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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료봉사후기
네팔,,
수도 카트만두,,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긴 모양이면,
네팔은 동서로 길고 우리나라 남북면적의 0.7배,
세계에서 가장 험한 산악지대,,히말라야, 에베레스트가 있는 나라,,
히말라야산맥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10대 고봉 중에
8개가 있어서 세계 산악인들 대부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거쳐서 오른다.
대부분 산악지대로 그 지형에서 빚어진 패쇄성과 고립성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개발이 안 된나라,,그래서 가장 가난한 나라,,
년간 국민소득이 750달러 정도로 우리나라가 3만불을 바라보는데 비하면
아주 낮은 소득인데도 국민 행복지수는 으뜸인 나라..
세계에서 가장 선한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
종교는 힌두교 89% 불교11%이면서 석가의 탄신지인 룸비니가 있어
불교의 모태인 나라..인구는 3100만정도,,
우리가 알고 있는 네팔의 요점이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누구나가 행복해지고 싶고,,이번 봉사에서 그 답을 얻을수 있을까?
6월 카자흐스탄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에 이 한길 회장님께서
네팔 의료봉사를 제안하셨고, 카자흐 봉사가 뭔가 성에 차질 않아
제대로 된 봉사한번 해보자 하는 심경으로 흔쾌히 승낙을 했다.
8월 12일~16일 단축, 단촐 의료봉사이다
자비로 비행기값과 체재비를 내야하고, 품을 보태야 하는게 의료봉사이다
마침 8월 14, 15연휴를 이용할 수 있는 휴가기간이라, 비행기 삯이
비싸서 180만원쯤하고, 체제비등 자비로 220여만원을 송금한다.
의사 3명에,약사는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마침 연휴를 끼고 가는 봉사라 흔쾌히 자원했었다 .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
삼복 더위중에 만나는 사람마다 더위 얘기인테,
떠나기 전날부터 말라론(말라리아약)을 1정 먹으며
이 더위를 견딜 수 있는 옷 몇벌과 최대한 편한 신발 그리고 우산,,
간단하게 챙겨 짐을 꾸린다.
대구지역 5개 보건의료단체가 2014년 제작년에 네팔 풀바리지역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이후에 낙후된 풀바리 지역의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2014년부터 이 지역에 진료소를 개설하고,
매년 3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왔는데,
지난해 5월 대지진으로 그간 운영해 오던 진료소마저 붕괴돼 메디시티
대구 협의회에서 1100만원을 지원해 새 진료소를 신축 완공했다.
해서 진료소 준공식을 보고 ,연이틀 진료를 하기로 하고
박성민 의사회장님을 단장으로 김석민 의사회부회장 박원규 기획이사
석명숙 유은주 두 베테랑 간호사분 그리고 권재일 의사회 처장님과
약사회에서는 필자 1명을 포함 총 7명이 네팔 풀바리로 떠난다.
약은 처방을 내는 의사회에서 리스트를와 함께 약을 준비하고 미처 준비 못한
약은 약사회에서 준비하였고.
의사회가 넘겨준 약속처방으로 예재를 하는데,
현지의 사정으로 문제가 될수 있어 몇가지 복잡한 처방만 예재를 해서
7개의 봉투에 나눠 담아 의사회관에 보내니, 7명에게 통약이 포함된 약 5kg의
약 가방이 돌아온다..짐을 부치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의사회 권재일 처장님께서
각자에게 5kg씩이 든 가방을 택배로 보내와서 개인 캐리어속에 분담해서 넣어가기로 했다.
새벽 6시 대구 공항에 집결해서, 이한길회장님과 김정희 단장님
두분의 환송을 받으며 7시 비행기로 대구 공항을 출발한다.
인천공항에서 13시 30분 카트만투행 비행기는
바로 남쪽으로 날아서 서해안을 지나 중국 상해 상공울 날아 서쪽으로 쿤밍,
나카 상공을 지나서 7시간후 현지시간 16시 50분에 네팔 트리부탄 공항에 도착한다.
