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클래스가 부분변경을 거쳤다. 기준이 움직였으니 이젠 럭셔리카 시장의 트렌드가 바뀔 차례다
매끈하고 웅장한 최신 V8
벤츠 부분변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바로 새 파워트레인이다. 세대교체 때 선보인 플랫폼을 다듬어 부분변경을 통해 신형 엔진을 얹는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새 엔진은 3.0리터 직렬 6기통 디젤 터보와 가솔린 터보, 4.0리터 V8 터보 등 무려 3개나 된다. 600마력 오버스펙의 AMG 4.0리터 V8 터보도 아직 E 63 S 4매틱+에만 쓰인 신상이니(국내에는 S 63 4매틱+를 통해 먼저 데뷔한다) 사실상 V12 엔진의 S 600과 S 65만 빼고 모두 신형엔진인 셈이다. 물론 각 나라 법규에 맞는 세부 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일부 모델에 기존 엔진이 쓰일 수는 있다. 이번에는 신기술이 대거 투입된 직렬 6기통 가솔린이 그럴 가능성이 크다.
엔진 라인업 변화에 따라 모델명 숫자의 기준도 배기량에서 출력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S 500에 역사상 처음으로 6기통 엔진이 쓰이게 됐고 새 V8 엔진을 얹은 모델은 기존 S 500보다 출력이 높다는 이유로 S 560으로 불리게 됐다(국내에서 S 500의 자리는 S 560이 대체하게 된다). 중국 시장에서 큰 숫자를 선호하는 데다 북미에서는 오래전부터 V8 모델을 S 550이라고 불렀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참고로 마이바흐 S 클래스의 모델명엔 시장 특성도 반영된다. 가령 마이바흐 S 600의 후속인 S 650은 중국 시장에서만 S 680으로 팔리게 된다. 중국인들은 3, 4, 7을 싫어하고 6, 8을 좋아한다.
한국 기자들에게 제공된 시승차는 S 560 4매틱과 S 63 4매틱+다. 엔진은 두 모델 모두 4.0리터 V8 바이 터보다. 설계는 같지만 세부 구성과 출력 특성은 전혀 다르다. C 63에 쓰인 476마력 M177을 기본으로 출력을 조금 낮춘 엔진이 S 560의 M176이고 실린더 압축비를 낮추고 터보차저, 인젝터, 인터쿨러 등을 키워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엔진이 S 63의 M177+다. 또한 S 560의 엔진은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지만 S 63의 엔진은 AMG 공장에서 ‘원 맨 원 엔진’ 방식으로 조립된다. 재미있는 건 M177의 오일순환 시스템을 드라이섬프로 바꾸고 냉각 계통을 강화하면 AMG GT에 쓰이는 M178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V8 엔진으로 구성을 달리해 콤팩트 고성능 세단에서 풀사이즈 럭셔리 세단을 거쳐 정통 스포츠카까지 모두 커버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S 560은 최고출력 469마력을 5250rpm에서, 최대토크 71.4kg·m를 2000rpm에서 낸다. M177 대비 토크밴드가 약간 뒤로 밀렸지만 조금 더 많은 힘을 낸다. 당연히 회전감각이나 가속감각은 흠잡을 곳 없다. 우리가 V8 S 클래스에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매끄럽고 웅장하다. 가속페달을 탁 치면 그 큰 몸집이 바람을 탄 깃털처럼 밀려나간다. M177 특유의 거친 느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V8 엔진의 감성은 살아 있다. 회전수를 높이면 손끝과 발끝을 통해 불안정한 진동이 희미하게 전달된다. 스포츠 모드 이상에서는 이런 느낌이 더 강해진다. 스로틀을 활짝 열면 V8 엔진의 기름진 사운드를 기분 좋게 뿜어낸다. 아마 V8 엔진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미국 시장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이번 S 클래스는 드라이브 모드에 따른 차이가 굉장히 크다. 엔진의 반응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물론 스포츠 모드부터는 일부러 변속 충격까지 연출한다. 서스펜션의 변화도 뚜렷하다. 특히 S 560의 커브 모드(S 클래스 쿠페에서 가져왔다)가 인상적이다. 앞쪽 도로 상황에 맞게 미리 바퀴 높이를 조절해 차체 흔들림을 억제하는 매직 보디 컨트롤에 추가된 기능으로 코너 직전에 무게중심이 몰리게 될 쪽을 살짝 높여(반대쪽을 동시에 낮춘다) 차체가 기울어지는 것을 막는다. 탑승자의 몸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비인데 마법같이 힘 받을 서스펜션만 단단해지는 느낌이라 운전까지 즐거워진다. 차체가 주저앉고 난 후에 개입하는 기존 수평 유지 장비들보다 승차감도 좋고 자세 변화에 대한 예측도 훨씬 쉽다.
그런데 S 63 4매틱+에서는 이 커브 모드를 사용할 수 없다. 매직 보디 컨트롤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길이 5.2미터, 무게 2톤이 넘는 거대한 차체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게 돕는 AMG 스포츠 서스펜션(에어매틱)이 들어간다. 덕분에 최고출력 612마력의 대부분을 뒷바퀴에 쏟아부을 때도(4매틱+는 앞뒤 구동력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E 63 S에서는 ‘후륜 고정 드리프트 모드’도 가능하다) 앞머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차체 뒤쪽이 조금 눌리면 가속감이 더 맹렬하게 느껴지겠지만 S 63은 가슴을 후벼파는 사운드 하나만으로도 탑승자를 압도한다. 가속페달을 짓이기면 9단 멀티클러치 변속기(MCT)가 기어를 바꿀 때마다 차체를 있는 힘껏 튕겨내며 윈드실드 너머의 풍경이 세단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들이 닥친다. 최근 4기통 AMG와 6기통 AMG에 치여 잠시 잊고 지냈지만 역시 AMG는 기골이 장대한 세단에 무지막지한 엔진을 얹어 폭력적인 감각을 끌어내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S 63 4매틱+의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은 3.5초. 동급 경쟁자는 물론 AMG GT R보다도 빠르다.
