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한산 원효봉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에 구입한 등산화를 신으려고 꺼냈더니 두꺼운 양말을 신어서인지 발이 꽈 끼여 불편해서 다시 예전에 사 놓고는 별로 신지 않은 무거운 등산화를 꺼내서 신었습니다.
15년 정도가 된 도봉산등산화입니다.
저는 도봉산등산화 점포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예전에 학교에 처음 왔을 때에 산에 다니시는 몇 분 선생님들이 보던 '월간 산'이라는 잡지에서 그 광고는 자주 봐서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수제 등산화로 유명한 곳이 '송림제화' 하고 '도봉산등산화'로 광고가 나왔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유명 아웃도어제조업체들이 유명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광고야 늘 봤지만 등산화를 사러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17년 전쯤에 우연히 연세대학교 부근에서 '도봉산등산화' 점을 보고는 그 광고가 생각이 나서 들어가봤습니다. 연세가 꽤 되신 어른이 가즉 앞치마를 두르고 신발을 만들고 계셨는데 등산화만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신사화도 있고 숙녀화도 있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서 거기서 여러 켤레의 신발을 사서 신었습니다.
그전에는 주로 남대문 회현상가 위쪽의 등산전문점을 드나들면서 신발을 샀는데 도봉산등산화를 알게 된 후는 전부 거기서 샀습니다. 저는 몸이 많이 무거워서 다른 사람들보다 신발이 훨씬 빨리 닳아 남들보다 신발을 자주 바꾸는 편입니다.
제가 왜 15년 전을 기억하는가 하면 바로 15년전 이 무렵에 막내아우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아우가 결혼할 때에 신을 신발을 거기서 샀는데 조금 크고 투박했지만 세 번 굽갈이를 해서 10년 넘게 신었고 얼마 전 이사할 때에 보니까 곰팡이가 심해서 버렸습니다. 그 신발도 정말 잘 만든 신발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에 등산화를 하나 제대로 된 걸 사려고 가서 얘기했더니 제가 보기엔 정말 전문가나 신을 거 같은 무겁고 큰 등산화를 내어 놓으면서 그걸 사라고 권했습니다. 가격이 15만원이나 되서 깜짝 놀라 안 사겠다고 했더니 몇 번을 권하다가 나중에는 화를 내면서 사리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아저씨 말씀이 이런 등산화는 다른 전문점에 가면 30만원이 넘는 거라고 하면서 거기에 딱 두 켤레 뿐인 거라고 하셨는데 제가 집에 가지고 와서 나중에 사진 찍으러 갈 때 두어 번 신고는 그냥 신발장 안에 장식용으로 들어 있는 정도였습니다.
너무 큰 거 같고 무겁고 신으면 안에서 발이 막 놀아 불편했기 때문에 신고 다닐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사를 두 번하면서 이사할 때마다 버릴까 생각을 했다가도 아까워서 못 버리고는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티비에서 등산화 신는 법을 우연히 봤는데 그걸 본 뒤에 신고 끈을 조여봤더니 생각보다 발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신고 나갔다가 처음으로 닦으러 갔더니 신발 닦은 아저씨가 아주 잘 만든 등산화이고 창도 드믈게 고급을 썼고 재질도 다 좋은 거라고 관리 잘 해서 오래 신으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말을 듣고 생각하니 예전에 그 아저씨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멋진 등산화전문점을 좋은 장소에 차리지 못하고 등산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신촌 변두리에서 기술을 인정해 줄줄도 모르는 뜨내기들이나 상대하셨을 때에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저 같은 신발을 모르는 뜨내기나 상대하면서 제품을 볼 줄도 모르고 가격이나 싸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이 많이 상했을 거 같습니다.
제 말을 듣고는 자신의 고향이 부여라고 하시면서 내 고향을 묻던 그 아저씨의 주름진 얼굴을 못 본지가 6, 7년은 된 거 같습니다. 지금은 그 가게도 없어졌고 아저씨도 보이지 않던데 살아계시다면 막걸리라도 한 잔 권하고 싶습니다.
도봉산등산화, 벌써 오래 전에 없어졌지만 거기서 나온 신발을 아직 신고 계신 분들은 많을 거 같습니다.
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