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에서 세계가 출현한다
의식은 인간 뇌의 특질이다. 뇌과학 연구에서도 의식에 관해서는 아직 모두가 동의하는 이론이 없다. 제럴드 에델먼,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c Damasio, 조지프 르두 Joseph LeDoux 모두 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해왔다.
다마지오의 뇌과학은 느낌으로 시작하여 앞으로 향한다. 다마지오는 안와전두피질 orbito frontal cortex 에 종양이 생긴 환자를 관찰하면서, 감정이 거의 사라진 사람은 생존에서 중요한 판단력이 흐려짐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하는 판단력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서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신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안토니오 디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에서 감정과 느낌은 신경계가 신체 상태에 관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며, 항상성이 정보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다마지오가 뇌의 작용을 보는 관점은 항상성homeostasis 이라는 단어의 정의 속에 모두 담겨 있다. 항상성은 생존 가능한 영역에 머물도록 해주는 생물의 능력이다. 항상성이 유지되는 동안만 생물의 생명 현상이 작동될 수 있다. 생명현상에서 출현한 항상성에는 자동적 항상성과 확장된 항상성 두 가지가 있다.
자동적 항상성은 세포 수준의 대사 작용, 면역반응 조건반사의 세 가지 작용에서 시작한다. 박테리아와 진핵세포에서 항상성 작용은 생화학 분자 작용에서 쾌감과 통증을 일으켜 접근과 회피 반응을 가능하게 한다. 접근과 회피 반응이 다세포 생물에서는 충동과 동기를 유발하여 동물의 반사적 동작을 야기한다. 충동과 동기는 일차 의식이 출현하는 포유동물의 초기 감정 상태를 만든다.
디마지오는 동물과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신체 상태에 관한 배경 정서,사회적 관계에서 출현하는 사회적 정서 그리고 거친 동물적 일차 감정으로 구분한다.
1) 동물적 일차 감정은 몸과 내부 장기의 상태 정보를 비의식상태에서 처리하는 과정인 정동 affect에서 생겨난다.
2) 쾌감과 불쾌감의 일차감정이 대뇌피질의 인지적 해석을 통해 느낌 상태를 만든다.
3) 통증과 쾌감의 정동적 신체 반응이 사회적 개념으로 해석되면 감정이 된다.
4) 반사적 속성을 지닌 거친 감정들이 대뇌피질에서 기억과 인식 작용에 의해 재인식 되면서 느낌이 생성된다.
다마지오는 느낌이 생성되는 과정을 <느낌의 진화>라는 책에서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느낌, 의식, 자아를 이미지의 생성과 처리과정으로 설명한다.
1) 인간이 생성하는 이미지는 내부 장기 이미지, 몸 이미지, 외부 이미지의 세가지다. 오래된 내부 장기는 내분비 시스템에 있는 화학 분자들을 분비하여 몸 전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내부 장기의 통합적 항상성 체계인 내분비계, 순환계, 면역계는 가장 오래된 생존 시스템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담는 내부 이미지를 생성한다. 내부 장기의 내부 이미지 정보는 정동에서 감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느낌을 만든다.
2) 몸 이미지는 척추동물에서 진화한 근육과 골격 움직임에 관한 이미지이며, 피부 촉각은 몸 이미지의 경계를 구성한다. 외부 세계의 이미지는 입력된 외부의 시각, 청각, 촉각이 대뇌피질에서 신경 회로의 패턴인 지도를 만들고 시각의 형태, 색깔, 움직임이 개별 지도들과 결합해 생성된다.
3) 시각과 청각이 이미지와 결합해 외부 세계의 사물과 사건에 관한 감각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외부 세계의 이미지는 대뇌 후두엽의 감각연합피질에서 생성된다. 내부 장기의 내부 이미지 정보는 혈액을 통해 시상하부로 입력되어 대뇌피질의 외부 대상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내부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느낌이 외부 세계의 이미지와 결합하는 것이다. 의식은 외부 세계 이미지와 자신의 내부에서 생성된 느낌이 결합하여 출현하며, 몸 이미지와 내부 이미지가 외부 이미지와 결합하여 자아의식이 생겨난다.