한국과는 3시간 15분 시차가 빠르다
네팔행 비행기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번 운항한다고 한다.
이번 비행기엔 네팔 의료 봉사팀이 4팀으로 꽉 채워졌다.
카트만두,,트리부탄 공항,,
오래된 시설에 대구공항보다도 작은 국제 허브라니,,소박하고 친숙하다
여기서 짐을 찾는데 1시간을 30분을 소요하고 ,,수속을 받고
공항 밖으로 나가니 이번 봉사를 현지에서 서포트해 주실
장성란 병원장(사하라장)께서 포터들과 함께 목에 스카프를 걸어주고
환영을 해준다. 이미 밖은 어두움이 몰려오고 있었다.
무질서속에 질서를 지켜가는 도시,,오트바이 족들, 오래된 택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승합차, 국적도 없는 낡은 트럭등,,
카트만두임을 실감한다.
이번 봉사는 의사회 3명 간호사 2명 그리고 약사1명(필자)가 팀웍을
이루어 움직이고, 덥고 열악한 환경에서 우린 더 집중해야 했다.
서울에서 온 기독여의사회와 함께 이동하고 진료하게 되는데,
거의가 60세이상으로 구성된 팀으로 80세인 선생님도 같이 오셨다.
그들은 풀바리 초등학교에서, 우린 아래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서
각각 같은 기간 동안 봉사를 할 것이다.
호텔에 가는 도중에 사하라 장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서울 기독여의사팀과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yeti yak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어제 먹은 말라론을 1정 더 먹고 피곤한 몸을 누인다.
바로 불을 켠체로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현지시각으로 새벽 3시이다,,한국에서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습관 때문이다,,
여기서 3박을 하면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풀바리 보건진로소로 출퇴근하게 될 것이다
모두 2분씩 방을 쓰는데, 약사회는 혼자라 방을 혼자 쓰는 행운을 얻었다.
고요한 카트만두 새벽에 앉아 커튼을 젖히니,,어둠이 밀려나면서 하루 시작을 알린다.
작년 5월 대지진후,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봉사 첫날,,
보건진료소 준공식을 현지시간으로 10시에 하고 진료봉사도 해야 하므로
6시에 조식을 하고 7시에 호텔을 떠난다
풀바리 마을 까지 2시간 이상이 걸리는데,,기독여의사회와 함께 두 대의
봉고차에 나눠타고 도시를 지나는 도중에 통역관 8명을 태우고,,
도시를 가로질러 해발 1500고지 에 위치한 풀바리 마을로 가는
도중에 만난 도시 풍경,,
작년 대진진에 허물어진 담장도 보이고 건물도 보인다.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 태양에 노출된 까만 피부에 마른 몸매 ,,
이 더위에 여성들은 킨 치마에 머플러를 감고,,젊은 남녀 한쌍이 어울어진
오토바이가 도시를 질주하고 차선도 신호등도 없어도 버스 택시 오토바이 사람이
잘도 어울려 다닌다.
과일을 파는 가게가 꽤나 먹음직해보여 사러 가까이에 가보니 落果 수준이었다.
전기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도시는 매연과 먼지로 가득하다.
도시를 벗어나자. 이윽고 산길을 올라선다.
가는 길목엔 소 돼지 양 개 방목하고 어린아이까지 방목한듯하다.
힌두교라 곳곳에 소가 누워있는 풍경이 눈에 띈다.
산을 깎아 다랭이로 켜켜이 만들어진 밭에서 옥수수가 햇살을 받아
영글어 가고 있었다.
꼬불꼬불 돌아서 한참을 가면 산정에 위치한 풀바리 보건진료소가 나타난다.
바로 투약을 위한 준비를 해야하는데,
변변한 의자하나 탁자 하나 없다..
부엌에 있는 둥근탁자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약을 진열시키고..
