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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잡초가 자라는 이유...
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 신은 왜 이런 쓸모없는 잡초를 만든 것일까? ”
“ 이 잡초들만 없으면 오늘 이렇게 더운 날 땀 흘리지 않아도 되고 밭도 깨끗할텐데... ”
때 마침 근처를 지나던 동네 노인 한 분이 그 말을 듣고는 농부를 타일렀습니다.
“여보게, 그 잡초도 그 나름의 소중한 책임을 띠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네!
잡초는 비가 많이 내릴 때는 흙이 내려가지 않도록 막아주고,
너무 건조한 날에는 먼지나 바람에 의한 피해를 막아주고 있네.
또한 진흙땅에 튼튼한 뿌리를 뻗어 흙을 갈아주기도 하지...
만일 그 잡초들이 없었다면 자네가 땅을 고르려 해도 흙먼지만 일어나고,
비에 흙이 씻겨 내려 이 땅은 아무 쓸모가 없이 되었을 거야.
자네가 귀찮게 여긴 그 잡초가 자네의 밭을 지켜준 일등 공신이라네...”
세상에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이 세상에 보내진 것입니다.
비록 그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꽃은 꽃의 모양과 향기의 옷을 입고,
잡초는 잡초 모양의 옷을 입고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좁은 생각이 그렇게 느낄 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각각의 쓰임새와 의미로 세상을 빛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이건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를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이제 내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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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8월을 보내며... !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오늘은 8월이 가는 한 달의 맺음 날이다.
6,7,8월달이 여름이라는 관념으로는
여름의 끝 날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무더운 더위, 그토록 많은 비의 내림,
8월의 한 달은 참 길었다.
내내 밝아오지 않을 생의 시간들처럼...
어둠이 내리고 아픔이 머물기도,
절망이 오고 희망이 멀어지기도,
고독이 밀려오고 슬픔이 찾아오기도 했다.
8월은 그렇게 머물다가 오늘 우리 곁을 떠난다.
우리 살아가는 인생의 한 단면처럼...
8월이 다시 돌아오고 그 시련을 다시 맞이하게 될지라도
오늘 우리는 8월을 보낸다.
때때로 그렇게 과거의 것들을, 지나가는 것들을 보내야 한다.
기쁨과 고마움도 고통과 비탄도 함께...
우리가 보내고 흘러가게 하는 것들이 어둠, 시련이라면 좋다.
상처, 미움이면 좋다.
힘듦, 어려움이면 좋다.
슬픔, 고통이라면 더 좋다.
그 모든 부정의 것들이라면 더욱 좋다.
그렇게 보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보내고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들이 과거 속에 묻혀 있고,
우리들 삶의 성장에 걸림이라면 우리는 과거의 것들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의 시간들도 보내야 한다.
어느 것도 남기지 않은 채,
무슨 사연도 저장해두지 않고...
때때로 우리는 많은 기억들 앞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언제 어느 날에 만나고 겪었던 것들을 놓아 보내지 않고
흘러가게 하지 않으며,
용서하지 않은 채 고통과 아픔의 눈물을 꼭꼭 간직한다.
비탄과 찬탈의 기억을 내내 저장해 둔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에서 다시 보내는 8월의 맺음 날,
나는 나에게 속하고 지녀온 많은 것들을 보내야 함을 생각한다.
이날까지 그토록 내가 지니고 쌓아온,
그러나 비우고 버리며 떠나보내야 할 그 모든 부정의 유형무형한 것들,
그 모든 존재의 어둠, 고통, 아픔...
그 모든 살면서 지녀온 힘듦, 어려움들도...
이제는 보내야 한다.
흘러가게 해야 한다.
‘굳 바이(Good-bye)’라고 말해야 한다.
‘어제여, 안녕’을 말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고, 새 삶은 새 마음을 지녀야 하며,
새 영은 새 육신으로 가져야 하고, 새 빛은 새 생활로 옮겨가야 한다.’
나는 이 아침에 떠나가는 8월을 보내며 새로운 꿈을 꾼다.
그것은 보내는 이의 꿈, 새로운 것들에 대한 꿈,
새 마음, 영, 삶에 대한 꿈이다.
문득 오늘 아침 말씀이 아침창가에 다가와 내 작은 마음 곁에 앉아 있다.
“ 깨어 있으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그 때와 그 시각은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그 날 그 시간은 꼭 다가오리니... “
8월이 간다.
8월이 떠나간다.
어둠을 버리고 기쁨을 위해, 절망 버리고 희망을 위해,
슬픔을 버리고 평화를 위해 한 계절이 떠난다.
인생의 한 날들이 떠난다.
삶의 한 절망들도 떠난다.
나는 오늘 8월의 맺음 날에 보내고 흘러가게 해야 할 것들을
떠나보내면서 곧 높아갈 하늘을 본다.
