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리안 셔터 외 1편
김지훈
#1.
시리도록 푸른,
땅!
야크들은 풀이 돋아나기 무섭게 삼킨다
진초록 울음을 되새김질하는 입술선
나는 돛단의 편지를 띄운다
#2.
흡스골*에 바람이 분다
별이 번진다
몽골은 꿈의 뼈를 다듬는 나라
열 두 자루의 촛불과 스무 마리 담배로
별들을 유목하는 밤은 어둠이 아니다
등을 떠미는 바람,
허공의 척추를 세운다
#3.
나는 밤새 야크들의 울음소릴 덮고
잠을 뒤척인다
#4.
이를테면,
과녁의 중심이 허공이라면
희망은 늘 백발백중!
거기, 영점조절나사 풀린 내 동공
허공에 불꽃이 핀다
한 마리 야크의 뿔이 사라지고
뿔이 성한 한 마리, 허공을 향해 뿔질 한다
시퍼렇게 멍든 하늘, 동공이 열린다
사람들은 게 중 쓸 만한 구름을 집어 먹었고
젖을 짜듯 구름을 비틀어 마셨다
나는 몽골리안의 언어보다 더 막막한
모국어와 대치상태였다
단 한 번도 돌보지 못한
내 영혼의 후줄근한 청바지
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종착역에 내리는 눈발처럼 녹았다
#5.
나는 자주 셔터를 눌렀다
셔터마다 고독의 화약내가
가루약 봉지처럼 터져 코를 찔렀다
민들레 보다 진한 홀로, 홀로였다
#6.
열두 현의 마두금을 켠다
찰칵, 계절의 소리를 담을 수 없는 렌즈
셔터음을 비켜간 피사체들이여, 안녕
낙타 속눈썹이 떠받치고 있는 한 알, 아스피린 같은
태
양
지금, 사막의 혓바닥은 청양고추를 씹은 듯
게르를 뱉어내고 있다 게르가 이동한다
바람이 분다 언제 어디에서
고독의 껍질을 벗어본 적이 있었던가
#7.
나는 혓바늘을 뽑는다
잠깐, 연체의 꿈을 꾼다
보르퇴! 보르퇴!
여기 말로 비가 내린다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 건초에서
미역냄새 물큰 올라온다
#8.
나는 문을 열어 놓고 잠이 든다
바람이 문을 닫을 때까지
연두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잉크빛 하늘에 발을 담근다
가만히 발을 만지면
눈썹이 젖는다
*흡스골: 몽골의 큰 호수, 마치 몽고반점처럼 푸르다.
이곳에는 한글을 배우는 몽골 어린이들이 있다.
달리는 포장차
새벽 세 시,
말도 마부도 없어요
짠- 짠-
잔이 부딪힐 때마다 차는 달려요
꽃잎 하나 둘,
뛰어 내려요 꽃잎은 떨어지는 순간에도
이 악, 물고 웃지요
술잔에 뜬 바람 묻은 꽃잎
하소연은 가볍게 짠-
붉게 타오르는 잔을 부딪혀요
따그닥 따그닥
술잔이 비어가요
시침과 분침 사이 마부가 있어요
취한 말들이 있어요
花르르, 火르르 벚꽃은 패를 돌려요
옆 사람과 표정을 바꿔도 좋아요
바람 잠든
빈 술잔, 가볍게 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마부를 배웅해요
오늘의 내가 어제의 말을 그리워해요
취한 말들,
담벼락에 잠든 낙서를 깨워요
따그닥 따그닥
모든 말들은 빨갛게 파랗게 포장되었어요
훅- 바람에 포장이 날아가요
말도 마부도 없어요
흔들흔들
취한 말들이 비틀거려요
알전구에 남은 온기 훅-
입 속에 옹송거리는 말들
탁,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할 거에요
아무 걱정 말아요
탁,
힘차게 구두점을 찍어요
달이 깜빡
잠시,
눈부신 정전의 시간이 왔어요
*약력: 김지훈: 시인시대 제1회 신인상 수상,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연구전담조교수
김지훈: 1981년 대구 출생, 현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조교수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호승 시의 심리치료 활용 분석>으로 문학석사학위를, <정호승 시의 창작방법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8년 2월부터 다년간 국내외 대학에서 강의하여 우수한 교육 역량을 갖추고 있다. 중국 길림대학 재직(2011-2013) 당시, 한국어회화, 한국문화, 한국현대문학 등을 강의했으며, 길림대학 조선어과 '석박사학위논문위원', '한국유학면접위원'을 역임했다. 특히 2012년 9월에는 중국길림성인민정부로부터 <모범외국인교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4년 3월 부임하여 시창작, 문학치료,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강의 및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