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회개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8,9-14
2026년 3월 14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성격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좋다고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외향적이면 성격이 좋다고, 내향적인 성격이면 좋지 않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감성이 풍부하며, 생각에 깊이가 있습니다. 이는 곧 생각하는 능력이 남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역사 안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성격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서 성격의 좋고 나쁨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사람은 변합니다. 지금의 모습이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서 사람들을 얼마나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습니까?
초등학교 때에 정말로 말썽을 많이 부렸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이 친구의 멈추지 않는 말썽에 선생님께서도 참지 못하셨고, 너무나 자주 그것도 엄청나게 혼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이 친구를 벌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말썽꾸러기 100단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이 어렸을 때의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지금 이 친구는 종종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훌륭한 연극배우인 동시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이 친구가 아주 별 볼 일 없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지금 그 친구를 보면 분명 선생님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서 미래를 섣부르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항상 틀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기도하는 모습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먼저 바리사이는 오만과 자만에 빠져서 터무니없이 남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건강하고 다른 사람들은 병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에 반해서 세리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의 기도하는 자세는 겸손을 보여줍니다. 그는 남과 비교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지금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었을까요? 자신은 옳고 남은 틀렸다는 판단은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서 틀렸다고 규정하는 못된 습관도 버려야 합니다. 대신 자기 자신에 집중하면서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만 의롭게 되어 집에 편안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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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어떤 말을 하십니까?」
우리는 말로만 괜찮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괜찮다고 해야 합니다. 아들이 수능을 망쳤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괜찮아.”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아이고 두통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엄마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통이야...”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냥 말로만 괜찮아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괜찮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짧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좀 쉬었다 가도 괜찮아. 힘내자.”라고 말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또 “다른 길도 괜찮아. 꼭 이 길만 있니? 파이팅!”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실제로도 괜찮을 때에는 말이 길어집니다. 또한 감정도 담기게 됩니다. 이러한 말로써 진정으로 위로하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애니 딜러드).>
2026년 3월 14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8,9-14)
だれでも高ぶる者は低くされ、
へりくだる者は高められる。
(ルカ18・9-14)
Everyone who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and the one who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Luke 18:9-14)
四旬節第3土曜日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ヌグドンジ ザシヌル ノッピヌン イヌン ナザジゴ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チャシヌル ナッチュヌン イヌn ノッパジル コシダ。
(루카 18,9-14)
だれでも高ぶる者は低くされ、
다레데모 타카부루 모노와 히쿠쿠 사레
へりくだる者は高められる。
헤리쿠다루 모노와 타카메라레루
(ルカ18・9-14)
Everyone who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and the one who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Luke 18:9-14)
Saturday of the Third Week of Lent
Luke 18:9-14
Jesus addressed this parable
to those who were convinced of their own righteousness
and despised everyone else.
“Two people went up to the temple area to pray;
one was a Pharisee and the other was a tax collector.
The Pharisee took up his position and spoke this prayer to himself,
‘O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the rest of humanity —
greedy, dishonest, adulterous — 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I fast twice a week,
and I pay tithes on my whole income.’
But the tax collector stood off at a distance
and would not even raise his eyes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prayed,
‘O God, be merciful to me a sinner.’
I tell you, the latter went home justified, not the former;
for everyone who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and the one who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2026-03-14「義とされて家に帰ったのは、この人であって、あのファリサイ派の人ではない。」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四旬節第3土曜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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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義とされて家に帰ったのは、この人であって、あのファリサイ派の人ではない。>
そのとき、18・9自分は正しい人間だとうぬぼれて、他人を見下している人々に対しても、イエスは次のたとえを話された。10「二人の人が祈るために神殿に上った。一人はファリサイ派の人で、もう一人は徴税人だった。11ファリサイ派の人は立って、心の中でこのように祈った。『神様、わたしはほかの人たちのように、奪い取る者、不正な者、姦通を犯す者でなく、また、この徴税人のような者でもないことを感謝します。12わたしは週に二度断食し、全収入の十分の一を献げています。』13ところが、徴税人は遠くに立って、目を天に上げようともせず、胸を打ちながら言った。『神様、罪人のわたしを憐れんでください。』14言っておくが、義とされて家に帰ったのは、この人であって、あのファリサイ派の人ではない。だれでも高ぶる者は低くされ、へりくだる者は高められる。」
(ルカ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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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内向的な人がいます。その人の性格は良いのでしょうか、悪いのでしょうか。良いとも悪いとも一概には言えません。しかし多くの人は、外向的であれば性格が良く、内向的であれば良くないかのように語ります。けれども、内向的な性格を無条件に否定的に見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
実際、内向的な人は外向的な人よりもはるかに落ち着いていて、感受性が豊かで、思索に深みがあります。それは、考える力が人とは違うということです。歴史の中で大きな足跡を残した人々の性格を調べてみると、その多くが内向的な性格を持っていたと言われています。
外に現れる姿だけを見て、性格の善し悪しを判断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しかも人は変わります。今の姿が永遠に続くわけではありません。それにもかかわらず、私たちは現在の姿だけを見て、どれほど人を裁き、断罪していることでしょうか。
小学校のとき、とてもいたずら好きだった友だちを思い出します。止まらないいたずらに、先生も我慢できず、何度も厳しく叱りました。ある日、先生は彼を叱りながらこう言いました。
「お前は将来、何になるつもりだ?」
当時“いたずら王”のようだったその友だちは、今どうしているでしょうか。今では、しばしばテレビにも出演する立派な舞台俳優となり、一家の大黒柱として多くの人に愛されています。「将来どうするつもりだ」と言った先生は、彼がたいした人間にならないと予想していたでしょう。しかし今の姿を見れば、先生の予想が間違っていたことは明らかです。私たちもまた、今の姿だけを見て未来を軽々しく判断してしまいます。しかし、そのような判断はいつも誤っているのです。
イエス様は、祈る二人の姿をたとえで語られます。一人はファリサイ派の人で、高慢と自惚れに満ち、他人を軽んじています。自分は健全で、他人は病んでいるかのように語ります。これに対して徴税人は、天を仰ぐことさえできず、胸を打ちながら自分の多くの罪を告白します。その祈る姿勢は謙遜を示しています。彼は他人と比較もせず、裁きもしません。ただ自分の今の姿に向き合っています。
私たちはいったい、どのような祈りをささげているでしょうか。自分は正しく、他人は間違っているという判断を捨てなければなりません。外に見える姿だけで誤りと決めつける悪い習慣も捨てるべきです。その代わりに、自分自身に目を向け、謙遜な姿で主の前に自分の罪を告白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のような祈りを通してのみ、私たちは義とされ、安らかに家へ帰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