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김형자
발갛게 타는 여름 태양이 좋아 너울너울 하늘로 치솟던 이파리들이 땅을 향하여 조용히 내려가고 있다. 높은 잔가지 사이사이로 미련 없이 던지는 너의 몸짓은 무엇인가. 빛깔 좋은 단풍 한 잎 주워 너의 여정은 빛나고 아름다웠노라고 속삭인다. 바람이라는 기차가 나뭇가지에 닿으면 남은 이파리들도 어디론가 훌쩍 계절 여행을 떠나겠지.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죽음의 건널목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까. 아버지 가신 그곳에 다를 수 있을까.
착각이었다. 계절이 가면 또 온다고 믿었던 사실은. 사랑 또한 그렇다. 중환자실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면회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현실이 꿈만 같았다. 부쩍 잦았던 아버지의 안부 전화는 기약된 이별을 암시하고 있었건만 준비 없는 나는 그의 마지막 인사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 살아있음이 버거워 세상 밖으로 멀어진 무딘 마음을 아버지의 잔잔한 목소리는 춘풍 되어 어르고 녹여주었다. 보고 싶구나. 수능 끝나면 찾아뵐게요. 평소 아버지답지 않은 무겁고도 긴 침묵. 그날이 언제냐? 한 달 남짓. 너무 멀다. 너무 멀다.
너무나 멀다던 시공간을 성큼 건너 아버지는 꿈길로 찾아오셨다. 초록 들녘에서 가을 햇살처럼 웃고 계셨다. 그렇게 사흘 동안 멀다 않고 찾아오셨다. 당신을 외면했던 나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고 믿었던 눈 먼 사랑. 그게 진정 사랑이었더냐.
연노랑 나비 닮은 수의를 입고 달큼한 잠에 빠진 아버지와 코스모스 길을 달렸다. 생전의 아버지가 즐겨 다니시던 선산으로 가는 길이다. 10여리 한적한 길을 울적한 날엔 자박자박 걸어서, 그리운 날엔 자전거로 달려서, 화창한 날엔 낚시 가방에 소주 한 병 담고 소풍 삼아 다니셨다. 선영 다녀오시는 날은 갖은 야생화며 날 닮았다는 하늘하늘 삐비꽃이며 열매 꼬투리로 멋스럽게 장식한 밀짚모자가 아버지의 행복지수를 대변하곤 했다. 올 가을엔 낚시도 하고 소풍도 가요. 그렇게 말했던 날이 엊그제였는데. 장의 버스가 커브 길을 돌 때마다 잠귀 밝은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만 같아 뒤돌아보곤 했다.
아버지 떠나는 길에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꽃 한 송이와 몇 줌 흙이었다. 부끄러운 손끝에 망연자실 눈길이 머물 때 신도들이 부르는 성가가 들려왔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길, 하나님 나라로.
아버지는 하느님보다 조상 섬기는 일을 첫 번째 덕목으로 여겼다. 조상 은덕이 삶의 근원이라 믿고 묵묵히 일하며 남은 열정으로 오롯이 학문과 씨름했다. 조상을 그리는 애틋한 정만큼이나 배움의 열망 또한 특별했다. 군부 독재같이 혹독했던 근검절약 생활이 8남매를 의기소침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으나 후손에게 대입 학자금으로 지급하는 ‘할아버지표 장학재단’의 특혜(?)는 훈훈한 귀감으로 남았다.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빈말일지라도 당신의 척박한 현실과 세상을 비웃지 않았다. 또한 타협하지도 않았다. 주변이 아귀다툼으로 온통 시끄러워도 조용히 눈감고 귀 막으면 그만일 그에게는 준엄한 심판도, 십자가도 두렵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부끄러운 형벌은 조상을 등지는 일이었고 그것은 존재의 상실과 다름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고통의 역사(?)는 은밀히 깊어가고 있었지만 믿었던 어머니마저 유일한 아들을 좇아 개종한 후로 십자가의 길은 골 깊은 가시밭길로 접어들었다.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는 불치의 병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두 팔 벌려 불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종교는 감히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얻고자 부단히 투쟁하는 평화이며 십자가인가. 십자가의 피 흘리지 않고는, 승리의 영광 없이는 갈 수 없는 나라.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길, 하나님 나라.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시각이면 어김없이 기도하는 자세로 머무르시던 자리. 손수 만드신 손때 묻은 갈색 책상 앞에 앉아 잠시 아버지 흉내를 내본다. 단출한 책상 위에서 그의 한숨 같은 상아빛 파이프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쓰다만 일기장이 반긴다. 사랑하는 딸, 지혜로운 딸아. 일기장을 펼쳐든 순간 아버지의 다정한 음성 같은 필체 위로 눈물이 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젖은 얼룩 틈으로 긴 긴 울음을 울던 아버지가 보인다.
인공호스가 매달린 아버지의 몸은 탯줄을 감고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 같았다. 아기는 자신의 존재를 큰 울음소리로 알리는 법이건만 아버지는 야윈 어깨를 들썩일 뿐이다.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힘겨운 행위가 내게는 서러운 속울음으로 보였다. 낙엽이 마지막 투혼을 무언의 낙하로써 보여주듯이 아버지는 말없는 울음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그 이름 때문에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던 지난 시간들을 채우려는 듯 마지막까지 한마디 말없이 그렇게 울기만 했다.
떠나시기 10여일 전 날짜가 선명히 찍힌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장난스레 허리를 비틀어 S라인 포즈로 해맑게 웃고 계신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손사래 치며 뒷모습만 보이기 일쑤였는데 그날만큼은 자청하여 도발적인 자세를 선보이셨다지. 사진 속 아버지는 아무 일 없는 듯 하얗게 웃고 있는데 더 이상 그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니. 삶이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이라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일까. 아버지가 육신의 허물을 벗고 거짓말같이 사라졌듯이.
지난겨울에 나를 온통 달뜨게 했던 민들레 역시 그랬다. 입동이 지나고 소설이 다가오는데도 그는 덥석 세 번째 꽃망울을 터트렸다. 그의 끈질기고 숨 가쁜 엽기 행각은 일상으로 시든 나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첫 함박눈이 내릴 즈음 그는 잎을 죄다 날려 보내고 감쪽같이 씨앗을 품었다. 그리고 진눈개비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빈 가지와 추수를 끝낸 들녘의 침묵이 평화로운 이유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들의 노고 때문이리라. 잎은 잎으로, 꽃은 꽃으로, 열매는 열매로, 사람은 사람으로. 오로지 꽃 피우고 오로지 열매 맺는 일만이 삶의 전부였던 그들처럼 사라지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 일이다. 잉태의 씨앗을 쥐고 계절은 오늘도 바람처럼 달린다. 내일이면 은빛 눈가루를 뿌리며 겨울이라고 속삭일 것이다. 하얀 눈 속에 온갖 수고의 짐 묻어두고 편히 쉬라며.
매월 말일이면 텔레뱅킹으로 아버지께 용돈을 보냈었다. 수화기를 든 어깨에 힘이 풀리면서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OOO님의 통장으로 입금을 의뢰하셨습니다····” 수화기에서 흘러 나온 이름, 아픈 그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2007.2월 <에세이플러스>게재)
강진 출생.
2000년 5월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