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나이를(세월)을 먹으며 자란다-
-내말이-
그녀는 남자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그렇기에 아이들도 자기를 잘따른다며 자신 있어했다.자신에게는 고만 또래의 딸이 둘있으며 이혼한 남편이 데리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그녀는 부동산 중계업을 하고있으며 동시에 도청앞에 제법 규모있는 생선구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이혼을 하고 일년쯤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싶었던나는 창원으로 직장도 옮기고 이사도 해볼까 할량으로 집을 알아보던중 만난 여인이었으나 서로가 야릇한 모종의 느낌을 가졌달까? 짧은시간에 가까워졌으며 뜨거워 지기까지했다.그런걸 사랑이라 하던가?암튼..그딴걸 했던거같다.그녀는 나의 아이들을 하루빨리 보고싶어했으며 희망에 부풀어 있어 보였다.해서 그녀의 가개에 아이들을 데리고가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나역시 나름 부풀어있었다.연배는 동갑내기였으나 자신을 잘가꾸며 살아온 여자로 보였고 지적인면도 힐끗?보이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있어 보였기에 손해날건 없겠다는 얍삽한 생각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초등5학년,중1,인녀석들을 데리고 가개로갔다.그녀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품위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쓰면서 아이들에게 명함을 건냈다. "아줌마 이런 사람이고 너희들하고 친해지고 싶은사람이란다"라면서..살짝 웃으며 명함을받아쥔 녀석들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명함을 만지작 거리더니 큰놈이 먼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첨에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좀있으니 아예눈물을 훔칠 생각도 않고 그냥 닭똥같은 눈물을 주루룩 흘려버렸다.그러더니 작은놈도 따라서 울어버렸다.서럽게도 울었다.심봉사를 의붓애비로 맞는 뺑득이인들 그리 섧게 울었을까.그녀는 당황해서는 어쩔줄 몰라했고 나는 실망했다.녀석들이 아무리 어리지만 어찌 이토록 아버지 입장은 전혀 생각 해주지 못하는걸까..순간 아이들이 야속했고 미웠다.솔직히 말하면 분노했었다.그일이후로 그녀와 나는 웬지 서먹해졌고 어색해져갔으며 멀어져갔다.그리고는 이별을 고했다.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열아,우리 너무 일찍 만났다그자? 우리너무 경솔했제?"
신발가개 점원은 친절하게도 이것저것 여러 신발들을 내밀며 상품을 설명하려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최고 헐은거 주소" 그런식으로 사 신기던 아이들의신발이 어느시점에 이르러서는 한계에 다다랐다.아버지 말이라면 군소리 안하고 묵묵히 따르던 녀석들이 큰놈 고등학교 입학할 시점에 이르러서는 소위 반항이란걸 하기시작했으나 이미 훌적 커버린 녀석들이라 완력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싶어 슬슬 져주기 시작했다.항상 스포츠머리를 고집하던 나에게 반항의 표시로 백구친적도 있었고 새로산 신발 맘에 안든다며 다떨어진 운동화 그냥 신고 다니고 뭔 말을하면 대꾸도 잘 안하고 윽박지르면 딴곳에 시선을두고 멀뚱거리며 건성적인 답을하기 일수였다. 사람들은 그런현상을 사춘기 현상이라 설명하며 날 설득했다.사춘기? 그런게 있었나?난 그런거 없었는데? 싶었지만 지금와 곰곰히 생각해보면 부모와 아이들 간의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기위한 냉각기가 아닐까싶다.마치 몸집이 불어난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운 허물을 만들듯이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고..그렇기에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것이아닐까.
