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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
(마 9:9-13) 마태를 부르시다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각 복음서에서 마태를 부르신 일부터 열두 제자를 세우신 일까지 한 단위를 이룬다. 각 복음서에서 예수의 사역을 배치한 구조는 다르지만, 사역이 배치된 구조와 내용을 비교하면 복음서들의 강조점을 알기 쉽다. 마태복음에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열두 제자를 세우는 사건은 한 단위를 이룬다. 그러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같은 사건들을 배열하고 있다. 그것들은 예수께서 두 안식일에 행하신 일들이다. 이를 통하여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강조한다. 마가복음은 귀신들이 엎드리며 부르짖는 내용을 선교 사역의 결론으로 덧붙여서 예수께서 죄인들과 식사하시며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들임을 강조한다(막2:13-3:19). 누가복음은 죄인들을 상에서 먹게 하시며 안식을 주시는 예수와 그의 나라를 강조한다(눅5:27-6:19). 그러나 마태복음은 전혀 다르게 사건들을 배열하고 결론짓는다. 예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혈루증 여인을 치료하시며, 두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귀신들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신다(마9:9-10:42). 이처럼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예수에게 나아온 자들이다. 율법이 시행되는 유대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에게 나아온 자들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성전에 계신 여호와께 나아가야 하나, 그들은 널리 퍼진 소문을 따라 예수에게 나아온 자들이다. 이처럼 예수에 대한 소문이 온 땅에 펴졌음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러나 모세율법(구약성경)을 고집한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대적한다(마12:24). 이처럼 마태복음은 예수의 사역과 율법을 고집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대조하여, 마태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율법 아래의 삶을 버리고 예수에게 나아와서 그를 따르라고 권면한다. 이는 바울처럼 율법 아래의 삶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를 알고 섬기는 삶을 추구하라는 말이다(빌3:5-11)
본문의 위치와 내용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말씀은(9:15-17) 각 공관복음서 문맥마다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모두에서는 세리 마태 집에서 죄인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과 신랑과 함께 있는 제자들은 금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함께 언급한다. 특히 누가복음은 두 사건을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로 말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두 사건을 구분하여 언급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연속으로 이어지는 일로 언급하나 단락을 지어서 기록한다. 이처럼 이 두 사건은 긴밀하게 연결된 사건이다. 따라서 본문은 마태가 단락으로 구분한 의도를 따라 해석해야 한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죄인들과 식사하신 사건은 그 뒤에 이어진 사건들의 머리말에 해당이 된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는 이어지는 사건 의미와 서로 상응한다. 예수께서 세리 마태와 식사하신 일 뒤에 이어지는 사건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서로 다르다. 따라서 세리 마태와 식사하신 일에서 말하는 강조점도 서로 다르다. 마가복음은 죄인들을 부르려고 오신 하나님 아들을 강조하고, 누가복음은 신랑이신 예수의 상에 동참한 죄인들과 함께 먹는 제자들을 강조하며, 마태복음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천국 왕 예수를 강조한다.
예수께서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니 따른다. 이처럼 예수께서 마태를 부르신 의미는 문맥에 한정된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제자를 부르심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이다(마4:18-22). 이는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를 따르라는 부르심이다. 그런데 세리 마태를 부르심은 그의 집에서 제자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기 위한 부르심이다. 이러한 본문을 시작하는 말과 끝맺는 말은 서로 상응한다. 예수께서 마태를 부르시고 그 집에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은 끝맺는 말인 “너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는 말과 상응한다(마9:13). 큰 단락을 시작하는 시작점인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식사하신 사건은(마9:9-13), 마지막 사건인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제자들을 보내셔서 천국을 전파하게 하신 사건과(마10:106) 대칭이며 서로 상응한다. 이러한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함께 식사하신 사건과 상응하는 다른 사건은 세리장 삭개오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거하시며 식사하신 일이다(눅19:9-10).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느냐
공관복음서는 예수께서 식사하는 대상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비방하는 대상을 다르게 기록한다. 마가복음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기록함으로(막2:16) 많은 죄인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를 강조한다. 그런데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죄인들과 함께 먹는 예수를 제자들에게 비방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위해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비방하여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있느냐"라고 기록함으로(눅5:29-30) 예수를 위하여 배설된 큰 잔치와 많은 죄인의 참여를 강조하며, 죄인들과 함께 먹고 있는 제자들을 비방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마태 집에서 앉아 잡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않았더니"라고 기록하여(마9:10-11) 예수께서 많은 죄인이 와서 예수와 제자들과 함께 앉은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함께 먹는 예수와 제자들을 비방한다. 그런데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의 비방은 합당한 일이다. 모세율법은 세리나 죄인들과 식사의 교제를 금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의 비방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만 쓸데가 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답변하며(마9:13), 호세아서 6:6을 인용하여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죄인들과 식사함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포로가 된 백성에게 여호와의 신속한 회복을 약속하면서 여호와께 신실할 것을 외친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인애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일이며 이는 언약에 신실함과 상응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제사는 번제를 말한다. 