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제사
(히 10: 1-18)
창조와 구속은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다.
이는 휘장 안의 하늘과 휘장 밖의 세상처럼 다른 영역의 일이다.
구약의 사람 중보자와 종말의 아들 중보자만큼이나 다른 영역의 일이다.
이러한 다름이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을 가져온다.
이처럼 첫 창조와 구속이 다른 영역의 일인 것만큼
첫 창조에 속한 옛 백성과 구속받은 새 백성도 전혀 다르다.
옛 백성은 아래로부터 나서 육신에 속한 자들이고
새 백성은 위로부터 나서 영에 속한 자들이다.
육신에 속한 백성은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자들이나
영에 속한 백성은 휘장 안 하늘에 세워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율법과 복음의 대비를 통해서 불연속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하여 율법이 아니라 예수의 말을 따르라고 권고한다.
여호와를 첫 언약의 예법이나 세상에 속한 성소의 일을 버리고(히9:1),
성전제사나 제사장들과 그들을 위한 십일조를 행하지 말고,
대제사장이며 천국 왕이신 예수의 말을 따르라고 말한다.
성전제사나 십일조와 같은 예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참 것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히10:1).
율법 제사와 예수께서 드리신 제사
히브리서는 땅의 성소에서 드렸던 제사와 하늘의 성소에서 드려진 제사를 대비한다.
이는 율법 아래의 제사와 예수께서 드리신 제사의 대비이다.
율법은 장차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참 형상이 아니었다(히10:1).
따라서 해마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는 드리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하였다.
온전케 하지 못함은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이스라엘이 다다른 곳은 휘장 밖이었다.
휘장 밖은 하늘이 아니라 죄가 지배하는 세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알고 섬긴 하나님은 휘장으로 가리신 여호와이었다.
만일 율법이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였다면
제사하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서 다시 죄를 깨닫게 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히10:2).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 제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히10:3).
율법이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였다면 이스라엘은 영생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는 생명,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영생을 얻었을 것이다.
그들은 휘장 안 하늘의 정결함을 덧입어서 하늘에 세워졌을 것이다.
율법은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뜻이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함께하기 위하여,
종과 어린아이와 같은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진 율법과 제도를 주신다.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이스라엘과 함께 사시며 동행하신다.
이처럼 율법은 이스라엘과 맺은 여호와의 언약 내용이며 통치질서이다.
따라서 모세율법과 제도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계시이다.
그런데 율법은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을 온전케 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율법이 명하는 대로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려도,
이스라엘은 휘장 밖 죄 아래에 머물렀다.
이러한 사실은 개혁신학의 가르침처럼 예수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고 하더라도,
율법을 지켜서 얻은 의로는 휘장 안 지성소에 거할 수가 없음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는 영생을 얻지 못함을 의미한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죄 아래에 거할 뿐이다.
이는 율법은 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10:4,11).
그래서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였다.
피를 흘리고 불을 통과함은 죽음과 불이 구약에서의 정결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이 이스라엘의 몸을 상관하는 육체의 예법이기 때문이다(히9:10).
이처럼 율법이 명한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였다(히9:8-9).
하나님께서는 율법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심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히10: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히10:5).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드리는 번제와 속죄제는 요구치 아니하신다”
라고 말한다(시40:6).
그런데 구약에서 모세는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리라고 명한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는 한시적인 하나님 조치이었기 때문이다.
짐승 제물의 피 뿌림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시행된 여호와의 명령이었다.
이는 여호와께서 죄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사시기 위한 임시로 시행한 조치이었다.
종말에 아들을 보내실 때까지의 과도기적인 조치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질 온전한 제사에 대하여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같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라고 인용한다(시40:6-8).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40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예수께서는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려서 온전한 제사를 하였다고 강조한다.
율법이 없이하지 못한 죄를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한다.
그 결과 첫 것인 율법이 폐하게 된다.
이는 율법이 명하는 성전제사와 제사장제도,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 제도도 폐하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첫 것인 율법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히10:9).
첫 것을 폐함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임
첫 것을 폐함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히10:9).
첫 것이란 첫 언약 내용 곧 율법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를 가리킨다(히9:1).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과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이는 율법이 명하는 짐승 제사나 제사장제도,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와 같은 것들이다.
이처럼 첫 것을 폐함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히10:9).
둘째 것은 아들을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 뜻과 경륜이다.
둘째 것을 세우심은 첫 것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첫 것이 주지 못하는 죄를 온전히 없이하고(히10:4, 11),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여 아들로 세우기 위함이다(갈4:4-5).
이는 아들(자녀)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들(자녀)만이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율법이 주지 못하는 영생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율법이 폐한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한다는 의미이다(마5:17).
이처럼 모세율법은 옛 백성과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질서이다.
그러나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를 시행하신다.
따라서 종말에는 아들의 말만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둘째 것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주지 못하는 참된 구원과 생명이 주어졌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아들만을 굳게 붙들고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이는 첫 것, 곧 첫 언약이 폐하였기 때문이다.
첫 것이 폐함은 첫 언약 내용인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에 관한 모든 것이 폐하였다는 말이다.
이는 율법이 명한 성전제사나 제사장제도, 그들을 위한 십일조 제도도 폐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첫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모세율법은 옛적의 일이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옛것을 폐하시고 새것을 마련하셔서 우리에게 주셨다.
옛것은 모세율법(구약성경)이고 새것은 그리스도 복음(신약성경)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는 아들의 말만을 따르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를 쓴 이유이다.
그리스도 제사의 의미를 설명함
히브리서 기자는 예레미야 31장과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하신 대제사장이며,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종말의 하나님 나라 왕이라고 강조한다(히10:12).
그 후에는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말한다(히10:13).
이처럼 권면함은 대제사장이며 하나님 나라 왕이신 예수만을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조상들과 부모들처럼 모세율법을 따르지 말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만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서 31장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드리신 제사 의미를 설명한다.
예레미야 31장은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것이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고 말한다(렘31:31-34).
이러한 예레미야를 통한 약속을 이루시려고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셨으며,
예수께서는 자기 피를 하늘의 성소에 뿌리셔서 죄를 정결케 하시고 위엄의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히10:10-12).
율법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하지 못한다(히10:1).
온전케 하지 못함은 모세 제도의 온전하지 못함이다.
모세 제도를 따라 드리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온전케 하지 못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온전케 하지 못함은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히10: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을 드려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결과 모세율법과 제도가 주지 못하는 온전함을 선물하셨다.
이는 죄를 없이 하였을 뿐 아니라(히10:10)
믿는 자들을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말이다(히10:19).
이처럼 히브리서는 모세 제도의 틀을 따라 예수께서 참된 정결함을 주셨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옛적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으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로 말씀하신다(히1:1-2).
따라서 신약시대에 아들을 통하지 않은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다.
이는 모세율법(구약성경)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어떤 가르침이나 말씀은 이단 사설이며 사탄의 속삭임이다.
구약성경이라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석되지 않으면 유대교의 경전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구약성경은 그 자체로 어두움이며,
이 세상의 초등학문일 뿐이다(갈4:3, 9).
모세율법(구약성경)은 그 자체로 육체만을 상관하는 육체 예법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열매만을 맺는다.
육체의 열매를 맺은 결과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휘장 밖 죄 아래에 머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떤 중보자에게 속하여 구원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라.
모세인가? 예수인가?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