이내 풍요로울 땅을 꿈꾼다.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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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 사목국 가해 강론 자료 >
행복 선언 - 제 3부 -
3.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는 “행복한 사람”라고 선언한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인가 ?
오늘 복음 말씀에 대해서 우선 한 가지 점을 분명하게 해두자.
▶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 온유한 이, 자비로운 이, 평화를 이루는 이 등을 “행복하다,” “복되다”고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 여러 집단의 사람들, 그러니까 그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가난하고, 어떤 이들은 온유하고, 또 다른 이들은 자비로운 이들 등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사람들, 그분께서 언제나 온유하고, 자비롭고, 평화를 이루기 등을 바라시는 바로 ‘가난한 사람’을 두고 말씀하신다.
또 하나, 여러 가지 상급에 대해서 말씀하실 깨, 예수님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하나의 동일한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 상급은 항상 처음에는 여기 지상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하늘나라에서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자.
a)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
다른 모든 행복은 이 첫째 행복에 담겨 있다. 루카의 행복선언 양식은 예수님께서 당신 말씀 안에 드러내셨던 따스함을 더 잘 표현해준다.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가난한 이들이 행복한 실제 이유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들의 가난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가난이 하느님께 신뢰하도록 그들을 움직여주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하시는 일을 용이하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신다. 각자가 소유한 것이 많든 적든, 그와는 별개로, 모든 이가 가난하기를 예수님께서 요구하신다. 예수님께서 생각하기에는, 재산이나 인간적인 도움에 신뢰를 두는 게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께만 신뢰를 두는 이가 가난하다.
▶ 자신의 약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하느님의 용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가를 의식하는 사람.
▶ 하느님 없이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빼놓고는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 자신이 가진 것은 무엇이나, 목숨, 건강, 지능, 온갖 종류의 소유를 하느님의 선물로 바라보는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고마워하고 갖지 않은 것을 손에 넣으려고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
▶ 뒤로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하여 미련 없이,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그것을 바꾸지나 않았을까 마음조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한 마디로, 자신을 오직 하느님만이 없애실 수 있는 결핍의 꾸러미라고 믿는 이를 예수님께서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오직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가난하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생각에는, 재산을 가진 사람이 가난하고 하느님 나라에 적합할 수도 있는가 하면, 복음에 따라 가난하게 되지 못한 거지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게 가진 이들이 부유한 사람들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는 점은 항상 진실로 남이 있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재산에 신뢰를 둘 유혹을 받지만,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께만 신뢰를 두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언제나 실감하고 있는 까닭이다.
복음에 따라 진정으로 가난하게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 재산이 늘어나는 때라 하더라도, 참으로 가난하기 위하여 마음을 쓰는 삶을 줄곧 살아가는 자이다. 우리는 그 교훈을 매일 더 잘 배우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완벽하게 가난하셨던 유일한,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생활필수품들을 갖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상에 사시는 동안 당신 아버지께 모든 신뢰를 두셨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그분을 “행복하고 축복받은 예수님”이라고 불렀다. 참으로 마음으로 가난한 데는 그분 다음으로 그분의 복되신 어머니가 자리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앞으로 나아갈 때, 진정으로 가난해지려고 애쓰는 정도에 따라,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참으로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고, 오로지 우리 죄만이 참으로 우리 소유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난 후에야, 하느님을 신뢰하게 되고, 또 이 조건으로 우리는 임종 때 하느님의 나라를 완전히 차지할 것이다.
b)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5절)
여기서 “온유한”이란 말은 가난한 이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낮은,” “겸손한”을 뜻한다. 그 대신 부유한 이는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믿고 행동하는 바람에, 종종 “오만하고,” 자만심에 가득차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가로막아버린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두 번째 행복선언에서 베푸시는 상급에 좀 놀란다. “땅”이라고! 그러나 유다인에게 “땅”은 “약속의 땅,” 다시 말해서, 팔레스티나였다. 인생의 사막을 지나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땅”은 하늘나라이다. 그래서 이 둘째 행복선언에서 베푸시는 상급은 첫째 행복선언에서 다른 이름, 곧 ‘하느님나라’로 되어 있는 같은 상급이다.
c)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4절)
- 가난한 사람들은 고통 받고 슬프게 울 일도 많다. 우리가 어떤 이를 잃고 슬프게 울고 있을 때, 사람들은 와서 우리를 위로해준다. 그렇지만 우리의 슬픔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다.
어떠한 위로도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위로에 비교될 수 없다.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한 슬픔도 잠재운다. 그리고 우리가 죽을 때,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21,4) 그분의 나라는 영구히 우리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기쁨은 슬픔이 섞이지 않은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어느 누가 이보다 더 큰 위로를 기대할 수 있을까?
