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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00) 마음과 영혼 돌보기 (상)
오래전부터 동양의학에서는 모든 질병의 근본적 원인을 마음에서 찾았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결국 질병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오늘날 말로 표현하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란 말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병의 원인을 정확히 모를 때 이 말을 쓰는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하지만 현대의학이 발달한 오늘날 이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때는 질병의 원인을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외부에서 찾으려 노력했기에 현대의학이 발전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에는 생명과학의 발달로 특정 질환이 유전자 변이를 통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특정 유전자를 공격하여 질환을 유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치료법이 개발되어 불치병과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병인론 역시 더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유발되고 촉발된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대의학의 발전 결과는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원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더 미세한 영역에서의 병의 발달과정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특정 병변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가 언제 그리고 어떤 영향을 받아 시작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은 또 다른 과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4) 예수님은 음식이 사람을 부패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 나오는 각종 마음의 악으로부터 더럽혀진다고 말씀하신다. 즉,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등(마르 7, 22)이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은유나 비유가 아닌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내면에서 이런 감정과 생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몸이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켜 신체적 질병이 발생한다. 한방에서는 부정적 감정들이 계속 쌓이게 되면 적취(積聚: 쌓여서 응어리지는 것)가 생긴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의 암을 의미한다. 부정적 감정과 생각은 암 외에도 신경성 위염, 과민성 대장염, 충수돌기염(맹장염), 갑상성 기능 항진증, 중풍, 당뇨병, 전립선염, 성기능장애를 일으킬 뿐 아니라 확실하게 노화를 촉진한다.
이처럼 감정의 변화는 신체에 영향을 주어 기와 혈의 순환을 막아 신체적 질병을 만들고 결국 정신과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조건 몸에 좋다는 건강식을 찾아 먹으면 정말 건강을 보장할 수 있을까? 누구도 이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건강과 장수에 비결이 되는 선약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집단지성을 통해 발견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건강의 비결은 결국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시작된다. 마치 몸의 병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면에 더 근원적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건강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약이나 음식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바로 내면의 건강한 마음 상태가 건강의 핵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예수님 말씀을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 몸 안에서 나와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이것을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표현하셨다. 사실 현대의 영성생활이란 예수님이 제시한 이 ‘사랑’이란 용어를 오늘날의 의미로 재해석해서 적용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현들은 이 사랑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한 마음 다스리기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은 활인심방을 통해 어떤 마음을 잘 다스려야 신체적 건강과 영혼의 돌봄을 잘 이룰 수 있는지 알려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2월 5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01) 마음과 영혼 돌보기 (중)
「활인심방(活人心方)」은 원래 중국 명나라 때 도가(道家)인 주권(朱權)이 지은 책이지만, 퇴계 이황이 자신의 의학지식과 철학사상을 담아 다시 기록한 양생서이다. 이 책에서 퇴계 선생은 병이 나야만 치료를 하는 서양의학적 접근을 하의(下醫)로 규정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술, 즉 상의(上醫)는 마음을 다스려 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혼이 병들어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 되기 이전에 미리 마음공부를 통해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지혜롭다 할 것이다.
퇴계 선생은 자신과 이웃이 서로 화합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중화탕(中和湯)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화는 중용(中庸)에서 강조한 의미로서 희로애락과 극단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중화탕은 30가지의 마음의 자세를 잘 섞어 만든 마음의 약이라는 뜻이다. 이 마음 건강 처방들을 비슷한 내용끼리 짝을 지어 10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거짓된 마음을 버리고 진실해야 하며, 양심을 속이지 말고 정직해야 한다. ② 매일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되 남모르게 도와주고, 항상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③ 시기와 질투를 멀리하고, 잔꾀를 부리는 교활하고 약삭빠른 삶을 버려야 한다. ④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인간의 본분을 깨달아야 한다. ⑤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하며, 근검절약을 실천하면서도 항상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⑥ 자신에게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고, 타인에게는 관용과 연민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⑦ 근검절약을 실천하되 검소하게 살면서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실천한다. ⑧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⑨ 매사에 화가 나거나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⑩ 때가 되면 미련없이 물러남으로써 번뇌를 쉬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율법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실제로 건강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다. 퇴계 선생은 자신의 마음 건강을 위한 여러 방법을 소개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현대판 실천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퇴계 선생의 중화탕의 내용 중 특히 재물에 대한 부분에 더 초점을 두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상담하다 보면 대부분 정신적 건강의 취약성이 바로 이 재물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돈과 재물에 마음이 빼앗겨 신체적이며 영적인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흙수저로 태어나 30대에 집을 마련할 수 없으니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청년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양육과 교육비로 최소 2억 원이 필요한데 그 돈이 없으니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신혼부부들, 부부가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돈만 있으면 관계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다. 