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4일(일요일).
봉암사 백운대계곡 : 경북 문경시.
▣산행코스 : 봉암사입구-야유암-뇌정산480봉-야유암-봉암사-백운대-일주문-봉암사입구회차장.
▣산행시작 : 봉암사입구 09시 37분.
▣산행종료 : 봉암사입구 12시 06분.
▣전체거리 : 약 7.8km.
▣전체시간 : 02시간 29분.
▣운동시간 : 02시간 27분.
▣휴식시간 : 00시간 02분.
▣누구하고 : KJ마운틴.
▲ 09시 34분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회차장.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고.. 1년에 단하루 봉암사 산문을 개방하는 날이다. 약 6km전방 마을 입구에서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승용차.. 대형버스와.. 봉암사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문경 시골의 좁은 지방도에서 막히고 밀리면서도 운좋게도 중간하차 없이 이곳 회차장까지 무사히 올라왔다.
▲ 09시 37분 : 봉암사 회차장의 성황당.
▲ 봉암사 가는길.
희양산과 봉암사는 수년전에 다녀갔었고.. 모산악회 산대장이 희양산 인근에 있는 뇌정산으로 간다기에 나도 미답산이라 함께 동행하기로 하고 안내산악회에 동승하였다. 뇌정산 들머리는 봉암사로 가는 순례객들을 따라 가다가..
▲ 양산천 야유암위에 설치된 가교를 건너 원북2리쪽으로 간다.
▲ 초서체로 쓰여진 야유암 각자.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선생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밤에 논다는 뜻이니.. 아득한 신라때의 어느날밤 최치원선생이 이곳에서 바라본 공산명월 야경이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 올라야 할 뇌정산을 가늠해 본다.
▲ 부처님 오신날.. 1년에 단하루 산문이 열리는 봉암사를 참배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문경 오지의 골짜기가 길거리주차장이 되었다.
▲ 조금전 하차하였던 건너편의 회차장 인근 주차장과 봉암사길이 인산인해다.. 와중에도 이마을 부부 농부의 농심은 한가롭기만 하다.
▲ 산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지.. 숲은 우거지고 빛바랜 시그널 하나가 길잡이를 해준다.. 아침부터 식은땀이 나고 컨디션 난조다.. 오후2시 30분까지 시간 엄수해서 하산해 달라는 안내산악회 가이드에 부응하지 못할것 같다.. 안좋은 결정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동료에게 나는 가는데까지 올랐다가 돌아갈테니 기다리지 말고 하산해서 만나자 하고 먼저 가라고 한다.
▲ 480m봉에 올라서니.. 속이 또 부글거린다.. 아침에 눈뜨자 말자 싸르르.. 쏟아낸 설사가 다시 시작이다.. 준비해간 약도 먹고.. 한참을 추스르고.. 에너지도 보충하고..
▲ 잘생긴 대머리같은 통바위 희양산을 보며.. 아쉽지만 발길을 돌린다.
▲ 희양산과 좌측의 구왕봉.
잠시 올라갔다 오는 사이에.. 주차차량은 더 늘어 난듯하다..
▲ 관상용 양귀비.
▲ 뇌정산 방향.
혼자 올라간 동료는 잘가고 있는지.. 혼산을 즐기는 산꾼이라 걱정은 안해도 될듯하지만... 안전하산을 빈다.
▲ 다시 야유암 가교를 건너가서.. 나홀로다방에서 얼굴에 찬물도 뿌리며.. 하산시간까지 서너시간의 내몸 사용법을 체크 한다.
▲ 결론은 "움직이자"..이다. 불자는 아니니 순례자의 마음은 아니지만..
▲ 휘적 휘적~.. 전국의 산천경계를 유람했던 고운 최치원의 마음으로 양산천을 따라 봉암사로 간다.
▲ 샤스타데이지..
천년고찰에도 글로벌이다.. 토종꽃은 밀려나고 외래종과 꼬부랑이름의 꽃들이 자리를 메웠다.
▲ 고경당.
▲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 보물 제171호로 1963년에 지정되었다.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하였던 정진대사 긍양(兢讓, 878∼956)의 사리탑이다. 고려 광종 16년(965)에 세워졌다. 봉암사 지증 대사 탑을 모방하고 있으나.. 비례감과 조각 수법 따위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다.
▲ 여기서부터 웬? 줄서기인가 했더니.. 절밥 공양을 받기위한 기다란 줄서기다.
▲ 선설당.
▲ 선설당앞 설거지 봉사단.. 바람직한 모습의 젊은 사람들이다...
▲ 동방장.
방장스님이 주석(主席)하는 전각이다.
▲ 봉암사 대웅보전.
▲ 극락전.
봉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헌강왕5년에 건립되었고.. 신라와 후백제간 전쟁때 경순왕이 피난시절에 원당으로 지은 곳이다.
▲ 대웅보전으로..
▲ 대웅보전 앞의 연등.. 마주보이는 전각은 남훈루다.
▲ 초파일의 관불의식..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으로 새로운 삶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 대웅보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봉암사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국사께서 창건한 고찰로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으로 그 사찰의 격이 매우 당당하다. 당시 이곳은 신라 문화의 정수인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을 이루었던 곳이다.
▲ 대웅보전앞의 흰색연등이다..연등에 색칠할 시간도 아껴 수도에 정진하기 때문에 흰등을 단다고 한다.
▲ 문경 봉암사 지증 대사 탑(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은 보물 제137호이며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지증대사(824∼882)는 이 절을 창건한 승려로 17세에 승려가 되어 헌강왕7년(881)에 왕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봉암사로 돌아와 이듬해인 882년에 입적하였다.
