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관련 없는 유일한 민간인…낄 자리인가?
관건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역할 규정’
대통령실 참모들, 직언 꺼리고 사후 '쉴드치기' 급급
미국, 윤 대통령 요청에 전략핵잠수함 방문 허용한 듯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에 승선했다. 2023.7.19 [대통령실 홈페이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김 여사는 19일 배우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부산해군작전기지에 정박 중인 미국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에 승선한 데 이어,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했다.
그동안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와 함께 '핵전력 3축'에 속하는 전략핵잠수함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은밀함'과 '암행'(暗行)이 적에게 두려움을 주고 유사시 작전 성공 확률을 높인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그렇기에 이번에 켄터키함의 부산 기항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미국이 지난 4월 '워싱턴선언'을 통해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차원이라기보단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의지를 과시하는 정치적 연출이라고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내부를 시찰하고 있다. 2023.7.19 [미 해군 제공]
대통령실 "핵잠수함 방문, 윤 대통령 의지로 계획"
더욱 특이한 것은 부산 기항 사실을 공개한 후에 한국의 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은 그렇다 쳐도, 외교안보 업무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 신분의 김건희 여사의 승선까지 허용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의 전략핵잠수함 방문은 미국의 우방국을 포함해 외국 정상으론 최초라고 한다.
이에 대통령실은 한국 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윤 대통령 부부의 전략핵잠수함 승선이 가능했음을 시사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로 계획됐다"라고 말했다.
켄터키함에서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안내로 내부의 지휘통제실, 미사일통제실, 미사일저장고 등을 순시하고, 켄터키함 함장에게서 전략핵잠수함의 능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내부 공개도 거의 전례가 없다.
이날 켄터키함에 승선한 인사들은 미 측에서는 러캐머라 사령관과 카레 아베크롬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방·군축정책조정관, 비핀 나랑 국방부 우주정책 수석 차관보, 조이 사쿠라이 주한미국대사대리 등이다.
한국 측에선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해군 수뇌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1차장, 임종득 2차장, 김은혜 홍보수석 등이 동행했다. 한미 양국 모두 전략핵잠수함을 시찰할 만한 정식 업무와 관련 있는 국방안보 담당 고위인사들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에 승선하고 있다. 2023.7.19 [대통령실 홈페이지]
업무 관련 없는 유일한 민간인…대통령 부인 '낄'자리?
의문은 과연 이곳이 대통령 부인이 '낄'자리인가 하는 점이다. 김 여사가 보기에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구경거리라서 '호기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런 식의 군사안보 외교도 대통령 부인으로서 충분히 해도 되는 활동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호기심에 따른 것이라면 '분별없는' 행동이고, 군사안보 외교를 행정부 내 공식 기구가 아닌 대통령 부인이 충분히 해도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권한 없는’ 행동이어서다.
김 여사는 켄터키함 승선에 이어 윤 대통령과 함께 해군작전사령부 본부를 방문해 '네이비 클럽'에서 한미 여군 장병들과 별도의 환담 자리도 가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그는 "바다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여성 특유의 감성과 힘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여러분들을 보니 든든하다"고 말했다. 발언 내용만 보면 대통령이 직접했다고 해도 충분히 속을 정도다.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부인은 모두 13명이었다. 내조형도 활동형도 있었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대통령 부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국민의 시각과 기대도 달라지곤 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선 대통령 부인 개인의 성격과 스타일이 일단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대통령이 배우자인 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핵심 관건이다. 따라서 지금 김 여사의 '비상식적' 행동은 윤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15min' 기사에 실린 사진. 김건희 씨가 수행원 및 경호원들과 함께 명품숍 '두 브롤리아이' 매장 앞에 서 있다. '15min'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도 넘는' 김건희 행보, 관건은 윤 대통령의 '역할 규정’
설사 부인이 '간곡히' 요청한다 해도 전략핵잠수함 승선과 순시처럼 부인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윤 대통령이 잘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윤 대통령이 부인 김 여사의 뜻이면 '노'(No)라고 못하고 무엇이든 받아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작년 5월 윤 정부 출범 후부터 세간에선 김 여사가 'VIP2'로 불려 왔다는 주장이 있었고, 그다음엔 아예 'V1'이라는 풍설이 나돌기도 했다. 윤 대통령에게 좋은 얘기는 아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윤 대통령과 함께 리투아니아를 방문한 김 여사가 대낮에 대통령실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수도 빌뉴스 거리를 활보하고 명품 매장에 들른 것도 '호객 행위'로 인한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대통령 부인으로선 무분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서 그런 '튀는 행동'을 하면 의당 보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결국은 한국에서도 알게 되리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간 김 여사가 보여준 남다른 '촉'을 감안하면, 그가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기보단 개의치 않겠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이 상황은 뭐지?'라는 반응을 부른 김 여사의 전략핵잠수함 승선과 순시도 이런 시각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앞서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의 환담 자리에 끼어 응 주석에게 외교 사안인 한국인 비자 문제를 직접 거론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통령실 참모들, '직언' 꺼리고 사후 '쉴드치기' 급급
이렇듯 대통령 부인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하려 할 때, 윤 대통령이 일일이 제어를 못 한다면 대통령실 참모들이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녹(祿)을 받는 까닭의 하나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실에선 때론 직을 걸고 '직언'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눈치만 보다가 사태가 벌어지면 궁색한 논리로 '쉴드치기'에 바쁘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오십보백보다.
김건희 여사는 대선 선거운동 기간이던 2021년 12월 26일 '허위 경력 의혹'사과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면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이 되고 지난 1년 2개월여를 돌아보면 김 여사는 '조용한 내조'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깼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지만, 국민앞의 약속을 깨고 정반대 행동을 하는 데 대해 김 여사는 국민에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상 국가를 대표해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대통령의 고유 책무인 외교·안보·국방 관련 일에까지 관여하려 한다면 그건 무분별 차원도 한참 지난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사례가 다는 아닐 것이다. 김 여사가 국민의 눈은 개의치 않은 채 뭣이든 맘대로 하려는 생각을 혹여라도 지니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이제라도 스스로 삼갈 필요가 았다.
병행해 대통령실, 부속실 등 공식 시스템의 토의를 거쳐 윤 정부에서 대통령 부인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를 '설정'하고 김 여사가 따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