- 9월호에 제4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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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17. 8. 6
마태오 17, 1~9
♠ 복음 연구 < 1~8절 : 그리스도의 현현(산 위에서) >
* 1~2절 : 마태오는 ‘그때에, 그날, 그 뒤에 등의 모호한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는 ’엿새 뒤‘ 그러니까, 제 7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시점을 명확히 한다. 베드로와 야고버, 요한 세 명을 동반하고, 이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예수님의 수난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자들로 함께 높은 산에 오르신다. 산은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의 장소로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이 드러나는 곳, 전승에 의하면, 타보르 산으로 여겨지지만 한적한 곳을 찾던 예수님의 변모 장소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있다. 미론산, 헤르몬산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구름 속에서 들리는 말씀 등은 탈출기를 상기시킨다.(24.34장) 저자는 이런 복선을 깔고 예수님이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구약의 모세 기사인데, 예수님은 모세를 훨씬 능가하시는 분으로 예수님께서 변하신 모습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표현들은 묵시문학의 종말론적 소재로서 예수님이 종말을 앞당겨서 사신 종말론적 존재임을 말해준다. 예수님의 변모가 얼굴과 옷으로 나누어 묘사한다. 해처럼 빛나는 얼굴은 하늘나라에 들어간 의인의 모습(13.43)과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뵙고 난 모세의 모습을(탈출 34.30) 연상시킨다. 이런 묘사는 예수님이 한 순간이나마 천상의 존재로 변모하였음을 시사한다.
* 3절 : 그때에 그들 앞에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 마르코 복음은 엘리야를 앞에 내세우는데 마태오는 모세를 앞에 제시하여 모세를 중시하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수난예고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는 그 둘을 이스라엘의 율법자와 예언자의 대표로 간주한다. 그들이 여기에 나타나 대화하고 신비에 참여함은 옛 시대의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됨을 입증하며 예수님은 이들과 다르고 더 뛰어난 분이심을 알리고, 수난 후에 받으실 예수님의 영광을 예시하여 제자들을 격려한 사건임을 상기시킨다.
* 4~8절 : 세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베드로가 문득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대변자로 나서서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고 말한다. 이 초막은 천상 인물이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초막절을 연상시키는 초막, 하늘과 땅 사이의 소통을 상징하는 성전 등 여러 해석이 제시된다. 곧 구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구름이 모두를 감싸더니 구름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베드로의 거부 반응에서 잘 드러났듯이, 제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난예고 말씀을 수용하라는 권유다. 백성 가운데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주시리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연상시킨다(18.15).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다니엘이 묵시적 환시를 받는 방식과 유사하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빛나는 구름이 덮는 모습에 이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들음으로써 생겨난 두려움은 “그의 말을 들어라” 라는 지시를 부각시켜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부여되어 있음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 9절 : 산을 내려오시면서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
- 세 제자에게 그들이 본 것을 당신 부활 이전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분부하신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혼란이 있을 때마다 마지막에 덧붙여지는 말씀으로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날 때까지” 잠시 침묵하라는 명령이다. 이른바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거쳐 부활을 체험하신 다음에 비로소 예수님의 신원과 변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복음 요약 : 내용상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사화와 유사하다. 이 사화는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하느님의 아들과 고통 받는 종으로서의 신분을 환기시킨다. 나아가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 부활하여 현현 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즉 제자들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잔을 마셔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십자가에 의해 가려져 있는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고 믿음과 희망과 인내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일깨운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를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갈 때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 대화 방향 : 예수님의 수난을 거부했던 베드로가 영광스러운 변모가 있던 산 위에서 신뢰에 가득 찬 목소리로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초막을 셋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그는 대표자로서 의식하여 베드로의 심경에 ‘제가 알아서 하겠다’ 라는 뜻이 엿보인다.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기쁨, 자기에게 쏟으시는 신임에 맞갖게 처신하겠다는 의욕이 노골적으로 나타나 그 복된 체험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입었던 것이다. 초막을 짓고 안주하고 싶다니 얼마나 사치스런 생각인가?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초막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드님을 쳐다보고 어떻게 처신하는지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다. 이런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진정 우리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임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이 사신 것처럼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머물고 주님과 자신을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변모사화를 통해 베드로의 태도를 통해 내 자신이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누어 보세요.