▲ 지증대사 적조탑비(국보 제315호)..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한 부도탑비로 신라 경애왕 원년(서기 924년)에 세운 것으로 이 비석은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며, 그가 지은 4개의 명문 비석인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이다. 비문은 최치원이 진성여왕 7년(893) 무렵에 완성했으나, 비석이 실제로 건립된 것은 그보다 30여 년이 지난 경명왕 8년(924)의 일이다. 글씨는 당시 분황사의 승려였던 혜강(慧江)이 83세의 고령에 썼는데, 중국의 서성(書聖) 왕희지의 행서체를 집자(集字)하여 새긴 것으로 서예사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비신의 높이가 273 cm, 너비가 164 c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비문에는 지증대사의 생애뿐만 아니라 신라 불교사를 3기로 구분하여 서술한 내용, 선종의 전래 과정, 그리고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 등 귀중한 역사적 사실들이 담겨 있어 신라 하대 불교사와 사회사 연구의 필수적인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 묘유문.. 묘유는 지혜가 생겨난다는 뜻이며.. 스님들이 정진 수도하는 곳이다.
▲ 희양산문태고선원..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아래쪽에 돌사자가 지키고 있다. 해방 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불교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 결사가 봉암사에서 있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나이 36세 이던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스님, 자운스님, 우봉스님 등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봉암사에서 청정가풍을 일구기 시작했고. 그후 향곡스님, 월산스님, 종수스님, 보경스님, 법전스님, 성수스님, 혜암스님, 도우스님 등 20여명이 결사에 동참했으며 결사대중은 공주규약을 정하고,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현대 조계종의 근간을 봉암사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 대웅보전뒤로 동료가 올라간 뇌정산이 보이길래 부처님 가호로 무사하산을 바랜다.
▲ 대웅보전을 지나 왔는데.. 뒤편에 또 다른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있다..
▲ 앞쪽은 금색전이라 되어 있다.
금색전이란 금색인을 모시는 집이며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금색전은 불타 없어진 것을 1955년에 다시 세운 전각이다.봉암사 금색전은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수행승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 라 하며 지증대사가 대중을 이끌고 와서 절터의 화룡점정으로 삼은 곳이 바로 이 금색전이라고 한다.
▲ 법당에는 통견차림으로 지권인을 한 화엄경의 교주이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 금색전 앞의 삼층석탑(보물 제169호).
9세기 통일신라 헌덕왕(재위 809∼826)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기단 구조가 특이하고 탑신의 각 층 비례와 균형이 절묘하다.
▲ 남훈루..
▲ 희양산과 구왕봉 아래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봉암사는.. 지증대사가 심충이란 사람의 권유로 현 봉암사 자리를 결정하고 그 곳에 있던 큰 못을 매몰하려는데 용이 서식하고 있는지라 지증 대사는 신통력으로 용을 구룡봉으로 좇고 그 자리에 봉암사를 세웠다고 한다.
▲ 진공문.
희양산태고선원의 정문인 진공문(眞空門)은 나를 완전히 비운 상태로 미세한 마음의 작용을들여다보고 잘못된 흐름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라는 주련이 있는데... "이 문 안에서는 알음알이를 내지마라"라는 뜻으로 참선하는 이는 문구를 따지거나 옛사람의 말씀이나 외우고 다녀서는 안 된다.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돼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알음알이로 전락해 버린다. 선사들은 그래서 말을 아낀다고 한다.
▲ 백운대.
지증대사는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차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되어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며 경탄했다고 하는 곳이다.
▲ 백운대 일대는..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 봉암사 인근 계곡을 봉암용곡 이라고도 한다.
▲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보물2108호)...발원 기도하는 보살이라고 하며 연대는 고려말기로 추정 되며 참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 백운대..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 저 바위도.. 고승이 참선하였음직한 자리였을 것이다..
▲ 용추동천 침류교..
▲ 봉암사 일주문.. 2022년에 보물 제2202호로 지정 되었고.. 현재 보수중이다.
▲ 오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가.. 또 쳐다보이는 뇌정산에 올라간 동료는 잘 내려 왔는지..
▲ 봉암사지증대사탑비 재현비.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한 부도탑비로 신라 경애왕 원년(서기 924년)에 세운 것으로 귀부와 이수를 완전히 갖춘 석비다. 지증대사 적조탑비의 비문은 신라시대 대문호인 `고운 최치원선생'이 글을 짓고 분황사의 83세 혜강 노스님이 글을 쓰고 새겼다고 한다. 역사학. 금석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비석인데 출입이 통제된 봉암사 경내에 있어서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수 있도록 최치원야유암역사공원에 재현해 놓았다. 비석 글자는 3412글자이며.. 비신 높이가 2712mm.. 전체 높이 4859mm이다.
▲ 고운 최치원 한시길..
▲ 야유암.. 백운대.. 쌍계.. 월영대.. 세이암.
▲ 최치원의 시.. 범해. 중국 시진핑 주석도 언급한 시다.
▲ 봉암사 회차장..
▲ 한국의 민속신앙을 언급할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성황당..서낭신.. 오래전 부터 첩첩산중이었던 골짜기에 마을 수호신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어느해 부터인가 1년이면 하루를 북새통을 이루는 문명의 이기들의 소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 오후 2시 40분.. 멀리 아래동네 어딘가로 가있던 안내산악회 버스가 올라와서 전원이 무사탑승.. 뇌정산에 갔다가 아래동네에서 기다린다는 동료의 전화를 받고. 중간에서 탑승하여.. 대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