큰놈 고3때 여름이었다.녀석들이 즐겨신는 농구화를 사러 작은놈이랑 구 시내를갔다.좁아터진 2차선도로에 북적거리는 인파가 많아 좀처럼 가지않는 곳이지만 아이들의 신발을 사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다(난 많이 변해있었다)정차해있는시간이 길기에 큰놈에게 발크기가 얼마나 되느냐는 문자를 보냈다. 몇분이 지났지만 답이 없길레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안받는다. 괘씸한놈,'신발 안사준다' 그러고 있는데 문자가 날아들었고 운전대앞에 전화기를 두고 확인하다(정체중인 길이라)황당해서 앞차와 충돌할뻔했다."누구?" 이건 무슨경우지? 아버지가 문자하고 전화했는데 누구?라니? 마침 적당한 골목이 보이기에 차를꺾어 잠시세우고 확인전화를 했다.신호가 한참 가고서야 전화를 받는데 어떤 여자 아이가 받는다.이건또 뭐래??싶어 어안이 벙벙했지만 침착하게 물었다. "이거 김지붕이 전화 아이가? 니는 누고?" 했더니 애가 대꾸를 못한다.이만하면 대충 상황파악이 됐기에 담에 얘기하자며 끊었다.녀석들 애인놀이 하고 있었던거다 서로 전화기 바꾸어가며 서로의 일편단심을 확인하는 짓거리이리라.웃고말았다.
모처럼만에 일찍 퇴근을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문이 잠겨있기에(우리집은 가져갈게없어 문안잠그고산다)초인종을 눌렀더니 한참만에 문이 열렸다.짜슥들이 무슨 호작질하고있었나싶어 대충 둘러봤더니 떡볶이를 해먹으려는지 싱크대근처가 난리도 아니다.녀석들 떡볶이해먹으면서 뭔 죄라도 지은양 어색한표정이라 찬찬히 살펴보니 현관에 쬐끄만 여자아이 운동화가 보였다.보아하니 세녀석이 떡볶이 만들어 먹다 내가들어서니 여자아이는 큰놈방에 후다닥 숨어버린 모양이라,이거 잘됐다 싶었다.옛날에 즈애비 연애질할때 극구 회방 놓았으니 나도 이참에 복수한번 해보자싶었고, 너무 기쁜 나머지 담배를 꺼꾸로물고 불을 지폈을 지경이었다. 나는 부러 큰소리를 내며 큰놈을 윽박질렀다. "김지붕이 요즘 공부 열심히 하나? 니 소문들으니 공부는 안하고 가시나 꽁무니 쫒아 다닌다드만 그기 사실이가?" 했더니 "아입니더" 한다 "그래? 진짜제? 공부 열심히하고 있제? 니 공부안하고 엉뚱한짓 하고 댕기는거 보면 가만안둔다 알았나?"했더니 "예"하고 대답하는데 옆에있던 작은놈이 웃음을 참지못하고 킬킬거렸다.나도 웃어버렸고 큰놈도 씨~익 웃었다.녀석을 내방에불러 아버지 문닫고 있을테니 저녀석 보내주라 했더니 또웃는다.이 이야기는 내아들 김지붕이의 친구들간에는 전설로 남았다.
사실 칭찬할꺼리가 없어 어디가서 아들자랑 잘못한다.착하긴 한데 착한건 기본이 돼야하는 것이라 자랑꺼리가 못되는 것이다.녀석이 알바해서 번돈으로 아버지 소주한번 샀으면 어딜가서라도 자랑질을 하며 다녔을텐데..사실녀석들은 내가진 멍애에 올려진 큰 짐이었다.때로는 발에체워진 족쇠이기도 했으며 팔목에 채워진 수갑이기도 했다.난 때때로 그리 느끼고 그 짐스러움이 억울하단 생각도 했었다.어찌보면 녀석들은 내가 가진 장애였다.하지만 중년에서 장년으로 접어드는 이시점에 서서는 좀더 익은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싶다.여지것 어떤 방식으로든 발효의 단계를 거쳤으면 이제는 깊은 맛이 나도록 숙성해야할때가 아닌가싶다.아들이긴 하지만 이미 성장해서 성인이 되었으니 인간대 인간으로서,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힘이되주는 생산적인 관계로 발전했으면 더없이 좋겠기에 그리 노력할까한다.녀석들은 여지것 나의 장애였으나 동시에 나에게 책임과 의무감을 지워줌으로써 나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으며 설득했다.녀석들은 나의 자유를 구속한 족쇠였으나 동시에 나를 쓰러지지않게 지지해준 버팀목이었던것이다.어쩌면 난,녀석들이 없었으면 지하철역사에서 빡스쪼가리 깔고자는 노숙자가 됐
을 확율이 높다.인간은 지킬것이 없으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안그런가? 녀석..어디서 줏어들은 소리가 있었든지 웃는얼굴하며 군에갔다. 아버지 힘들어할까 싶어서 겠지만 그맘을 빤히 아는 나로서는 더 아렷다. 몇일후면 면회가게 생겼다. 등시 짜~슥..
