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잠들지 않는 남도’를 떠올리다>
봄이다. 오늘, 대지에 스며드는 햇살이 참 반갑지만 한편으론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날이다.
봄 향기는 남도(南島) 제주의 유채꽃으로부터 시작된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유채꽃에서 누구는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 누구는 ‘제주도 푸른 밤’ 노래를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저 멀리 제주도에서 들려오는 아픔의 역사를 떠올려봤으면 한다.
1948년 4월 3일.
광복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이들의 봉기와 미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된 민중항쟁이 시작된 날이다. 이념 때문에 무고한 주민 2~3만 여명이 희생당해야만 했던 우리의 역사다.
오랫동안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던 탓에, 살아남은 자들의 회한이 많이 서려 있다. 지금도 많은 제주도민들의 가슴엔 큰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늦었지만, 정부가 국가차원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아픔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진실을 향해 흐른다고 믿는다.
그 진실은 역사 속에서 억울히 죽어간 영혼들을 달래줄 것이다.
하지만 남은 자들의 몫이 있다. 이 같은 희생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떠한 명분 앞에서도 반인륜적인 살상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 이념의 대립으로 국민에게 한이 맺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반성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지난 여름, 민심대장정 기간 중에 4.3공원을 찾아 항쟁에 스러져간 고인들의 넋을 기린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도가 왜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무소속이 많이 당선되는지 아십니까? 제주도 토박이들 대부분의 가족, 친척들이 희생당했어요. 전부가 피해자가 됐어요. 죽고, 다치고… 그 때,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었어요. 제주항쟁으로 입은 상처가 깊게 남은 탓에 아직도 편 가르는 것을 우리는 싫어합니다. 아마도 그 때 죽어간 숱한 영혼들이 원하는 것은 편 가르지 않는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 화합과 통합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념으로 갈라지지 않고 지역으로 찢어지지 않는 새로운 대한민국, 어쩌면 4.3으로 사라져간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지난 1948년의 오늘을 떠올리며,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을 마지막으로 띄어본다.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남도 한라산이여
2007. 4. 3
손 학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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