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밖으로 나간 남자
의식을 연구하는 과학자 코넥스(Conex)가 있었다.
그의 연구실에는 최신 뇌영상 장비와 수백 편의 논문이 쌓여 있었다. 그는 뉴런이 발화하는 순간을 볼 수 있었고, 기억이 저장되는 회로를 추적할 수 있었으며, 감정이 일어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도 거의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하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픔은 아프게 느껴지는가?'
전기 신호는 측정할 수 있었다. 신경전달물질도 분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따뜻함이 왜 따뜻한지, 가려움이 왜 가려운지, 슬픔이 왜 슬픈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학계는 그것을 '하드 프라블럼(Hard Problem)'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코넥스는 오래된 선종 문헌에서 이상한 문장을 발견했다.
"겁외인(刧外人)을 만나면 시간을 묻지 말라."
또 다른 문헌에는 「겁외가(刧外歌)」라는 제목의 노래가 실려 있었다.
"달력 밖으로 나간 사람."
그 문장이 이상하게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그 사람을 찾아 나섰다.
수십 년 동안 산사를 뒤지고, 티베트의 수행자를 만나고, 은둔자를 인터뷰했다.
모두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
"산속 어디엔가."
"하지만 찾으려 하면 사라진다."
십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안개가 산허리를 덮은 날이었다.
계곡 끝 낡은 초막 앞에서 그는 한 남자를 만났다.
평범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과학자가 물었다.
"당신이… 달력 밖으로 나간 사람입니까?"
남자가 웃었다.
"달력이 나를 놓친 것이지."
"이름은 돈황(沌荒)이라 하네."
코넥스는 노트북을 꺼냈다.
"저는 의식을 연구합니다."
돈황은 말없이 찻잔을 내밀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코넥스가 질문했다.
"당신은 시간을 초월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돈황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낙엽 하나가 떨어졌다.
"저것이 떨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가?"
"물리적으로는…."
"아니."
돈황이 말을 끊었다.
"지금."
그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기억은 무엇입니까?"
돈황은 미소 지었다.
"지금 일어난 생각."
"죽음은?"
"지금 떠오른 관념."
"시간은?"
"지금 생긴 이름."
코넥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시간은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돈황은 작은 돌멩이를 하나 들어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 돌은 차갑습니까?"
"예."
"차가움은 돌 안에 있습니까?"
"..."
"따뜻함도."
"가려움도."
"기분 좋음도."
"모두 어디 있습니까?"
코넥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돈황이 말했다.
"개념은 있다."
"단어도 있다."
"어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느껴짐은 없다."
그는 돌을 다시 내려놓았다.
"마치 한 번도 만져보지 않은 물건처럼."
"이름은 붙일 수 있다."
"분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름 속에는 만졌을 때의 감촉이 없다."
"가려움은 사전 속에 없다."
"따뜻함은 단어 속에 없다."
"사랑도."
"슬픔도."
"모두 일인칭 관찰자의 마음에서만 드러난다."
코넥스는 중얼거렸다.
"...퀄리아."
돈황은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자들은 그렇게 부르더군."
잠시 침묵.
돈황이 말했다.
"너희는 그것을 하드 프라블럼이라 부른다."
코넥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름만 다르지."
"옛사람들은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돈황은 계곡물을 손으로 떠 마셨다.
"물이 차갑습니까?"
코넥스가 물었다.
"마셔 보게."
코넥스는 물을 마셨다.
돈황이 말했다.
"차가움은 어디 있었는가?"
"..."
"물 안에?"
"..."
"자네 안에?"
"..."
"아니."
"접촉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네."
"대상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주관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둘이 만나 찰나적으로 일어난 생명현상일 뿐."
"불교에서는 수(受)·상(想)·식(識)이라 하지."
"유식무경(唯識無境)."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일어난다."
코넥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죽음은?"
돈황이 웃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은 사람은?"
"이미 말할 사람이 없지."
"그러니 죽음은 무엇인가?"
돈황은 마른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사람들의 뇌회로 속 정보."
"소문이다."
코넥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음을 둘러싼 자신의 모든 논문이 갑자기 종이처럼 가벼워졌다.
"그렇다면…."
그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시간도."
"철학도."
"기억도."
"상처도."
"의미도."
"모두 마음뿐입니까?"
돈황이 대답했다.
"밖에서 찾을 수 있나?"
코넥스는 산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불고 있었다.
새는 울고 있었다.
계곡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보이지 않았다.
'과거'도 없었다.
'의미'도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다만 흐르는 물과 흔들리는 나뭇잎뿐이었다.
돈황이 말했다.
"이름은 마음이 붙인다."
"세계는 그 이름을 모른다."
노을이 산을 붉게 물들였다.
코넥스는 문득 오래된 선문답 하나를 떠올렸다.
"이 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옛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산중에는 甲子갑자가 없소. 다만 산빛이 푸르렀다가 붉어지는 것만 보았소."
코넥스는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달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달력이 없어도 세계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돈황 선생, 어떻게 하면 달력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돈황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계곡물이 흘렀다.
새 한 마리가 울었다.
바람이 지나갔다.
그제야 돈황이 입을 열었다.
"언어에 붙잡히지 말게."
"언어는 해석이다."
"경험이 먼저다."
"곧바로 경험하라."
그는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켰다.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산하대지를 무너뜨려라."
그리고 다시 계곡물을 떠서 코넥스에게 건네주었다.
"물이 찬지 더운지."
"논문을 읽지 말고."
"지금 마셔보게."
코넥스는 아무 말 없이 물을 마셨다.
그 순간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말조차 아직 생기기 전의 무엇이,
잠시 그의 온 존재를 스쳐 지나갔다.
그날 이후 코넥스는 연구실로 돌아갔다.
논문은 계속 썼다.
실험도 계속했다.
그러나 논문의 첫 장 맨 위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의식의 가장 깊은 문제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설명될 대상이 아니라,
매 순간 직접 마셔 보아야 하는 물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마음. 의식. 느낌.?.
유리컵 속 맑은 물,
과학자는 \(H_{2}O\)라 적고
어떤이는 '의식'이라 이름 붙였네.
이름표는 참 많은데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이름표는 알지 못하네.
물방울이 혀끝에 닿는 순간,
아, 하고 퍼지는 이 시원함!
책에서 배운 앎은
빛나는 컵을 보는 일.
내가 직접 마시는 삶은
온몸으로 직접 물을 느끼는 일..
세상의 모든 말보다 갈증에는
한 모금 꿀꺽 직접 맛보기..ㅎ
한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셔라(一口吸盡西江水話)
“사량하지 말고 부딪쳐 대응하라”
이것이 가장 눈부신 진리 ,?
마하반야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