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24절기 중의 첫 번째 절기.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인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이며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아직 추위가 강하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 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춘첩자]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입춘굿]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아홉 차리]
지방에 따라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베푸는 `아홉 차리'라는 민속이 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게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이날은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을 줄 알았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면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 꾸리를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더라도 아홉 번을 맞았다. 굳이 아홉 번이라 함은 많이 했다는 의미이며 우리 조상들의 숫자 개념상 최고의 陽數(양수)이기 때문이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 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입춘방]
입춘날 입춘시가 들 때 대문, 중문, 곳간문, 방문이나 대들보에 써붙이는 글귀로 대구(對句)와 단구(短句)가 있다.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立春榜)'이란 속담이 있다.
잠결에 기지개를 켤 양이면 발은 마당 밖으로 나가고 두 주먹은 벽 밖으로 나가며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동네사람들이 걸리적거린다고 궁둥이 불러 들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아 대성통곡하는 그런 집이다. 그러한 집 기둥에 입춘(立春)을 맞아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격에 맞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입춘방 : 입춘날 입춘시가 들 때 대문, 중문, 곳간문, 방문이나 대들보에 써붙이는 글귀로 대구(對句)와 단구(短句)가 있다.
<短句(단구)에는>
春到門前增富貴(춘도문전증부귀)
春光先到古人家(춘광선도고인가)
一家和氣滿門楯(일가화기만문순)
人情富貴如將得(인정부귀여장득)
玉洞桃花萬樹春(옥동도화만수춘)
立春大吉(입춘대길)
掃地篁金出(소지황금출)
開門萬福來(개문만복래)
壽如山富如海(수여산부여해)
戶納東西南北財(호납동서남북재)
<대구(對句)에는>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國泰民安 家給人足(국태민안 가급인족)
雨順風調 時和豊年(우순풍조 시화풍년)
堯之日月 舜之乾坤(요지일월 순지건곤)
壽如山 富如海(수여산 부여해)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
天上近三陽 人間五福來(천상근삼양 인간오복래)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봉명남산월 인유북악풍)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
[입춘수]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이 입춘수(立春水)다.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알았다. 아울러 가을 풀섶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이 추로수(秋露水)다.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병을 예방한다고 알았다.
[선농제]
서울 동대문 밖에 제기동(祭基洞)-전농동(典農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구내)에서 베풀어졌던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비롯된 이름들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어왔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 도합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던 것이다.
[오신채(五辛菜)]
입춘(立春)날 먹는 시식(時食)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었다. 다섯 가지 매캐한 모듬나물이다.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오신채의 나물 종류는 달라지고 있으나 다음 여덟 가지 나물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쳤다.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 부추,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이 그것이다. 노란 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 나는 나물을 배치해 내는데 여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부여돼 있었던 것이다.
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받아 중신에게 나누어 먹인 뜻이 이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그로써 가족의 화목을 상징적으로 보장하고 인, 예, 신, 의, 지를 그로써 증진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그 아니 철학적인가. 이 세상 어느 나라 어떤 식품에 이만한 철학을 깐 식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른다 한다. 다섯 가지 맵고 쓰고 쏘는 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그 인생 오고(人生五苦)를 참으라는 처세의 신채 교훈도 담겨져 있다. 옛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고통에 저항력을 길러주는 역시 정신적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오신채는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인 데 예외가 없다.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절간의 수도승은 오훈을 금한다 했는데 바로 오훈이 정욕을 자극하는 오신채이기 때문이다.
옛 한시(漢詩)에 여인이 젊고 예쁘고 신선하다는 것을 표현할 때 신채기(辛菜氣)란 말을 쓰고 있음이며, 여인의 정욕을 마늘 기운 - 곧 산기(蒜氣)라 표현했음도 이 신채가 정력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입춘날에 톡 쏘는 매캐한 신채만을 골라 먹었던 오신채 시식은 한 해를 새 출발하는 청량제요, 자극제로서 십상이 아닐 수 없다. 오색을 갖추었으니 미학적이요, 정신이 담겼으니 철학적인데다가 과학적이기도 한 입춘날의 오신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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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바로알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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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gazet
첫댓글 입춘추위가 징그라......
산에 갔다가 얼어 죽는줄 알았슴당~~~11시30분 현재 범골약수터 영하14도...아고 추워~~~~ㅎㅎㅎ
일할땐 몰랐는데 나오니 장난이 아니데.. 겁나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