♠ 참고 문헌 : ▪ 마태오 복음 성서묵상 (C.M마르티니 지음, 성염 옮김 / 바오로출판사)
▪ 마태오 복음 주해 (이우식 지음 / 바오로딸,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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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
2017. 8. 13
마태오 14, 22~33
♠ 복음 연구
* 22~24절 : (호수 위의 한밤중)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한 예수님은 곧 바로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건너편 호수로 먼저 보낸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제자들만 가는 여행이 순탄할까? 이미 날은 저물어 한밤중이었다. 그들은 육지에서 1~2km 남짓 떨어진 수심 깊은 호수 한가운데서 제자들은 힘껏 노를 저어보지만, 사나운 맞바람이 세차게 불어 도저히 배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시달릴(원어로 괴롭히다, 고문하다의 뜻)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홀로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실 때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듣고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숙고하시면서 멀리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상황들, 즉 맞바람, 어둔 밤, 막 흔들어대는 파도가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 25~26절 : (예수님의 현존) 어둠 속에서 제자들을 지켜준 것은 예수님의 현존이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과 멀리 떨어져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지만, 바로 아버지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온전히 제자들 곁에 계신다. 동이 터오자, 새벽녘에 물위를 걸어오신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늘 다가 오신다.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믿는 이들의 모임 안에서, 성사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알려주고 모습을 드러내신다. 안타까운 일은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다른 일에 사로잡혀 눈치 채지 못하고 겁에 질려 ‘유령’으로 착각한다. 믿음 없이 두려움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겁에 질려 유령으로 보인다. 불신에서 벗어났을 때 유령이나 도깨비가 아닌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27~31절 : (베드로의 용기)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말씀은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자기 정체를 밝히실 때 사용하신 표현이다(탈출3.14). 그러므로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다.’ 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이야기를 전하면서 마르코나 요한 복음에는 나오지 않은 베드로도 물 위를 걷는다. ‘물 위를 걷는다’ 함은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속성으로 표현해 왔다. 그런데 베드로가 대담하게 물 위를 걷겠다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바람은 심리적인 차원에서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자유에 대한 갈망, ‘자기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하겠다’ 고, 다시 말해 그 능력에 끼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번에도 앞에 나서고 실패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를 구해주신다.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 믿음이 약하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에 끼이고 싶었지만, 그 권능에 참여함은 곧 예수님의 시련을 함께 받는 일, 바람과 풍랑에 휩싸여 깊은 생각 없이 흉내를 내려다 그만 당황하여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이 비명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자기를 과시하려다 베드로의 약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 약점이 드러난 순간 예수님께서 그를 구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 사건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난을 감지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우리도 믿음을 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순간 베드로처럼 물속에 빠져들고 말겠지요.
* 32~33절 :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의 고백)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르고, 바람이 그친다. 그러자 배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16장 16절에서, 그리고 베드로가 27장 54절에서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 본 백부장과 예수님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선포된다.
♠ 복음 요약 : 끊임없이 믿음이 위협 당하는 상황을 복음서는 여러 비유와 표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다. 우리의 불안과 안팎으로 위협하는 어둠과 사회의 역풍에 대해 묘사한다. 교회 전통에서 배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상징한다. 예수 부활 이후 제자들이 거센 저항과 반대에 부딪치곤 했다. 호수 가운데서 박해와 배척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대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고 결국은 실상을 왜곡하여 유령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든 유혹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 굳건하고 충실히 머문다면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그런 이는 물 위에서도 세상의 혼돈도 공허함의 무의미한 심연도 그를 집어삼키지 못할 것이다. 풍랑을 겪는 배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거센 맞바람 속에서 가혹한 고통의 시련 속에서, 빵을 쪼개는 성체성사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매일 일상생활에서 어느 유혹이나 고통, 무의미 건조에서 실증을 느끼거나 혹시 죄에 떨어졌다 해도 그분께 말씀드리는 하느님 현존 수련을 일깨우고 있는 듯 보인다.
♠ 대화 방향 : 우리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유령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경우인지 기도하고 나누어 보자.
♠ 참고 문헌 :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김현택 사제 옮김 / 생활성서사)
▪ 마태오 복음 성서묵상 (C.M마르티니 지음, 성염 옮김 / 가톨릭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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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2017. 8. 20
마태오 15, 21~28
♠ 주제 발표 자료 : (가나안 여자의 믿음) 신약성서가 쓰여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였기 때문이고, 그 시기의 중심에는 서기 70년경 성전파괴가 중심이 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서기 60년경 로마황제 네로시절에 순교했다고 전해진 것으로 보아서 서기 50~60년경에 사도바오로의 친서가 작성되었으리라 본다. 신약선경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 특히 1세기를 전후로 하는 혹독한 박해시절을 경험한 유태인들은 유대인들의 내란이 실패로 돌아가자 로마황제는 성지 예루살렘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고, 예수님제자들은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섞인 공동체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고, 주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복음은 로마시대에는 로마제국 안에 있었고, 로마제국의 분열과 멸망과 모슬렘의 침입과 십자군전쟁, 이단의 발생 등으로 그리스도 본거지이고 로마의 본거지인 유럽이 온통 쑥대밭이 되었지만, 희안하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계를 행하고 있었다. 조선순조의 시대가 막을 열자 전국적으로 불어닥치는 천주교박해는 신자의 숫자를 늘여가게 하였고, 혹독한 대원군박해는 조선의 신앙의 자유로 향하게 만들었던 아주 신비스러운 일이 된다.
