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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2월 13일 금요일
[(녹)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아히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솔로몬의 손에서 나라를 찢어 그중에 한 지파만을 솔로문의 아들에게 남겨 둘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어루만져 주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1,29-32; 12,19
29 그때에 예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다가
실로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30 아히야는 자기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움켜쥐고 열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31 예로보암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열 조각을 그대가 가지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32 그러나 한 지파만은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내가 뽑은 예루살렘 도성을 생각하여
그에게 남겨 두겠다.’”
12,19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가 일반 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그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난 선배가 있었는데, 하루는 이제 막 출간된 책을 읽다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책에 오타라니! 에이, 짜증 나!” 그런데 옆에 있던 또 다른 선배가 책을 집어 들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멋있고 완벽한 책에, 그까짓 오타 몇 개 가지고 왜 그래?”
같은 상황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작은 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를 넘어 우리 마음의 ‘열림’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면서 “‘에파타!’, 곧 ‘열려라!’”(마르 7,3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싶었던 신앙인의 자세가 이것이겠지요. 진정한 열림으로서, 사소한 흠보다 전체를 보는 넉넉한 시선 말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삶’이라는 멋진 책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삶에 날마다 새롭게 감격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연필심과 다이아몬드의 차이는 희귀성에 있듯이 이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존재는 없기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하느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뒤, 우리의 수많은 악행에도 당신 아드님을 내주신 까닭도 결국 이 한 가지를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요.
오늘 복음 환호송을 노래하며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기쁨을 되찾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오늘 우리의 귀도 다시 한번 시원하게 뚫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노화의 과정인지, 난청과 이명으로 인한 불편함이 만만치 않습니다. 여태껏 잘 사용했으면 됐지, 항상 이팔청춘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려니 해야지, 하고 크게 마음먹어보지만, 일상적 불편은 삶을 크게 위축시킵니다. 더불어 아예 들리지 않는 분들의 삶이 얼마나 불편할까, 공감하며 연민의 마음도 생깁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진 예수님의 치유과정 한 동작 한 동작은 모두 하느님 자비와 은총으로 충만한 행위들이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군중 가운데서 불러내어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대중 가운데서 오직 한 사람을 불러내십니다. 1대 1의 개별적인 관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치유작업을 시작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서 오직 한사람, 나만을 따로 불러내고 계십니다. 1대 1의 각별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을 환자의 귀에 넣으십니다. 마치 배앓이 하는 자녀를 배를 천천히 어루만져주는 엄마의 손길처럼 예수님께서는 환자의 아픈 곳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십니다. 이 신체적 접촉행위로 인해 이미 환자는 심리적, 정신적 안정감을 체험합니다. 이미 치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침을 발라 환자의 혀에 대십니다. 침은 당시 일종의 치료수단이었습니다. 마침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와 밀접한 통교 속에 계셨음을, 모든 기적은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한숨을 내쉽니다. 이 한숨은 환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당신이 치유작업이 만만치 않음을 나타냅니다. 치유 활동에 대한 부담감을 아버지께 호소하고 도움을 청하는 심오한 동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파타!”(열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에파타란 외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방인 지역이었던 데카폴리스 지방의 귀먹은 반벙어리는 전형적인 폐쇄형 인간의 상징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절벽 같은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폐쇄형 인간들 전체를 향해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하고 외치십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 가득한 종교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수신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이해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에파타” 하는 강력한 외침으로 인해 우리의 귀가 다시 한번 시원하게 뚫려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웃의 충고나 격려의 말씀을 통해서 들려오는 그분의 음성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뚫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예언자들의 예언서에 기록된 그대로였습니다. 이사야서 35장에 보면 이런 예언이 제시되어 있고, 예수님에 의해 예언은 그대로 적중되었습니다.
“그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우리의 귀가 제대로 뚫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눈이 제대로 열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혀가 제대로 풀리기만 한다면 세상만사가 다 기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삶 전체가 기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보기에 할머니가 요즘 통 못 알아듣는 것 같아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몰래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죠. 거실 끝에서 불렀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습니다. 조금 더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뭐야?" 역시 조용합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할머니 귀 바로 뒤까지 다가가 소리쳤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그러자 할머니가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습니다. "영감님! 벌써 다섯 번째 닭볶음탕이라고 말했잖아요!"
