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강변 역
- 강순
검은 스타킹의 여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오늘의 강으로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여자의 다리는 오늘을 흐르기 위해
검은 스타킹에게 하루를 빌렸다
스타킹은 고단한 다리를 달래고
구두는 그 흐름을 조장하는 법을 알고 있다
스타킹은 어제를 기억하며 흐르고
다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흐른다
방향을 잃으면서 흐르고
이유를 모르면서 흐른다
스타킹은 다리에게 버려지지 않으려고
내일도 위태롭게 흐를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버려지지 않으려고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은 것처럼
오늘은 어제 흐르다 남은 물결
사람들이 지하철을 우르르 빠져나가고
계단을 내려가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며
어제와 내일의 경계에서 급히 오늘에 휩쓸린다
나는 누군가의 뒤에서 수초로 흐르고
누군가는 내 뒤에서 물고기로 흐른다
당신은 안녕하신가?
오늘을 잘 흘러
우리 모레쯤 만나 사랑할까?
뉴스에서는 부패한 정치인이 강의 흐름을 바꿔 놓고 있다
오늘이 여러 방향에서 물결에 휩쓸린다
ㅡ『시와 소금』(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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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대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나붙었답니다
누군가는 1호선 전철역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줄줄 왼다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3이 모여사는 서울과 수도권에는 늘 파도가 일렁입니다
여러 방향에서 물결치다보니 소용돌이도 생기고, 삼각파도도 생깁니다
변두리에서는 세찬 해일에 휩쓸리기도 하겠지요
차라리 중심이 나을 지도 모릅니다
가벼운 스티로폼처럼 온몸의 힘을 빼고 흔들면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말입니다
수년 전에 막내동서가 강변역 근처 아파트에 살다가 지금은 경기도 양수리 쪽으로 옮겨앉았는데
왜 그 역 이름이 강변역인지 아직도 나는 모릅니다
그저 옛날에 강가였겠거니 하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