♠ 복음 공부
* 21~22절 : 띠로와 시돈은 옛 페니키아, 지금의 레바논의 항구 도시들이다. 가나안 부인은 그 지방 토박이 부인이란 뜻이다. 마르 7, 26 에서는 ‘그 부인은 헬라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신이었다.’ 라고 한다. 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높여 ‘주님’으로 받들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기려 ‘다윗의 아드님’으로 섬겼는데 이는 메시아와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가나안 부인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신앙을 한꺼번에 고백한다.
* 23~26절 : 26절은 짤막한 우화이다.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 또는 아브라함의 자녀로 자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빵’은 구원을 뜻한다. ‘강아지들’은 이방인을 가리킨다. 실상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또는 ‘돼지’라 했던 것이다.
* 27~28절 : 이방인 부인은 구원을 유대인들에게 베풀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찬동한다. 그러면서도 구원의 편린이나마 베풀어 주십사하고 간청한다. 예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청을 들어 주신다. 그리하여 ‘민족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12/21)는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 복음 요약 : 마태오는 마르코 7, 24~30을 옮겨 쓰면서 22~24절을 덧붙였으나 나머지 부분은 마르코의 이야기를 줄였다.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의 처신을 몹시 나무라셨다. 그런데 외국인 땅인 띠로와 시돈 지방에서 외국인 부인을 만나고서 놀라운 신앙을 확인하신다. 예수님께서 외국인들에게 구원행위를 베푸시는 이야기들은 모두 1세기 교회에서 이방인 전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 대화 방향 : 지금 어느 해보다는 어려운 환경에 속한 성서형제회는 엄격한 규정을 따지거나 아니면 아주 자유스러운 신앙생활에 안주하기보다는 우리선배들이나 창설자신부님이 ‘왜 어려운 환경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성서형제회를 만들고 이를 따르려고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50주년 이후 우리 후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헬라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신인 부인이 주님께 얻고자 하는 것들을 함께 찾아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기념 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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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2017. 8. 27
마태오 16, 13~20
♠ 복음 공부
* 고백. 주님의 질문이 일반적인 질문에서 구체적인 질문이 될 때 베드로는 복음에서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오 복음 16, 13) 이 “조사”의 결과는 예수님께서 예언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고 나서 스승님께서는 결정적인 질문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이때에 베드로가 홀로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아, 살아 있는 하느님, 우리 생명의 주인 예수님을 안다는 것,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특별히 목자들인 우리들에게 이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그것은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그것은 어정쩡한 질문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 우리의 삶 전체를 활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질문은 삶에 대한 대답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항목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분께서는 우리를 똑바로 보시면서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나는 누구이냐?”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 네 삶의 주인이냐, 네 마음의 갈망이냐, 네 희망의 이유이냐, 너의 실패하지 않는 믿음의 원천이냐?” 베드로와 함께 우리도 오늘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 삶의 선택을 다시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또한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에서 그분의 두 번째 질문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기를, 말뿐이 아니라, 우리의 실천과 우리 자신의 삶 안에서 “그분의 것”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말뿐인 그리스도인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봅시다. 말뿐인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세상에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야기하고 계속 나아가는 사도들은 자신의 마음 안에서 그분 예수님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으로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단순히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정쩡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불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그저 “발헤엄”을 치거나 쉬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날마다 새롭게 자기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들의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베드로와 바오로가 한 것처럼 합니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릅니다 –가는 길의 그저 일부분이 아니라 그 바로 끝까지 말입니다. 그들은 또한 우리 자신의 길이 아니라 그분의 길을 따라 그분을 따릅니다. 그분의 길은 새 생명의 길이고 기쁨과 부활의 길입니다. 그것은 또한 십자가와 박해를 통과해 지나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 복음 요약 : 사도의 삶, 그것은 고백에서 비롯되어 흘러나오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게 되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기도의 삶입니다. 기도는 희망을 키우고 충실함을 높이는데 필요한 물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해 주고 기도는 우리가 그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빛을 가져오기 때문에 어둠의 때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떠밀어 줍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고 우리가 역경을 이겨내게 도와주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보호 받으며 주님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삶을 주님께 의탁하며 사랑하시는 그분의 보살핌에 맡깁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고 지탱해 주는 힘이자 강인함이고 영적인 죽음으로 이끄는 자기만족과 고립의 치료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생명의 영이 숨 쉬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 우리를 포로로 붙들고 있는 내면의 감옥은 열릴 수 없습니다. 복된 사도들께서 우리가 그분들과 같은 마음을, 지쳤지만 기도 때문에 평화로운 마음을 얻게 해 주시기를. 끊임없이 구하고 두드리고 중재하고 주님께 맡겨야 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상황의 무게에 눌려 있기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평화롭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위로와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기도의 스승을 두어야 하는 일은 얼마나 시급한지요. 하지만 우리가 기도의 남자와 여자, 즉 삶 전체가 기도가 되는 남자와 여자가 되려면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고백하는 사랑에 진실하시며 그분께서는 시련의 때에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도의 여정에 동행하며 그분께서는 사랑하는 성서형제회 형제 여러분과 같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서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은 피를 흘림으로서 믿음을 고백했던 사도들의 사랑 안에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팔리움을 받은 사랑하는 사제들 여러분과 가까이 계실 것입니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은 실제로 어떤 분이며, 나에게는 어떤 분이신지 생각해 봅시다.