이러한 반복은 강조이다. 이처럼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와께 드리는 율법 제사와 신실함을 대조하며, 외식하여 멸망을 받은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사랑하고 언약에 신실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호세아서를 인용하면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씀하신다(마9:13). 이처럼 예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말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책망하신다. 여기에서 예수께서 언급한 긍휼은 죄인을 부르시고 그의 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참여케 하신 긍휼이다. 이처럼 종말에 예수를 통하여 나타난 긍휼과 대조되는 제사가 바리새인이 고집하는 모세율법이다. 율법 사회에서 바리새인은 크고 먼저 된 자이며, 세리와 죄인은 율법 아래에서 작고 나중 된 자이다. 따라서 율법 아래에서 바리새인은 여호와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으나 세리와 죄인들은 여호와의 식탁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의 식탁에 제외된 세리와 죄인들을 자기 상으로 부르셔서 참여케 하신다. 그러나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을 고집하고 가르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와 제자들을 비방한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고집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는 필요가 없는 의원이다(9:12). 이처럼 예수께서는 율법이 용납하지 못하는 병든 자와 죄인들을 영접하여 제자들과 함께 그의 식탁에 앉히시고 식사의 교제하시는 긍휼과 생명의 왕이시다.
맺는 말
유대인 식사의 근본적인 개념은 유월절 식사이다. 그들은 유월절에 한 마리의 양을 잡아 함께 식사함으로 한 몸 된 공동체임을 고백하였다. 이것이 율법 아래에 세워진 이스라엘 식사의 근본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식사는 유월절에 제물과 떡을 먹고 마시는 제사장 식사가 백성들에게까지 확대된 일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먹고 마심의 궁극적인 의미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식사는 가나안에서 난 소산물을 먹고 마심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것은 가나안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기업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통한 여호와의 옛 뜻과 경륜의 종착점이 아브라함 후손이 가나안땅에 종착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땅은 우리에게 천국과 같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식사는 단순히 영양분을 취득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상에서 먹고 마심을 소망하는 방식이다. 백성들이 제사장이 성소의 떡과 제물을 먹음을 소망하는 가운데서 행하는 식사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식사 본질이고 목표이며 소망이다. 모세율법을 범한 불의한 자는 여호와의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같이, 문둥병자나 죄인들은 백성들과 함께 식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약에서 경건한 백성들은 세리나 죄인들과는 대화하거나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힐문은 모세율법에 따르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다.
율법이 시행된 유대 사회에서 죄인의 표상은 세리와 창녀이다. 그런데 율법은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과는 식사의 교제를 금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세리 마태의 집으로 들어가셔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하신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은 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하는가”라고 따진 것이다. 이는 왜 너희 선생은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의사 비유를 들어서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오셔서 아버지의 상에 나아오도록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휘장의 장벽을 두고 이스라엘을 대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아무 때나 누구든지 여호와께 나아갈 수가 없었고, 죄인의 표상인 세리와 창기들은 백성들과 식사의 교제가 불가능하였다. 이처럼 율법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등급과 차등의 장벽이 있었으며 맨 마지막 위치를 점한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는 세리와 창기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 아래의 장벽과 등급의 질서는 종말에 예수께서 오심으로 사라진다. 이는 여호와께서 휘장의 장벽을 없이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옛 언약내용인 613개 항목의 율법과는 다른 뜻과 경륜을 시행하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율법 아래에서 주어졌던 등급과 차등의 질서가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에게 나아와서 믿고 따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영생이 주어진다. 율법이 주지 못하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이러한 구원과 생명이 주어지는 광경이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 일이다. 세리와 죄인들은 율법으로는 불가능한 일, 곧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식사하였다. 이는 구약 대제사장도 누리지 못한 일이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이다. 이것이 구약 중보자인 모세와 종말의 중보자인 예수의 차이이다. 이것이 땅의 일을 말하는 구약성경과 하늘의 일을 말하는 신약성경의 다른 점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

첫댓글 한분이라도 도와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이 필요합니다 카페지기는 아주 어렵게
지냅니다 투병중에 생활고로 어렵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박경옥 전도사가 하루 두번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다
먹을것도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도와주셔서...
용기릏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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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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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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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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