※ 십 수년전의 기록이다
사돈간 상견례 하자는데 멀 어찌해야 할찌는 잘 모른다 그냥 있는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될일 이겠거니 한다
잘난구석 없으니 자랑할것 없고, 그닥 못난꼴도 없으려니 싶으니 말수만 줄이면 평점이려니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 키운 녀석들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최선을 다해 크고 자랐지 싶고 나는 만족한다 자리는 우찌 우찌 되것지 하며 불안한 날 다독인다
첫댓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였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내 인생은 저 밑 바닥에 내 팽기쳐 버리고 너희 때문에. 이 만큼이나 벗틸수 있으믐 고백하는 글속에 아련한 느낌이 듭나다
남은 생 건강 하시고 행복 하셨음 좋겠네요
나이를보니 한참이십니다
힘내시고 홧팅 하세요
방목하며 내비뒀더니 저절로 저절로 자라있더군요
사실은 온 정성으로 힘들여가며 도와주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딸들이었으면 키워내지 못했지 싶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아드님 장가가려나 봅니다. 상견례.^^
저도 작년에 그 어려운 관문을 지나 왔지만, 그저 며느리 될 처자 칭찬 많이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그냥 함박산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면 무난 하지 않을까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빠 홀로 두 아들 키우시는 것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아드님들도 아빠맘을 잘 헤아리는 효자이지 싶습니다.
리진님 아드님 상견례 걱정 하신글, 결혼식글 기억합니다 부모마음은 다 비슷하겠지요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줄수있는 최고의 선물은 피아간의 아름다운 거리 유지하며 사는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 기나긴 글을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가슴이 찡~~하네예? 감동입니더.
그런데 왜 제가 그쪽 말로 댓글을 쓰고 있나는 모르겠구요ㅎㅎ
두 아드님이 최선을 다해 자라줬다고 쓰신 글 말미에서 진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저는 모성애는 생득적(生得的)인 것임을 의심하지 않으나,
부성애는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함박산님의 이 진솔한 글에서 느껴지는 부성애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할 높은 온도와 진한 순도가 느껴집니다.
며느님 보시게 됨을 감축드립니다!
딸은 세 개 있는데 사위는 한 개도 없는 저는 매우 매우 부럽습니다!
지붕군이 장남인가요? 지붕군이 올리버군인가요?
지붕군과 예쁜 예비 며느님을 축복하고 또 축복합니다! ^^
사족, 우리 둘째 딸랑구가 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바락 바락 대들던 초등 고학년 때,
여태 키워줬더니, 라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태 자라줬더니, 라고 받아쳐서 모녀가 전쟁 직전에 깔깔 웃고 화해한 일이 생각납니다. ^^
살깎이 목표 달성 하셨나요
오랫만에 글로 뵈니 무지 반갑습니다
육식위주로 식탐많은 큰녀석을 장발장이라 부르고 체식위주의 식탐없는 작은 녀석을 올리버라 부릅니다
부성을 두고 생각 해보자면 많이 부끄럽습니다 해준거 없이 윽박지르만 했지요
해줄것 없는 못난애비 만난것도 즈들 복이고 팔자니 어쩌겠습니다
여지것 그랬듯이 그저 보며 흐르는대로 내비둘수밖에요
야무지게 꾹 꾹 눌러쓰신 댓글 감사합니다~^
상견례를 앞두고
지난 일들이 많이 생각나시나 봅니다 .