② 교황님의 교도권은 베드로 사도의 교도권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 교도권에 순종하는가? 아니면 교회에 대한 애정 없이 하느님과 직접 거래하려고 하지 않는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마태오복음 18, 13~20 은 지난 성베드로 성바오로 사도 축일 때 복음과 일치한다. 이번 복음공부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 복음을 주제로 하신 강론을 보고 묵상해보았다. 교황님께서 “오늘의 전례는 우리에게 사도의 삶에서 핵심이 되는 세 가지 단어를 제시해 줍니다. 고백, 박해 그리고 기도입니다” 에서 박해 부분을 삭제하였다. 나머지부분은 똑같으며,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묵상되도록 ‘교황님께서 사랑하는 주교들이여’ 부분을 ‘성서형제회 형제’ 로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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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봉사자 월례회의 스케치 >
뜨거운 여름만큼 열정적인 봉사자 월례회의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서기보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필자가 있는 문경새재의 길은 새벽녘에 번개와 비비람 속에 새재를 걸어서 차를 타야 하는 악조건이었기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아내가 차려준 간단한 식사를 한 후에 7시가 넘어서 집을 나선다.
1.2km를 넘어서 문경읍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으니 차가 와 있었다.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근처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목적지인 당산동성당으로 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종전에 모인장소로 가다보니, 서울 이 안셀모(기대) 형제가 불렀다.
그가 준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필자는 월례회 회합 장소로 갔다.
다함께 모여 주일복음 본문을 읽고 잠시 묵상한 후, 12시 쯤 당산동 팀에서 마련한 식당으로 이동하여 시원한 콩국수 또는 따끈한 만두국을 먹었다.
다시 성당 회합실로 돌아와서 ‘고통의 신비’ 묵주기도를 봉헌한 후 코이노니아를 시작한다.
1~2명의 나눔 이전에 본래처럼 수녀님의 훈화가 있었다.
‘씨뿌리는 이의 비유’ 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복음서에 따라오는 상황들... 마태오복음은 우화가 아니라, 비유의 말씀이라 하시면서 복음 전체의 맥락을 살피신다.
복음을 해석하는 방법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계시는가? ’, ‘비유의 말씀’ 등을 우리들에게 차례로 질의응답식으로 말씀하신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늘나라의 비유라고 하신다.
마태오 복음은 몇 개의 설교집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구약에서 비롯되는 씨뿌리는 자들, 모세와 각 예언자들의 이야기도 조금 넣으신 듯하다.
그 밖에서 우리생활과 연결되는 듯한 말씀도 하셨다.
복음나눔은 서울팀에서 외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필자는 이에 ‘잡초’에 대한 느낌을 덧붙였다.
본 안건 토의에 들어가서, 8월말에 실시할 연수회일정과 역할을 조율하였다.
대다수가 연수회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기를 기대하였다.
초안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던 성극을 다시 포함시켰다.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적지 않는 회원들의 열정적인 의견을 표출하였다.
특히 ‘평신도 봉사자들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나왔다.
8월 연수회는 초빙 신부님의 일정 등을 감안해서 프로그램이 큰 틀에서는 변경하지 않기로 하였다
8월 봉사자 월례회의는 연수회 첫날 일정이 끝난 이후에 갖기로 하였다.
서울 당산동 팀에서 보이지 않게 여러 가지 수고를 하였고, 연수회에서도 많은 역할을 맡았다.
걱정되었던 50주년에 대한 안건은 큰 틀에서 조직 구성을 마쳤다.
새삼 느끼는 것은, 특히 초기회원들의 생각들이 늘 성서형제회에 대한 것들이었음에 새삼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평소에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듯하지만, 그들은 결국은 성서형제회를 애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봉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성서형제회를 잘 알지 못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여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지...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따스하고 매력적인 특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성당 밖으로 나온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생활터전으로 각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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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1 >
삶의 지혜
전주 팀 FB
강 세례자 요한 (봉호)
+ 찬미 예수님 !
본 연구소에서 30여 년간 모아진 자료를 정리분석하다 보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오네요.
이 중요한 내용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께 알려드리오니 참고하시고, 수맥이 있는 침실, 화장실은 꼭! 반드시 피해서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 혹시 주변분들 중에 암환자나 중풍환자가 있으시면 그 집에는 수맥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 수맥검사를 꼭! 해보도록 권고하시기 바랍니다.