이처럼 느낌과 의식 그리고 자아의식을 설명하는 다마지오의 이론은《데카르트의 오류>, <스피노자의 뇌>, 그리고 《느낌의 진화》라는 세 권의 저술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다마지오는 2021년 《느끼고 아는 존재》라는 책을 통해 느낌에서 출발하는 자신의 의식에 관한 이론을 앞으로 확장시켰다.
박테리아와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자동적 항상성의 세계가 바로 생명존재 그 자체다. 자동적 항상성은 생물 전기 현상을 조절하는 정교한 기계장치에 의해 자동적으로 유지된다.
확장된 항상성은 느낌에서 생성하는 의식이 출현해야만 가능하다. 인간이 만든 복잡한 사회와 문화에서 생겨나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환경 적응 능력이 인간 고유의 특질이다.
외부 세계 이미지에 신체 이미지와 내부 장기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이미지의 소유권, 즉 자아가 생성되었다.
자아 이미지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느낌으로 채색되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의식이 출현한다. 의식 상태는 대뇌피질의 광범위한 기억을 순식간에 통합해준다. 내부 장기의 내수용 감각, 근골격계의 고유감각, 대뇌 감각피질의 외부 감각이 통합하여 의식적 느낌과 자아가 작동한다.
공포 방어 생존 반응을 오랫동안 연구한 뇌과학자 조지프 르두도 느낌의 생성 과정을 감각 입력 처리, 뇌 각성 상태,신체 피드백, 방어 생존 회로, 기억이 모두 참여하는 인간 뇌의 핵심 작용으로 설명한다.
기억된 이미지의 공통 부분이 개념이 되고 이미지가 부호로 전환되어 언어가 출현한다. 이미지가 언어로 표상되면서 대규모 정보에 신속하게 접근하게 된 상태가 바로 의식이다. 인간은 확장된 항상성인 느낌과 의식의 작용으로 통합된 정보를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 되었다. 통합된 정보가 바로 지식이며 앎이다. 그래서 다마지오의 뇌과학은 존재에
서 느낌으로, 느낌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의식은 지식이다.
뇌과학의 마지막 질문은 의식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다.
의식 상태에서 뇌의 전기화학적 현상이 어떻게 현상적 실체인 느낌을 만들어내는지는 밝혀내기 어려운 문제다. 신경세포의 전압 펄스가 어떻게 통증과 쾌감이라는 의식이 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실체를 밝히려는 뇌과학자들은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의식에 관한 연구로는 에델먼의 일차 의식과 고차 의식 모델, 줄리오 토로니 Giulian Taroni의 의식의 정보통합 이론, 조지프 르두의 의식의 다중 상태 계층 모델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의식에 관한 다마지오의 이론은 항상성을 바탕에 두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확장된 항상성 상태인 느낌이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다마지오가 평생 추구해온 뇌과학은 존재에서 느낌으로 느낌에서 앞으로 진행한다.
다마지오의 이론은 '의식은 지식이다'로 요약된다. 이때 지식은 정보다.의식이 곧 지식이라는 다마지오의 주장은 '의식은 고등한 분별'이라는 에델먼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다마지오는 박테리아의 비명시적 의식에서 인간의 확장된 의식까지 설명하면서, 인간의 확장된 의식이 가능하려면 명시적으로 이미지 패턴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시적 정보 처리
는 시각 작용처럼 공간성이 확보되어야만 가능하다.
지각, 개념, 의미는 현재 입력된 감각과 이전의 기억을 비교함으로써 출현한다. 그래서 다마지오는 대상과 기억 사이의 공간성으로 의식적 명시성이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대뇌피질의 제한된 공간에 새로운 기억이 저장되려면 이전 기억들은 배열을 바꾸어야 한다.
결국 인간의 뇌는 기억이라는 공간적 배열을 동적으로 바꾸면서 외부환경의 변화하는 이미지를 만든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제한된 공간에서 시간 의식이 출현한다. 기억 공간에서 가능한 배열의 수가 바로 지식이며 의식이 된다. 이미지 패턴의 배열은 물리학에서 엔트로피와 같다. 결국 의식을 향한 뇌과학은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통해 물리학과 만날 수 있다. 의식의 실체가 물리학의 원자처럼 명확해지면 우주와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출처:박문호의 빅히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