이들은 실제로 경제적 안정이 심신의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에게는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현실감 없게 다가오고 있다. 이들에게 “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가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약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식의 섣부른 조언을 해서는 꼰대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돈은 실제로 ‘생존’의 의미를 넘어 삶의 가치와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마음과 영혼의 돌봄을 위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재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2월 1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02) 마음과 영혼 돌보기 (하)
요즘처럼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비관적으로 표현하는 속어가 넘쳐나는 때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 등장한 용어는 삼포세대였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좀처럼 연애를 하지 않으려 하고, 만일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며,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하려는 사회현상을 일컬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좌절감은 이 용어만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삼포에 덧붙여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 여기에 건강과 외모까지를 포기한 칠포세대, 희망과 인간관계까지도 포기했다는 구포세대, 마지막으로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이 삶 자체를 포기한다는 10포세대(완포/전포세대)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포기할 것은 계속 나오는데 숫자로 표현하기도 귀찮다는 의미에서 2010년경부터는 N포세대라는 말로 이전에 모든 용어를 통칭하고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요즘 청장년들의 절망감과 무기력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은 흙수저로 태어나 평생을 벌어도 번듯한 집을 마련하기가 힘드니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수저계급론 신봉자,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양육과 교육비로 1인당 최소 2억 원은 필요한데 그런 돈이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DINK), 인생은 어차피 한 번뿐이니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겠다는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족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뜻 보면 이들의 생각은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현재를 충분히 즐기자(Carpe diem)”라는 의미처럼 긍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살자”는 자포자기적 의미도 숨어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이런 젊은이들의 어두운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한 통계가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Pew Research Center’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 17개 선진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일본 등) 성인 1만 88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와 온라인 설문조사를 11월 18일에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당신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17개 나라 중에서 14개 나라 국민이 “가족(38%)”이 가장 소중하다고 응답했고, 그다음으로 “직업(25%)”과 “물질적 행복(19%)”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은 “물질적 행복(19%)”을 1위로 꼽았다. 이는 17개 조사대상 국가 중에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결과였다. 또한, 한국은 가족, 친구, 직업, 종교에 대해서 의미를 가장 적게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 설문조사에서는 한국인만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드러났다.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고를 때 세 가지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유독 한국인들은 세 가지 중 하나만(물질적 행복)을 고른 사람(62%)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은 마치 다른 가치들은 다 필요 없고 사실 돈만 있으면 나머지 문제들은 자연적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태 6,24)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요즘처럼 더 깊게 다가오는 때도 없다. 자본주의의 병폐인 물질만능주의에 희생되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깊은 자성을 하게 된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신앙의 어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기쁨은 재물이 아닌 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사실을 가르침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유익한 심리학] 성격과 신앙생활 (9) 성격은 바꿀 수 있다 (1)
성격에 대하여 여러 정의가 있고 설명이 있지만, 간략하게 말하면 사람이 외부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일정한 패턴을 말한다. 사람이 외부 자극에 대하여 반응할 때 주요 요인은 타고난 기질과 양육환경에서 형성된 특정한 심리구조, 곧 성격이다. 양육환경이 따뜻하고 허용적이며 수용적인 분위기라면 ‘타고난 기질’은 그대로 자기 경험과 함께 비교적 ‘자기’와 내적으로 일치하는 성격을 형성한다. 반면, 양육환경이 거칠거나 방임 또는 학대의 정도에 따라 ‘타고난 기질’은 수면 아래로 억압되어 숨어버리고, 환경이 요구하는 그 조건에 맞추어 방어적으로 생존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심리구조’, 곧 성격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쉽게 “내 성격이 원래 그래!”라고 말하지만 원래 급하거나 충동적으로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 ‘원래 내 성격이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네가 이해해라!’라고 말하기 쉬우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요, 잘못된 요구다. 우리가 잘못하여 지금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 탓하며 자기 성격을 고치려 하지 않는 것도 무책임한 처사다. 어렸을 때는 양육자의 책임이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자신의 책임이다. 자신에게 책임 있는 자세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참된 ‘자기 성찰’은 윤리 도덕적 반성의 의미가 아니다. 양육환경 안에서 덧씌워진 성격, 조건화된 반응, 가면을 찾아내는 내적 작업이요,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이다. 세상을 얻고도 자신을 잃는다면(루카 9,25 참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여정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자기 내면에서 ‘무엇이’, ‘어떻게’ 나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마음 챙김-알아차리기’를 할 수 있다.