또 발병한 그 집에서 계속 생활하면 질병치료가 안되거나 더 악화되고 병원에서 치료하여 완치 후라도 반드시 재발... !
* 수맥이 있는 집에서 계속 생활을 하면 중풍발병확률 70% 이상, 암 발병확률 50% 이상, 치료 후 재발확률 90% 이상. (30년간 전국 수천 건의 주택 및 산소를 수맥 검사한 자료와 중풍 & 암 환자가 발병한 집을 추적하여 조사한 연구 분석자료)
* 환자가 발생한 집은 반드시 수맥검사를 해봐야 되고, 아직은 이상이 없더라도 예방차원에서 새로 이사한 집이나 현재 사는 집도 수맥검사는 필수... !
* 이 내용을 사랑하는 주변분들(특히 젊은층)에게 널리 알려 공유하세요.
* 주의 : 일부 수맥단체들의 무지와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오판이론 & 실기교육이나, 자기맹신감정(L-로드 검사 60% 이상 오판, 오랜 세월 동안 인체수련과정을 통해 터득한 전문가가 현장에서 직접검사로만 감정가능하며, 전화통화 감정, 마인드콘트롤, 점술, 지도보고 원거리 측정, 기타의 방법들은 모두 무지에 의한 오판), 차단제품 판매(수맥이 확인되면 그곳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며 피할 수 없는 경우 동판에 의한 직접차단 이외의 방법은 모두 차단불가, 맹신에 의한 사기) 등에 현혹 되지 마세요.
* 신부님, 수녀님, 일반신자들의 수맥감정은 유럽에서 들어온 서양사상에 의한 과학적 원리를 이해한 것이며, 미신적행태가 아니고 카톨릭신앙에도 위배되지 않습니다. 현재 유럽에서 시작된 수맥은 카톨릭교회에 의하여 전 세계에 보급되어 우물찾기와 건물짓기, 건강관리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수맥상담은 성서형제회 홈페이지에서 이 게시글의 댓글로 달아주시면 성실히 답해 드리겠으니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Since 1980 ˹남곡자연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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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2 >
조직 개편을 요구하면서...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성서형제회는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봉사를 한 사람에게 일임하면서 안건은 전체가 토의하는 모순된 모습으로 진행되는 듯합니다.
더군다나 아직도 코이노니아에서 모습을 볼 수가 없는 창설자 신부님이나 예수그리스도수녀회 수녀님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대부분이 이분들의 구체적인 영적지도를 받지 못하기에 성서형제회 봉사자들은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가운데에 성서형제회의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식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쁜소식지가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지만, 오래 전부터 소식지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든지 내용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소식지는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너무 억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월례회의시에는 전반부에 코이노니아를 하다 보니 그때 나눈 내용을 적는 영적일기를 정리하기 어렵고, 큰모임이나 연수회 묵상회에서 외부 강사들이 하신 소중한 강의내용을 수록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코이노니아와 복음묵상생활나눔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복음묵상자료’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현재 기쁜소식지는 한사람이 까페에 올라온 자료를 편집하고 있으나, 한정된 사람이 기고한 내용을 편집 발행하다 보니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평가만 하고 대안을 내놓지 않아 항상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편집위원회와 리포트를 선출하여 운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번 연수회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의 강론의 내용을 남기기 위해서 각기 프로그램 마다 이를 기록 정리하는 기록원을 별도로 지정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모든 기록을 서기 혼자서 기록할 경우에는 기록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정상적인 행사 참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행사에서 강의 등을 기록해두면 우리들이 앞으로 코이노니아 운영 및 행사 때에 유익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들 편집위원회와 리포트들은 이와 관련된 모든 안건을 수렴하여서 그 결과를 월례회의 때 보고하고, 그 결과를 처리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서형제회에 입회한 이후 여러 차례 연수회와 묵상회, 큰모임에 참가하여 그 안에서 놀라운 영성강의를 들었지만, 기억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제 ‘FB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해보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 놀라운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아니면 사진을 통해 미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많은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했지만, 정작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인 아나윔 정신 실천과 성서공부는 지금 거의 내실화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회원에 의존하여 근근이 이어져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또한 창설자 신부님께서 직접 만든 교본이 혹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면 이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새롭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수녀회와 성서형제회의 상호관계를 선명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단체인 소공동체나 레지오처럼 그 지향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들을 규정화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한 단체가 해를 거듭하면서 노출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소통하면서 메꿔나가야 할 것이고, 이는 반드시 창설자의 정신, 즉 교본에 입각해서 정도를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설립 50주년을 앞둔 단체답게 좀 더 세련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어떠한 준비와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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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7년 6월 입출금 내역
