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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글은 스마트폰 ▅ 와이드(WID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바디매오의 믿음 마가복음 10장46-52절 / 이홍열 목사 ➤“46. ¶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니라.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과 많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눈먼 사람 바디매오가 큰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47. 그분이 나사렛 예수님이시란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며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명하여 그가 잠잠하게 하였으나 그가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라. 49.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그를 부르라고 명령하시니 그들이 그 눈먼 자를 부르며 그에게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분께서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그가 자기 옷을 내버리고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가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 하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길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즉시 시력을 받고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니라.”(KJV) ⚑승리하는 삶의 비결 인생의 허무를 말해주는 여러 가지 비유들이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라든가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 삶은 흘러가는 뜬 구름처럼 덧없는 것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은 말들이 그것입니다. 종종 이런 소리를 듣다보면 정말 인생은 무의미한 존재요 가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인생은 그렇게 허무하고 가치 없고 덧없기만 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해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인생이 그렇게 가치 없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있다가 없어지는 필요 없는 안개 같은 존재라면 왜 하나님이 그토록 공들여 만들었겠습니까? 왜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면서 까지 사랑했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쓸모 있게 만드신 귀한 존재입니다. 무언가 섭리가 있어서 만드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관 속에 인생을 낭비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삶의 마지막 골인선에 섰을 때 후회 없는 인생일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설교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디매오의 아들인 눈먼 사람 바디매오가 눈을 뜨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באר 바'는 시리아어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גוף מאו 바디매오’는 디메오의 아들’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자가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헬라 수신자들을 위해 그렇게 주석적 설명을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기적적 치유의 역사하심이 있었지만 그 기적을 이끌어 내기까지는 바디매오의 필사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오늘 아침엔 마침내 눈을 뜨고야 말았던 소경거지 바디매오에게 초점을 맞춰 승리하는 인생의 비결을 찾아보십시다. 1.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리고 시내에 들어오셔서 아마도 설교 하시고, 심방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일상적으로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리고 시내에서의 모든 전도 일정을 마치시고 다른 마을이나 아니면 정해진 숙소를 향해 여리고를 빠져 나가시고 계실 때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아마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따라다니는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바로 그런 시간에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라는 말을 오늘의 말로 고치면 아마도 퇴근시간에? 혹은 군대로 말하면 제대 말년 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리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대에 사업이야기를 한다든다 물건을 팔려고 방문하면 절대적으로 실패하기 쉽습니다. 얼마 전 제가 구두를 사러 모 제화점에 갔었습니다. 저녁 8시쯤 문을 닫는데 7시 50분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판매직원들이 입장을 거부합니다. 한 마디로 “왜 하필 퇴근시간에 와서 퇴근을 못하게 하느냐?” 우리도 빨리 집에 가야하지 않느냐? 하는 투입니다. 결국 구두를 못 사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지금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찾아 간청을 드리는 시간이 아주 적절치 않습니다. 말하자면 가게문 닫기 직전, 시장이 파장이 될 무렵, 누구든지 상대방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시간에 예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포기합니다. 그냥 돌아섭니다. 안되면 말지하고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일을 마치고 여리고를 떠나시는 순간까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남들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아니 내가 생각해도 그만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순간까지 포기치 않는 정신, 모두가 포기하고 돌아설 때에도 끝까지 매달리는 불굴의 의지. 이것이 인생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물러않습니다. 악착같이 매달리는 끈기, 어떤 절망의 상황에서라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가집시다. 이것이 인생을 승리자로 만듭니다. 