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3월13일에 추암 마을 쪽으로 10시 30분에 입산을 시작하여 임종국 공적비가 있는 곳을 거쳐 모암마을로 하산하는데 약 1시간 정도로 등산을 마치고 모암마을 앞에서 12시55분 버스로 장성역으로 나왔는데 장성역에서 송정행 열차가 오후 3시30분밖에 없어 2시간이 넘는 대기시간이 지루하여 장성공원을 돌아보았었다. 장성공원도 운동시설이나 공중화장실 등이 잘 꾸며져 있었다.
오늘 다시 2차로 장성축령산 등반길에 나섰다. 이번에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금곡마을로 입산을 시작하였다. 축령산(祝靈山879m)은 남양주 수동면과 가평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도 있고, 전남 장성군 서삼면과 고창군의 경계에도 축령산(621m)이 있다. 남양주에 있는 축령산은 23년 전 내가 아직 교직에 근무 중일 때 친구들 셋과 갔던 곳으로 당시에는 장성의 축령산은 산 축에 들지도 않았는데 근년에 와서 유명해진 산인 된 것 같다.
장성의 축령산(祝靈山)은 40~6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늘푸른 상록수림대 1,148ha가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이국적인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편백의 피톤치드라는 특유한 향 내음이 있어 산림욕을 하기는 최적의 장소로 경사가 완만해 어린이나 노인을 동반한 가족여행객도 쉽게 둘러볼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장성읍에 거주하던 임종국(1915~1987)이란 선각 독지가가 장성군 서삼면 일대 600여ha에 삼나무 편백 등 300만 그루를 심어 오늘날 국내 최고의 삼나무. 편백 숲을 만들어 놓았다. 故 임종국(林種國) 선생이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된 축령산에 1956년부터 20여 년 간 조림하고 가꾸어 지금의 전국의 최대난대수종 조림 성공지를 만들었다. 2002년 공로가 인정되어 '숲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기념비문에는 ‘春園林種國造林功績碑’라고 새겨져있었다.
임종국씨는 순창선영에 안치된 유골을 화장하여(2005년) 소나무상자에 넣어 축령산 추모목으로 선정된 느티나무 아래로 옮겨 수목장(樹木葬)으로 모셔놓았는데 공로에 비해 묘가 너무 초라했다. 그래서 현재 축령산에 대한 재산권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보았다. 임종국씨가 작고하신지 약 15년쯤 후 자식들이 사업에 실패 경매로 넘어가 현재는 산림청 소관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별 가치를 못 느껴 장성군에서도 무관심 했으나 지금은 군의 자산으로 잡아두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름드리 편백이 온산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니 수백 억 원대의 가치로 충분하며 가끔 솎아내서 경매로 나오면 그것을 싸게 사서 가구제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1시간정도의 산행이었으나 오늘은 북쪽에서 시작 중심을 관통하여 남쪽 추암 마을로 하산하는 6.3km정도(2시간30분소요)의 완주산행이었다. 중간에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치유의 숲 좋은 장소도 여러 군데 보아두었다. 추후에 돗자리를 가져와 1시간쯤 머물러야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한사람의 선각자적 지혜가 자손만대 길이 보물을 남겨 주었다. 산 주변으로 5~6개의 마을은 임종국씨 덕에 땅값도 많이 상승하고 편백 가구제품 공장도 생겼고 등산객도 넘쳐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