일자 | 내 용 | 수 입 | 지 출 | 잔 액 |
5 /30 | 전월 이월금 |
|
| 1,862,918 |
6 / 2 |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 50,000 |
| 1,912,918 |
6 / 5 | (전주 효자4동) 파티마 팀 F·B | 50,000 |
| 1,962,918 |
6 /12 | (서울 당산동) 로고스 팀 F·B | 50,000 |
| 2,012,918 |
6 /17 | (서울 목3동) 성가정 팀 F·B | 30,000 |
| 2,042,918 |
6 /21 | (전주 서신동) 그리스도폴 팀 F·B | 30,000 |
| 2,072,918 |
6 /25 | 예금 이자 | 436 |
| 2,073,354 |
6 /30 | (안산 원곡성당) 자매님 팀 F·B | 28,000 |
| 2,101,354 |
6 /30 | (전주 효자우전) 성모마리아 팀 F·B | 30,000 |
| 2,131,354 |
6 /30 | (전주 호성동) 예수성심 팀 F·B | 30,000 |
| 2,161,354 |
6 /30 | 사회복음화 지원금 (전주 교도소) |
| 50,000 | 2,111,354 |
6 /30 | 예수그리스도 수녀회 후원회비 |
| 30,000 | 2,081,354 |
6 /30 | <기쁜소식지> 인쇄비 (6월호) |
| 278,000 | 1,803,354 |
6 /30 | <기쁜소식지> 발송 우편요금 (6월호) |
| 60,200 | 1,743,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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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입출금 합계 | 298,436 | 418,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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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 1,743,154 | |||
봉헌금을 보내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입금할 계좌 : 농협 352-1096-7951-13 이정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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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소식란 >
♠ < 제 47회 FB 연수회 > 행사 안내
* 주제 :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 < 마태오 복음 16장 16절 >
* 일시 : 2017년 8월 26(토) ~ 27(일) (1박 2일)
* 집합 시간 : 8월 26일(토), 오후 1시까지 도착 바람 (점심식사는 본당별로 미리 해결할 것)
* 장소 : 천호성지 성당 (교육관) <☎ 063-263-1004 /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
☞ 가능한 한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성당까지 올라오세요... (서행 안전 운전 필수 )
* 참가 대상 : 성서형제회 회원뿐만 아니라, 비회원이라도 누구든지 참가 가능
* 참가비 : 60,000원 ( 장애우는 면제 / 팀 봉사자는 참고 바람)
* 준비물 : 성경, 교본, 미사준비물, 묵주, 필기도구, 여벌옷, 세면도구, 개인 비상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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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조 사항
① FB 연수회를 위한 ‘준비 9일기도’ 를 바칩시다.
--> 청원기도 : 8월 16일 ~ 24일 / 감사기도 : 8월 25일
② 각 회원들은 평소 좋아하는 ‘짧은 성경구절을 하나씩은 꼬옥 암송’ 해오세요.
③ 각 팀봉사자는 8월 20일까지 ‘참가자 인원수와 명단, 팀명칭’ 을 홈페이지 <FB자료 제출방>에 제출
--> 음식 및 장소 준비, 조편성 및 명찰 제작이 절대적으로 필요.
④ 명찰 준비하지 말 것 --> 본부에서 일괄 제작 배부.
⑤ 행사 음식 및 후원금 협조
--> 팀 또는 개인별로 후원할 분은 전국봉사자 및 회계에게 미리 연락 요망
*** 회원 및 팀 선서식
--> 회원선서 대상 : 입회 1년 경과자 / 팀선서 대상 : 설립2년 경과 팀
--> 회원 및 팀 선서 명단을 꼭 8월 20일까지 홈페이지 <FB자료 제출방>에 제출
♠ 9월 < F·B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 안내
-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을 다음과 같이 갖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17년 9월 16일 (토) 오전 11시
※ 장소 : 안산 원곡 성당
♠ 서울 목3동 성당 코이노니아 팀 신설 소식
- 지난 6월 21일(수)에 창단하여 첫 코이노니아 모임을 가졌던 목3동 성당 2번째팀(팀 말씀선포자 : 조 데레사(지형))의 명칭이 결정되었습니다. ‘복음의 기쁨’ 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에반젤리이 가우디움 / Evangelii Gaudium>입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고 있으며, 첫모임때보다 인원이 더 증가되었다는 보너스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목3동 성당의 오전반 저녁반 2개의 팀이 하느님 사랑을 풍성히 받아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 되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 < FB 창립 50주년 준비위원회 > 봉사자 모집 안내
- < FB 창립 50주년 준비위원회 > 의 각 분과에서 봉사하실 ‘분과장’과 ‘분과위원’ 봉사자를 찾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의와 달란트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봉사에 자원 바랍니다...
각 팀 봉사자님께 지원 신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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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의 겨자씨
“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 < 마태오 복음 16장 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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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모든 이가 창조의 아름다움을 발전하는 데에 도움을 주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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