책상위에 포장기와 포장지를 진열하고..책상을 조제대로 쓰기로 한다.
이윽고 보건진료소 준공식을 개최한다고 한다.
왔던 입구로 나와서, 환송식에 준비한 커다란 나팔과 작은 나팔등 악기를
든 사람을 따라 들어가니 이지역 국회의원과 유지들 동네 주민들이 몰려 앉았다.
동네 부녀회에서 만든 풀꽃과 야생화로 된 코사지를 걸어준다.
잔치집 분위기지만 먹을 것은 물도 하나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환한 그들의 표정에서 욕심하나 없는 순수를 느낀다.
준공식과 함께 우리 일행 환영식으로 1시간이상을 보내고,,
바로 진료시작,,약 수동 포장기가 작동되지 않아서 물었더니 전압이 약해서
다시 발전기를 올려서 해결되었다.
몰려드는 환자로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하고 점심 먹을 틈이 나질 않는다.
통역을 통해 복약지도를 하고,,현지인들의 맑은 눈빛,,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면 긍정의뜻,,두손을 모으고 나마스테에,
듯녀밧,,감사합니다,로 응대하면서 간호사 두분의 도움으로
하루 일정을 끝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눈에 들어선다.
산 구비마다 집들이 띄엄 띄엄 들어 앉아,
다랭이 밭과 손바닥만한 농토를 일구며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다시 돌아오는길,,이제사 시야의 확보로 아랫마을 정경을 눈속에 담는다
산악지대에 할 수 있는 농사는 물론 옥수수,,온통 옥수수밭이다
생각보다 도로사정이 참 좋다 꼭 하루에 한번 스콜식으로 비가 오는데
군데 군데 파인도로에 물 웅덩이가 되어 있었고..
로변에 보이는 3층 건물엔 창문이 없이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웃통을 벗은 남녀 한쌍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풍경이 많이 보인다.
농촌은 한곳에 마을을 이루기도 하지만,
산의 능선과 능선사이 들어앉아 있고..건물의 양식은 대부분 3층
1층은 가축이 살고 사람은 3층에 기거한다.
하루에 한번 어김없이 내리는 스콜로 온도로가 흙탕물 웅덩이로
변하지만, 먼지나 매연을 가라앉힐수 있어 좋다.
카트만두로 돌아오는길
전통공연이 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저녁 10시가 되어 들어와서는 오늘도 불을 켠체로 잠이들었다
둘째날,,,아침 8시출발이다,,아침부터 태양이 예사롭지 않다
선풍기는 고사하고,,이곳 사람들은 더위를 모르는가?
세분의사의 처방을 조제하느라 완전 몰입해야한다.
맨발의 샌들차림이라 발은 거칠고 몇분만 다녀가도 바닥은 온통 흙먼지이다.
세분의 의사선생님 처방을 혼자 처리할려니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진료는 끝나도 투약은 밀려서 혼자서 힘이드니
석명숙 유은주 두분의 간호사분께서 도와 주시고..
현지 통역 가이드의 도움으로 이틀 투약을 무사히 끝냈다..
성인병의 거의 없고 거의가 노동으로 시달린 몸이 주는 통증을 호소하고
기침환자도 많다. 제작년 왔을때 피부연고가 많이 남아서 올해는 조금준비해서
염증약을 못가져갔는데 못내 아쉬웠다.
여름이라 샌달또는 맨발로 발에 염증이 와있고,,피부병환자도 많았다.
허리가 뻐근하고,,졸음이 쏟아지고,,그래도 좋다,,
이틀동안 진료인원 총 386명 초음파검사 심전도 검사를 시행하고
그리고 300명의 투약을 끝낸다
보건진료소 개소식과 아울러 진료봉사 7인의 5일간의 일정
한마디로 알차고 효율적인 이틀간의 봉사를 마쳤다.
마지막 일정,,해외에서 맡은,,8월 15일,,광복절,,자주국가로 살아가는
국민으로 강한 자부감을 느껴본다..