‘제로백’을 0.5초나 앞당겼음에도 S 63의 연비는 약 13퍼센트(유럽 기준)나 늘었다. 엔진 배기량이 약 1.5리터 줄긴 했지만 효율이 크게 개선된 데에는 가변 실린더 제어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S 560 4매틱과 S 63 4매틱+는 이제 상황에 따라 엔진의 절반(4기통)만을 사용해 달린다. 별다른 소음이나 진동이 없기 때문에 작동 여부는 계기판의 작은 표시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럭셔리카 시장의 기준
6세대 S 클래스는 2013년 데뷔와 함께 자율주행 기술 양산화에 불을 지른 주인공이다. 따라서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시스템의 진화는 파워트레인 변경과 더불어 신형 S 클래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SAE(미국자동차기술학회) 기준 레벨 2 수준이긴 하지만 차선 인식률과 상황 대처 능력이 크게 향상됐고 액티브 레인 체인지 어시스트나 리모트 파킹 어시스트와 같이 중간에 업데이트된 기술들도 모두 빠짐없이 탑재됐다.
가장 큰 변화는 내비게이션(GPS)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가령 제한속도 시속 110킬로미터인 도로에서 디스트로닉을 법정 최고속도에 맞춰두고 달리다가 제한속도 80킬로미터인 구간에 접어들면 알아서 그에 맞게 속도를 줄인다. 전방에 교차로나 타야 할 램프(운전자가 목적지를 설정했을 경우)가 있는 경우에도 스스로 감속한다. 긴급 공사로 인한 임시 속도제한 등 GPS에 아직 등록되지 않은 변수는 카메라가 인식한 표지판 데이터로 대응한다.
능동형 비상 정지 어시스트의 개선도 눈여겨볼 만하다. 운전자가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하면 수차례 경고를 하고 비상등 켠 후 차를 천천히 세우는 것까진 이전과 같다. 하지만 신형 S 클래스는 이 상태에서 긴급전화 시스템을 작동해 구조 요청을 한 후 구조대가 차 내부로 진입할 수 있게 잠금장치까지 해제한다.
시승이 끝난 후 난 크리스토프 폰 휴고를 다시 찾았다. 신형 S 클래스의 준자율주행 기술 중 일부가 SAE 레벨 3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사실 엔지니어 입장에선 모든 기술을 다 구현하고 싶죠. 하지만 지금 상황에 유용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더 중요해요.” 마치 의도적으로 양산하지 않은 기술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뭐,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시대를 대표해온 브랜드이며 S 클래스는 럭셔리카 시장의 기준이니까. 잃을 것 없는 도전자들과는 분명 입장이 다르다.
“우리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였습니다.” S 클래스 프로그램 총괄 슈테판 헤르틀레(Stefan Herdtle)는 신형 S 클래스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차. 참 모호한 표현이다. 그 기준이 사람들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만든 차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상에 S 클래스보다 비싼 차는 많을지언정 완성도가 높은 차는 별로 없다. 게다가 이번 부분변경으로 S 클래스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앞으로도 얼마간 럭셔리카 시장의 기준이 바뀔 일은 없어 보인다.
I6 Systematic Electrification
벤츠가 공개한 신형 3.0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M256)에는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쓰인다. ‘하이브리드’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기존 시스템은 전기모터가 구동력을 더해 연비를 높이지만 이 시스템은 엔진의 효율을 개선해 연비를 높인다. 핵심은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붙어 있는 ISG(Integrated Stater Alternator, 통합 스타터 알터레이터). ISG는 이름 그대로 시동 장치와 발전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전기모터로 엔진 구동을 시시때때로 제어해(기존 공회전 방지 장치에 비해 훨씬 빠르고 매끄럽다) 효율을 높이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거나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구동계에 부하를 걸어 제동 에너지를 최대 80퍼센트까지 회수한다. ISG에서 발생된 에너지는 48볼트 온보드 전원 공급 장치를 거쳐 전동 워터펌프, 전동 에어컨 컴프레서, 전기 터보(컴프레서) 등을 돌리는 데 쓰인다. 워터펌프와 에어컨 컴프레서를 전동화한 것만으로도 효율이 최대 15퍼센트까지 개선되며 전기 터보는 2스테이지 터보 시스템의 1차 터보처럼 터보차저와 인터쿨러 중간에서 공기를 빨아들여 저회전 토크를 개선하고 터보 지체 현상을 줄인다.
실제 주행에서도 이 시스템은 굉장히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엔진은 시도 때도 없이 꺼지며 발진 가속 시에는 희미한 전기 터보 소리와 함께 마치 V8 엔진과 같은 풍부한 힘을 쏟아낸다. 벤츠는 이 시스템으로 하이브리드를 대체할 예정이다. 물론 EV 모드로 최대 50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 클래스도 곧 데뷔한다.
참고로 신형 직렬 6기통 M256은 ‘벨트리스’ 엔진이라고도 불린다. 워터펌프와 에어컨 컴프레서가 전동으로 바뀐 데다 ISG가 발전기의 역할을 대신하는 까닭에 엔진에 벨트로 엮인 부품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무게는 1킬로와트 크기의 48볼트 리튬이온 배터리를 포함해 총 10킬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