우리는 남이 못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귀가 막힌 쪽은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단순히 신체적인 치유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듣게 하시고, 다시 말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영적 귀머거리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뱀의 감언이설은 기가 막히게 들으면서 하느님의 금령은 못 들은 체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너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피해 덤불 속에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무서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귀가 막힌 상태입니다. 입이 막힌 것은 또 어떻습니까? 자신의 나약함과 죄를 고백하지 못하고 "저 여자 때문에", "저 뱀 때문에" 라며 남 탓만 늘어놓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 벙어리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이런 귀머거리와 벙어리들이 모이면 공동체는 지옥으로 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 프랑스의 포르 로아얄(Port-Royal) 수도원입니다. 이곳 수녀들은 엄격한 금욕과 지성으로 당대 최고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얀세니즘'이라는 엄격한 교리에 사로잡혀, 교회의 권고나 교황의 가르침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당시 파리 대주교였던 페레픽스는 그들을 방문한 뒤 "그들은 천사처럼 순결하지만, 악마처럼 오만하다" 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이 세운 완벽한 논리라는 벽 뒤에 숨었습니다. 한번은 수도원에 큰 위기가 닥쳐 서로의 도움이 절실했을 때조차, 수녀들은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어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화해하기보다, "누가 더 교리에 충실한가"를 따지며 서로를 정죄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라는 소리에 귀를 닫으니, 입에서는 오직 타인을 향한 칼날 같은 비판만 흘러나왔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의로움이라는 벽돌로 창문 하나 없는 캄캄한 감옥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말과 위선은 영혼의 벽돌과 같습니다. 하나씩 쌓을 때는 견고해 보이지만, 어느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됩니다. 내가 더러워도 더러운 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공동체는 이 벽을 깨부수고 서로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의 엘비라 수녀님이 세운 체나콜로 공동체(Comunità Cenacolo)는 마약과 절망에 빠진 이들의 피난처입니다. 이곳의 치유는 '진실의 시간(Revisione di Vita)'에서 시작됩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던 안드레아라는 청년은 어느 날 동료들의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예전 같으면 숨기고 거짓말을 했겠지만, 그는 떨리는 다리로 형제들 앞에 섰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어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너희의 것을 훔쳤다. 내 안의 어둠이 다시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그 순간 공동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동료들이 다가와 안드레아를 안아주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이 시간은 『La Risurrezione』(부활)이라 불립니다. 죄를 입 밖으로 내뱉어 어둠을 드러내는 순간, 막혔던 영적 귀가 뚫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분명히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서로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야고보 5,16). 고해성사가 주님과의 수직적인 화해라면, 형제들과의 죄 고백은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수평적인 호흡입니다. 거짓말은 벽돌과 같아서 쌓을수록 영혼을 가두지만, 고백은 그 벽을 허물고 빛을 들여보내는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결론으로 시리아의 교부 성 에프렘의 영성 깊은 묵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의 혀에 침을 바르시고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이라는 손가락으로 우리 영혼의 빗장을 만지셨다. 그분이 '에파타'라고 외치신 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직접 열어젖히신 사랑의 폭력이다."
이제 입을 열어 나의 더러움과 나약함을 솔직히 고백합시다. 그런 분위기의 공동체에 머뭅시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것에 비추어 나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라면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이 확실하고,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의미의 ‘Black Lives Matter(BLM)’라는 문장을 달며 인종차별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학교와 공원, 거리 곳곳에 시민들이 모여 “Black Lives Matter.”를 외쳤습니다. 미국 50개 주 전역의 2,000개 이상 도시에서 크고 작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렸습니다. 지난 1월 7일 미네소타에서 ‘르네 니콜 굿’이 이민단속국 직원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이민단속국을 비난하며 시위에 나섰습니다. 1월 2일에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부부를 납치하여 미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미국의 법에 따라서 재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산하 국제기구를 탈퇴하는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이유는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에 의한 죽음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폭력으로, 힘으로 약한 나라를 침략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지난 1월 9일 국민배우 ‘안성기 사도 요한’의 장례미사가 명동성당에서 있었습니다. 큰아들 안다빈은 1993년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읽으며 장례미사에 온 추모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다음은 편지의 내용입니다. “다빈아, 네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던 날 아빠를 꼭 빼어 닮은 아빠 주먹보다도 작은 너의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아빠의 눈은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렸지. 그런데 벌써 이만큼 커서 의젓해진 너를 보면 아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구나. 다빈아, 다빈이는 이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래, 아빠는 다빈이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기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는 야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끝없이 도전해 보아라. 