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의 자세
에 4:13~16
1.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1)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는 BC 486~465년까지 통치했던 바사(페르시아)의 왕으로, 이름의 뜻은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으로 즉위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바사의 수도인 수산 궁에서 자기 권세의 영향력 아래 있는 127 지방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불러 180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는 자신의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마음껏 과시하려는 것이었다(에 1:1~8).
2) 하지만 잔치의 끝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180일에 7일을 더한 잔치는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성대하게 치러진 잔치였지만, 잔치의 마지막 날 주흥에 한껏 도취된 아하수에로 왕이 갑작스럽게 왕후를 불렀고, 왕후는 뜻밖에도 왕의 명령을 거절함으로써 왕의 명예가 손상되었던 것이다(에 1:9~12).
3) 이 일로 긴급회의가 열렸고, 7명의 최고 지방관들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왕후를 폐위하는 것만이 이 일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조언하였고, 새로운 왕후를 선출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에 1:13~22). 아마도 이 잔치가 처음 시작될 때 어느 누구도 그 끝에 이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사명자를 세우시는 하나님
1) 와스디가 폐위된 후 페르시아 전역에서 새로운 왕후를 뽑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사촌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으며 자란 유다인 처녀 에스더는 뛰어난 용모와 품격을 갖추어 왕의 눈에 들게 되었고, 민족을 밝히지 않은 채 페르시아의 새로운 왕후로 선택받게 되었다(에 2:1~18).
2) 한편 왕의 총애를 받아 최고 총리가 된 하만은 권력을 휘둘렀으나,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자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내의 모든 유다인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고,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높이 50규빗(약 23미터)에 달하는 처형대(나무)를 자신의 집 마당에 세우고 다음 날 왕에게 모르드개를 매달아 달라고 청하기로 계획하였다. 하만은 왕을 설득하여 유다 민족을 제거하라는 조서를 받아 내었고, 유다인들은 민족 전체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3)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 의미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을 세우시고 이후에 그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신의 자리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사명자의 자세
1) 하만의 계략으로 유다인들이 학살당할 위기에 처하자,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베옷을 입은 채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페르시아 제국 전역의 유다인들 역시 금식하며 슬퍼하였다. 모르드개는 이 소식을 에스더에게 전달하며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구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2) 하지만 당시 페르시아 법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먼저 나아갔다가 왕이 금 규(황금 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지 이미 30일이 지나 왕에게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였다(에 4:11).
3) 이에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3~14)라며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하였고, 에스더는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고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4. 이 말씀을 대하는 오늘의 성도들로서
1) 사명자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을 믿으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피하지 않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핑계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에서 순종하는 자가 사명자이다.
2)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명자로 세우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임을 기억하고, 받은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는 교회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