오래전에 양복지를 생산하는 기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게다가 악덕 바이어가 클레임을 걸어와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수해가 나서 공장이 물에 잠겼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수재 후에는 화마가 찾아왔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장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포기해야할 순간입니다. 이때 이 회사의 사장은 어려서 친구들과 장난했던 [항복 받기]놀이를 회상했습니다. 친구를 엎어놓거나 목을 조여 [항복] 소리를 먼저 하는 편이 지는 놀이입니다. 결코 항복 소리를 안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치 않고 매달렸습니다. 결국 회사를 재건했습니다. 그때 그 경험을 바탕으로 팔기(八起)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모임에는 부도경험이 있는 사람만 회원의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회사 사장님은 부도를 내고 팔기회에 가입한 회원들을 향해 그렇게 자문한다고 합니다. 끈기와 용기를 가지시오. 개인적으로 자금을 은닉 하지 마시오. 채권자를 피해 도망 다니지 말고 끝까지 설득하시오. 부도의 원인은 경영자의 교만이니 겸손하게 경영 하시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 회사가 나전모방입니다. 팔기(八起)회 회장은 바로 그 나전모방의 남재우 사장입니다. 여러분 긴 인생을 살다보면 막히는 곳도 있다. 절망적인 순간인들 왜 없겠습니까? 한숨으로 보내는 시간인들 왜 없겠습니까? 남들이 이젠 가망 없다고 포기하라고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싸우세요. 용서하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 저신 남부교회 목회 초기에 실패한 목회자입니다. 집사람은 그 때 저를 보고 목회할 성격이 아니니 차라리 교수나 공무원 쪽이 어떠냐고 은근히 제안을 해 왔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도 목회자로서의 좋은 자질과 성격은 갖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친화력(親和力)도 부족하고 설득하는 힘도 약합니다. 처음엔 루터 신학교 학장님인 도로우 목사님을 찾아가서 어디 시간강사라도 좀 받아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거기서 목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말 이를 악물고 닥쳐오는 목회의 고통을 참아낸 적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 제가 있고 우리교회가 있는 줄 믿습니다. 지금은 안 간다고 그래도 자꾸만 신학교에서 강의하러 오라고 해서 고민입니다.(교우들 웃음) 여러분 바디매오를 기억합시다. 모두가 이젠 종치고 막 내렸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주님을 찾았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어떤 절망의 상황이라도 포기치 않는 불굴의 의지, 그것 있으면 인생실패는 없다. 여러분의 삶속에 그 의지가 넘쳐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분께서 너를 부르신다.(46) 여러분 거지로 태어났으면 몸이라도 건강해야지요. 건강은 못하더라도 구걸할 정도의 몸은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디매오는 그 건강 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구걸하기에 목 좋은 곳은 건강한 거지 힘센 거지가 차지하고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그런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 순응하거나 포기치 않고 눈을 뜨겠다는 소망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환경을 비관만 하지 않고 눈을 뜨겠다는 희망의 꿈을 키워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이것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환경이 조금 열악하다고 주변 여건이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환경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누구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세월을 잘못 만나서 등등 주변의 여건만을 원망합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바디매오는 소경거지 신분임에도 꿈과 용기를 잃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온몸이 멀쩡한 젊은이들이 패배주의에, 염세주의에 빠져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환경과 여건이 좋으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원망한다고 해서 그 환경은 바뀌지 않습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좋지 못한 여건을 최상의 환경으로 변화시켜야합니다. 여러분이 모르니까 저를 보고 목사님! 목사님 하지, 저의 성장배경을 알면 달라질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서 저는 가난했습니다. 콩비지에 당원을 풀어 마시고는 밤새도록 설사한 경험도 여러 번입니다. 등록금 6천원이 없어 철도고등학교에 미등록 제적이 되었습니다. 검정고시에 두번씩 떨어졌습니다. 친구들이 대학 다닐 때 고등학교 1학년에 겨우 입학했습니다. 학생회장 사전선거운동으로 고등학교에서 정학도 맞았습니다. 아버지는 막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새우젓 장사로 가계를 꾸려 가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아버지는 남편이 부인에게 썩일 수 있는 속이란 속은 다 다 썩이신 분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가문의 배경도 없습니다. 저 충청도 시골의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하게도 그런 환경과 부모님을 원망해본 적 없습니다.과거를 생각하면 오늘 저는 너무나도 출세한 사람입니다. 불리한 환경을 원망치 않고 목회자라는 꿈을 향해 도전하도록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저는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디매오를 기억합시다. 현재가 소경이면 어떻습니까? 눈을 뜨면 되지 않습니까? 현재가 거지이면 어떻습니까? 복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현재가 실패이면 어떻습니까? 일어서면 되지 않습니까? 현재의 환경을 원망하지 맙시다. 그것을 피해 도망가려고 하지 맙시다. 다시 일어섭시다. 다시 도전합시다. 주님을 만납시다. 불리한 환경에 손 내리는 나약한 믿음이 아니라 환경과 여건을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간증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여! (47)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이 분을 다시 못 만날 귀한 분인 것을 알고 내 눈을 뜨게 해줄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리고 성 밖으로 빠져 나가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붙잡아 세우기 위해 비록 눈을 보이지 않지만 남아 있는 성한 입으로 목이 터져라 예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여러분 바디매오의 그 절규는 어떤 절규였겠습니까? 