그러면 네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 그리고 너의 동생 필립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쁘게 생각하고, 동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그런 형이 되거라. 내 아들 다빈아,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생전의 안성기 사도 요한은 한남더힐에 거주할 당시, 1년에 한 번씩 힐튼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모두를 초청하여서 식사하였다고 합니다. 40년 동안 유니세프 홍보대사였던 안성기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유니세프와 같이 일하는 안성기입니다. 제가 유니세프와 함께한 것은 몇 년이 되었지만, 정식으로 친선 대사의 직을 맡아 일하기는 지난해 초부터였습니다. 제가 유니세프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단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였고, 또 어린이를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에 관한 관심과 사랑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국경이 있을 수도 없다고 봅니다. 어린이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입니다.” 안성기 사도 요한은 아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대로 살았습니다.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알았습니다.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왕’의 이야기입니다. 준비 안 된 사제를 임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왕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지는 삶의 방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로보암은 하느님과 멀어지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베풀어 주었던 은총과 자비를 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리에 이방의 신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의 신을 섬기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복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준비된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배고픈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게 됩니다. 가지고 있던 빵과 물고기를 모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며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면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오늘의 성인
성녀 가타리나 데이 리치 동정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리치(Ricci)
활동연도 : 1522-1590년
같은이름 : 카타리나, 까따리나, 캐서린
성녀 리치의 카타리나(Catharina de Ricciis,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프라토(Prato)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수녀이다. 그녀는 좋은 감각과 정성을 다하여 맡아온 수련장과 장상직을 사임하였는데, 그녀의 놀라운 신앙 체험들은 많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매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탈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성녀 카타리나의 영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타난 그대로 교회의 개혁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그리고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아왔다.
성녀 카타리나는 1590년 2월 2일 선종하였고,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46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축일은 지역에 따라 2월 2일 또는 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 마르티니아노(Martinian)
신분 : 은수자
활동지역 : 카이사레아(Caesarea)
활동연도 : +400년경
같은이름 :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안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태어난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18세 때에 고향 근방의 '계약의 궤의 장소'라 불리는 산으로 은거하여 은수자로서 25년을 살았다. 그의 전기에는 전설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중의 한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조에(Zoe)라는 한 카이사레아의 여인이 그의 성덕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유혹해보려고 하였다.
그녀는 밤늦게 사막을 방황하는 가련한 여인으로 꾸몄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의 움막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새벽녘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넝마 같은 옷을 벗고 화려한 옷으로 갈이 입으면서 성 마르티니아누스에게 자신은 카이사레아의 귀부인이며 막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제의하였다. 그는 쾌히 승낙하면서 오늘 축복받으러 올 사람이 있지만 같이 가자며 길을 나선 후 갑자기 자기 움막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그 불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몸이 반쯤 그을린 채로 밖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이처럼 약한 불도 못 견디는 주제에 연옥의 불은 어떻게 견디겠소?” 하고 말하였다. 이에 그 여인도 회개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하늘을 지붕 삼고 바람을 친구로 삼아 일생을 살았다.
그는 특히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위대한 수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성 야고보 (James)
신분 : 대주교
활동지역 : 비테르보(Viterbo)
활동연도 : 1255-1308년
같은이름 :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제임스
이탈리아 비테르보의 귀족인 카포치(Capocci) 가문에서 태어난 야고보(Jacobus)는 1270년경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에 입회하였다.
파리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그는 1293년부터 1300년까지 파리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당시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Philippe IV)는 교황권과 세속 왕권의 한계 문제로 겨루고 있었는데, 야고보는 신학적인 범주를 넘지 않으면서 교황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1302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는 그를 베네벤토(Benevento)의 주교로 임명했고, 이듬해에는 나폴리(Napoli)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재임기간 중 주교좌성당을 재건하는 공사를 진행시켰다. 1308년 나폴리에서 선종한 그는 1914년 6월 4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성 모돔녹 (Modomnoc)
신분 : 수도원장 주교
활동지역 : 아일랜드(Ireland)
활동연도 : +550년경
같은이름 : 모돔노크
성 모돔녹의 찬가는 이런 구절로 시작된다.