내향이든 외향이든, 감각형이든 직관형이든, 사고형이든 감정형이든(MBTI 성격유형 참고) 누구나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 살아가는 유형이 조금 다를 뿐이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과 어울리는 데 자신이 어려움을 느끼거나, 타인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자신의 성격을 살펴볼 일이다. 완벽한 성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기준은 ‘현실성’이다. 대인관계에서 다소 마찰과 불편함이 생긴다 해서 무조건 ‘성격상의 문제’로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격 차이’라며 헤어지는 부부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격의 차이가 아니라 성숙의 문제다.
우리 인간은 ‘감각과 정서 그리고 사고’라는 세 가지 기능으로 환경에 대응하며 생존해 가는 동물이다. 성숙한 성격의 중요한 기준인 ‘현실성’이란, 그 사람의 감각과 정서 그리고 사고 기능이 ‘현실(지금-여기)’에 일치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낀다든지, 과도하게 감정을 드러낸다든지, 엉뚱한 논리를 펴며 왜곡된 사고를 하는 등의 행동(반응)은 ‘현실성’을 상실한 성격에서 나오는 태도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행동(반응)을 성찰할 내적 힘이 부족하나, 성인은 성찰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 성찰은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물론 부상이 심한 환자에게 치료와 간호가 필요하듯, 그러한 조력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변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이 의지마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남 탓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2021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유익한 심리학] 성격과 신앙생활 (10) 성격은 바꿀 수 있다 (2)
보통 인간의 위대함을 ‘사유의 능력’에서 찾는다. 그러나 뇌과학은 더 구체적으로 새로운 측면에서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말해준다. 인간은 ‘성찰’을 통하여 ‘과거로부터’ 탈출하여 ‘자기를 창조’해낸다. 뉴런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시냅스. 시냅스들의 총화로 구성된 ‘신경회로망’은 ‘성찰’을 통해 폐기되고 새로 구성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중요하게 처리한 몸의 기억은 또다시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한다. 이러한 뇌의 원리는 생존을 위해 매우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위험과 공포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초래한다. 강력한 위험과 공포에 노출될수록 그 민감도는 증가하는데, 매우 충동적이고 폭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기에 우리의 의식이 통제하기 어려워한다. 대표적으로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감정 폭발은 스스로 자기에게 환멸을 느낄 정도로 내적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매우 거칠고 위험한 성격의 소유자들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그 과정이 금연이나 금주 등 중독에서 벗어나기만큼이나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 뇌의 원리는 어떤 성격도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어떤 경험으로 형성된 ‘신경회로망’일지라도 폐기할 수 있고, 새로운 ‘신경회로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상향식-하향식’으로 설명하는데 몸과 마음이 상호작용하듯이 정신과 신체가 쌍방향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월퍼트는 ‘뇌는 생각하거나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임을 조종하기 위해 진화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몸을 통해서 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생각을 통해서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산소 운동은 뇌세포의 활성화와 재생에 도움을 주며, 묵상과 영적 피정은 우리 신체를 이완시켜 쾌적한 상태로 면역력을 높여준다.
나의 뇌가 과거의 학대나 공포 경험을, 생존을 위한 유용한 자원으로 여기고 있는 한, 나의 성찰은 ‘그때-그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뇌는 과거의 학대나 공포 경험을 잘 간직하여 또다시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나,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지금-여기’는 과거처럼 학대나 공포가 일어나는 ‘현실’이 아니다. 설사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그것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당시에는 혼자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뇌는 여전히 ‘학대나 공포’에 대비하여 반응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이라도 그와 ‘유사한’ 상황으로 느껴지기만 해도 ‘학대와 공포’에 대한 ‘과거 반응-몸의 기억’이 부지불식간에 나오게 된다. 바로 거기에서 ‘나’를 다시 만나야 한다. 그 방어적인 모습은 ‘참된 나’가 아니다. 학대와 공포라는 환경에서 ‘조건화된’ 반응일뿐, 나를 방어하기 위하여 쓰게 된 ‘가면(persona)’일 뿐이다. 이 가면으로 평생을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뇌는 죽는 순간까지 변화할 능력이 있다. ‘신경 가소성’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기도 하다. 나는 나에 대한 책임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뇌는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속삭인다.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 나에게는 어린 시절 그때보다 더 성숙한 인격과 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