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고 노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은혜는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측량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적 사건이요,
현재적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적인 은혜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나타나지 않은 은혜를 은혜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잠언서에 보면 선물을 한다고 거짓 자랑하지 말라
비없는 구름이요, 바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타나지 않은 미래적인 선물과 은혜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거짓 부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미래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에 나타난 것으로도 충만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표적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베푼 하나님의 주전적 은혜의 역사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완전하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고
또 연속적으로 미래로 이어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역사는 충만하고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경영에는
한치의 오차도 부족도 없는 완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따르는 주의 백성으로 또한 완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은혜를 보충할려는 크리스챤의 몸부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정신 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혜를 욕심으로 만들어 채울려는 엉뚱한 짓거리.....
그 한심한 모습은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주옵소서....."복"을 주옵소서....."은총"을 베푸소서......
"능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크리스챤의 모습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신자들이 불상 앞에서 삼천배의 지극정성으로
복을 구하는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어제와 오늘에 베풀어 주신 주권적 은혜의 미래적 연속성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마음의 욕심에서 나오는 "미래 비전과 꿈"을 열망하며,
성공과 번영을 위한 소원 성취의 욕망을 삼보일배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니
"철야 기도"와 "특새", "릴레이 기도"와 "중보기도"와 같은 기도 문화가 개발된 것입니다.
이렇게 지극 정성을 모아 믿음으로 하는 기도라도.....
주권적 하나님의 은혜를 욕심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과 미래 비전의 환상에 젖어 있는 수 많은 한국교회들 .....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는 뼈아픈 경험을 하고서 정신을 차릴지....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창조적 신앙이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찾아 볼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권적 성령의 은혜와 은사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신 예수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담아내지 못하는 한국교회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은
끝없는 자성과 성찰을 하게 합니다.
꽃의 아름다움과 그 맑은 향기를
창조적 신앙으로 감동스럽게 느끼며 찬양하는 성도가 있다면
어둡고 캄캄한 콘크리트 벽장 속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울부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보다 더 창조적 신앙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동산에서 녹색 짙은 초록의 향기를 싱그럽게 느끼며
마음의 렌즈로 섬세하게 담아내는 서정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믿음으로 담아내는 창조적 신앙의 사람입니다.
먹구름 뒤에서도 빛나는 태양의 아름다운 빛을 희망으로 바라보며
빛 가운데 계신 참 빛 되신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담아내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야생화 풀 한 포기에 흐르는 생명의 신비스런 기운을 느끼며
수면에 운행하시는 성령의 숨결을 느끼는 사람은
주권적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믿음으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에 담겨진 하나님의 가득하고 충만한 은혜를
참된 하나님 나라의 교훈으로 담아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든든히 서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은
거짓 부렁의 욕심을 은혜로 구하는 사이비 신앙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돈 주고 살려는 사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선한 노력 봉사로 얻을려는 사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로 만들려는 사람..........
모두...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비에 젖어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 종교 섬기듯 찾는 사람들은
기독교 유사 종교인으로 사이비의 종교적 신념에 젖어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하여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과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어떠한 형태로든 댓가를 지불하고 얻을려는 사람은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후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그것을 믿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는 성도입니다.
성령의 은혜와 은사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하기만 합니다.
은혜와 은사는 주를 믿는 자에게 필요에 따라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기도로 얻을 줄 생각하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기도를 합니다.
성령의 주권성을 완전히 무시한 광신적 기도는
이방 종교에서 흔히 나타나는 영적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착각....분명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고....무속신이 역사한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무속신의 역사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 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과 거짓...옳은 것과 그른 것....진실과 위선....생명과 사망....등
하나님의 완전성은 너무나 정밀하고 섬세하여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잘못된 기도....광신적 기도....외식적인 기도.....욕심을 이루는 기도 등에 대해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며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이런 것을 좋아하는 무속신이
뜨겁고 강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교훈하기를 이런 사람들은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에 해당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현상으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하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적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무속화는
기독교인의 잘못된 기도로 만들어 낸 산물입니다.
끝없이 성령의 주권적 은혜와 은사를 무시하고....
꿈과 비전이라는 미명의 날개아래 영적 욕심을 이룰려는 광신적 기도로
심은 것을 거두는 나쁜 열매...썩은 영적 산물이.....풍성하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예수님을 참 믿는 성도에게 임하는 성령의 충만한 속성 입니다.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의 의지적 믿음으로 잘못 측정한 것입니다.
의지적 믿음의 크기에 따라
성령의 충만이 결정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믿음의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하나님이 존재하는 바벨론의 만신전과 같은 곳이
성장과 세속에 물든 한국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무속화를 만들어 가는 첨단 무기와 시스템은
방언 기도...임파테이션....빈야드....뜨레스디아스...알파 코스...G12... D12...관상 기도 등등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은혜 아닌 은혜를 구하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는
예레미야의 눈물어린 탄식이 절실할 때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사야의 피끊는 절규가 외쳐져야 할 때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 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