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만남이 모두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만남을 소중한 인연으로 만드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다.
여기 우연한 기회에 접한 와인을 운명적 인연으로 발전시켜 쇠락했던 한 농촌 지역을 부흥시킨 신화같은 이야기가 있다.
스페인에서 '리오하(Ridja)'와 함께 DOCa 등급(스페인 와인 중 최고 등급)을 받은 유일한 와인 산지.
'프리오라트(Priorat)'를 부호라시킨 사람들 이야기다.
프리오라트는 '고대로마시대 이베리아반도 수도였던 지중해의 '타리코(지금은 타라고나)'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다.
갚은 산속 오지라 할 이곳에서 포도 재배가 시작된 것은 2000년 이상 전인 고대 로마시대다.
그러나 중세시대에 프리오라트는 세속과 분리돼 청빈.순종.침묵을 최고 가치로 여긴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짓고 산 곳이었다.
'카르투시오 스칼라 데이' 수도회 수도사들이 지은 수도원의 원장 '프리오르'는 주변 7개 지역을 다스렸다.
여기서 지역명 프리오라트가 유래했다.
수도사들은 점판암 토양의 척박한 이곳에서 포도, 올리브, 헤이즐넷, 아몬드 등을 가꾸며 살았다.
1835년 스페인 정부가 수도원 소유의 땅을 수용해 농부들에게 불하할 때 포도 재배 면적이 5000ha에 달할 정도로 번창했다.
하지만 곧이어 닥친 필록세라(포도나무의 뿌리에 기생해 나무를 고사시키는 진딧물) 피해로 포도밭이 황폐화되자
포도 재배자들은 약 145km 떨어진 신흥 섬유 공압도시 바르셀로나로 떠나버렸다.
1970년대 말이 되자 포도원이 불과 600ha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이 지역 와인산업은 쇠락했다.
1979년 한 젊은이가 이 지역의 잠재력을 보고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와이너리를 만들어 처음 정착했다.
이내 서너명의 젊은이들이 더 들어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공동으로 와인을 양조해 각자의 브랜드로 판매한다.
동일 제품을 판매하던 이들은 1992년부턴느 각자의 양조시설에서 각자의 스타일로 와인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들이 만든 와인은 1990년대 세계 와인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다.
점판암을 기본으로 하는 프리오라트의 토양에서 40년을 버틴 토종 품종 '그르나슈'와 '카리앙'에 국제적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리즈'가 블렌딩돼 새로운 스타일의 명품 와인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이 이룬 성과를 보고 사람들은 다시 프라오라트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2000ha의 포도재배 면적에 96개의 와인 생산자가 활약하는 신천지가 됐다.
프리오라트를 와인 찬국으로 만든 주역은 클로모가도르(C;os Mogador)의 르네 바르비에(Rene Barbier)와
팔라시오스(Chritopher Cannan)이다.
바르비에의 아버지는 프랑스 아비뇽 출신으로 리오하의 팔라시오스 가문에서 양조자로 활약했다.
친구였던 알바로 파라시오스에게 바르비에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고,
이에 동조한 팔라시오스도 바르비에와 함께 1979년 프리오라트로 들어갔다.
크리스토퍼 카난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유로뱡'이라는 와인 판매상으로 활동했다.
1983년 미국 샌프란시스의 한 소매상 추천으로 스칼라 데이 와이너리 와인을 처음 마셔본 카난은 가격에 비해 뛰어난 품질에 놀랐다이때부터 프리오라트 지역 와인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뉴욕의 한 와인 행사에서 팔라시오스를 만났고, 그를 통해
바르비에를 소개받았다.
카난은 프리오라트 와인이 본격적인 명성을 얻는 데 기여했다.
1990년대 당시 무명이었던 클로 모가도르의 와인을 로버트 파커에게 시음시킨 것이다.
파커가 그의 와인 전문 잡지인 '와인애드버킷'에서 클로 모가도르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프리오라트 와인은 신데렐라처럼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카난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이후에 드러난다.
와인 유통업자로서는 큰 성공을 거둔 카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97년 프리오라트에 클로 피게라스라는 와이너리를 만들어
와인 메이커로 변신한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와인 메이커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포도밭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노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좋은 와인을 만드는 노력의 20~30% 정도밖에 해당되지 않는다.
좋은 와인의 70~80%는 좋은 포도를 재배하는 데서 나오기 떄문이다.
카난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오지인 프리오라트로 직접 걸어 들어간 것이다.
최근 스페인에서 이들을 만나 직접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을 보며 '세상에 저절로 잘 되는 것은 없고 자신이 열심히 해 우뚝 설 때 주변에서 인연도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꿈을 좇아온 열정과 신념의 역사가 결국 소중한 인연을 불러 소원을 이뤄준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도 남다른 꿈을 갖고 그걸 이루려는 용기와 추진력만이 자신의 인생길을 열어줄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이철영 와인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