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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응접실…·· 스크랩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1895] / 로댕(Auguste Rodin)
sunland 추천 0 조회 452 20.01.01 20:2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

프랑스어다. '귀족의 의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이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주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두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 부터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만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는 지도층 의무에 대한 잠언과 같은 말이다.

과거 로마 제국의 귀족들은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의

지도층 의무가 불문율이었다. 로마 귀족들은 자신들과 노예의 다른 점이 신분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생각할 만큼 지도층 의무의 실천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 13명의 로마 집정관이 전사한 것은 지도층 의무의 실천 때문이었다.

고대 로마의 지도층 의무 전통은 현재 미국인들에게 전승되었다


백년 전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1340년 영국과 플랑드르의 연합 함대가 라인 강 하구에 있는 항구에서 프랑스 해군을 저지하려다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가 백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프랑스는 전투에서 패했고, 영국 해협(도버 해협이 들어 있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 좁은 해협)의 재해권(군사력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권리)을 잃었다.

래서 백 년 전쟁은 1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프랑스 땅에서만 전투를 벌였다.

1345년 에드워드 3세는 맏아들 흑태자 에드워드(갑옷 색깔이 검은 색이라서 붙은 별명)와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이듬해 크레시에서 필리프 6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중무장을 한 봉건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는 전력에 있어서 자기네가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러나 프랑스 군대는 신무기인 큰 활을 가진 보병대(장궁대라고 불림)로 맞선 영국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크게 패하고 말았다. 크레시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칼레로 진격하여,

칼레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1347년에 그곳을 차지하였다.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1895] / 로댕(Auguste Rodin)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1917)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칼레 시민을 대표해서 여섯명을 처형한다. 그들을 본보기로 교수형에

처형하면 이 시민들을 용서하겠다. 처형 대상자를 내일 아침까지 보내라.."

 

 

The Burghers of Calais (칼레의 시민들), 1889, Bronze,  231 x 245 x 203 cm, 로댕미술관, 파리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1917)의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을 만납니다.
조각가 로댕에 의해 작품화 된 칼레의 시민 6명, 아니 독일의 극작가에 따르면
7명의 가슴 뜨거운 삶과 죽음의 결단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로댕의 이 작품은 전 세계에 12개가 있는 데 모두 진품입니다.
의아하게 생각하실 까봐 설명드리자면 이 작품들은 청동주조 작품이기 때문에 생전에 로댕의 허락을 받은
프랑스 정부의 철저한 관리 하에 여러 작품을 찍어낼 수 있는 데 12개까지만 진품으로 인정해준다고 합니다.
한국 삼성(호암) 갤러리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이 작품 사진을 찍었느냐에 따라
배경이 조금 다르게 나오곤 합니다.
로댕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프랑스 깔레- 시청광장 2. 덴마크 코펜하겐 - 니 칼스버그 조각관 3. 모랑벨츠 - 마리몽 미술관
4. 영국 런던 - 국회의사당 5. 미국 필라델피아 - 로댕미술관 6. 프랑스 파리 - 로댕 미술관
7. 일본 도쿄 - 국립 서양미술관 8. 스위스 바젤 - 쿤스트하우스 9. 미국 워싱턴 - 허쉬혼 미술관
10. 미국 로스엔젤레스 - 노턴 사이먼 미술관11. 미국 뉴욕 - 현대미술관 12. 한국 서울 - 로댕 갤러리 
 

▶  프랑스 서북부 국경지역  칼레 Calais의 현재 모습  ◀

 

 

 

칼레는 도버 해협을 사이로 영국과 아주 가까운 프랑스의 국경 해변도시입니다. 