아들들과 함께한 진솔한 나날들과 진한 부성애.
깊은 감명과 함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곳 삶의 이야기방에.처음으로 가족이야기 올려봅니다 .
리디아님 반갑습니다
마음의 품이 커 보여 보기 좋았습니다
한 카페에서 이방 저방 구분 짓는게 뭔 의미가 있으려나요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실하고 아름다운 나무도 보고 때로는 먼 숲을 보며 사색도 하고 놀고 쉬고 하면 될일이지 싶습니다
아드님들 공부를 무지 잘한 범생이 들이군요
효녀이시며 현모이신 리디아님
앞으로 좋은일 많을겁니다
건강만 하시길요~^
@함박산2 힘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들과 살아온 이야기가 리얼하게 나타나 실감납니다.
나도 아들 하나(현재는 만 39세 노총각) 두었지만
자라면서 내가 능력이 없어 학원 한 군데 보내지도 못했는데
초중고, 대학입학 공군(휴학) 복학 대학 졸업, 취업하여
지금은 수원의 한 아파트를 3억 3천에 전세 살며 서울로 직장 잘 다니고 있는데
능력 없는 애비란 걸 아는지 자기 인생을 잘 헤쳐가고 있어 다행입니다.
대학교 졸업 후엔 10만 원도 준 적이 없으니까요.
다만 짝을 만나 결혼을 해야하는데 평생을 함께할 짝 만나기가 쉽질 않습니다.
자랑할만한 아들이이고
자랑할만한 부인 이십니다
시인님 스스로가 배풀며 사시니 신은 또 은혜로운 복을 주시며 화답한거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 건필 하시길요~^
지나온 시간은 보석같기만 하실듯 합니다
행복한 일상이 펼쳐지시리라 봅니다
수고하셨어요 ^^
자식들과 함께한 지난일들이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그저 큰 탈없이 보냈으니 그로 만족 하는거지요 별탈없으면 그것이 행복이란걸 나이들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걸 철든다 하나요
좀 있으면 노망나지 싶은데 말입니다 ㅋ~
맘 착하고 매사에 진지하신 홍실님, 댓글주심 감사합니다~^
부정의 사랑으로 다독여 키운 아들 상견례로 며느리를 맞이하는 축하 할 기쁜 날이군예
거꾸로 목매단 두 아들 시에미 임당
큰아들 내가 시에미 된 나이가 됐네예
큰아들 말 돈 버는 것 보다 애들 키우는게 더 힘들다고 말 그제서야 사춘기 보낸 때를 기억 하드군예
세월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말 결혼 후 아부지를 많이 이해하고 잘 아부지게잘 할 겁니더
세월이 사람 가르친단말 너무 가슴어 새겨집니다
난 애들 정성들여 키우지 못핬고 그저 방목 했으니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오히려 녀석들이 힘들었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애증이자,자랑입니다.
