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선생에게 임하는 더 큰 심판
☞ 야고보는 2인칭 복수 명령문을 사용해 공동체가 숙지해야 할 사항을 전한다. 아마도 수신자 교회에 선생들의 가르침이 혼란을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1인칭 복수(우리)를 사용해 자신도 이 교훈을 따라야 할 대상에 포함시킨다. 그는 선생들에게 ‘더 큰 심판’이 있다고 선언하는데, 예수님도 엄중한 심판이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셨다.(마태복음 23:15) ‘많이’라는 표현은 가르치는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이 교회 내에 적지 않음을 보여 준다.
2절 온전한 사람
☞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이 선생의 자격으로 제시된다. 선생은 유대교뿐 아니라 초대교회(사도행전 13:1)에서도 명예로운 자리로 여겨졌다. 그런데 가르치는 자가 말에 실수하면 공동체에 어려움을 촉발시킨다. ‘실수’는 파멸과도 연결된다.(베드로후서 1:10)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성숙한 신앙의 사람, 권면의 말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굴레를 씌우다’(칼리나고게오)는 야고보서에만 2회 사용된 단어다.(1:26) 혀를 통제하면 몸까지 제어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3-4절 혀의 통제와 순종
☞ 혀를 통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에 비유한다. 두 번째로는 배에 있는 키에 비유한다. 사공은 작은 키로 큰 배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나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은 키가 가진 통제력을 예로 든 것은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말이 갖는 영향력을 설명하고자 함이다.
5절 혀의 위험성
☞ ‘이와 같이’(후토스)라는 단어를 앞에 두어 3-4절의 결론을 제시하면서 실제 경우에 적용한다. 야고보는 ‘자랑하도다’라는 말로 혀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혀의 파괴력을 작은 불이 일으키는 큰 재앙을 예로 들어 강조한다.
6절 혀와 사탄의 원함
☞ 혀의 위험성에 대해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라고 단언한다. 혀의 악한 사용은 사람을 파멸로 몰아간다. ‘삶의 수레바퀴’(로코스 테스 게네세오스)는 족보를 의미한다. 혀가 집안이나 가계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혀의 악한 행위의 출처가 이 땅에 있지 않고 ‘지옥 불’(마태복음 5:22)에 있음은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니라 사탄의 원함을 이루기 때문이다.
7-8절 혀의 사악함
☞ 야고보는 동사 ‘다마조’(길들이다)를 두 번(현재와 완료 시제) 사용해서 혀를 길들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혀를 길들일 수 없는 이유는 혀가 ‘쉬지 않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는’에 해당하는 ‘아카타스타토스’는 통제가 어려운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한다.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는 표현은 혀의 사악함과 파괴성을 드러낸다.
9-10절 혀의 이중성
☞ 혀의 이중성은 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저주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찬송’은 인간이 말로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고귀한 행위다. ‘저주’는 인간이 말로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추악한 행위다. 하나님의 형상(창세기 1:27)을 가진 사람을 향한 저주는 결국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향한다. 이는 마땅하지 않는 불경한 행위다.
11-12절 혀의 불가사의함
☞ 단 물과 쓴 물이 한 샘에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현상을 거론하면서 한 혀(입)를 통해 찬송과 저주를 내는 것을 비판한다.(잠언 5:3-6) 한 샘이 두 종류의 물을 동시에 낼 수 없듯이 나무도 여러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한 입으로 다른 열매를 맺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13절 지혜의 온유함
☞ ‘지혜와 총명’은 야고보서에만 등장한다. 수사 의문문에 사용된 이 두 단어는 수신자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자를 부정적으로 지칭한다. 지혜는 현명한 판단을 가져오는 원천이며, 총명은 탁월한 식견을 지닌 이해력이다. 야고보는 지혜와 총명이 있다는 교사에게 증명을 요구한다. 지혜와 총명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선행, 즉 믿음의 행함이다.
14절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말
☞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야고보는 행위의 근원인 ‘마음속’을 언급한다. 독한 시기와 다툼은 마음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에게 두 가지를 경고한다. 첫째, 자랑하지 말라. 온유함으로 믿음이 행위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는 교훈이다. 사랑의 율법을 외면하면 지혜(지식)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말하지 말라. 진리와 거짓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16절 잘못된 지혜의 결과
☞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는 지혜는 세속적이고, 정욕을 따른 것이며, 귀신에게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혼란과 악한 일이다.
17-18절 하나님의 지혜
☞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의 진리로 인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등을 낳는다. 땅 위의 지혜와의 차이를 이러한 열매들로 강조한다. 화평과 의의 열매는 야고보가 바라는 공동체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