 

 

 

 

1300년대 영국과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이 벌어지던 때의 일입니다.
프랑스 지방의 칼레는 134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프랑스의 필립 6세는 칼레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고 결국 11개월 동안 영국군의 전면포위에도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는 항복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으나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에 대해

영국 에드워드 왕은 격노하여 모든 백성을 진멸할 것을 선포합니다.
항복을 조건으로 협상을 하고자 하던 칼레의 사람들에게 영국의 에드워드 3세 왕은

그렇다면 항복을 받아주되 적어도 6명의 대표자만은 반드시 본보기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맨발로 목에 밧줄을 걸고 나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왕은 그 6명을 지명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6명을 지명하라고 말합니다.
칼레 시민들은 6명의 죽을 사람을 자기들끼리 골라내야 했습니다.
죽을 사람들!
6명이 죽어야할 사람으로 선출되어야 했습니다.
......
......
......
......

어떤 경로를 거쳤는 지 알 수 없지만 처형 전날 저녁 여섯명이  시민대표호 칼레의 광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전승에 따르면 전날 저녁에 7명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나오자 그 아들도 함께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한명이 더 나오는 바람에 제비를 뽑자는 의견에

생 피에르가 말했다는군요, 내일 아침 영국군의 진지로 교수형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

선착순으로 오는 사람을 정하고 마지막에 오는 사람은 제외하자고...

그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다음 날 아침 생 피에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6명이 모인 가운데 궁금해하는 시민들 앞에

생 피에르는 관 속에 누어 나타납니다. 결심이 흔들릴까봐 미리 죽음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훗날 이 내용에 감동하여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1878~ 1945]가 쓴

희곡 [칼레의 시민들]-1914년에 발표, 1917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초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날 시민대표로 7명이 나왔고 상 피에르가 죽었다는 것은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의 해석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

500년이 지나 1884년, 칼레 시청에서는 당시의 위대한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에게

이 6명의 영웅적인 모습을 담은 조각을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 선조들의 사건에 감동했던 로댕은 1895년, 이 6명의 조각을 10년에 걸쳐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로댕은 이 조각들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조각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고뇌하고 눈물을 흘리고 체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칼레 시청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조들의 당당한 모습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댕은 10년 동안 한 인물 인물을 생각하면서 상 피에르를 포함한 6명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며

그들의 고민을 절실히 생각하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프랑스 칼레 시청광장

 

 


아래의 얼굴들이 과연 당당하고 기개가 넘치는 얼굴로 보이십니까?
원 조각의 해설에는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과 표정에 대한 해설이 있는데 보는 이마다 서로 견해가 다릅니다.

어떻게 보이십니까?

두려워보입니까?

당당해보입니까?

겁에 질려보입니까?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

칼레시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가장 연장자

 

 

장 데르(Jean d'Aire)......

항복의 표시로 영국왕에게 증정해야 할 칼레시의 열쇠들을 들고 서 있다.. 

 

걸어가며 동생 자크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는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

 

 

 

 형 삐에르 드 위상의 뒤를 따르고 있는 동생 자끄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쟝 드 피엥스(Jean de Fiennes)

두려워보입니까?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강해보입니까?

 

 

머리를 감싼 채 걷고 있는 앙드리에 당드르(Andrieus D'Andres)

두려워서 그러는 것일까요?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지막 이 사진의 방향에서 보십시요, 그들은 결국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웠지만 주어진 책임을 따라 갔습니다.

 

로댕은 진정한 영웅은 인간이기에 두려움에 떨며 고민하면서도 그러나 결국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하지 않았던 점에 있는 것이지 겉으로 보기에 담대함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로댕은 말합니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두려움으로 당황하고 거부하고 반발하고 고민했지만

결국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들은 고민하면서도 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고민하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왜 하필 내가 이 죽음을 당하는 가 생각했을 법 하면서도
그들은 , 뒤돌아 서지 않고, 고민하면서, 갈등하면서도, 교수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조각 사진들,
그렇게 보이십니까?

cafe.daum.net/jsseo43/IRQK/10   아름다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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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1.01 21:52

    첫댓글 귀한 글을 올려주셨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작성자 20.01.03 23:09

    고먑습니다. 지기님도 평생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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