특히 편부모일 때 많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안한 맘이 듭니다 잘해준것 없고 또한, 이 시점에서도 해줄게 하나도 없다는것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녀석듷에게 짐이 되지나 않을까 싶어 맘이 무겁습니다
글도 잘쓰시는 함박산님 학자 풍의 인성으로 두 아들 홀로 키워내었으니 그 영향이 지금 또 점차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동변상련의 감정으로 글을 읽어 가노라니 어미인 저 보다 더 잘키우신 함박산입니다
자식의 사춘기 그 과도기 속을 혼란 분노 좌절로 시작해서 피터지는 싸움 끝에 드는 생각 다 내 죄다 내 죄다로 물러 서니 싸움이 끝나더군요
만약 그 싸움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순풍처럼 잘 자라 줬다면 나는 지금쯤 요만큼이라도 성찰을 했을지
또 자식들 그들도 어미와의 갈등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어미를 이해하고 저들 무분별했던 짓을 반성하는 보상으로 효도라는 선물을 준비했을까요
어릴 적엔 먹이만 물어 줘도 어미를 세상의 모든 것이라 따르던 자식들 어미도 그때처럼 평온하고 행복한 시절만 기억하고 싶지요 내 인생 평생 살아 내는 것도 고달픈데 두 인생을 어른으로 키워내야 했으니 님이나 저나 세상에 홀로 키우는 어미 아비는 다 부처입니다 부처의 도량을 아니 지닐 수 없지요 어찌 보면 이 수양의 도를 닦게해준 자식이란 존재에게 고마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금요 수업 오늘 장애 편 피피티 발표 였는데 제가 첫번째 해치우고 다른이의 발표 들으면서 이 댓글 씁니다 글이 좀 억지 스러워도 이해해주시길요~
성찰 이란것도 힘있고 능력 있을때 하는것이 옳은 성찰입니다
진정한 용서란, 힘있는자가 약한자에게 배푸는것 이라하지요
이제 몸과 마음이 닳고 낡아 남루해진 이 시점에 진정한 성찰이라 할것은 없지 싶습니다 약해진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체념인 것이지요 내 한몸 건사하는것이 녀석들에게 배풀수있는 최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님도 고만 아프시고 동무들과 어울려 산책도 하시고 맛집도 다니십시오~^
우선
축하드립니다
드뎌 시아버지 대열에 합세하시네요
자식~장애이기도
족쇄이기도 했지만
나를 가장 수행하게 만들기도
하여~~요만큼의 어른이라도 되었나 싶어요
저는 넘 매정한 어미기도 하고
지금도 그러합니다만
늙어 혼자 외로워질지라도
하늘아래 그리운사람이
존재한다는 자체로도
자식 낳고 키운것 잘했다 싶습니다
그라고 재혼~안한거 잘했심돠~ㅋㅋ
봄 가을, 낮밤 없이 갈구던 아들이 있었고 녀석을 그리워할 날이 있게될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아들이 암만 밝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아들이 아픔일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누구든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한단말 안합니다
사랑한줄도 모르고 사랑하니까요 여지껏 아들에게 사랑한단말 한적 없는거 보면...
아마도 나는 녀석을 깊이 사랑했던가 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삼천만원만 채주시이소
내도 월남 할매한테 장개 가구로
@함박산2
함박산님 장개간다믄
속고쟁이를 팔아서라도 채줄텡께요
먼저 할매부터 차즈소~~!!!ㅋㅋ
@정 아 누부야~
사랑한데이~
ㅋㅋㅋ
@함박산2
하이구마
우짤라꼬
여서 이카꼬~~@@
크크
장문의 글 지루한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속깊은 아드님 군입대 이야기에 눈물이 ㅠㅜ
아부지의 사랑으로 그래두 두아드님 잘 성장했네요
상견례를 앞두고 있군요 만감이 교차할것같고 얼마나 가슴뿌듯하고 뭉클할까 싶어요
우리 며느리되어서 고맙다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함박사님 필력으로 봐서는 상견례 멋지게 잘 하실것같아요
상견례 하시고 나면 또 글 올려주세요 ㅎ 궁금할것같어요
상견례에 멋부릴 필요 있나요 그저그냥 있는모습 꼴대로 보여주면 되지싶습니다
상견례 후일담 글 써서 올리겠습니다
생판 모르는 익명들의, 세상을 향한 궁시렁이 이렇듯 따뜻한 메아리로 울리는걸 보면
세상은 아직 인간들의 세상이구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님의 마음 보탬이 힘이되어 무거운맘 덜게 됩니다
님의 마음 만큼이나 몸도 건강 유지되시길 바랍니다~^
그녀석들
어쩌자고 아버님
앞날을 가로막았을까요..ㅎㅎ
최선을 다해 큰
아들..ㅎ
당당히 내어놓으십시오..
이제 한 짐 더시는
순간이 오는
모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한짐 던거는 맞습니다만
한번씩 빈자리가 허전하긴 합니다 미안키도 하구요
저도 나이가드니 몸과 더해 마음도 약해집니다