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이 개장하고 시위는 최대한 통제한단다. 왜 했지? 조선5백년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민중들 민원의 길이라 관료들에게 말 타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빨리 달리면 민원을 들을 수 없으니까 생긴 위민시스템인데, 아! 분수 만들고 나무 심고 공연장 만들고 음향 조명 있다고 ㅎㅎ 이렇게 인문학이 없는 정부니... 총리는 서울 최고의 랜드마크라고?
광화문에 있는 유명한 교회이야기 나눈다. 한국 교회 최초의 조직 교회가 '새문안교회' 다. 새문안교회는 연세대학교를 세운 유명한 선교사 언더우드의 사택 정릉집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정릉교회라고 했기에 정동 감리교회가 정동제일 감리교회라고 했다.
1887년 9월 27일 화요일 정동 언더우드 사랑채(현 예원여중 운동장)에서 언더우드 목사 사회로 조선인 서상륜 등 세례교인 14인과 존 로스 목사가 참석한 가운데 정동교회(현 새문안교회) 이날 2명의 장로가 선출됨에 따라 최초 조직 교회가 되었다.
새문안교회는 1893년 승동교회, 1894년 연동교회, 1896년 서교동교회, 1906년 노량진교회를 개척한다.
①첫째 교회당은 한옥 예배당(1887~1895)으로 30명이 모일 수 있는 사랑채였다.
②둘째 교회당은 한옥 예배당(1895~1910)으로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이후 교인수가 많아지면서 언더우드가 1895년 300명이 모일 수 있는 사랑채로 (현 SG광화문빌딩)옮겼다.
③셋째 교회당은 로마네스크식 예배당(1910~1946) 으로 1907년에 염정승집터를 구입하여 세웠다. 지금의 새문안교회 터이기에 이 때부터 새문안교회 불렸다. 세브란스를 설계한 건축가 헨리 고든이 500명 수용의 로마네스크 양식 벽돌 예배당으로 설계했는데, 당시 명동 성당과 함께 장안의 서양식 건물로 명물이었다.
④넷째 교회당은 고딕식 종탑 예배당(1948~1971) 으로 700명 수용 규모로 1948년 봄 준공해 1949년 7월 31일 헌당한 예배당이다
⑤다섯째 예배당은 모더니즘식 예배당(1972~2014) 건축가 이구(영친왕 아들)가 설계하였다.
⑥여섯째 예배당은 지금의 건축물로 지하5층, 지상 13층 건물로 대지 1,280평에 연면적 8,962평으로 지어지며 본당 좌석 수가 2,840석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미소를 지었다. 84년 신대원 졸업반일 때 새문안교회에서 새문안교회 백주년 자료를 정리하는 전도사 추천이 있었는데 의미도 있고 조건도 좋았지만 자료정리가 너무 방대하고 연구하기가 싫었고 당시 삼양동에 있는 신성북교회 심방사역을 하는 전도사가 더 끌려서 움직였다. 만약 그 때 새문안으로 갔으면 어떠했을까?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