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_그림일기책 ‘나에게 다정한 하루’
다정함이 우리를 살린다 2022_12 경향잡지 p115-118
글_김연기 라파엘라 방송 작가, 문화 기획자, 성가 가수,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여러 문화·선교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연말이면 흘러간 시간에 대한 만족과 후회,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오락가락하며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계절이면 나는 햇볕을 쬐는 일에 진심이다.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타민 D와 멜라토닌을 열심히 만들어야 하니까.
#우울이 마음을 노릴 때 : 몇 년 전 몸이 아파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종합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몸은 별 이상 없어요. 마음이 아프면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해요.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서 나는 아픈 원인을 찾았다고 안도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몹시 괴로웠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조기에 잘 치료하고 관리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어떤 이들은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그림일기를 담은 책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쓰고 그린 ‘서늘한 여름밤’(서방) 작가도 오랫동안 우울증과 함께 살아왔다. 그가 우울증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주위의 편견까지 그림일기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렇게 표현해 내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다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 묘하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의 일기에는 “서방 님 덕분에 위로받았어요. 저도 용기 내서 심리 상담하러 가요.”라는 댓글이 달린다. 열기로 가득한 어느 한여름 밤에 나 홀로 서늘한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들, 또는 너무 뜨겁기만 한 세상에서 서늘한 쉴 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서늘한여름밤’을 찾아온다. #멈춰 있을 힘 : 작가는 나에게 다정한 하루에 ‘더디지만 한 걸음씩 성실히 내딛는 자신을 아끼고 살피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았다고 한다. “내가 도망치고 끊어 내려 했던 것은 내가 두려워한 나의 이면..… 도망치지 않을 거야. 지금부터 함께 가는 거야. 느리게 가도 상관없어. 고통스러워도 끌어안을 거야, 너를.” 그의 걸음은 느리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이가 ‘나도 발을 내밀어 볼까?’ 하는 용기를 낸다.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주위 사람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다. 무기력함에 잠식되어 밥상을 차리는 것조차 힘든데도 내 껍데기는 직장에서, 성당에서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 구절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나는 전혀 기쁘지 않은데 주님 안에 있지 않아서 그런가?’ 내 우울은 죄책감을 키웠고 급기야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면 했다. 그 시간이 다 지나고 돌이켜 보니 서밤 작가의 말이 더욱 와닿는다. “나는 무기력함과 평화로움을 구분하지 못했다. 힘이 빠지는 것과 힘을 빼는 것이 다른 줄 몰랐다. 멈춰 있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좋은 것, 기쁜 마음, 살아 있다는 느낌은 마음의 여백에 머문다. 쓸모 있는 일들만 너무 많을 때에는 쓸모없는 일들로 지워 줘야 한다. 마음에 빈 곳을 두어야 한다. 쓸모없는 일들은 쓸모없지 않다.” - 나에게 다정한 하루」 중에서
#우리가 더 가까워지면 :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울한 마음이 위험하다고 하셨다. “우울함'이 마음에 들어오면, 마음은 병듭니다..… 우울한 마음으로는 기도할 수도 없고, 위로를 느낄 수도 없습니다!”(2021.5.19. 수요 일반알현 교리교육) 그러니 우울한 이들에게는 더욱 기도와 위로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91만 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 20~30대 환자가 무려 34.1%나 된다. “네 마음이 약하니까 그런 병에 걸린다.”는 말은 이들을 더 아프게 한다. 지난 3년 가까이 숨죽여 살면서 '코로나 블루'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이어지는데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걸 체감하는 시대에 우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공동체 전체의 문제다. 그래도 서밤 작가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나는 멀리 가는 게 무섭지 않아졌어.”라고 고백한다. 못나고 부족하다 여겼던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봐 주는 사람, 우울한 모습도 활기찬 모습도 내안에 공존할 수 있다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이 조금씩 옅어진다. 문득 연락해서는 내 안부를 길게 묻고 밥 한 끼 꼭 먹이고야 말던 사람들, “수고했다. 그보다 잘할 순 없었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 또한 마음의 감기에 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느님조차 내 고통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 너무나 외롭고 두려울 때 그들은 다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내 고개를 받쳐 주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마태 18,12) 하신 예수님께서 이들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셨다고 여긴 건 나만의 오해가 아니리라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또 다른 말씀을 떠올린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실수록, 우리는 더 기뻐합니다. 그분께서 멀리 계실수록 우리는 더 슬픔에 잠깁니다” (2020.12.13. 대림 제3주일 삼종기도). 우리가 우울을 밀어내고 삶의 참기쁨을 만끽하려면 주님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주님과 가까이 있으려면 우리도 서로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슬픔에 잠긴 이 주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이, 기도할 힘조차 없는 이와 우리가 가까울 때 주님께서는 더 가까이 계시리라 믿는다.
* 웃음으로 극복하기 (따뜻한 편지 2378)
심리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환경이 우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인데 ‘웃음의 치유력’ 책의 저자 노만 커즌스의 의견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잡지의 기자이자 편집장으로 일하던 그는 1964년 당시 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희귀병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는데 이후 일상생활은 물론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웃음은 유효기간 없는 최고의 약’이라는 철학으로 그날부터 각종 코미디 영화와 유머집을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10분 동안 실컷 웃고 나면 2시간은 아픔을 느끼지 않고 잠들 수 있었고 웃음의 진통 효과가 없어질 때쯤 되면 다시 영사기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배를 잡고 웃었고 재밌는 책을 읽으며 웃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8주가 지나자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몇 개월이 지나자, 목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치병에서 완전히 극복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웃음을 통해서 엔도르핀이 나와 자신의 병이 치료됐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웃음 치료학을 체계화하였고, 의학계의 인정을 받아 U.C.L.A 의과대학의 수업 과목으로도 채택되었습니다. 웃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지만 고통 속에서 웃음을 지켜낸다는 것. 슬픔 속에서 웃음을 되찾는다는 것. 힘든 삶에서 웃음을 피어내는 것.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음을 먼저 찾기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힘든 시기라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는 아무 일 없던 평범한 오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 몸에는 완벽한 약국이 있다.
우리는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강력한 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웃음이다.
– 노먼 커즌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