? 주님의 이름을 만번을 부르고 천번을 부르며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 서는 시간이 새벽이다.
오늘 새벽 나는 차를 타고 눈길, 눈이 쏟아지는 길을 운전해
왔다. 어린 시절 눈내린 한겨울에 논과 밭으로 달려가던 새벽
기도회와 오늘 아침 차를 타고 교회에 오는 나의 두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나님, 감사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주님보다
제가 더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닌지요? 두렵습니다"
눈이 내리는 계절은 영적 삷을 단도리하는 시간입니다.
놀라운 시간입니다. 주님과의 추억을 남기는 계절입니다. 살롬!
목회실에서.....
*그렇다고 새벽기도회가 신앙생활의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우리한국교회가 독특하게 가졌던 신앙패턴입니다. 율법화 한 것은
아닙니다만 한국교회 정서와 신앙운동에 잘 맞았기에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전통적인 교회생활과 부흥과 직결된 신앙자세였습니다.
즉히 일제 강점기에 고난을 겪었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새벽기도회를 통해 신앙을 극복했고 새벽예배는 아주 경건한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특별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새벽기도회 못나온다고 너무 율법적으로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예수님도 새벽미명에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가지셨고 시편엔 새벽에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쯤은 참고
하심이 좋겠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요? 그땐 새벽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다른 때는 몰라도 토요새벽과 특별새벽기도회를 할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