항상 지난 후에 하는 생각이지만,,좀 더 준비해서 좀 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
왔어야 했는데,,후회스럽다.
마지막날,,
사하라 장의 안내로 그녀의 카페에서 손수 만들어준 마법 커피를 마시고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원숭이 사원과, 화장장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카트만두 시내관광을 끝내고 낮에 너무 날씨가 더워 제대로 돌아다니기가
힘들어 몇 군데만 돌아보고 공항에 일찍 들어오게 된다
저녁 5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와서,8시 비행기를 타고
대구 공항에 9시에 도착, 바로 해산식을 가졌다.
잠시 사하라 장에 대해서 소개를 할까한다.
23년전 선교목적으로 네팔에 남편과 함께 들어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레스토랑 카페 농장,,등등 많은 사업을
연계해서 운영하고 있었는데,,제작년 의료봉사때부터 인연이 되어 도움을 주셨고
이번 봉사때도 많이 도와주시고 연결고리가 되신분이시다.
의료봉사를 가고자 하지만 아무 나라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현지에 갔을 때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발생할 때 이런분이 계시면
참 많은 도움이 되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분이기도 하다..단지
한국인이라는 그 믿음하나로도,,
도착부터 떠나는 공항까지 밀착 서비스를 다해주셨고,,
덕분에 그녀는 이 현지에서 특히 풀바리에서 그녀의 입지를 굳히게 될
것이다.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축복의 땅에 안착하였구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구나 ~감사할일이 참 많구나~ 안
도의 숨을 내쉰다
요즈음 가끔씩,,
흙먼지를 덮어 쓰고 궂은 살 벤 투박한 손을 모아 나마스떼를 하는
풀바리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카트만두에서 이틀을 출근하며 만났던 거리의 풍경들,,
히말라야 능선을 바라보며 넘었던 그 아름다운 산길과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지구촌 사람들의 모습들,,
선한 눈빛의 천진한 웃음과 굳은살,,가슴이 아련해 온다
네팔은 왜 행복한가?
잠시 생각해본다..
그들은 내일에 대한 걱정도 않는다
당연히 저축의 개념도 없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는다.
사람이 죽어도 오래 울지 않는다,,늙으면 당연히 죽고,죽으면 환생을 믿기 때문이다
성인문맹률은 50%가 넘어서 인구의 절반이상이 글자를 전혀 모르는 나라다.
그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거리에 동물과 가축이 뒤엉켜서 다니는 관계로
한국이라면 자동차로 10분정도의 길을 그곳에서는 1~2시간 걸린다.
자동차의 속도가 달구지 정도의 속도라고 보면 딱 들어맞는다.
그래도 운전자들은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네팔은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드는 나라가 또한
네팔이다.
남루한 옷차림에 씻지 않은 꾀죄죄한 얼굴로 거리를 다니는데도
그들의 미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맑다.
미소가 해맑다는 것은 마음에 근심걱정이 없음이다
네팔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국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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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짝짝짝 (박수)♡♡♡♡♡
소중한 네팔의료봉사후기를 올려주셨네요,..매일 바쁘게 사셔서 여행도 한번 제대로 못가신다더니,ㅎㅎ
진정한 봉사를 하고 오셨군요,..내시간 내비용 내재능 내수고를 다하며 희생이 따를때가 진정한 봉사지요,..
약산의 최고작가님의 네팔봉사후기는,.네팔 현지를 다보고 있는듯하고,..작가님의 심정으로 네팔의 산천을
보는듯 합니다,..부지런한 조회장님 약사들의 귀감이십니다,..후기 즐감합니다,~~~
작년 대진진->대지진...성인병의 거의없고~>성인병은 거의 없고로 고쳐 시약 회원게시판에 올렸습니다...정말 수고 많으셨네요~선배님~...
그렇네요,,오타,,그외에도 오타 투성이네요,,,손님 눈치보며 적다보니,,ㅎㅎ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