젖을 달라고 칭얼대는 어린아이 같은 것이었을까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어린 아이의 칭얼댐이었을까요? 속삭이듯 외치는 감미로운 목소리였을까요? 아닙니다. 그 외침은 이 기회가 아니면 지금 아니면 다시는 기회기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는 피를 토하는 절규였습니다. 부르다가 외치다가 주님이 그냥 지나치시면 끝내 죽어버리겠다는 피맺힌 절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이 절규는 한마디로 처절한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위해 내가 생애를 건다는 그것 하나 가지면 결코 인생을 실패로 살지 않습니다. 김재철이란 분이 있습니다. 부산 수산대 어로학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타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수산대학 출신은 수산청이나 수협에 취직하는 것이 상례인지로 대학출신이 험한 육체노동을 하는 원양어선을 탄다고 하니 받아주질 않습니다.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은 각서를 쓰고 원양어선에 승선하게 됩니다. ①-침대가 없으면 야전침대를 놓고 잔다. ②-월급은 주지 않아도 좋다. ③-내가 먹을 쌀을 갖고 타겠다. (그러나 식사는 제공받음) ④-내게 사고가 일어나더라고 회사 책임은 없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열심 있는 그 청년은 한국 굴지의 원양어업회사의 회장님이 됩니다. 동원참치로 유명한 동원산업의 김재철 회장이 바로 그분입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성취하는 사람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 열성이 있어야합니다. 저는 종종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열심히 일한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 여러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취가 있습니다. 생애를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불렀던 바디매오의 그 절규! 그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명하여 그가 잠잠하게 하였으나(48절)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는 데는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나가서 사람들이 시끄럽다며 욕지거리하는 멸시와 냉대라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그런 장애 때문에 주님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소리 질렀다고 했습니다. ➤“48.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명하여 그가 잠잠하게 하였으나 그가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장애를 만나면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걸음 앞으로 나가는 적극적인 용기. 이것이 인생을 승리로 만듭니다. 긴 인생 여정에 왜 장애가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 장애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인생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장애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최고의 우량기업 포항제철이 있습니다. 설립초기 외국 제철회사는 기술과 차관 제공을 거부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철공장을 차린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해 쓰는 것에 대해 정계와 언론에서 드러내놓고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진 어려움과 장애를 넘었기에 오늘날 포항제철이 있습니다. 삶의 고비 고비마다 다가오는 장애물 때문에 두려워하고 용기를 잃고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파도를 스포츠로 장애물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여기는 배짱! 그것이 인생을 기름지게 만듭니다. 이름을 이 땅위에 남겨놓고 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화려한 승리의 뒤안길에는 수없이 넘어왔던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을 넘었기에 오늘의 그들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봅니다. ➤“49.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그를 부르라고 명령하시니 그들이 그 눈먼 자를 부르며 그에게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분께서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그가 자기 옷을 내버리고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가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 하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길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즉시 시력을 받고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니라.” 바디매오의 마지막 절규는 결국 여리고를 빠져나가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바디매오는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시력(視力)을 받게 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길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인생은 뜬구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을 살아볼만한 가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남들이 끝이라고 말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그 부정의 환경을 복의 환경으로 바꾸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바디매오 처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절규로 열심을 다 하십시오. 어떤 장애가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뛰어 넘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빛나는 인생, 찬란한 생애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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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는 자와는 더불어 인생을 논하지 말라
목사님 훌륭하십니다. 크게 쓰임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