“작은 배를 타고 동으로부터 검푸른 바다를 가로질러, 나의 모돔녹은 아일랜드 사람에게 은혜로운 벌들을 모시었네.…” 그는 아일랜드 왕가의 후손으로 웨일스(Wales) 지방에서 높은 지식과 수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여기서 그는 성 다윗(David, 3월 1일)의 지도를 받으며 벌을 돌보았는데, 후일 귀향할 때 그 벌들을 아일랜드로 가져와 보급시켰다.
일부 성인전 작가들에 의하면 그는 아일랜드 남동부 킬케니(Kilkenny)의 티브래니(Tibraghny)에서 은수자가 되었고 후에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성 아가보 (Agabus)
신분 : 예언자 순교자
활동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연도 : +1세기
같은이름 : 아가부스, 하가보
예루살렘 출신의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자 예언자였던 성 아가부스(또는 아가보)는 안티오키아에 가서 로마 제국의 기근을 예언하였는데(사도 11,27-28), 이 일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재임 기간인 49년에 실제로 일어났다.
그는 성 바오로(Paulus)의 투옥을 예견했던 아가부스와 동일 인물인 듯하다(사도 21,10 이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하였다
성녀 푸스카 (Fusc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250년
성녀 푸스카는 15살 된 소녀로 데키우스 황제 때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에서 유모인 성녀 마우라(Maura)와 함께 순교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이들 성녀들은 각각 칼에 찔린 소녀와 유모로서 표현된다.
그들은 라벤나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복자 안젤로 딴끄레디(ANGELO TANCREDI DA RIETI)
신분 : (OFM 프란치스코 1회)수도자
활동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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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 :
1첼라노 109, 110 에서 프란치스코, 그가 몹시도 그리던 곳(뽀르찌웅꿀라)에서 며칠을 쉬고 나서,그는 죽음의 시간이 임박하였음을 느꼈다. 그때 그는 형제이며 정신적인 아들로 생각하는 두 형제를(완덕의 거울에 따르면 안젤로 딴끄레디와 레오이다)
불러 부탁하기를 죽음이 다가오고 있으니, 아니 차라리 생명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니 기쁨에 넘친 큰소리로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이는 태양의 노래를 뜻한다) 부르라고 하였다.
갑자기 그는 온 힘을 다하여 다윗의 시편을 큰소리로 읊었다: "목소리 높이어 주께 부르짖나이다.
소리소리 지르며 주께 비옵나이다.(시편141) ... 이윽고 그가 성서를 가져오라 명하였고, 요한 복음의 다음 구절부터 읽으라고 하였다: 과월절 6일전에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셨다."(요한12,1; 13,1.3.)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과 제대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루피노, 안젤로 형제의 무덤이, 오른쪽에는 레오와 맛세오 형제의 무덤이 있고, 성인의 무덤 맞은편에는 야고바 형제의 무덤이 있다.
세 동료 전기(Legenda trium sociorum)
"세 동료 전기"는 그 저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프란치스코라는 역사적 인물을 아씨시라는 틀 안에서 제시하고자 목적하고 있는 가장 세심한 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료로써 1246-47년경의 작품이다.
모든 사본들이 그렉치오의 세 동료들의 편지(1246.8.11)를 서두에 달고 있다. 이 때문에 "세 동료 전기"로 불리어 오고 있으나, 오늘날 아무도 이것이 "세 동료들의 전기"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소위 혹은 이른바 세 동료 전기"라 부르는 것이 가장 올바른 호칭일 것이다.
"세 동료 전기"는 "제1첼라노"와 스피라의 율리아노를 사료로 택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요소들을 첨부하고 있으며 "익명의 뻬루지아 전기"를 그대로 따르면서 새로운 요소를 첨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동료 전기"는 후에 "제2생애"
제1부의 주요 원천이 된다.
아씨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강조하고 있음을 볼 때 아마도 저자는 아씨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제2첼라노"이전의 작품으로 토마스의 "제1생애"를 반박하기 위한 목적도 아울러 지니고 있는 듯하다.
"세 동료 전기"에서 나타나는 프란치스코는 지혜로운 상인이요 사업가이며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정중하고 예의 바른 젊은이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회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나환자와의 만남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데서 프란치스코 자신이 유언에서 언급하는 회개 여정과 가장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성인을 현양할 목적으로 기적 사화를 전혀 전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마디로 "세 동료 전기"는 아씨시판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청년기의 프란칫코와 회개 및 형제회의 창설 과정 등에 있어서 가장 정확한 사료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들과 문제점-오상선바오로O.F.M. 프란치스칸 삶과사상 1999 특집호202-203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